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가요무대에는 <덕수궁 돌담길 >이 등장합니다. 이 곡은 덕수궁을 둘러싼 돌담길에 얽힌 사연을 노래한 곡입니다. 덕수궁은 본래 경운궁이라 불리는 조선왕조의 이궁이었지요. 궁궐 중에서도 격이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경복궁에서 거주하던 고종은 1896년 2월 일본의 압제를 피해 경운궁 부근에 있던 러시아공사관으로 파천합니다. 고종은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경복궁으로 환궁하지 않으려 하지요. 결국 1년 뒤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경운궁은 1897년 10월 대한제국이 수립된 이후 황제가 거처하는 법궁으로 승격하지요.
덕수궁은 해방 이후 일반인에게 공개됩니다. 그 결과 우아한 데이트 코스로 각광을 받지요. 과거 데이트를 즐기던 서울의 남녀에게는 이 돌담길이 필수 데이트 코스였지요. 특히 이 곡이 지어진 1960년대는 데이트 장소가 드물어 더욱 각광을 받았습니다.
< 덕수궁 돌담길 >은 덕수궁에 대한 노래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으로 보여집니다. 이 곡의 가사를 지은 분은 명곡 <흑산도 아가씨>, <마포종점> 등을 작사한 정두수 님입니다. 이 곡을 작곡한 분은 <동백 아가씨>, < 해운대 엘레지 > 등을 작사한 한산도 님이었지요. < 덕수궁 돌담길 > 은 1966년 진송남 님의 구성진 목소리에 실려 널리 알려집니다. 이 곡은 그해 방송사로부터 품격높은 가요로 선정되지요. '제1회 부산 국제 신보사 제정 작사상'을 비롯해 '문화공보부와 전국 예술인 총연합회 제정 작사상'을 수상합니다.
< 덕수궁 돌담길 >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비내리는 덕수궁 돌담장길을
우산 없이 혼자서 거니는 사람
무슨 사연 있길래 혼자 거닐까
저토록 비를 맞고 혼자 거닐까
밤비가 소리없이 내리는 밤에
2. 밤도 깊은 덕수궁 돌담장길을
비를 맞고 말없이 거니는 사람
옛날에는 두 사람 거닐던 길을
지금은 어이해서 혼자 거닐까
밤비가 하염없이 내리는 밤에
이 곡은 가사에 보이듯이 비오는 밤 덕수궁 돌담길에서 일어났던 일을 묘사한 것입니다. 주인공이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해 덕수궁 돌담길을 방황한다는 내용이지요. 이 곡은 실제 덕수궁 돌담길에서 있었던 사실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곡의 가사를 지은 작사가의 회고담을 인용하도록 합니다.
1961년 어느 봄날. 그날은 진종일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당시 서대문에 살았던 나는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 직장이 남대문로에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인가. '덕수궁 돌담길'을 나는 하루에 꼭 두 번씩은 걸어 다녀야만 했다. 출근길에 한 번, 퇴근길에 또다시 한 번. 그때 덕수궁 돌담길은 우마차도 안 다니던 한적한 산책로. 주말이면 젊은 연인들의 아베크 코스이기도 했다. 이 호젓한 거리를 걸으면서 그들은 청운의 꿈을 키웠고 학창시절을 즐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 거리를 걸었던 연인들은 대부분 사랑에 실패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결혼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통설이 있었다. 대학을 나오면, 남학생은 군대에 가고 여자 대학생은 시집을 가야 할 결혼 적령기에 이르는 것이다.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지 마라! 징크스가 있다. '마의 코스' 덕수궁 돌담길을……." 그러나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덕수궁 돌담길은 도심지의 데이트 거리가 아니던가. 그래서 자주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 어느 날. 그날은 진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출판 기념회에 들른 나는 약간 취기에 젖어 집으로 가고 있었다. 늦은 밤이었다. 그런데, 정동 골목길에서 나는 처절하게 돌담 벽에 기대어 몸부림치는 청년을 발견했다. 제대복을 입은 채, 그 청년은 술에 취해 울고 있는 것이었다. 빗물에 눈물에 흠뻑 젖은 채. 나는 집에 와서도 그 청년의 일로 번민했다. "필시 그 청년에게는 사연이 있을 게다. 혹시…덕수궁 돌담길…?"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노래시를 썼다. 노래로서 덕수궁 돌담길을 알리고 싶어서였다.
회고담을 보면 작사가가 목격한 것은 한 청년이 덕수궁 돌담길에서 흐느끼는 장면이었지요. 이 청년이 무슨 이유로 흐느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연인과의 작별 때문인지, 심란한 가정사 때문인지, 동료와의 다툼 때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작사가는 이 청년이 연인과 작별해서 흐느낀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지요. 그것은 목격 장소가 당시 연인들에게 악명높은 덕수궁 돌담길이고, 목격 싯점이 비극적인 인상을 주는 비오는 밤이었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덕수궁 돌담길이 연인들을 이별하게 만드는 데이트 장소로 악명을 날리던 차에 등장한 < 덕수궁 돌담길 >은 대중들에게 그 전설을 한층 각인시키는 효과를 준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2021년 9월 방영된 가요무대는 이 징크스가 깨졌다는 증언을 내보냈습니다. 즉 한 여성 시청자가 < 덕수궁 돌담길 >을 신청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연을 보냈지요.
“ 덕수궁 돌담길에서 데이트하면 반드시 헤어진다는 속설을 듣고 시험삼아 만나던 남자와 덕수궁 돌담길에 가봤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와 수십년이 지난 지금껏 잘 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