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2: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헤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오늘은 "금식할 수 없나니"라는 제목으로 같이 말씀 나누겠습니다. 우리가 유대인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과 환경을 알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스라엘 백성의 생활 속에 넣으시고, 그것이
문화가 되고 전통이 되어짐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볼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 수 있는 방법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하신 비유들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서, 구약을 볼 수 있고 앞으로
이루어질 영원한 세계까지 내다볼 수 있어야 비유의 뜻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생각을 절대적으로 알아야만이 그 내용과 사건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시는 의도를 바로 알 수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내용도,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혼인하는 신랑의 이야기를 말씀하시면서 바로
예수님 자신을 말씀하고 있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예수님을 누가 만날 수
있느냐?'하는 것을 비추어 주는 말씀이기 때문에 오늘 그것을 여러분께 또 말씀드려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민족적으로 금식하는 날이 정해져있어서 정기적으로 금식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정기적으로 금식을 했다는 그 내용이 요엘서에 보면 나오고,
(눅)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또 '이레에 두 번씩 금식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침례 요한의 제자들도 금식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금식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고 있지 않으니까, 어떤 사람들이 예수께 나와서 "어째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을 안하는 겁니까?"하고 물은 겁니다.
(막) 2: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예수님의 대답이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하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신랑은
누구를 비유하신 걸까요? 바로 예수님을 비유하신거죠? 이스라엘의 혼인집 신랑과
그 혼인 풍습은, 우리의 신랑으로 오실 예수님의 그 모습을 상징해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혼인에 대한 비유를 자주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룰지라"고 하나님께서 말씀
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말씀대로 이스라엘의 혼인 예식은 신랑이 장가들러 신부의 집으로 가는
겁니다. 낮에는 더운 관계로 저녁에 서늘할 때에 신랑 행렬이 행차합니다. 신랑이
예복을 다 갖추어 입고 신부에게 줄 예물과 선물을 싣고 행렬 맨 앞에는 '신랑이
장가들러 온다'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뿔 나팔을 부는 사람들이 나팔을 불고,
시중드는 들러리들과 함께 신랑이 나귀를 타고 신부 집으로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 예수님이 오실 때도, 나팔 불고 오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나팔로 알리면서 오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신부 집에서는 반드시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대문 밖에 나와서 기다리다가
신랑이 오면 집으로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식과 함께 잔치가 벌어지는데
신부에게 장가들러 온 신랑이 이제 그 잔치의 주인공으로 절대적 권위가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혼인 집에 손님으로 청함 받아 온 사람들은, 이 신랑의 권한을 존중해서
반드시 신랑을 따라주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신랑이 그 잔치에 초대받아 온 손님들에게
차려놓은 음식을 다 권하는데, 그러면 그날이 금식하고 있는 날이라 할지라도 신랑이
권하는 음식을 꼭 먹어야 하는 겁니다.
신랑이
주는 음식을 기쁘게 받아먹고 함께 즐거워 하는 것이 잔치의 의미였기 때문에,
그래서 신랑의 음식을 거절하는 것은 신랑을 무시하고 거절하는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받은 손님은 금식 중이라도 금식을 뒤로하고 신랑을 따라주도록 권위가
주어진 것이 이스라엘의 혼례 풍습이요, 전통이었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2:24절에서
"남자가 그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라"하신 이 말씀은? 남자와 여자의 결혼
제도를 말씀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씀하시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했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서 자기의 신부들을 맞으러
오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서 이 땅에 오실 때는 신부를 데리러 오는 신랑처럼
오실 것인데, 그러므로 모든 인류는 혼인하는 신부가 신랑을 애타게 기다려 맞아들이는
것처럼, 예수님을 그렇게 맞아들임으로서 연합한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께서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해야 되는 날에
금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을 때,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라는 분명한 답변을 하시는
것으로 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혼인 예식을 예를 들어 말씀하시면서, 바로
예수님 자신이 이스라엘의 신랑으로 오신 분이라는 것을 드러내 주신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바로 너희에게 온 신랑이다'는 말씀입니다. "수천년동안 너희가 기다리던
구주이신 메시아(Messiah)가 바로 너희에게 장가들려고 신랑으로 왔는데, 그러므로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지 않느냐?" 하신 겁니다. 그래서 이같은
하나님의 뜻을 확실히 알고 예수님을 신랑과 같이 사랑해야 될 오직 한 분,
구주이신 것을 믿고 영접하여 모셔들여, 성영으로 거듭나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들을 바로 '예수님의 신부'라고 성경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호) 2: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내가 너에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만을 사모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는 자에게 '하나님이 남편처럼 장가들어서 영원히 함께 살겠다!'라고
하신겁니다.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되 진실함으로
너에게 장가들리니" 하셨습니다. 율법의 정죄 아래 있는 하나님을 바라는 자기의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의를 주시는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장가들겠다!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겠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신데, 우리 자신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진실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코드(code)가 맞고, 그래야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로 연합이 되는 것이지, 우리 안에
진실함이 없으면 예수님과 늘 관계가 빗나가서 믿음도 허탕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장가드는 남편이라고 하셨습니까? 남편은 아내를 깨어지기 쉬운 연약한
그릇처럼 여겨, 귀히 여기고 사랑하고, 마음을 살피고, 생활을 돌보아 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처럼, 그래서 아내를 연약한 자로 알아 사랑하고 돌보는 그런 남편을
비유해서,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간에게 인간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는 연약함과
부족함이 있는데, (연약함과 부족함이 뭐예요? 바로 죄를 어찌해 볼 수 없는, 죄
때문에 지옥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인간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연약함과
부족함이 있는데) 그것을 하나님이 친히 보충해 주심으로서, 완전한데로 나아가도록
도와주시기 위해, 책임을 가지고 진실함으로 아주 믿는 자 안으로 장가드는 신랑처럼
오셔서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되 양육하여 돌보고 보호하시며
복을 주시는데 아주 장가들어 하시듯이 하시겠다!'하신 겁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해주는 선시자들의 말을 귀담아 들은 것이 되었다고 하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혼인잔치 비유, 신랑의 비유, 열처녀 비유 등등을 충분히 알아
들을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비유들이었었습니다. 전혀 생소하고 못 알아들을
말씀을 예수님이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것을 유대인의 생활 속에다 넣으셨기 때문에 아주 밀접한 것이 되어서 쉽게 알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변질되어 버린 인간의 교훈과 가르침을
받아왔기 때문에 자기들의 전통과 습관일 뿐인 것이지, 그 이상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완악한 자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같은 비유들을
못 알아 들으면? 예수께서 그는 어느 쪽에 속한 자 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는
사단에게 속한 자입니다'
(마) 13:13.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마찬가지로 오늘날 말씀 전하는 자들이 예수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 만나지 못하면
그는 어느쪽에 속한 자 겠어요? 사단에게 속한 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런
것으로 분별하셔야 하는 겁니다.
(요)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45.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46.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것이다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께 듣고 배워야 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께 배워야만이 예수께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겠다고 처음 나와서 예수님 만나는 것이 아니다는 말입니다. 배워야
됩니다. 배워야 예수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이 관계를 분명히 알고 내가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해 모셔들이고 사랑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실 메시아에 대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율법으로
가르치고 선지자들을 세워서 가르치고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그 엄청난 하나님의 뜻과 심판과 구원을 선포하신 일에 사람이 거기에
관심과 마음을 두고 집중해서 듣고 배우는 것으로 가르침을 받지않는다고 하면 절대
예수께로 나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께로 나오는 자가 누구냐? 이와
같이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온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예수 믿는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도 처음에 교회 나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기는 해도 이때의 영접은 사실은 자기가 예수께 나와서 예수님을 알아 보고
영접한 예수는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믿는 그 예수는 어떤 예수인가 하면? 무엇인가 종교 하나는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까 믿는 예수가 되어있든지, 아니면 집안 좀 잘되게
해주는 그 예수를 믿기위해 나오는겁니다. 자기의 요구하는 것들만 잔뜩 가지고 나와,
믿는다고 하는 예수님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 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다
여기에 머물러 있게 되는겁니다. 병낫게 해주는 예수, 자기 신세 위로받기 위해 믿는
예수, 내자식 잘되게 해주는 예수, 돈 좀 잘 벌게 해주는 예수, 사업 잘되게 해주는
예수 등등으로 이런 자기의 것, 세상의 것들을 위해 믿는다고 하는 예수가 되어 있는
것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바라는 이런 모든 요구는 자기에게서 나온 세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런 자기의 목적을 가지고 믿는 예수가 되어있다고 하면, 그것은 아직
예수께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들의 하나님이요, 그 하나님이 오셔서 자기들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에서 살게 해 주신다는 것, 그 유대인들도 다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주이신 메시아(Messiah)가 오시면 그 일이 성취된다는 것을 믿고 메시아를 기다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아가 눈앞에 왔는데,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예수께 나오지도 못하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다고 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중심이된 머리로 인해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에 자기의 사상을 말씀 위에 올려놔 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자기들이 기다린
메시아(Messiah)가 왔는데도 자기들의 사상과는 맞지 않는다고 해서 예수님을 배척해
버린것입니다. 그러니 자기에게서 나온 세상적인 것 가지고 예수께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신 겁니다. 예수님을 본다 한들 보이지 않는 겁니다. 만난다 한들
만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오늘날도 예수 믿는다고 해도 사실은 지금 다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이
구주시라는 것을 믿고 나도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이나, 구약에 사람들이 주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들을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이신다고 하는 것이나, 믿는다고 하는
것은? 똑같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나, 그들이 주
여호와를 믿은 것이나 똑같은 믿음인데, 그런데 왜 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심판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셔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정말 계속 말씀드리는
거잖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머리로 해석하고, 자기 중심적인 뜻으로 바꾸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이 인간이 가진 교만이요, 악이기 때문에, 예수께 나올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눈앞에 보고도 나올 수 없고, 만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 사상 속에 계시는 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상에 맞추어 주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인간 중심적인 것들을 맞추어주러 오신 분도 아니고, 인간의 중심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채워주러 오신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좀 잘 이해하고 듣고
믿음의 영적 머리가 깨끗이 열려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인간 중심적인 것, 자기 중심적인 것들은 예수께서 마태복음 13장에 보화비유나
진주비유에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것을 자기 소유라고 한다고 말씀드렸지않습니까?
그런데 그 자기 소유를 다 팔아버려야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고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처음에 예수님을 믿으러 나올
때는 자기 중심적일 수가 있고 자기의 여러 가지 사정들을 가지고 나와 예수 믿는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 그것은 절대로 예수께 나올
수도 없고 예수님 만날 수도 없습니다.
앞서에서
예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
아버지께로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온다!"고 하신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예수
믿기 원한다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제 구약이 무엇을 말씀하는 것인지, 신약과 어떤
관계인지, 마음을 다하여 그것을 듣고 배우는 것으로 예수님을 알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누구인가? 하는 자기를 보는 눈으로 되어짐으로서 바로 자기
소유라고 하는 것들을 하나 하나 팔아버리는 것으로 예수께 나오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육의 것을 비우는 금식의 뜻입니다. 육체의 배고픈 그 금식이
아니라, 바로 육의 것을 비워야 하는 금식의 뜻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소유를 팔아버리고 금식이 된 자가 예수께 나온 것이 되어 예수님을 만나고,
또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명심하고 들어야 하는
예수님의 당부의 말씀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르침을 받는 자가 예수께로 나올
수 있다!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는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성경 배워야 되겠어요? 안 배워야 되겠어요? 말씀 읽어야 되겠어요? 안 읽어야
되겠어요? 내가 알든 모르든 말씀 그냥 읽으십시오! "내가 말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읽나? 아이구! 글자 읽는데 혀가 꼬부라져서 도대체 어떻게 읽나?" 이런 교만한 소리들
하지 말고, 알든 모르든 그냥 성영님께 맡겨드리고 그냥 성경을 읽는 겁니다. 그리고
읽다 보면 궁금한 모든 내용들은 "성영님 이거 내가 궁금해요! 이건 무슨 뜻입니까?"
기도하다 보면, 강단에서 목사가 성영에 의해서 그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들려주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과 목사와 성도와 마음이 하나가 되고 호흡이 하나가 되어서
서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듬뿍 받고, 복을 받는 것이 되는 이런 관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신 목적과 뜻에 잘 맞추어져야 하는 것이다는 말입니다. 내가 가난하든
잘 살든, 명예가 있든 없든, 못났든 잘났든, 형편이 좋든 내 형편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런 이유들을 전부 십자가에 내려놓고 믿는 분이 되셔야 하는 겁니다. 예수가 죄인인
인간의 구주요, 생명이요, 그 분으로 만이 영생하는 것이요, 그러므로 죄인인 인간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지옥의 심판에 들어가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자기가 중심이
되어 살아왔던 세상과 육은 예수께 나올 수 없는 죄악된 것임을 깨달아서, 다 버릴수
있는 것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버릴 수 있는 그것만이 바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버리는 그것이 곧 능력인 겁니다.
그런 자 만이 예수께 나온 것이 되어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것이요, 예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것이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있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튜브(YouTube)에 또 저희 홈피(homepage)에 말씀을 올려서 사람들로 듣고 좀
깨달아서 예수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싶어서, 너무나 간절해서 올렸는데, 말씀 안으로
들어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너무 안타까운 것입니다.
(롬) 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다시 또 말씀드리지만 예수님께서 자기 소유라고 말씀하신, '자기 중심'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이기 때문에 그래서 절대로 예수 만나지 못합니다. 예수
보지 못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로마서 8장에서는 "육신을 따르는 자"라고 했고,
"육신의 생각이라"고 했고 "육신에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육신의 일만 생각하는
것이 육신을 따르는 것이요, 그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도 않고, 또 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어도, 자기 중심을 다 팔아버리지 않으면, 구약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이 구주이심을 믿었어도 구원 받지 못한 것처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재림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소유라고 하는 것들을 다 팔아
버려야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이요, 또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금식이 바로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자기 소유라고 하는 육의 것들을 다 팔아버린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알아 들으십니까?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팔아버려야 될 자기의 소유인 똑똑한 머리의
지식과 자기 중심적인 것을 가지고 말씀을 해석함으로써, 하나님의 의도에서 빗나간
것들을 또 열심히 또 전해주고 있는 것이 되어서 사람들을 예수님께 나올 수 없는
자가 되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머리가 되게
하신다고 하셨으니 그러므로 세상에서 훌륭한 인물이 되고 잘살아야 된다! 그래서
세상을 이끄는 사람이 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맞추어서 전해줌으로서 자기 소유를 더욱 쌓아올리게 하고 있는 겁니다.
예수믿고
구원받는 것은 구원받는 것이지만, 그러나 세상적인 포장이 잘 씌워져야 그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증거인 것처럼 심어주고 있다 그 말입니다. 이런 시두개(사두개파)
사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소유를 위해서 잘살게 해주는 하나님을 만나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좇아다니며, 빌러 다니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두개인이
어떤 사상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땅에서 잘먹고 잘입고 잘사는 복을 받는 것이,
땅에서 명예 얻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주신 증거가 아니냐?"하고
영도 없다고 했고, 부활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경이 우리에게 "우리는 부활한다, 영원히 산다" 라고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말해주고 전하고는 있지만은 그러나 이와같이 "땅에서 잘 살아야 된다
우리가 예수믿는 자로 땅에서도 잘 살아야 되고, 훌륭한 사람들이 되어야한다! 그래서
세상을 이끌어야 된다! 세상을 변화시켜야 된다!"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것들이 전부다
사두개 사상을 집어 넣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자로 만들어
놓고 있는 겁니다. 믿음을 가질 수 없는 자로 만들어 놓고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사두개인의 교훈을 삼가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인간의 도덕심을
이용해서 열심히 선행하게 하고, 인간끼리 사랑하게 하고 베풀게하므로, 자기 만족과
자기 도취에 빠지게 만들고 종교심을 이용해서 열심히 예배 참석하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헌금하게 하고, 목사 안따르면 하나님께 저주 받는 것처럼 두려움을 줘서 그
목사의 말에 매여있게 만들고 그 목사가 성영으로 하는 것인지, 인간으로 하는 것인지
분별 못하는 그런 약점을 이용해서 예수의 사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사람
만들어놓는 겁니다. 목사들이 자기 사람만 만들어 놓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 열심이 되게 해서 하나님께 자기 의를 가지고 도덕적인 자기 의로 하나님께
나오도록 하고 있기때문에, 그러므로 예수님 하고 맞지 않으니 만나지지 않는 예수님이
되어질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만나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교회 분위기만
만나려고 뛰어다니고, 교회 목사 만나려고 뛰어다니고, 교회 교인들과 여러 모임들을
통해 거기서 기분 전환 하려고 좇아다니고 있는 것이지, 진짜 예수님 때문에,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예배하려고 교회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이 설교는 제가 2008년도 7월 달에 했던 설교입니다. 그때 성영께서 이렇게 다
모든 것을 보게 하시고 깨닫게 해주신 것을 제가 다시한번 반복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되니까 예수님을 만나 예수께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액세서리(accessory)로 두고 하나님께 나온다고 하는 것이 되어 있어요. 예수님은
액세서리로 두었기 때문에 만날 주님! 주님! 하나님! 하나님만 하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만 찾고 하나님께 나온다고 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또한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교훈을 삼가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성영으로
예수님 만나고 예수님을 배우지 못했으니, 거기서 어떻게 예수가 나올 수 있겠으며
예수의 말씀이 들려지겠습니까? 성영께서 예수님을 가르치시고 성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성영으로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사랑하고 따르고 자기 안에 가장
귀한 보배로 가지고 살면서 승리하고 천국을 소유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나 예수님과 맞지 않아 예수께 나올 수 없기 때문에, 예수는 뒤로 해놓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나온다고 하나님만 찾고 주여만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을 통해서만, 그에게 예수님이 있어야만
만나실 수 있는 것인데, 예수님이 그에게 없으니 하나님도 만나지 못하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없으니'잘 알아들으셔야 됩니다. 바리새, 사두개, 서기관 사상 이런
자기 중심적인 것들이 하나님께 맞는 것인 줄 알고 그런 사상으로 하나님을 만나러
나오고 있으니, 그러나 그런 것들로 막혀서 예수님이 보이지도 않고, 그분의 말씀도
들려지지도 않고, 그러므로 예수께 나올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예수님 뒤에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도 만나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신랑의 비유 말씀도 이것을 얘기해주시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그 믿는 것이 자기 중심적인 것이면, 절대로 예수님을 자기의 신랑으로 맞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금식하는데 당신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당신(예수님) 제자들은 지금 (세상에 대해서)금식이 되어있는 것입니다. 금식이
되어있기 때문에 지금 예수님을 신랑으로 맞아서 신랑과 함께 있으면서 신랑이 주는
것을 받아먹고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뭐라합니까? 자기들은 지금 금식하는데 (육체의 배를 곯는다는 말입니다)
'육체의 금식만 하고 있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하는 겁니다. 정말
이들을 통해서,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믿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금식의 참 뜻도 알지 못하면서, 그저 밥 굶는 것을 생각하고 거기에
매여있기 때문에 자기의 목적들을 가지고 밥 굶는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만나지도 못한 것입니다. 만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금식할 수 있느냐?' 금식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지금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너희가 금식한다고 하니 그러면 금식이 되었으면 이제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 그 말입니다. "혼인하는 신랑이 음식을
권하면 신랑의 귄위를 인정하여 예의를 갖추고 음식을 받아먹는 것처럼, 바로 내가
너희의 그 신랑으로 왔으니 내가 주는 것을 받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뜻인 것입니다.
"너희가 지금 금식한다고 하니 그러면 너희가 말하는 그 금식은 아버지 하나님의
의도하신 바대로 너희 자신이 누구인지 네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네 본질을 보고
깨닫는 것이 되었을 것이요, 그러므로 육의 것, 자기 중심에서 나오는 소유된 것들을
버리고, 비워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깨끗이 금식하는 것이 되었을테니, 이제 비워진
그곳에 내가 주는 새 것을 받아 먹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주는 새 것, '금식함으로서
주리고 배고픈 네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주려고 그 생명의 양식으로 너희에게 왔으니
내것을 받아먹으라'하신 것입니다. '마음껏 받아 먹고 배부름에 만족함을 얻으라'
그 말입니다.
"신랑과 같이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 내가 주는 것을 마음껏 받아먹고
배부름을 경험하라! 영원히 배고프지 않는 양식을 받아 먹으라!"는 겁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지켜오던 (육체의 배고픈)금식이나 혼례등 그와 같은 금식이나
혼례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본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전통을 중히 여겨
그것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 의가 되어지는 것인줄로 착각하고 붙들고 늘어지는 것만
집중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어도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런 전통 속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깨닫게 하시는 방법으로 주신 육체의 법이요, 그 육체의 법을 주심으로서 인간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죽음에 처한 자기를 보게
하셔서, 바로 살리시는 법을 가지신 그 예수께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 것이니, 그러므로
이제 오실 자이신 그 예수께서 너희에게 왔으니 그 예수님을 너희가 영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제 낡은 그 육체의 것, 밥 굶는 것으로 금식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거기에 계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들으신 것 아니니, 그 낡은 것에 매여있지 말고 그 틀에서 나와서,
네가 예수님이 아니면 죽게 된 죄인인 것을 알고, 네 습관도 네 풍습도 다 깨고,
네 중심에 가진 소유도 팔아버리고, (팔어버리는 것이 뭐예요? 소유권을 마귀에게
넘겨버리라는 말입니다. 마귀로부터 받아 가진 우리 성품의 모든 것들) 이제는 내가
가지고 소유했던 이 모든 것들을 마귀에게 넘겨줘버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런 인간이 만든 교훈이나 전통이나 풍습 등을 중히 여기는 것이
되어서 복음을 거스리거나 사람들에게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하면, 이런
것들이 자기에게서 팔아버린 것이 되지 않았다고 하면 그 사람은 예수님께 나온 것이
아닌 것입니다. "나 예수 믿고 구원 받았어요!"해도 그 열매를 보면 아는 겁니다.
아무리 입으로 '예수 믿고 구원 받았다' 말해도 그러나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구원 받은 자 인지 열매를 보면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들려지지 않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속에는
복음의 능력도 진리의 자유도 절대로 없는 겁니다. 예수께 나온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 속에 능력이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세상의 것을 중히 여겨
그것에 매여있는 그 사람 속에다가 새것을 덧붙여주러 오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넣어주려고 오셨지, 덧붙여 주려고 오신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이 중한 것으로 여겨서, 세상 것에 매여서 복음을 거스리거나 복음을 중히 여기지
않는 그런 모습들이 있다면, 예수님은 그런 자들에게 새것을 넣어주실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막) 2: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헤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조각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것이 낡은
그것을 당겨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그러니까 다 낡은 옷에다가 새천, 튼튼한
천으로 떨어진 곳에 붙여 기워 입는 사람 없다는 말입니다. 왜? 기워서 새천 붙여
놓으면 낡은 것이 당겨서 못입는다는 것 너희가 다 알기 때문에 너희가 붙이지 않지
않느냐?" 예수님도 그와 같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낡은 전통에다가 새 것, 하늘의
것을 좀 붙여주려고 오신 것 아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포도주를 가죽으로 된 부대에 넣어서 공기나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입구를 꼭
묶어서 발효를 시킵니다. 이스라엘은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포도를 발효시켜서 음료
대용으로 삼습니다. 여러분! 자꾸 포도주 말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도 술 먹지
않았느냐'고 자꾸 그것을 핑계로 해서 술 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같은 곳이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물을 얻을 수가 없을 때는
이 발효시킨 포도주가 음료 대용이기 때문에 그래서 발효를 시켰습니다. 포도가 많이
나는 지방이었고, 그냥 놔두면 포도가 상해버리므로 발효시키면 오래 보관하여 먹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음료로 사용하기 위해서 발효를 시켰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새로 포도주를 만들 때에 이미 사용했던 그 낡은 가죽 부대에다 넣게되면 그 포도주가
발효되면서 생기는 가스로 인해서 부대가 팽창해질 때 부대는 터져버리지 않겠어요?
그러면 포도주도 못 먹고 부대도 쓰지 못하게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세상의 낡은 것을 귀한 것처럼, 중한 것처럼 붙들고 있는데다가, 하늘의 새것을
받아들일려고 해 보았자 안된다!"라는 것을 말씀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아무리 하늘의 새것을 여러분에게 줄려고 아무리 애써도 여러분 속에 그 헌것,
낡은 것, 전통, 풍습, 자기의 뭐 어떤 사상 다 붙들고 있으면, 이미 이런 것은 지금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다 못박아버렸는데, 죽은 것 붙들고 있는데 어떻게 생명이 그
속에 들어가겠냐는 말입니다. 죽은 그것을 열심히 붙들고 그냥 놓칠새라 큰일날새라
붙들고 있는데 어떻게 예수님의 새것을 거기다가 붙여넣을 수가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쓸모없는 것 밖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믿음의 모습들이 다 이와 같습니다. 그러니 어디서 믿음의 능력이 나오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독생자로 오신 예수께서 죄인을 위해 이루어놓으신 그 구원의
은총은 너무나 값싼 것으로 취급합니다. "예수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이것은 잘 안다고,
그래서 나는 구원 받았으니까, 이제는 내가 예수믿으면 구원얻는다는 것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알아들었기 때문에 저 한쪽에 모셔놓고, 나는 오로지 세상의 것, 무엇 무엇이
필요하니, 그것 이루기 위해서 좇아가는 겁니다" 자기 만족을 위해서 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하나의 액세서리(accessory)로 만들어놓아 버리고, 그래서 예배에 와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공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들으면? 같이 복창이
일어나야 되는데 (정말 성경에 모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까지 말씀하고 있는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예수님을 드러내 말씀을 드리면 좀 같이 복창이 일어나고 동의가
일어나고 아주 기쁘고 반갑고 즐거운 말씀으로 듣고 또 듣기를 원해야 하는데)
그런데 "자기도 그것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구원은 한 쪽에 잘 모셔놨으니
들을 필요 없다!"하고 귀를 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형편에 맞는 말이나 나와야 그것이 은혜 받았다고 한다는 겁니다.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며느리들은 '시어머니 좀 잘모셔라!' 그러면 시어머니 되는 사람들은
자기 형편에 맞는 말이 나오니까 신나서 아멘! 우리 목사님은 노인 공경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우리 목사님! 우리 목사님! 하고 나오는 겁니다. 거기에 며느리들은
'목사님은 어떻게 시어머니 편만 드냐? 시어머니들이 어떤지 너무 모르는 것 같아!'
하고 불평하는 겁니다.
그러다 어느날 '시어머니 되는 분들은 며느리 시집살이 좀 시키지 말고, 미워하지
말라'고 그러면 며느리들이 겉으로는 차마 못하니까 속으로 아멘! 크게하는 겁니다.
왜? 자기 형편에 맞는 것 말하니까, 거기에 시어머니들은 '우리 목사님은 나이 먹은
사람들은 늙었다고 무시하는 건가? 며느리들이 얼마나 못되었는데, 시어머니들한테
잘하라고 그러면 어떻게 해? 며느리들 기세 등등하라고 부추겨주는 것 아냐?'하고
불평하고 섭섭하다고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런 자기 비위에 맞는 이야기나 해야 '야! 참 우리 목사님 너무 멋있어! 오늘 아주
내속이 다 후련해! 우리 며느리가 다 들었으니 이제 달라지겠지! 우리 시어머니가
다 들었으니 이제 달라지겠지! 우리 남편이 들었으니 달라지겠지! 우리 마누라가
들었으니 이제 달라지겠지!"하고 한편은 불평하고 한편은 좋아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기에게 맞는 더러운 습관들이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알려고 해야지, 그냥 자기 풍습, 자기 전통들을 붙들고 있으면서 자기 기분
맞추는 말 듣기를 원하고 있다면? 그것은 지금 자기가 예수님께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훼방하는 자리에 있는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복음이 이런것 말하라고 있는 것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인간 윤리적인 것은 될수
있으면 복음에다가 넣지 않습니다. "시어머니에게 잘해라! 며느리에게 잘해라!
남편들은 아내에게 잘해라! 아내들은 남편에게 잘해라!" 저는 이런 등등의 것들을
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왜냐? 이런 인간 윤리적인 것, 도리적인 것들을 말하다
보면은, 복음이 힘을 잃게 되어서 복음이 저것인지 이것인지 구분도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더러운 죄의 정욕, 육체의 정욕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부추기는 것들을
저는 말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이 말씀이 재미가 없겠습니까?
사람들이
이와 같이 자기 습관 자기 풍습을 붙들고 다니면서 믿는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과 맞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했던지 간에 그건 예수님이
말하는 것이고, 나는 내 맘에 맞는 하나님을 만들어서 그것 붙들고 다니고 있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자기가 하나님을 만들어서 지금 붙들고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누구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께 붙은 가지가 되어서 열매를 맺으라'고
하셨습니다. '열매 맺지 않는 가지마다 다 잘라내어 불에 살라버린다'고 하신 것,
여러분은 이런 말씀을 얼마나 심각하게 듣고, 자신에게 그 말씀을 이루면서 살려고
노력하고 계십니까? '내가 예수 믿습니다!'한다 해도 열매가 없으면 그것은 그냥 잘라
내버린다는 것입니다. 잘라내버리면 그것은 어디다 넣어요? 불속에다 던져넣어
버린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내 중심적인 것, 인간의 전통, 습관, 풍습 이런 모든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던 것을 다 내려놓아 버리고, 오직 예수 알기에 힘쓰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행함으로서 예수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와 같아야 하는 것과
또한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려고 전하는 것도 이런 샤머니즘(shamanism)적인 하나님을
전해서는 안됩니다.
"교회 나오면 잘되요! 예수 믿으면 막힌 일이 잘풀려요! 예수 믿으면 복 받아요!
믿어 보세요! 믿어서 뭐 손해볼 것 없잖아요?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 주셔요! 그래도 믿는 것이 하나는 있어야 되잖아요? 안 믿는 것 보다는 믿는
것이 낫잖아요?" 전도할 때 이런식으로 전한다고 하면? 전하는 그 자신도 믿음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사람이든가, 예수님을 아직 모르는 사람이든가, 아니면
예수님을 왜 믿어야 하는지를 말하면 그 말 못 알아 듣고 안 나올 것 같으니까, 그냥
좀 교회부터 나오게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으니까, 그래서 나오게 하려면 그 사람이
듣기에 익숙한 이런 샤머니즘적인 것이 먹혀들어갈 것 같아서 그런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는 자기 생각이요, 자기 계산인 것입니다.
그렇게
듣고 (교회)나온 자 라면? 그것이 자기가 가장 바라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매일
바라고 나오는 것이 세상 복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 귀에는 다른 것 안들어오고
오로지 세상 복 받는 말씀 밖에는 안들어오는 겁니다. 설사 '예수 믿으면 구원 받아
부활하여 영생한다'고 하는 복음을 자기가 받아들여 믿는다고 해도, 그것이 그에게는
중요한 것이 되지 못하고, 그에게 끝까지 중요한 것은 세상것인 겁니다. 자기에게
맞는 하나님으로 알고 나와서 그 하나님만 찾고 있기 때문에, 사단이 그것을 도와서
자기가 중심이된 종교 생활 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나오게 하려는 방법으로 그렇게 샤머니즘적인 하나님을 전하는 것은 절대로
성경의 뜻도 아니고,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복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 되어서, 오히려
복음을 세상에 잘못 인식하도록 하여 복음의 전파를 방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종교를 전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 말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죄 용서와 생명이 되십니다. 죄 용서와 구원과 생명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에 잘되게 해주시는 하나님만 말하고 전하게 된다면, 그것은 세상
종교로 끌어내려서 종교를 또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하는 곳에는 성영이 역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영이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마귀가 역사해서 그를 붙잡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복음을 잘못
전해서 정말 예수 믿으러 나오기 전에 이미 마귀에게 붙들려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똑바로 전해야합니다. 바로 전해야 됩니다. 베드로가 전하던 예수,
바울이 전하던 예수, 누가 뭐라든 간에 스데반 집사가 돌로 맞아 죽으면서 까지
전하던 그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 겁니다. 인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하는
겁니다.
"인간이 죄인인 것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 그분 만이
죄인인 인간의 구원의 주요, 믿는 자는 구원받아 영생하지만, 믿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어야 합니다. 죄인을 구원하신 십자가의
구원과 부활을 전하고 영생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해야지,
자기 생각을 전하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자기 생각을 전하면 거기에 성영이 역사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는 말입니다. 오늘도 비유의 말씀이 자기 생각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성경은 자기 생각, 인간적인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거잖아요? 말씀을 받아들여 믿고 그대로 내놓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거기다 인간 생각 갖다 붙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막) 2: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헤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네가 복음을 받아들여 구원 받았으면 그 복음을
그대로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하는 것 만이 능력이고 하나님의 상에 참여하는
것이 되는 겁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지만은, 그러나 그 복음을
듣는 사람이 구원 받고, 안 받고는 복음 듣는 그 사람과 누구의 책임이겠어요?
성영님의 책임이십니다.
그 사람이 구원 받을 자라면 복음을 말할 때 성영께서 그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서
예수 믿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는 것이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오게
할려고 자기 생각 동원해서 많은 사람을 이끌어다 놓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복음을 말할 때, 그 사람이 복음을 받을 자 인지? 아닌지? 성영이
아시기 때문에 성영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교회는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누구에게든지 인간 생각 동원하지 말고 복음만 말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죄 용서와 구원과 부활과 영생을 들려
주십시오! 그리고 그 다음은 성영께 맡겨드리세요! 그래서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참 뜻은? 모든 인류가 이제 예수께 나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동안 중하게 여기던 인간의 전통이나, 율법의 의나, 지도자들의
교훈이나, 자기 습관, 자기 생각, 자기 지식 다 버릴 수 있어야 하늘의 것을 소유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의 생각으로 "하나님은 이럴 것이다! 아무려면 성경이 그렇게 말했을 리가 없다!
하나님께서도 용납하실 것이다!" 이런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 위에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넣으려고 하면, 곧 해어져 버리는 옷처럼, 터져버리는 부대처럼 되어서
버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런 낡은 옷, 낡은 부대 붙들고 있지 말고,
하늘의 것을 가지고 하늘의 신랑이 너에게 장가들러 왔으니 그 분을 받아들이고, 이제
그분에게 하늘 생명, 하늘의 진리, 하늘의 자유의 말씀을 듣고 받아 먹으라"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의 의'라는 것은 낡은 옷과 같아서, 날아가는 저 지푸라기와 같은
겁니다. 그것을 입고 다니면서 그 위에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붙일려고 하면 곧
해어져버려 입지 못할 옷이 되어버려서 수치와 곤란을 당하는 것 밖에 없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낡아빠진 네 의를 깨끗이 벗어버리고 영원히 해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입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동안 네 의를
드러내기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그것을 드러내려고 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내는 자가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의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죄인일 뿐이었고, 그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용서
받은 자일 뿐이니,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의요, 예수님 아니면 나는 살 수 없는 자요,
오직 예수님만을 나를 통해서 드러내기를 원하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 그 말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의 선함이요, 예수님만이 나에게서 나타나기를 원하여 모든 것을
예수께 두고 있는 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해 나가는 자, 바로 새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어서 맛을 제대로 내는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심은 그에게
두고 그를 통해 기꺼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기뻐하는 자가 되어서 삶 까지도
하나님의 복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막) 2: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그랬는데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른다'는 것이 지금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시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마귀로 부터 죽임을 당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 죽을 권리를 가지고 오셔서 죽으셨고 살 권리로 또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마귀는 자기가 못 박았다'해서 쾌재를 불렀지만 그게 아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 사건, 지금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음에다 내어주셨습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인간의 형벌을 대신 받으셔야 했기 때문에, 죄의 형벌을 받으시도록 죽음에
내어줘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단에게 내어줘버렸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믿는다'할 때 성경의 뜻을 받아들여야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지
않겠습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나라 그 거룩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기 원한다면? 정말
천국을 소망한다면?
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깨달으려고 하는 열망과 하나님의 복에다가 좀 맞추어야
되는데, 그냥 이것도 갖다 붙이고, 저것도 갖다 붙이고 온갖 잡다한 것 더덕더덕
붙이고 다니면서 엉망진창 되어가지고 그저 '주여! 주님! 믿습니다!'만 하고 있으니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 대답할 가치가 없습니다. 저 역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수 없이 말씀을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관심없고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고, 말씀을 언제 들었냐? 하는 것처럼 하고 나오면서, 나중에 상담하러 오면 대답할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이제 달리실 것을 '신랑을 빼앗길 날에는 금식하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금식하라'하신 이 금식하라는 것은 뭘 말하는 걸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금식은 밥 굶어야 되는 거잖아요? 예수님이 금식하라 하신 것은? '예수님이
대제사장 종교 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으나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리라'하신
그것을 세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이루어지는 사실을 믿고, 세상의 모든
어떤 소리도, 어떤 생각도, 다 차단 시키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믿고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것에는 귀를 닫으라는 것입니다. "말씀하셨으면 말씀대로
된다는 그것을 믿고,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믿고 기다리고 있어라! 세상 것 모든 것
귀를 닫아라! 모든 추측들 닫아버려라!"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내가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하신 말씀이 이루어질줄 알고 기다려라!"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예수님 다시 재림하신다고 말씀하셨죠?
그러면 재림하신다는 그 말씀 여러분 믿습니까? 그러면 예수님 사랑하십니까?
여러분이 예수님 사랑하세요? 여러분 안에 예수님 와 계세요? 성영으로 거듭나셨어요?
그러니까 예수님 와 계신 겁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와 계시면 예수님 말씀만 믿으세요.
그까짓 것 무슨 세상이 어떻게 됐네! 뭐했네! 그런것 따라다니며 들으려 하지 말고,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내가 다시 너를 데리러 올것이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집(처소) 마련하면 너희들 다시 데리러 올 것이다! 가신 그대로 다시 올것이다"
말씀 하셨으니 우리는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기다려야 된다는 말입니다.
세상 어떤 말도, 어떤것도, 우리는 다 귀 닫으라는 말입니다. 금식해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것)금식해 버리라는 그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재림하신다!'말씀하셨으니, 세상 그 어떤말도 듣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그 말씀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의 어떤 재해, 자연현상, 뭐 예언
한다고 많은 것들로 두려움을 가져다 주는 것을 들으면서, 예수님 (재림)맞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이것은 예수님 (재림)맞을 수 있을까요? 못 맞습니다. 자기 안에 예수님이
와 계신 것 확실히 믿고 예수님 말씀 따라 살면서, "내일 오실지, 모레 오실지,
모르지만 나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고, 예수님 말씀하신 것 분명히 이루어질
줄 믿고 기다리고 있습니다!"하고 이와 같이 세상을 다 금식해 버리고, 이 말씀에
딱 서서 걸어가면 내일 오시든 모레 오시든 오늘 저녁에 오시든 지금 이 순간 오시든
우리는 예수님 재림을 맞는 믿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아멘.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신 말씀으로 우리가 새 포도주, 새 부대가 되어야 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듣고
깨닫게하여 주셨으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님들,
정말 거룩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 또한 우리 하나님 아버지, 또한 성영님의 성품을
닮는 그런 귀한 성도들 되게하여 주시옵시고, 우리 예수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믿음으로 준비해갈 수 있는 그러한 복된 자들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내가 가진 전통이 있습니까? 내가 가진 잘못된 습관이 있습니까? 인간이 만든 그
전통에 매여서 예수님 말씀을 어기는 그러한 일들이 있습니까? 인간이 만들어놓은 그
전통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경홀히 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모두가
다 회개하게 도와 주시옵시고, 아버지! '내가 이 목숨 오늘 죽는다해도 오직 예수님
붙들고 예수님 사랑하다 죽으리라'하는 그러한 믿음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시고,
목숨에 죽을까 두려워하는 자들 되지 말게 도와주옵시고, 내가 예수 때문에 순교하는
이 복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감사하면서 믿는 예수가 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간절히 원하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우리주 거룩하신 이름 받들어 축복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