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은 '안산 다리 → 등곡지맥 분기점 → 문수봉 → 매두막 → 하설산 → 어래산 갈림길 → 광천리 → 버스정류장'의 18km, 7시간 코스를 탐험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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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산[大美山]
높이: 1,115m
위치: 경북 문경시 문경읍 중평리
산을 따라 이리 돌며 저리 동아 오르고 내리며 땀을 닦고 멀리 산을 바라보며 발길을 옮겨 산을 찾는 산 사람들…. 어느 산이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대미산의 너그럽고 넉넉한 품속과 정상의 전망은 그야말로 아주 좋다.
백두대간이 설악·오대·소백산을 지나서 죽령을 만들고 도솔봉(1,314m)을 지나 벌재를 만들고 다시 황장산(1,077m)을 일으키며 달려 이곳 대미산을 지나서 하늘재, 문경새재, 이화령을 두고 희양산, 속리산을 지나 멀리 백두대간이 발길을 지리산으로 돌리고 있는 곳에 아주 점잖게 편안하게 앉아 있는 대미산.
이름이 대미산이어서인지 참으로 아름다운 산인데, 멀리 소백산이 보이고 주흘·조령·백화· 희양·속리산까지 보이는 시원한 전망과 산들의 모임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는지 - 한국의 산하
문수봉
높이: 1,161.5m
위치: 충북 제천시 덕산면
문수봉은 충북 제천시 덕산면 월악산국립공원 구역 안에 있다. 수려한 암골미와 짙푸른 수림지대는 월악산을 능가할 정도이다. 특히 용하구곡에는 반석지대와 폭포, 탕, 소 등이 즐비하게 펼쳐져 있어 여름 한 철 야영을 하면서 피서를 즐기기에 좋다. 용하구곡은 「여름을 갖고 논다」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 제1경인 청벽대를 필두로 선미대, 가학정, 석운대, 수룡대, 우화굴, 세심폭, 활래담, 강서대가 계곡을 따라 저마다 자태를 뽐내고 있다. 정상에서의 전망은 파노라마 영화를 보듯 장관을 이룬다. 동쪽 멀리 도락산과 도솔봉이 바라보이고 남으로는 황장봉과 대미산 줄기가 거대한 파도가 일렁이듯 시야에 들어온다. 서북쪽으로는 월악산 정상이 하늘을 찌를 듯이 시야에 와 닿는다. 백두대간이 동로면 벌재를 지나 황장산에서 대미산으로 이어지면서 대미산 정상에 조금 못 가서 있는 1,045m 고지에서 북쪽으로 한줄기 뻗어 문수봉을 솟아 놓았다. 그래서 대미산에서 백두대간을 타고 황장산으로 가는 중간에 1,045m 고지에서 길을 잘못 들어 문수봉 쪽으로 갈 만큼 대미산과 능선을 잇대어 놓고 있다. 빠른 걸음이면 대미산과 문수봉을 하루에 갈 수 있으나 차량 이용이 불편하다. 동로면 명전리는 동로면에서도 오지나 지금은 도로가 포장되어서 가기가 쉽다. 동로면 소재지에서 벌채를 넘어 충북 단양군 대강면을 지나면서 다시 명전리로 와서 명전리 보건진료소 앞을 지나 계속 골짜기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차를 이용하여 40분 정도 가면 되는데, 명전리 보건소 앞을 500m 정도 지나서 왼쪽 논 중간에 있는 지방문화재 제227호인 봉산 표지석을 찾아서 보는 것도 좋다. 옥수동 마을과 본명전 마을, 굴바위 마을을 지나 지도에 건학이라고 표시된 마을까지 차량 이동이 가능하나 관광버스는 비포장 관계로 곤란하며,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는 굴바위마을까지 1일 2회 운행되므로 이용하기 불편하고, 명전 앞에서 버스를 내려 1시간 30분 정도 걸으면 기내기까지 갈 수 있다. 산행기점인 건학마을은 보통 기내기라고 부르는 것을 알면 편리하다. 명전 건학마을에서 오른쪽으로 빤히 보이는 문수봉 정상을 향해 계곡을 따라 오르면 어디로 오르든지 길만 찾아 오르면 정상으로 오르게 되는데 옛 광산을 찾아 올라가는 길이 제일 확실하다. 먼저 건학마을에서 축사 옆으로 난 길을 따라 30분쯤 오르면 계속 계곡 쪽으로 난 길과 오른쪽 길이 나오는데 계곡 길은 찾기가 힘들고 오른쪽 넓은 길을 찾아 올라가면 옛날 차가 다닌 희미한 흔적을 보면서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이곳 갈림길에서 식수를 준비하여야 한다. 갈림길에서 다시 40분쯤 오르면 옛 광산 터에 도착하는데 녹슨 철망과 콘크리트 잔해가 있다. 이곳에서 다시 계곡길을 급하게 오르면 큰 돼지감자 군락지가 나타나고 돼지감자 군락지를 지나면 바로 문수봉과 950m고지 사이 잘록한 곳에 도착된다. 이곳은 충청북도 양주동으로 내려가는 길이 잘 나 있음을 확인한 후에 왼쪽에 잘 나 있는 길을 찾아 급경사를 약 50분 오르면 정상 못미처 능선으로 가게 된다. 이 능선이 대미산과 이어져 있는 능선인데 여기서 100m 정도 더 북쪽으로 가면 정상표지목이 서 있는 정상이다. 정상에 서면 북으로 매두막이 보이며 시계바늘 방향으로 소백산, 도솔봉, 향적봉, 운봉산, 황장산, 주흘산이 보이고 서쪽의 월악산 모습도 아주 우뚝하게 보인다. 다시 발아래 황자산과 대미산의 능선이 한눈에 보여 문수봉이 백두대간을 조망하기 아주 좋은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내려오는 길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도 있으나 대미산 쪽으로 뻗은 능선을 타고 취나물 밭을 지나 옛 광산 자리를 지나 가장 잘록한 곳에 도착하여 왼쪽계곡을 타고 내려서면 건학마을에 도착된다. 또 양주동이나 월악리로도 내려갈 수 있고 길 표시도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그러나 건학마을에서 시작하는 것이 시간이 가장 절약된다. 문수봉은 충북 쪽 월악리 용하마을, 도기리 양주동 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건학마을까지 비포장길이다. - 한국의 산하
하설산[夏雪山]
높이: 1,035m
위치: 충북 제천시 덕산면
하설산은 월악산의 비경인 용하구곡 동쪽에 육중한 모습의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 서쪽에는 월악산이, 월악산에서 남쪽으로는 만수봉과 포암산이 자리 잡고 있으며, 포암산 동쪽으로는 백두 대간을 가로지르며 대미산이 솟구쳐 있다.
하설산은 여름에도 눈을 볼 수 있는 산이란 뜻으로 이름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산이며 곳곳이 계곡으로서 그 이름을 방증한다.
또한 정상 주변에는 참나무 수림이 가득하고, 1천여 평의 산딸기나무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어 산행에 또 다른 묘미를 느끼게 한다.
하설산에서의 조망은 월악산 정상이 한눈에 들어오고 북으로는 충주호와 함께 금수산이, 동으로는 도락산 줄기 너머로 소백산 연화봉과 죽령 또한 파노라마를 이룬다. - 한국의 산하
11월 2주 차 산행은 한 안내산악회 지맥 팀이 진행하는 등곡지맥 첫 구간을 다녀오기로 했다. 물론 등곡지맥 종주가 목적이 아니라, 진행 중인 천고지 산행의 하나로 등곡지맥 시작 봉우리나 다름없는 해발 1,162m인 문수봉이 목표다. 지난 9월 천고지 산행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발견한 카테고리인 '맥종주'와 '오지'에서 돌파구를 찾았고, 그 첫 번째가 등곡지맥에 숨어 있던 문수봉이다. 봉우리 명으로는 절대 검색이 안 되는, 그 때문에 남은 천고지 산에 대해서 어느 맥에 속하는지 일일이 다 조사했고, 덕분에 산경표에 관해 공부도 했다. 그리고 몇 개 남지 않았던 빈자리 중 하나를 선택해 신청한 게 거의 두 달 전인 9월 16일이다.
비록 등곡지맥 종주가 목적이 아니라고 해도 최소한의 지식은 필요하고, 초행이라는 걸 고려해 그것과 관련된 걸 찾아봤다. 그중에 눈길을 끈 지도가 한 장 있었는데, 백두대간 황장산부터 조령산까지의 구간에서 뻗어 나간 여러 지맥의 개념도로 그 부근 산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 유용한 지도다. 그 개념도와 다른 지도를 같이 놓고 보면 백두대간에서 출발한 등곡지맥은 문수봉에서 우로 꺾여 석이봉으로 갔다가, 다시 좌회전해 성천을 왼쪽에 두고 충주호까지 달려가는 형세다. 그런데, 문수봉에서 직진하면 하설산, 어래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설산? 많이 듣던 이름이라, 카페에서 검색해 보니, 아직 오르지 못한 천고지 중 하나다. 그리고 100 산, 지맥 어디에도 끼지 못한 산이라, 산악회가 찾지 않고, 오지답게 교통도 좋지 않아, 당일 산행은 거의 불가능해 뒤로 미뤄두었던 산이라는 걸 확인했다.
그걸 확인하고 나자, 산신이 내게 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등곡지맥이 목적이 아니니, 산악회 계획인 문수봉에서 지맥을 따라 석이봉으로 가는 게 아니라, 하설산으로 직진하는 코스가 당일 산행으로 가능할 거 같았다. 그렇게 되면, 1일 2 천고지뿐만 아니라, 해결 방법을 놓고 고민하고 있던 숙제 하나를 해치울 수 있다. 해서 문수봉, 하설산 연계 산행을 한 산꾼이 있는지 구글링해봤다. 생각보다 많이 있었고, 가장 최근은 2017년 7월 산행기[기사]가 있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있겠지만, 구글링에서 찾은 가장 최근은 2017년이다. 그 산행기를 본 순간 일체의 망설임 없이 그걸 토대로 산행 계획을 다시 수립했다. 문제는 귀경이라, 앞선 산꾼과 동일하게 광천으로 하산 후 시내버스를 이용해 충주로 이동하여 귀경하기로. 물론, 안내산악회 버스는 편도만 이용하고, 귀경은 별도의 교통비가 들어 가성비는 떨어진다. 하지만, 하설산에 오르기 위해 다시 오는 비용을 고려하면 오히려 가성비가 좋은 산행이다. 두 번에 할 걸 한 번에!
산행 일주일 전 안내산악회 계획에 따른 산행이 아니라, 앞선 산꾼의 산행기를 참고해 세운 계획을 다시 한번 검토했다. 특히 귀경을 위한 대중교통편과 그 시간에 관해. 물론 충주에서 서울은 고민할 필요가 없고, 문제는 광천리에서 충주까지다. 충주시 시내버스 페이지에서 아무리 검색을 해도 오후에 광천리에서 충주로 가는 버스는 한 대밖에 없었다. 19시 33분에, 그것도 광천리가 아니라, 덕산면 소재지에서. 그걸 타기 위해서는 광천리에서 면 소재지까지 고개를 넘어 5.8km 이상을 가야 했다. 그런데 7시 33분은 너무 늦다. 다른 해결책이 필요해 곰곰이 따져보니, 충주와 덕산은 행정구역이 달랐다. 고로 시내버스가 아니라 시외버스가 운행할 거 같아 찾아보니, 단양에서 충주로 가는 버스가 덕산에 정차하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단양발 18시 45분을 막차로 6대가, 현재는 16시 20분을 막차로 3대만 운행 중이었다. 덕산에는 17시경 도착이라 적당한 시각이다. 다만, 광천리에서 면 소재지로 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 하설산에서 면 소재로 바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별도로 세워두었던 산행 계획을 찾아봤다. 있었다!
면 소재지 방향으로 하설골이라는 계곡이 있고, 그걸 따라 길이 있었다. 없으면, 계곡이 곧 길이고. 지도에 의하면 무명폭포라는 폭포도 있고, 아래에 저수지가 있는 거로 봐서 산의 크기에 비해 규모가 있어 보였다. 계곡 끝 저수지를 지나, 도로로 나와, 시외버스가 정차하는 면 소재지로 가서 충주행 버스를 타면 된다. 물론 17시 이전에 도착해야. 그런데, PC의 지도 앱으로 소요 시간을 계산하기 위해 거리를 측정해보니, 4.8km다. 그 과정에서 지도의 축소, 확대를 반복하다가 날머리 기준 면 소재지 반대편에 산악회버스가 정차 예정인 도리기재가 보였다. 응? 해서, 날머리에서 도리기재까지 같은 방식으로 거리를 측정했다. 2.8km! 산악회버스가 시외버스보다 2km 이상 가깝다. 고로 산악회에서 계획한 산행 소요 시간인 7시간 안에만 버스가 기다리는 도리기재에 도착하면 만사가 해결된다. 그럼 달려야 한다. 고로 모든 짐은 최대한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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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새벽에 기상해 점심으로 먹을 영양 간편식을 전자레인지로 데우는 동안, 차가운 차를 전자 포트에 넣고 다시 뜨겁게 끓여 보온병에 넣었다. 평소라면, 산악회 버스에 두고 산행하는 슬리퍼가 든 보조 파우치도 챙겼을 테지만, 정해진 시간 내에 버스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어, 버스에 두고 가야 하는 건 다 뺐다. 아침을 먹고 5시 45분경 집을 나서 마을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6시 50분경 등산객의 성지 양재역에 도착했다. 안내산악회 버스 정차장인 국립외교원 앞으로 가기 위해 12번 출구로 나가자, 목적지까지 등산객으로 붐벼 뚫고 나가기도 쉽지 않았다.
추위에 떨며 다른 등산객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자, 6시 59분 태화산행 버스를 시작으로 이번에 이용하는 안내산악회 버스가 줄을 지어 들어왔다. 제일 뒤에 따라온 등곡지맥행 버스를 확인하고 바로 올라타 내 자리로 갔다. 그런데, 자리에는 이미 인솔 대장이 준비한 지도가 있었다. 지도를 들고 자리에 앉아 먼저 산악회 안내 페이지에 있는 내용과 다른 게 뭔가 확인했다. 큰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대장이 바뀐 거 같았다. 애초 인솔하기로 했던 대장이 사정이 생기면 바뀌는 거야 비일비재해 신경 끄고 패드로 열차에서 읽던 부분에 이어 책을 보기 시작했다. 예정보다 조금 늦은 7시 3분경 차가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하자,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처음 인솔하기로 했던 대장이 사정이 생겨 본인이 대타로 나왔다고, 인사 후 자세한 산행 계획 등은 늘 그렇듯이 휴게소에서 출발 때 설명하기로 하고 실내등을 껐다.
추워져서 그런지 버스 실내가 더워지자 졸리기 시작해 패드를 내려놓고 잠을 청했다. 이후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린 버스가 휴게소에 도착한 걸 알고 있었으나, 딱히 할 일도 없어 계속 잤다. 그런데 휴게소 도착 후 나름 오랜 시간 잤다고 여겼는데, 버스가 출발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시계를 보니, 고작 5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그럼 마스크를 벗고 신선한 공기나 들이마시자는 생각에 카메라를 들고 버스에서 내려 주변을 서성거리며, 건물을 보니 '충주휴게소'다. 충주휴게소? 과거 들른 적이 있었나? 기억에 없는데. 그렇게 5~6분 정도 버스 주변에서 서성거리며 찬 공기를 마신 후 휴식 시간이 끝나 승객이 모이는 걸 보고 다시 버스에 탔다.
충주? 그럼 들머리가 멀지 않은데,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들머리를 향해 출발하자, 교체된 인솔 대장이 이번 산행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전문 대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설명하는 모습은 초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는 이미 버스를 탈 때 한 번 훑어본바 산악회 게시판의 내용과 크게 다른 걸 없는 걸 확인한 상태라, 큰 관심 없이 설명을 듣고 있는데, 들머리 얘기가 나왔다. 대장은 여우목을 들머리로 했으면, 좋겠으나, 요원이 지키고 있을 확률이 있어 생달리 저수지 쪽에서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거기에 대해 통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성 등산객이 여우목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일단 여우목의 상황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짜증이 확 밀려왔다. 대미산이 통제 구간이라 쉽게 오를 수 없어 이 기회에 오르고자 하는 바람이 있는 건 알겠는데, 난 이미 2020년 4월 흥수와 둘이 황장산에서 대미산까지 달려 다시 갈 이유가 없었고[산행기], 대미산을 거치면 산악회에서 주어진 시간 내 하설산까지 달리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나만의 목적인 하설산까지 달려 산악회 버스를 타기 위해선 가능하면 거리를 단축해야 한다.
대장의 설명이 끝나고 다시 실내등이 꺼진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난 대미산행 시 하산했던 길이, 산악회가 처음 계획한 들머리라는 걸 알았다. 즉, 지난번에 하산했던 길로 이번에 오르는 거다. 물론 여우목을 요원이 막고 있을 때! 결국 한번 갔던 길을 다시 가는 거라, 비록 좀 멀고, 올랐던 대미산이나,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코스로 오르기를 바랐다. 더욱이 산행 계획 시 자주 등장하는 여우목 코스가 궁금하기도 했고. 그렇게 결론 짓자, 처음과는 달리 여우목에 요원이 없기를 빌며 책을 보고 있는데, 차가 급경사의 도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여우목이 멀지 않았다. 해서 벗어 두었던 등산화를 신고, 미니 스패츠를 꺼내 착용하고, 패드를 포함해 모든 짐을 배낭에 넣는 거로 산행 준비를 마쳤다. 버스가 고개 정상에 도착할 즈음에 교통 통제를 하고 있던 사람이 정차를 못 하게 했다. 창밖으로 본 통제자의 모습은 요원이 아니라, 공사 인부였다. 해서 공사장을 조금 벗어나, 버스가 정차하고 등산객이 우르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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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통제하는 이유는 도로를 만들기 위해 잘라버린 고개를 다시 연결하는 생태 터널을 만들고 있어서였다. 생태 터널이자, 운달지맥의 끊어진 맥을 이어주는 다리다. 그런데 운달지맥?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라. 등산방 카페에서 검색해 보자, 2020년 12월에 올랐던 운달산, 성주봉이 있는 지맥이다[산행기]. 매주 거의 새로운 산에 다니고, 같은 이름의 산이 많아 이제는 어디를 갔고, 어디를 안 갔는지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나이를 먹어가면서 메모리도 옛날 같지 않고. 이미 빠른 등산객은 벌써 산행을 시작해 한참 앞서 있어 서둘러 그들 뒤를 따라, 완공을 거의 앞두고 터널 옆 급경사로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길이 있을 리 없었다. 다만, 터널 만들기가 끝나면 여우목과 운달지맥 소개 입간판을 세우고, 터널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낙엽이 쌓인 급경사의 길은 당연히 미끄럽고, 군데군데 길이 사라졌다. 다행히 바로 길을 찾을 수 있어 문제될 거는 없었으나, 미끄러운 낙엽은 대책이 없었다. 가뜩이나 급경사라 힘든 가운데,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집중하는 바람에 체력 소모는, 비슷한 경사에 낙엽이 없는 다른 산에 비해 더했다. 이게 오지다! 정말 스틱 즉 지팡이가 아쉬운 산행이었다. 처음에는 선두 그룹에 끼어 오르기 시작했으나, 죽죽 미끄러지는 낙엽길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고, 꼬리를 물고 뒤에서는 따라오고 있어, 등산로에서 비켜 대부분을 앞세웠다. 이후 후미 그룹 정확하게는 뒤에서 두 번째에서 따라갔다. 즉 만약에 대비해 뒤에 한 명은 두고, 20분가량 헐떡이며 올라가자 의외의 장면이 눈에 띄었다. 눈이다! 언제 내렸는지 알 수 없는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었다. 물론 해발 고도는 900m가 넘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눈은 많이 남아있었고, 처음 눈을 본 곳에서 20분가량 더 올라가자 작은 봉우리 정상으로 보이는 곳이 나타났다. 눈이 녹아 진흙탕으로 변해 미끄러운 급경사로 올라보니, 정상이 아니라, 생달리에서 오는 능선 갈림길이었다. 고로 여우목 갈림길이다. 대미산으로 향하는 길은 급경사를 벗어나, 쉬운 등산로가 이어졌다. 그 삼거리에 도착한 시각이 10시 46분이었다. '문경대간 등산로'라고 쓴 이정표가 있는 곳을 지나, 앞에 우뚝 솟은 대미산을 향해 쉬지 않고 오르자 어느 순간 등산로는 눈길로 변했다. 이번 겨울? 처음으로 눈길을 걷는 순간이다. 이후 계속되는 눈길을 따라가자 백두대간 대미산 정상이다. 2020년 4월 황장산에서 출발해 왔었으니, 두 번째 방문이다.
정상에는 등산객 한 명이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거 같더니, 무시하고 바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떠났다.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오른쪽인데, 왼쪽으로 가는 게 이상했으나, 나도 문수봉에서 산악회 계획과는 다르게 하설산으로 가는 만큼, 그만의 생각이 있겠거니 하고 부르지 않고,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는 등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그 등산객이 바로 돌아와 오른쪽으로 다시 갔다. 아마 왼쪽으로 가다가 길에 쌓은 눈에 인적이 없는 걸 보고 가야 할 길이 아님을 깨닫고 바로 돌아온 거 같았다. 그 등산객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떠나고 나서 카메라를 바닥에 두고 타이머를 이용해 인증을 찍었다. 흥수와 찍은 게 있으나, 웬만해서는 두 번 오르지 않는 산에 다시 오른 기념이다.
아주 당연한 얘기로 한 봉우리에서 다음 봉우리로 가기 위해서는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해발 1,000m가 넘는 능선이고, 북사면이라,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도로 눈이 쌓여 있었고, 경사도 심했다. 지난번에 왕복했던 길임에도 길 상태가 생각나지 않았다. 흥수와 둘이 대미산에 들른 후 이 길을 따라 다시 돌아가 ‘생달리’로 한산했던 갈림길을 찾기 위해 오른쪽을 주시하면 걷다가, 쌓인 눈에 수차례 미끄러져 엉덩방아도 찧었으나, 갈림길은 찾지 못했다. 특별한 이정표나 인적이 없으면 눈 쌓인 겨울에 길을 찾지 못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겨울 산이 위험하다.
미끄러우나, 가야 할 길이 멀어 평소 페이스보다 조금 빠르게 등곡지맥이자, 137번째 천고지인 문수봉으로 향해, 11시 41분에 등곡지맥 분기점에 도착했다. 여기서 우회전하면 백두대간을 계속 이어가는 거고, 직진하면 등곡지맥이다. 직진해 등곡지맥으로 들어서자 등산로 상태가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대미산에서 분기점까지는 백두대간이라, 등산객이면 누구나 꿈꾸는 종주 길이나, 등곡지맥은 소수만 꿈꾸는 길이라 당연했다. 그런데 그 길 중간에 마치 성벽처럼 우뚝 솟은 바위가 있었고, 그 위가 등산로로 당연히 좌우 2m 정도 높이이 절벽이다. 그리고 끝에서 암벽을 타고 내려가야 했다. 그 내려가는 곳에서 병목이 생겨, 서너 명의 등산객을 추월할 수 있었다.
이후 몇 사람의 등산객을 추월하며 계속 전진해 12시 18분에 해발 999.7m인 999봉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두 팀이 점심을 먹고 있었고, 두세 명은 나무에 달린 표지를 사진으로 남기고 있었다. 나도 사진 한 장 찍고 출발하려는 순간 한 등산객이 표지가 달린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해 몇 장 찍어주고 바로 떠났다. 좌로는 월악산이 우로는 소백산이 버티고 있는 만큼 등곡지맥 또한 능선 곳곳에 암봉이나 바위가 가로막고 있었고, 그걸 우회하는 길과 통과하는 길이 있었다. 대부분 등산객은 우회로를 선택했으나, 나와 다른 한 명은 넘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때마다, 여우목 갈림길 직전에 도저히 버티지 못해 마른 나무로 만든 지팡이는 아래로 던져두고 암벽을 잡고 내려가야 했다.
이번 산행 최초 목적이었던 문수봉에 오르기 위해서는 해발 880m 즈음에 있는 이름 모를 고개로 내려간 후 해발 1,162m의 문수봉으로 다시 올라가야 했다. 툭 떨어졌다가 다시 올라가는 건 고역이다. 특히 여우목부터 대미산까지 구간에서 거의 모든 체력을 소모한 상태라 죽을 맛이었다. 고개에 도착해 다시 봉우리 즉 문수봉을 향해 오르는 중에 신기한 걸 볼 수 있었다. 석탄이다. 한국에도 노천탄이 있나 싶을 정도로 석탄이 외부로 노출되어 있었다. 하긴 주변에 폐광이 많이 있으니. 당연히 눈이 녹아 질척거리는 상태라, 미끈해서 넘어지면 대형 사고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시커먼 노천탄 지역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자, 오른쪽으로 정상에 하얀 눈 이불을 덮고 있는 거대한 산줄기가 보였다. 소백산이다! 물론 소백산의 랜드마크인 천문대도 보인다. 그 모습을 본 대부분 등산객이 "오늘은 소백산을 갔어야 했는데…."라며 직접 즐기지 못한 걸 아쉬워했으나, 그보다는 그 절경을 멀리서 볼 수 있다는 것에 대단히 만족한 모습들이었다.
등곡지맥은 소백산 전망대이자 갈림길에서 우회전해서 내려가야 했고, 문수봉은 50여 미터를 더 가야 했다. 정상에 도착해 보니, 대여섯 명의 등산객이 서로 인증을 찍어 주기도 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물론 저 멀리 소백산 사진도. 월악산은 나뭇가지에 가려 사진으로 남기기가 쉽지 않았고, 시간에 쫓기고 있어 찍은 게 없으나, 소백산은 무겁고 큰 줌렌즈 사용이 가능한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을 걸 후회하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일단 앞선 등산객이 정상석 주변에서 인증을 찍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고 하설산으로 향하는 길도 확인했다. 그 길은 정상석 뒤 좌편에 있었다. 이후 사진을 찍고 등곡지맥으로 돌아가는 등산객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기고, 등곡지맥이 아닌 하설산 방향으로 향했다. 순간 내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 본 등산객이 어디 가냐고 묻는 말에 "하설산 갑니다!"라 답하고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따라갔다. 그 시각이 1시 15분으로 애초 문수봉 도착 목표인 1시보다 10여 분 늦은 시각이다.
인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눈 덮인 능선을 따라 먼저 매두막으로 향했다. 도착 목표 시각은 2시. 그래야 하설산에 늦어도 3시 반까지 도착하고, 버스기 기다리는 도리기재 삼거리에 마감 시각인 5시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앞선 등산객이 심설은 아니나, 그래도 러셀을 하며 전진해 미끄럽기는 해도 위험하거나,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해서 일부러 뒤에서 따라간 것도 있다. 그런데 문수봉을 떠나는 순간 모든 걸 혼자서 해결해야 해 쉽지 않았다. 당연히 등산객이 거의 찾지 않는 코스라 그나마 길처럼 보이는 것도 상태가 좋지 않았고, 기복도 심했다. 특히 급경사 하산길에 잡고 내려갈 나무가 없을 때는 망설임 없이 주저앉아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렇게 지친 몸을 끌고 매두막 아래 고개에 도착해서 위를 보자, 조금만 올라가면 되는 봉우리가 보였는데, 매두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각이 2시 12분으로 목표한 2시는 넘었으나, 2시 반까지는 정상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햇볕이 잘 드는 남사면이라 고도는 높았으나, 눈은 다 녹은 상태였다. 사실 고도가 높은 것도 아닌 게 그 고개의 해발이 860m 정도였다. 고로 올려야 할 고도도 만만치 않았다. 눈은 없으나, 급경사의 오르막을 거의 100m 오르고 쉬기를 반복하며 올라보면, 뒤에 다른 봉우리가 있었다. 크게 낙담하는 순간으로 다시 길을 재촉해서 오르면 또 뒤에 있고 이런 낙담을 서너 차례하고 난 3시 7분에 드디어 매두막 정상에 도착했다. 수정 목표인 2시 반도 훌쩍 넘긴 시각이다. 그리고 산행 시작 후 그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다. 너무 지쳐서 뭘 먹고 싶지도 않았으나, 입술은 바싹 말라, 정상에 방석을 꺼내 깔고 앉아 잠깐 쉬면서 보온병에 담긴 뜨거운 차로 입술을 축였다. 그렇게 뜨거운 차 두 잔을 마시고 바로 매두막을 떠났다.
결과적으로 얘기하자면, 여우목에서 대미산, 문수봉, 매두막, 하설산 등을 거쳐 억수리 월악 오토캠핑장까지의 구간 중 가장 힘든 코스가 문수봉, 매두막 구간이고, 그다음이 하설산에서 억수리로 하산하는 너덜 코스였다. 사실 문수봉을 떠나는 순간 오지 산행의 시작이나, 그나마 다행인 건, 헉헉대며 매두막을 오르고 있을 때 정상에서 경쾌한 발걸음으로 내려오는 등산객을 만났다. 둘 다 미처 생각지 못한 산꾼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둘이 교행한 순간부터 둘 다 길을 찾기 위해 고생할 이유가 없어졌다. 눈 위에 난 서로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되니. 하설산으로 향하는 길은 오지임은 틀림없으나, 문수봉에서 매두막에 이르는 길에 비하면 거의 산책로였다. 그런데 정황상 4시까지 하설산 정상에 도착하기는 틀렸다. 해서 산악회 버스 타는 건 포기하고 하산 시 충주, 제천, 단양 중 어디가 가깝고, 서울로 가기 쉬운지 구글링하면서 정상으로 갔다.
그런데 하설산 또한 쉽게 정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상 부근에 눈이 쌓여 있었고, 오르는 길은, 거의 직벽에 가까운 암릉이었다. 미끄러운 눈 때문에 중간중간 서 있는 나무 밑동에 의지해 올라가야 했는데, 위험하기 그지없었다. 미처 사진을 찍을 여유도 없을 정도로. 힘들게 정상이라 생각한 곳에 도착해 보니 매두막과 같이 정상은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그나마 경사가 심하지 않은 암릉이고, 매두막 정상 부근에서 만났던 산꾼의 발자국이 있어 길을 찾는 어려움도 없었다. 그럼에도 헉헉대고 정상에 오른 시각이 4시 26분이다. 정상은 사용하지 않는 헬기장으로 지금은 억새가 차지하고 있어 억새를 뚫고 중앙으로 가기도 쉽지 않았다. 그 억새를 뚫고 정상석을 찾아 중앙으로 갔으나, 정상석은 없고 헬기장 끝 나무에 하설산(夏雪山)임을 알려주는 표지 두 개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걸려있었다.
정상 표지가 있는 곳에 도착해,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방석을 꺼내려 배낭을 벗고 그걸 꽂아둔 옆 주머니를 확인했는데, 없었다! 하설산 신이 방석이 필요했나 보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매달려 있는 모자에 붙은 억새 열매가 그걸 뚫고 정상으로 향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웅변해 주고 있었다. 일단 방석은 산신이 가져간 상태라, 지팡이로 사용하던 마른 나무에 주저앉아 보온병에서 뜨거운 차를 따라 마셨다. 심신이 다 지친 상태라 뭘 먹고 싶은 생각도 없어, 점심으로 가져온 영양밥은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다. 물론 인증을 남길 상태도 아니라, 멍청히 앉아 뜨거운 물만 마셨다. 그리고 인솔 대장에게 마감 시각에 도착하기 어려우니 기다리지 말고 먼저 떠나라는 문자를 보냈다.
하설산 정상에 도착하기 전 구글링을 통해 확인한 교통편에 의하면, 정상에서 덕산면 소재지 방향에 있는 간디학교 앞에서 택시를 타면 25분 만에 단양역에 도착할 수 있고, 단양역에서는 6시 36분에 청량리행 KTX가 있었다. 그럼 하설산 정상에서 하설골, 즉 계곡 방향으로 하산해야 한다. 트랭글이나, e-산경표에는 표기되지 않는 등산로나, 다른 지도에는 분명히 있는 길이라(산악회 버스가 대기하는 방향이라, 사전에 확인했음) 정상 주변에서 산악회 리본을 찾아봤다. 소백산 기준으로 정면에 정상 표지가 있고, 2m가량 왼쪽에도 정상표지가 있다. 그리고 각 표지 주변 나무에 리본이 달려있었다. 산세나 저 아래로 보이는 저수지 위치를 봤을 때 소백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정상표지 뒤에 하설골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야 했다. 해서 그 방향으로 다가가 길이 있나 확인했다. 언제인지는 모르나 내린 눈에 인적이 없으나, 등산로가 있기는 했다. 문제는 거의 직벽에 가까운 급경사에 눈이 쌓여 있고, 안전시설은 없었다. 이건 목숨을 걸로 하산해야 하는 분위기라, 어차피 늦은 건 간디학교 방향으로 바로 하산하는 건 포기했다.
소백산 기준 왼쪽에 있는 정상 표지 옆으로 눈 위에 선명한 발자국이 있었다. 매두막에서 만난 산꾼의 것이다. 그 발자국을 따라 간디학교 반대편인 광천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했는데, 그 코스 또한 급경사에 미끄러운 건 마찬가지라 체력소모가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인적이 있어 길을 잃을 위험이 없었고, 이미 인증된 발걸음이라 발을 잘못 디뎌 다칠 위험은 없었다. 눈 위에 남은 인적을 따라 하산하는데, 고도가 낮아질수록 눈이 녹아 없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에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고로, 인적도 사라졌다. 이제부터는 감으로 등산로를 찾아 하산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산하는 중간에 갈림길이 있었는데, 진행 방향 우상으로 향하는 길과 좌하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좌하로 향하는 길을 택했는데, 그게 실수였다. 그 길을 따라 계속하여 앞으로 나아가자 거대한 너덜지대가 나타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너덜 지옥이다. 물론 길 따위는 없다. 해서 일단 지금까지 지팡이가 되어 나를 안전하게 여기까지 데려다준 마른 나뭇가지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너덜로 하산을 시작했다. 지팡이를 버린 이유가 흔들리는 바위를 잘못 집었다가는 대형 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인데, 예상대로 너덜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흔들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고로 몇 번 엉덩방아도 찧으며 하산해 어두워질 즈음에 큰 사고 없이 무사히 통과했다. 너덜이 끝나는 지점에는 과거에는 밭으로 사용했을 거 같은 평지가 나왔으나, 현재는 잡목만 우거져 있었다. 그 잡목을 뚫고 들어가자 꽤 넓은 길이 나타났다. 임도다, 물론 과거에 사용했던. 경사가 심한 구 임도를 따라 지그재그로 내려가자 저 아래로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정확히는 현재 사용하는 임도다. 그 길로 내려가 마을을 통과해 다리를 건너자 월악 오토캠핑장이다. 그때가 6시 정각으로 이번 문수봉, 하설산행을 마감한 시각이다.
3
캠핑장 앞에서 배낭을 벗어 한쪽에 두고 표지석에 주저앉아 먼저 뜨거운 차를 한잔한 후 폰의 지도 앱으로 현 위치에서 충주터미널, 단양역, 제천역 등의 거리와 소요 시간을 확인했다. 가장 가까운 건 단양역으로 50분이 조금 안 걸렸다. 간디학교 앞에서 출발하는 것과는 차이가 크게 났다. 따라서 6시 36분 KTX는 시간이 안 맞아, 7시 11분 무궁화호를 타야 했다. 서울행 버스가 수시로 있는 충주는 단양역보다는 5분 정도 더 걸렸으나, 이후 차편을 고려하면 충주가 답이었다. 덕산이 제천에 속함에도 제천 카드는 소요 시간이나, 이후 차편이나, 맞는 게 없어 버렸다. 이후 구글링으로 덕산 택시 전화번호를 찾아 바로 전화했다. 전화상으로 충주터미널을 언급하자, 6만 원이라고 했다. 그럼 단양역은? 5만 5천 원! 분명 지도 앱의 대략적인 택시 요금에 따르면 3만 5천 원 내외였는데, 6만 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는 입장이라 충주터미널로 가자고 얘기하고 전화를 끊고 택시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며 뜨거운 차를 마셨다.
6시 20분경 도착한 택시를 보는 순간 6만 원이라는 비용이 이해됐다. 처음에는 통화할 때는 왕복 비용을 청구하는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오지를 운행하는 택시답게 벤이었다. 그 큰 차에 혼자 탄 후 첫 말이 충주터미널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묻는 거였다. 40분 정도라는 답이 돌아왔다. 해서 7시 5분 서울행 버스를 탈 수 있을 거 같냐고 다시 묻자, 한번 해보자고 했다. 이후 지역 택시 기사만이 알 수 있는 온갖 샛길로 달려 충주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이 6시 55분이다. 카드 결제가 안 되는 상황이고, 가진 현금이 얼마 없어 계좌이체 해주기로 하고 차에서 내려 버스 승차장으로 갔다. 물론 버스표는 터미널 도착 직전에 앱을 통해 예매했다.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서 택시비 6만 원을 이체해 준 후 정신을 차리고 몸 상태를 보니, 아직 스패츠도 벗지 않는 등 산행 종료 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심신이 지친 상태에 시간에 쫓겨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 일 거다.
8시 50분경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고, 10시가 조금 안 된 시각에 집에 도착했다. 씻은 후 삼겹안주로 하산주를 마시며, 점심으로 먹기 위해 들고 갔던 영양밥과 김치도 같이 먹었다. 새벽 5시 30분경 누룽지로 아침을 먹고, 저녁 10시 20분경 저녁이니, 대략 17시간 만에 먹는 곡기다. 사실 일요일 별일이 없었으면, 그 택시비로 민박에 들었다가 다음 날 다른 산을 둘러보고 귀경했을 거지만, 일요일, 월요일 양일간 모친과 가족 남도 여행이 잡혀 있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귀경해야 했다. 어쨌든 심신이 지쳐서 인지, 고기나 밥이나, 마치 모래를 씹는 기분이라, 빨갱이도 몇 잔 마시지 않고 저녁을 끝냈다.
산악회 지맥 팀 계획과는 달리 '여우목 → 생달리 갈림길 → 대미산 → 생달리 갈림길 → 등곡지맥 분기점 → 문수봉 갈림길 → 문수봉 → 하설산 갈림길 → 매두막 → 하설산 → 어래산 갈림길 → 너덜지대 → 구 임도 → 억수리 → 월악 오토갬핑장'의 17.7km(트랭글), 8시간 8분 대미산, 문수봉, 매두막, 하설산의 미처 준비하지 못한 2021년 첫 눈 산행이었다. 이동 7시간 57분, 휴식 11분!
예상치 못한 눈 산행으로 셀 수 없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간혹 주저앉아 미끄러져 내려가기도 하느라, 심신이 지쳤으나, 누구도 밟지 않은 눈을 밟은 기쁨과 오지 탐험의 즐거움을 만끽한 산행이었다. 다만, 미니 스패츠 덕에 눈이 등산화 속으로 직접 들어가지는 않았으나, 외피를 통해 물이 침투해 매두막에 올랐을 때는 등산화 내부가 온통 물이라, 걷기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발이 시리기까지 했다. 캠프라인?!
왼쪽으로는 월악산을 오른쪽으로는 정상이 하얀 눈에 덮인 소백산을 감상하며 달리는 문수봉까지의 등곡지맥은 최고의 조망 능선이기도 했다.
계획에 없던, 대미산을 포함 문수봉, 매두막, 하설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봉우리 4개에 올랐다.
눈이라는 변수가 없었으면, 처음 계획대로 7시간 내 산행을 마치고 산악회 버스를 이용해 귀경할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