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반둥 회의'라는 용어를 통해 이름을 알게 되었던 반둥은 인도네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인구 230만) 북쪽에 땅꾸반 빠라후, 남쪽에는 까와 뿌띠라는 활화산이 유명하고, 고지대 휴양 도시라 날씨가 시원한 편이라고 들었다. 여행자 거리인 잘란 브라가(Jalan Brega)에서 가깝고 반둥 역에서도 가까운 끄다똔 호텔(Kedaton Hotel)에서 5일을 묵었다. 오래 되었지만 제법 규모가 있는 3성 호텔인데 평소에는 3만원대인 방을 5만원씩 주고 묵었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거의 없지만 호텔 방값만은 확연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다.
2023.12.21
최근에 자카르타 - 반둥 간 고속 철도가 개통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동남아 최초의 고속 철도. 중국 자본과 기술로 건설됨) 한번 타 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양쪽 기차역들이 기존 시가지에서 멀어서 기차를 한번씩 더 타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간적으로 큰 이득이 없는 것 같다. (일반 기차는 3시간, 고속 열차는 30분에 두 도시 사이를 주파한다니 조금 덜 걸리기는 하겠지.) 그래서 이번에는 일반 기차를 타기로 했다. 9시 30분 감비르역 출발.
그런데 하루 전날에야 예매를 했더니 남은 자리가 각 열차에 하나씩밖에 없다. 부부가 각기 다른 열차에 타야 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ㅎㅎㅎ. 이그제큐티브 (일등칸) 요금 202리부.
12시 반 경에 반둥역에 도착해서 (10분쯤 걸어서) 호텔에 짐을 풀고 길을 나섰다. (이번 여행 중에 얼리 체크인을 거절한 호텔은 하나도 없었다.)
반둥의 여행자 거리인 브라가 거리가 호텔에서 멀지 않다. 차들이 느리게 지나다니는 길 양편으로 음식점과 까페와 옷가게 등이 주루룩 늘어선 거리를 잘란잘란 하다가 대충 찝어서 들어간 식당이 Mih Kocok Mang Dadeng이었는데, 그림 보고 맛있어 보이는 걸 고르다 보니 시그니처 메뉴인 mih kocok (흔들 국수?)은 안 시켰고 소 족탕과 갈비 구이를 시켜 먹었다. (미 꼬쪽 그림도 족탕 그림과 비슷하기는 했다.) 갈비 78 족탕 47 포함해서 총 168리부. 맛있다. 인도네시아 요리가 먹을 때마다 입에 착착 붙는 느낌이다.
점심을 먹고 슬슬 내려가 보니 아이콘 브라가가 있는 작은 사거리가 한 편에 시티 투어 버스가 서 있다. 이런 건 타 봐야지. 요금은 20리부, 반둥 시내 전체를 크게 도는 건 아니고 브라가 거리에서 그둥 사테(Gedung Sate. 식민지 시대 옛 건물인데 지붕 위에 사떼 =꼬치구이 모양의 첨탑이 있어 이렇게 불린단다.)와 지질 박물관 근처를 돌아오는 40분 정도의 코스다. 미리 공부하기로는 지질 박물관 건너편에서 출발한다고 했는데 막상 가 보니 반대편인 브라가에서 출발했고 지질박물관 근처에서는 멈추지도 않았다. 거기서 내려서 구경을 하고 다음 버스를 타는 것도 가능한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중간에 내리지 않는 분위기라 우리도 가만히 앉아 있다가 출발점에 돌아와서 내렸다.
시티 투어를 마치고 근처에 있는 반둥 회의 기념 박물관을 찾았으나 이미 문을 닫은 시간이다. (담에 봐야지 했지만, 반둥에서 5박이나 하면서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결국 못 가봤다.) 브라가 거리에 있는 Jabarano Coffee라는 가게에서 커피를 마시고 노닥거리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은 북쪽으로 2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활화산 땅꾸반 빠라후(Tangkuban Parahu)와 그 근처를(동네 이름이 름방Lembang이고 오키드 포리스트, 두순 밤부, 플로팅 마켓 등의 관광지가 있다.) 보러 갈 계획이라, 차량을 렌트하기로 했다. 클룩보다 저렴하다고 알려진 트래블로카에서 393리부에 소형차를 예약했다. 연료비와 기사 식대는 별도로 현장 지불하는 조건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식대 70( 비수기 60리부로 정해져 있었지만 70을 달라고) 연료비로 200(실제로 100리부 어치는 조금 넘게 들은 것 같지만 역시 이의 없이 달라는 대로) 주차비와 약간의 팁을 합쳐서 315리부가 추가로 들어갔다. 하루 종일 차 대절하는 총 비용이 6만원 정도니 절대로 비싸다고는 할 수 없겠지?
2023.12.22
차를 대절해서 북쪽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입장료를 많이 냈다. 땅꾸반 빠라후가 215, 오키드 포리스트가 115, 플로팅 마켓과 두순 밤부가 40씩 해서, 일인당 3만 5천원 정도, 두 사람 입장료 합치니 총 렌트비보다 많다. 특히 땅꾸반은 그냥 산인데 왜 저렇게 많이 받아? 게다가 카드결제 수수료로 3퍼센트를 더 내라고까지 한다. 천원쯤 더 주는 게 아까워서 현금으로 내기는 했지만, 공공 기관에서 왜 이런 짓을 할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땅꾸반 빠라후는 커다란 분화구 바닥 여기저기에서 유황 연기가 솟아 오르는 모습이었다. 난생 처음 직관한 활화산이니 신기하긴 했지만, 감동적인 수준까지는... 활화산 맛보기?
오키드 포리스트는 '난초의 숲'인가? 넓은 부지에 예쁘게 꾸며 놓은 식물원이다. 쉬어 가기 좋은 곳.
플로팅 마켓이란 곳은 이름에서 담넌사두억 같이 배를 타고 다니는 수상 시장이 연상되었지만, 그건 아니었고 호수 가운데 걸어다닐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주변에 가게를 배치한 방식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호수에 유람선도 다니고 여러 가지 놀이 시설도 있는 유원지? 우리도 (애들이나 타는?) 꼬마 열차를 타고 킬킬거리기도 하고 음식도 사 먹고...
두순 밤부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대로 대나무를 테마로 한 농원? 혹은 공원이다.
숙소로 돌아와 쉬다가 아이폰 충전 케이블을 사러 브라가 거리로 나갔는데, 처음 들어간 가게 꼬마들이 장난을 친다. 케이블 하나에 130리부라고? 뭐 이렇게 비싸냐, 안 산다, 하니 바로 100리부로 내려간다. 냅둬라. 조금 더 걸어가서 Mumuso(다이소 비슷한 분위기)에 들어가니 정찰 가격 22리부에 세금이 붙어 23.5리부다.
2023.12.23
다음 행선지로 꼽은 빵안다란(팡안다란. Pangandaran)까지 가는 교통편이 불확실해서 어제 북쪽 투어를 마치고 내려와 남쪽에 있는 레위빤장 터미널을 찾아갔었다. 트래블로카에 레위빤장에서 빵안다란으로 가는 버스가 하루 한 번 있다고 나오기는 하는데 뭔가 불안했기 때문. 과연 직접 찾아가 보길 잘했다. 터미널에 들어가 몇 사람에게 물어 봤지만, 한결같이 여기서는 빵안다란 가는 버스가 없다. 찌짜흠으로 가라고 밀어낸다. 옆에 있던 택시 기사들이 찌짜흠 가자고 달려들었지만, (찌짜흠은 어디? 짜짜흠은 시내에서 북동 방면에 있는 제2 터미널이다.) 우린 이미 차가 있다구요. 찌짜흠을 가려고 출발했는데 북쪽에서 내려올 때도 막히던 시내 교통이 더 심하게 막힌다. 찌짜흠은 우리가 내일 따로 가 보기로 하고 호텔 앞에서 렌트카를 보냈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을 먹은 후에 그랩을 불러 찌짜흠부터 가 보기로 했다. 근처에 이 지역의 전통 악기인 앙끌룽 공연장이 .있다니 거기까지 갔다오면 딱 좋은 일정이다. 호텔에서 찌짜흠까지 우릴 태워 준 수다쟁이 그랩 기사가 (빵안다란을 뭐하러 가냐, 발리 해안이 더 예쁘다 하며 딴지를 걸더니) 빵안다란 가는 버스는 에어컨 없는 작은 버스라고 하며 우릴 위축시켰지만, 터미널 안에 들어가니 PANGANDARAN이란 글자가 선명하게 보이는 대형 버스가 서 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까지 매 시간 출발하며 빵안다란까지는 5시간이 걸리고 요금은 135리부란다. 물론 에어컨 있는 버스고. 버스 정보가 너무 없다 보니 자카르타까지 고속 철도를 타고 갔다가 거기서 빵안다란 근처의 찌줄랑까지 비행기를 타는 방안까지 고려했었는데 한 시름 덜었다. 비행기 쪽이 시간은 덜 걸리긴 하지만, 돈이 많이 들잖아?
버스 문제를 해결했으니 이제 점심을 먹고 매일 3시에 시작한다는 앙끌룽 공연을 보러 가야 하는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한다. 터미널 밖 앙꼿 정류장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가 같이 앉아 있던 한 앙꼿 기사가 추천하는 근처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그렇게 들어간 집이 맛집이었다. 작고 허름한 건물에서 순다 식 나시짬뿌르(몇 가지 반찬을 골라 밥고 함께 먹는 대표적 일상 음식)를 팔고 있었는데 싼 가격에 반찬이 다 맛있어서 구글 지도에 추천 리뷰를 올려 두었다. Sukahati Restaurant.
전통 악기 공연을 보러 찾아간 사웅 앙끌룽 우조(Saung Angklung Udjo. 입장료 120리부를 내면 앙끌룽 모형 목걸이를 준다.)에서는 악기 연주뿐 아니라 몇 가지 전통 춤 공연도 보여 주었다.
공연들도 괜찮았지만, 제일 좋았던 것은 관객들에게 앙끌룽을 하나씩 나누어 주고 연주(한 가지 음만 나오는 앙끌룽을 손에 든 관객들이 지휘자의 제스처에 따라 자기 차례에 소리를 내면 그럴듯한 음악이 만들어진다.)를 체험하는 하는 순서였다. 다같이 나가서 춤을 추는 뒷풀이도 흥겨웠고.
호텔로 돌아왔다가 저녁을 먹을 겸 신시장(Pasar Baru) 쪽으로 걸어가 봤는데, 시장 건물은 문을 닫는 중이라 못 들어갔다. 그런데 반둥 역 남쪽 방향에 있는 이 구시가지는 상권이 너무 죽어 있다. 아직 초저녁인데 불을 켠 가게가 띠엄띠엄 보일 뿐 거리 전체가 벌써 어둑어둑하다. 길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이 가득차 있지만, 걸어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는 거리, 식당도 잘 안 보이더니 조금 화려한 분위기의 중국 식당을 만나 탕수육과 두부 요리를 먹고 돌아왔다. 비싸네. 두 번 다 맛있게 먹었는데 점심값은 48, 저녁값은 298.
2023.12.24
오늘은 남쪽에 있는 활화산 까와 뿌띠(Kawah Putih. 하얀 분화구)로 일정을 잡았다. 단순한 일정이니 렌트카보다 그랩이 나을 것 같아 불렀더니 편도 270리부란다. 괜찮네. (중간에 톨비 10 추가)
그런데 차비는 괜찮았지만 길 사정은 그렇지가 못했다. 막혀도 너무 막힌다. 중간에 고속도로도 있었지만 있으면 뭐해. 잠깐 달리는 듯하다가 톨게이트 100미터 앞에서부터 주차장인데. 톨게이트를 지난 다음에도 끔찍한 교통체증이 끝까지 이어졌다. 처음에는 까와 뿌띠 가는 관광객이 많아서 길이 막히는 줄 알았는데 도착해 보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반둥에서 남서 방향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너무 좁은 게 문제인 듯하다. 50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5시간이나 걸려서 도착했으니 내 생애 최악의 교통체증이다.
까와 뿌띠 입장료는 110리부, 여기에는 분화구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셔틀 차량 비용이 포함된다. 그랩 기사는 주차장에서 대기하기로 하고 우리는 셔틀을 타고 올라갔다.
셔틀에서 내려 사람들을 따라 분화구 아래로 내려가는데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아이쿠야. 우산은 준비했지만, 비가 오면 구경을 잘 못하잖아?
앞서 가던 사람들이 분화구 바닥에서 서성거리거나 특이한 모양으로 죽어 있는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길래 우리도 나무 사진이나 찍고 돌아가야 하나, 생각하며 발길을 돌리는데 저 쪽에 데크 길이 보인다. 비가 그치면서 시야가 좀 트인 덕분. 25리부씩을 주고 걸어가 보니 데크 길 너머에 신비한 느낌을 주는 호수가 있다. 어이쿠 이걸 안 보고 그냥 갈 뻔했나? 하얀 분화구라는 명칭은 호수 옆의 하얀 바닥에서 얻은 건지 모르겠지만 호수 색깔도 아주 멋진걸?
대나무로 만든 예쁜 길을 따라 올라가면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여기도 별도 입장료 25리부.
기다리고 있던 그랩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도 역시 죽음의 마쯧(Macet 교통체증), 호텔까지 4 시간이 걸렸으니 갈 때보단 덜 걸렸네. 으으 지겨워. 차비는 300 리부를 주었다.
2023.12.25
오늘은 하루 종일 호텔에 갇혀 있었다. 하루 종일 비가 왔으니까.
2023.12.26
빵안다란으로 이동하는 날.
9시 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 호텔 조식을 먹고 체크 아웃. 8시 쯤 그랩을 불렀더니 1분도 되지 않아 그랩 기사가 눈앞에 나타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 터미널까지 가는 길도 한산해서 8시 20분 쯤에 찌짜흠 터미널에 도착했다. 이미 대기 중이던 9시 차를 타고 빵안다란으로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