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7 효종 9년, 선략장군행선전관자 종4품 하>
敎旨
魏天會爲
宣略將軍
行宣傳官
者
ㅇ治十四年十月十三日[印]
●내용 및 특징
1657년(효종 9) 10월 13에 孝宗이 魏天會에게 宣略將軍行宣傳官으로 임명하면서 발급한 문서이다.
선략장군(宣略將軍)은 종4품 西班 무관에게 주던 下階 품계이다.
선전관(宣傳官)은 선전관청(宣傳官廳)에 속하여 왕의 시위(侍衛)·전령(傳令)·부신(符信)의 출납과 사졸(士卒)의 진퇴를 호령하는 형명(形名) 등을 맡아본 일종의 무직승지(武職承旨)의 구실을 한 무관(武官)이다. 9품부터 정3품 당상관(堂上官)까지 있었는데 초기에는 8명, 후에는 25명으로 증원하여 이를 수석(首席 : 정3품 당상관) 1명, 당하관 3명, 참상관 (參上官) 7명, 참하관(參下官) 14명으로 구분하였다.
품계가 관직보다 높으므로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관직 앞에 '行'자를 붙였다.
☞ 삼수군수공(諱 天會 24세, 1629~ ?) : 자(字) 여우(汝遇) 호(號) 취수헌(醉睡軒)으로 통덕랑 諱 국보(國寶)와 恭人 광산金氏 사이에서 四子 중, 三子로 태어났다. 公은 호남어사의 신분으로 장흥을 들른 노봉(老峰) 민정중(閔鼎重)이 公을 보고 武科에 응시하도록 추천하여 출사하게 됐다. 젊은 시절 번쾌불사장비부생(樊噲不死 張飛復生 번쾌가 죽지 않았고 장비가 다시 살아났다.)라고 불리 울 정도로 호방한 용력과 멋진 한시를 창작할 정도의 지식과 뛰어난 문학성을 겸비하여, 어모장군오위도총부도사 등 여러 내직을 역임하다 1664년 함경도 변경 삼수군수(三水郡守)를 제수 받았다. 당시 삼수(三水)에는 해남출신 남인(南人)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5~1671)가 71세의 늙은 나이에 조대비(趙大妃)의 상례문제로 서인들과 다투다 1660년부터 위리안치(圍離安置) 되어 있었다. 고향의 어른이라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편의 제공 및 잘 보살펴 주어 이 때문에 조정의 미움을 사서 관직에서 물러나고 행원으로 귀향하여 지우들과 수창(酬唱)하며 보내다가 1669년 종(終)하였다고 수록하였다. (대동보 지장록 p132)
그런데 승정원일기에 의하면 1666년 윤선도의 이배(移配)시 편의 제공으로 용천부에 정배(定配) 되기도 하였으나, 1671년에 경상우도병마우후를 제수 받아 1672년에 연유를 알 수 없는 살인의 죄목으로 1683년까지 도형(徒刑), 정배(定配), 이배(移配) 등 형벌 집행과 귀양살이가 되풀이 되어 정확한 종년(終年)은 알 수 없다. 배(配)는 淑夫人 죽산安氏, 淑夫人 연안李氏이며, 묘소는 행원 江亭中麓乙座이고 1822년 석천사(石川祠)에 배향(配享)됐다.
☞ 公에 대한 행장과 관련 대동보 면주, 지장록, 충의록, 장흥위씨 요람 등 모든 선대 기록에서 "三水府使"라고 수록하였으나, 승정원일기(1664 현종 5년, 3월 12일)에 "三水郡守"로 관직을 제수함이 확인되고, 현존 교지에 의거 차후에는 "三水郡守"로 함이 타당하다.
삼수부사공으로 알았는데 오늘에야 삼수군수공으로 재조명됨을 축하드립니다. 역사는 살아 있어 언제나 성장 소멸 변화를 반복하지요. 우리 문중 역사도 이에서 예외는 아니지요. 나날히 발전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위문 선조분들중에서 병조참판공과 함께 대표적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직계 후손으로써 감격스럽습니다.
휼륭하신 문중 조상님 옛발자취와 조선시대 역사 공부를 하고 갑니다.
재치(財痴) 위현동 님
삼수란 지명이 생소합니다.
삼수군이란 지명도 있었나요?
조선시대 형벌의 종류.
형벌은 중국 명나라 법률을 모방하였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가;-태형(苔刑).극히 가벼운 죄인에게 작은 매로서 볼기를 치는 형벌로서 태는 10 ~ 50대의 구분이 있다.
나;-장형(杖刑).약간 가벼운 죄인에게 곤장(큰 매)으로 볼기를 치는 형벌로서,장은 50~ 100대의 구분이 있다.
다;-도배형(徒配刑).약간 중한 죄인에게 일정한 지역에 도배하거나 또는 군대에 동원시키는형벌로서,1 ~ 3년의 구분이 있다.
라;-유형(流刑=유배형).
(1) 유배.죄인을 귀양보내는 형벌로서 이를 유적이라고도 하며,죄의 경중에 따라원근의 등급이 있고 귀양간 곳을 적소라고 한다.
(2) 장유.죄인에게 장형과 유형을 같이하는 형벌인데,이를 장배라고도 한다.
(3) 찬축.죄인을 먼곳으로 귀양보내 쫓아낸다는 뜻인데,이를 찬배라고도 하였다.
(4) 안치.죄인이 귀양간 곳에서 일정한 처소에 주거를 제한하는 형벌로서 흔히왕족이나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에게 적용하였는데,안치에는 3가지의종류가 있다.
가;-절도안치;-죄가 중한 사람에게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보낸것.
나;-위리안치;-죄간 약간 중한 사람에게 탱자나무의 가시덤불로 둘러싸인곳으로 귀양보낸 것.
다;-본향안치;-죄가 가벼운 사람에게는 자기의 고향에다 귀향을 보내연금 시키는 것.
마;-사형(死刑).
(1),사사(賜死). 중한 죄를 지은 죄인으로 하여금 사형에 처할 때 우대하는 뜻에서 사약을내려 자살케 하는 형벌.
(2),주살(誅殺). 죄인을 처벌하여 죽이는 것을 일컫는 말.
(3),참형(斬刑). 죄인의 목을 베어 죽이는 형벌인데,1894년에 폐지.
(4),능지처참(凌遲處斬). 대역죄를 범한 사람에게 행하는 최대극형으로서 범인을 일단 죽인후다시 그 시체의 머리와 두팔.두다리.몸통의 6개로 갈라서 각지에 보내어 사람들에게 보이는 형벌.
(5),부관참시. 이미 죽은 사람에게 가하는 극형으로서 무덤을 파 헤치고 관을 꺼내어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서 거리에 내걸던 형벌.
(6),효시. 참형을 일종으로 사람의 목을 베어 군중앞에 보인다.
碧泉 위윤기 형님...삼수는 '삼수갑산'이라는 지명으로 더 유명합니다...물이 세군데에서 모임다는 뜻이겠죠...삼수와 갑산은 개마공원에 있는 험지중의 험지입니다...삼수는 조선초 그리고 후기에는 도호부사가 임명되었으나 대부분 군수가 임명되었습니다...또한 갑산은 병조참판공(휘 정철)께서 도호부사를 역임하신 적이 있는 지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碧泉 위윤기 조선시대의 "삼수갑산"이라는 단어는 현대에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와 비견될 것 같습니다...^^
재치(財痴) 위현동 님
그러면 삼수와 갑산은 함경도에 있는것이네
碧泉 위윤기 옛날에는 함경도에 속했지만 현재는 양강도(함경남도의 북쪽)에 속한다고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