정거장
우구치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춘양에서 서벽을 지나 도력재를 넘어 산골짝 이곳에 들렀다. 굽이굽이 산을 넘어 상동으로 가는 차를 타기 위해서다. 오전에 들렀다가 오후 나갈 때 또 태우는데 시간 맞춰 일찍 서둘러야만 한다. 휑한 길가에서 마냥 웅성거리며 기다려야 한다. 시계도 없어 대충 어림으로 나온다.
그 전엔 큰 나무 실은 짐차를 탔다. 잘 걸리면 운전석 옆에 앉아갈 수 있다. 어려서 어른들 틈에 끼워줬다. 엄마는 위태로운 뒤 짐칸 위에 여러 사람과 흔들리며 갔다. 길이 좋나 울퉁불퉁 좁은 길이다. 낭떠러지를 비스듬히 기어가고 물살 센 개울을 더듬더듬 건넌다. 푹푹 빠지는 진탕은 울렁울렁 앞뒤로 몇 번 갔다 왔다 탄력으로 나간다.
그러다 앞이 툭 튀어나온 박스형 버스가 다니면서 오는 시간에 맞춰 나간다. 멀리 산등성을 돌아내려 웅웅 소리가 들리면 반갑다 반가워. 편한 의자에서 달려가는 차창 바깥을 보노라면 산과 골짝, 마을. 나무가 모두 그림이다. 어쩌다 장터에 가는 달구지에 매달리면 신났는데 산판 트럭이나 버스에 오르니 살판났다.
추울 때나 비 올 때 편하다. 이리 수월할 수가 있나. 길이 험해 잦은 고장으로 뜸할 땐 걸어간다. 늘 삼사십 리 길은 걸어 다니는 게 일인데 영주중학교에 갈 때는 한 주 자취할 음식을 자루에 넣어 메고 책가방을 든 채 타박타박 봉화역까지 간다. 곳곳에 시냇물이 나타나면 옷을 벗어 벌서듯 치켜들고 건넌다.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풍덩 빠지면 큰일이다. 그런 낭패가 어디 있나. 기차도 석탄을 가득 실은 여러 개의 화물칸이 한참 지나간 뒤에 끄트머리쯤에 객실 하나가 나타난다. 변두리 보름골까지 시내를 가로질러 메고 들고 이골나게 걸어가는 어린 시절이다. 그땐 그게 고생인 줄도 모르고 잘 나가는 것으로 알았다.
그랬던 것이 어언 70년이나 지난 가마득한 세월이다. 정거장마다 푯말을 세워서 그 앞에 기다리면 탈 수 있다. 눈비 오거나 바람 불 땐 온통 두들겨 맞아야 하고 쨍쨍 뜨거운 강한 햇볕은 가로수 아래 머물렀다. 앞이 트인 좌우 뒤의 벽을 만들고 위를 덮어서 한결 나았다. 얼마 뒤 앉을 의자를 넣었다.
점점 편해지기 시작한다. 기다리면 이내 찾아오는 버스다. 유리 벽으로 오고 가는 게 다 보인다. 얼마 뒤 모니터가 붙었다. 오는 차가 몇 정거장 전에 오는 게 표시되고 방송도 나온다. 전 정거장을 출발했다는 말이 들린다. 저게 대충이지 맞겠나 했는데 걸맞다. 신기도 하지 어찌 그걸 알아맞힐까이다.
겨울철 차갑던 의자가 뜨끈뜨끈해서 이게 왜 이러나 만지니 전기를 넣었다. 일어서려니 따뜻한 자리가 아쉬워서 그냥 앉아있을 때도 있다. 차야 가든 말든 뒤에 또 오니 그때 타면 된다. 겨울은 그렇다 치고 여름은 찹찹하다. 혹시 냉장고가 들앉았나 싶다. 여러 대 버스가 제각각 어디쯤 온다는 게 모두 나타난다. 멀찍이 대는 게 아니라 서 있는 바로 코앞에 댄다. 올라타면 ’어서 오세요.‘ 하고 운전기사가 인사까지 한다.
바로 출발하지 않고 자리에 앉는 걸 보면서 서서히 움직인다. 바닥이 높아 몇 계단 올라야 하는데 요즘은 낮아서 타면 바로 걸어 자리로 갈 수 있다. 내릴 때마다 두드리거나 ’오라이‘ 하던 차장의 소리가 없다. 겨울엔 문을 꼭꼭 닫아 시쿰한 쉰내와 짙은 화장품 냄새가 솔솔 났다. 여름은 창문을 모두 열었다. 천장의 공기창으로도 달릴 때 바깥바람이 쌩쌩 들어와 시원하게 더위를 식혀준다.
훅훅 숨 쉬던 찜통 차 안이었는데 이젠 문이란 문은 다 꼭꼭 닫은 채 조용한 차내엔 찬 바람이 싱싱 나와 서늘하다 못해 춥다 추워. 이 여름에 무슨 이런 일이 있나. 엔진 소리도 없는 조용히 달리는데 더 조용한 전기차들이 늘어나고 있다. 타고 내리는 앞뒤 출입문도 자동으로 열리고 닫힌다. 돈 받고 잔돈 주던 그 바쁘기만 하던 차장은 온데간데없다. 출퇴근 때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려 안간힘을 쓴다. 온몸으로 밀어붙이던 간들간들한 약한 여인들은 지금 다들 잘살고 있을까.
타는 곳 가까운 건널목에는 무턱대고 기다리는데 깜박깜박 붉은 불빛의 초 시간이 찰칵찰칵 넘어간다. 그러다 건너라는 푸른 빛으로 바뀐다. 양쪽 바닥의 횡선도 푸르러 안전하게 가라는 빛이다. 언제 그렇게 조정해 놨는지 놀랍다. 정지선 땅을 파서 유리를 덮고 청홍색이 빛나도록 만들었으니 감쪽같다.
자주 다녀도 그리 일하는 걸 못 봤다. 내 모르는 사이에 세상이 이리 휙휙 바뀌니 얼떨떨하기만 하다. 하루가 다르듯 숨 가쁘게 좋아져만 간다. 대형 파라솔을 세워 신호 기다릴 때 눈비를 피하게 하고 그늘지게 했다. 잘한다. 했더니 행주에 풀한다고 추위 피하는 움막을 투명하게 만들어놨다. 아마 추위 타는 노인이나 어린이를 위해서일 것이다.
자리도 노인과 임산부 앉는 자리가 따로 있다. 눈에 잘 띄게 오르고 내리는 가까운 곳에 있다. 노란색과 분홍색으로 기다린다. 우우 복잡할 땐 아무나 앉는데 노약자가 오르면 고맙게도 얼른 자리를 내준다. 휴대전화 보는 척하면서 미적거리는 젊은이도 있지만 어른 공경하는 맘은 여전하다.
차비 내고 잔돈 거슬러 주던 지난날 그 거추장스러운 차장의 수고가 없어졌다. 카드를 대면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곧 충전하라는 안내도 나온다. 날마다 좋아져서 십 년 뒤에는 어떻게 변할까. 자이 궁금하다. 아니 그때까지---. 글쎄.
첫댓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부터 정거장은
존재 했을 것 같아요
오랜 시절 그 때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펼쳐집니다
숨 가쁘게 변화되는 문화에 따라오다 보니
숨 줄의 길이도 몇 뼘이나 남아 있으려나
수고하셨습니다. 왕성한 필력에 경의를 드립니다.
버스정거장 온열의자는 서울에만 있는줄 알았는데, 부산까지 내려갔군요.
한참 먼거리로만 여겨지던 부산이었는데, 아들이 자주 왔다갔다하니 가깝게 느껴집니다.서울보다 외려 살기좋다며 서울생각이 없어졌다며 서울에 올라올 생각이 없어졌답니다.
가끔씩 저도 발전하는 문명에 과연 내가 쫒아갈수있을래나...이런생각을 해 보면 암울하기 그지없습니다.
아무리 경로우대석이지만, 눈살찌프리게 하시는 노인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나이드셔도 품위유지는 필수임돠!!!
고향 면인데도 초등학교 땐 버스를 못 봤어요.
어쩌다 산판 차가 다니면 신기해 여겼습니다..
휘발류 냄새가 좋아 따라가면서 놀았습니다.
뒤에 앞이 튀어나온 버스를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