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형, 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임시니네임]

인터넷에서 자주 보던 “매” 어원 드립을 진짜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

진지하게 한번 써 본다.

“매” 드립이 뭐냐면,

「매달다, 매만지다, 매섭다, 매끄럽다」

따위의 낱말들이 요 아랫놈(↓)에서 비롯했다는 거다.

사냥할 때 매를 매달아서 “매달다”이고,

매를 만져 주는 데서 “매만지다”고,

매가 사나워서 “매섭다”고,

매의 깃털이 매끄러워서 “매끄럽다”라나…….

1. 간단한 중세국어 배경 지식

좀 따분할 수 있겠지만, 다짜고짜 어원이랍시고 들이대면 믿을 사람이 없을 테니까

진짜로 아주 간단한 배경 지식을 던져 본다.

단모음

이중모음

삼중모음

양성모음

ㆍ

ㅗ

ㅏ

ㆎ

ㅚ

ㅐ

ᅟᆝ

ㅛ

ㅑ

ㅘ

ㆉ

ㅒ

ㅙ

음성모음

ㅡ

ㅜ

ㅓ

ㅢ

ㅟ

ㅔ

ᅟᆜ

ㅠ

ㅕ

ㅝ

ㆌ

ㅖ

ㅞ

중성모음

ㅣ

① 우리말은 7개의 단모음 체계였다.

다시 말해, 천지인(ㆍ, ㅡ, ㅣ)을 으뜸 삼아서

하늘이 땅 위로 솟으면 ㅗ가 되고 숨으면 ㅜ가 되며

사람 밖에 있으면 ㅏ가 되고 안에 있으면 ㅓ가 되는 모양새였다.

ㆍ 를 지금은 “아래아”라고 부르지만 당시에는 ㅏ와 확실히 구분되는 소리였고 오히려 근본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이중모음이었는데,

ㅐ는 지금으로 치면 “아이”처럼 읽히고

ㅔ는 “어이”처럼 읽혔다.

ㅣ가 뒤로 붙는 모음 가운데는 ㅢ만 아직까지 “으이”처럼 읽힌다.

생긴 대로 읽는 게 맞았다.

② 오늘날보다 모음 조화가 잘 지켜졌고, 그에 따른 모음 교체가 흔했다.

지금이야 “달랑달랑/덜렁덜렁”, “소복소복/수북수북”, “알록달록/얼룩덜룩”처럼

의성어/의태어에 모음 교체가 거의 집중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명사든 동사든 짝이 되는 모음끼리 맞바꾸어 말맛을 나누고 뜻과 쓰임을 갈랐다.

이를테면, “갗/겇”은 모두 표면을 나타냈는데

양성인 “갗”은 유정명사에만 쓰여서 오늘날까지 “살갗, 가죽” 등으로 이어지고

음성인 “겇”은 무정명사에만 쓰여서 오늘날에는 “겉”으로 이어진다.

“ᄂᆞᆰ다/늙다”도 비슷한데 쓰임은 거꾸로다.

양성인 “ᄂᆞᆰ다”는 무정명사에 쓰여서 오늘날에 “낡다”가 되고

음성인 “늙다”는 유정명사에 쓰여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이런 예시는 너무나 많아서 하나하나 다 늘어놓기 버거울 정도다.

대충 여기까지 하고 하나씩 낱말을 톺아보자.

2. 매

위 책은 수양대군이 지어다 세종대왕에게 바친 《석보상절》(1447)과

그걸 보고 감명받은 세종대왕이 답시를 쓴 《월인천강지곡》(1447)을 합본해 발간한

《월인석보》(1459)의 일부다.

아무튼 되게 오래됐단 말이다.

그리고 빨간 네모 친 곳이 옛날에 “매”를 뭐라고 불렀는지를 나타낸다.

왼쪽 점 두 개는 낮았다가 높이 올라가는 상성을 뜻하므로

소리는 얼추 “마이↗”처럼 났을 것이다.

재미 삼아 문장을 해석하자면 아래와 같다.

「奮분은 매 ᄂᆞᆯ애 티ᄃᆞ시 가ᄇᆡ얍고 ᄲᆞᄅᆞᆯ씨오 迅신ᄋᆞᆫ ᄲᆞᄅᆞᆯ씨니

⇓

분(奮)은 매 날개 치듯이 가볍고 빠른 것이요, 신(迅)신은 빠른 것이니」

3. 매달다

“매달다”는 뜻으로 보나 쓰임으로 보나

동사 “매다”와 “달다”의 비통사적 합성어다.

비통사적 합성어가 무어냐면,

우리말에선 어근(뿌리)끼리 고대로 갖다 붙여 만든 낱말을 말한다.

아래 보는 것처럼 옛날에는 새 낱말을 만드는 되게 흔한 방식이었다.

• 감다 + 싸다 = 감싸다
• 걷다(≒ 거두다) + 잡다 = 걷잡다
• 깨다(ex. 잠 깨다) + 닫다(ex. 도움닫기) = 깨닫다
• 붙다 + 잡다 = 붙잡다
• 싸다 + 잡다 = 싸잡다
• 오다 + 가다 = 오가다
• 갈다 + 다듬다 = 가다듬다
• 쓸다 + 다듬다 = 쓰다듬다
　　　　　　.
　　　　　　.
　　　　　　.

저 위의 책은 아까 수양대군이 지었다고 했던 《석보상절》(1447)의 일부인데

빨간 네모를 보자면 “매다”의 옛말은 “ᄆᆡ다”이며

성조는 낮은 소리인 평성이다.

“ᄆᆡᄃᆞᆯ다”는 19세기 말인 독립신문에서야 보이는데

이미 아래아(ㆍ) 소리는 사라졌지만 표기의 보수성 탓에 계속 “ᄆᆡᄃᆞᆯ다”로 적힌 것이다.

어쨌든 “매달다”는 “매다”와 “달다”의 합성어가 맞다는 뜻이다.

그리고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소리도 다르고 성조도 다른

날짐승 “매”와 동사 “매달다”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아, 참고로 석보상절 문장을 풀이하면 아래와 같다.

「ᄒᆞ다가 有ᅌᅮᇢ情쩌ᇰ이 나랏法법에 자피여 ᄆᆡ여 매 마자 獄ᅌᅩᆨ애 가도아[ 獄ᅌᅩᆨᄋᆞᆫ 사ᄅᆞᆷ 가도ᄂᆞᆫ ᄯᅡ히라]

⇓

만약 유정이 나라의 법에 잡혀 매여, 매 맞아 옥에 가두어[옥은 사람 가두는 땅이다]」

4. 매만지다

위는 조선에서 외국어 교재로 쓰인 《박통사》(1517)의 일부로 최세진이 한글 주석을 달았다.

그리고 “매만지다”의 옛말인 “ᄆᆡᄆᆞᆫ지다”는 18세기부터 보이는데,

이때 앞에 붙은 “ᄆᆡ‐”를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박통사》에서 보이는 “ᄆᆡᄭᅮ미다”도 동사 “꾸미다” 접두사 “ᄆᆡ”를 쓴 것으로 보이며,

접두사 “ᄆᆡ”는 낮은 소리인 평성이다.

다시 말해, 날짐승 “매”와는 소리도 성조도 다르므로

서로 연결 짓기 어렵다는 뜻이다.

5. 매섭다

위는 수양대군이 지어다 세종대왕에게 바친 《석보상절》(1447)의 일부다.

“므ᅀᅴ엽다”라는 낱말이 엉뚱히 네모 쳐진 것 같지만,

이게 곧 “매섭다”의 어원이다.

더 정확히는 “므ᅀᅴ엽다”는 “무섭다”의 직접적인 어원이고

그 짝인 “ᄆᆞᅀᆡ엽다”가 곧 “매섭다”의 어원이다.

“ᄆᆞᅀᆡ엽다”가 적힌 《노박집람》(1517)은 원문을 못 찾아서 우리말샘에서 바로 가져왔다.

꼴이 지금이랑 많이 달라서 당황스러울 수 있는데, 

시대의 풍파란 풍파를 다 맞고 변해서 저렇다.

우리도 스물 살 때 사진 보다가 거울 보면 깜짝 놀라지 않던가.

“ᄆᆞᅀᆡ엽다/ 므ᅀᅴ엽다”의 구성을 보자면,

동사 “ᄆᆞᅀᆡ다/ 므ᅀᅴ다”에 접미사 “-압/업-”이 붙어 생긴 낱말인데

접미사 “-압/업-”은 주변 소리에 따라 “-ㅂ/ᄇᆞ/브-” 따위로도 나타나며

동사를 형용사로 바꿔주는 구실을 한다.

옛날엔 이것도 되게 흔했다.

• 그리다 → 그립다
• 놀라다 → 놀랍다
• 믿다 　→ 미덥다, 미쁘다
• 반기다 → 반갑다
• 배곯다 → 배고프다
• 아끼다 → 아깝다
• 앓다　 → 아프다
• 웃다　 → 우습다
• 즐기다 → 즐겁다
　　　　 ·
　　　　 ·
　　　　 ·

동사 어근 “므ᅀᅴ-”에서 내려오는 말로 “무섭다” 말고도

“무시무시하다”가 더 있다.

그러니까 “매섭다”는 날짐승 “매”랑 관련 있을 턱이 없는 낱말이다.

매가 사나워서 매섭다면 무가 사나워서 무섭다인가?

분류두공부시언해(1481)

월인석보(1459)

분류두공부시언해(1481)

구급방언해(1466)

6. 매끄럽다

위 책들은 “매끄럽다”가 어떻게 만들진 낱말인지를 잘 보여주는 보기들이다.

① 맨 위의 《분류두공부시언해》를 보면 “믯그럽다”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곧 오늘날 “미끄럽다”의 조상되는 말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동사 “믯글다”에 형용사 접미사 “-업-”이 붙은 모양새인데

지금도 “믯글-”에서 파생한 “매끄러지다/미끄러지다”, “매끈하다/미끈하다”, “매끌매끌/미끌미끌”, “매끄당-/미끄덩-” 등을 볼 수 있고

동사 “매끌다/미끌다”가 북한어로 사전에 올라 있다.

② 이어서, 그 뒤로 보이는 “ᄆᆡᆺᄆᆡᆺᄒᆞ다/믯믯ᄒᆞ다” 역시

오늘날 “맷맷하다/밋밋하다”의 조상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ᄆᆡᆺᄆᆡᆺᄒᆞ다/믯믯ᄒᆞ다”는 그 뜻으로 보나, 소리와 성조(평성)로 보나

“믯그럽다”의 “믯”과 그 양성모음 짝인 “ᄆᆡᆺ”을 반복해서 강조한 말이다.

“간간하다/건건하다”, “삼삼하다/심심하다”… 이런 낱말은 우리말에 수도 없이 많다.

③ 마지막으로 “믯믲다”가 보이는데

이는 어근 “ᄆᆡᆺ-/믯-”의 받침이 사실은 ㅅ이 아니라 ㅈ임을 뜻한다.

왜냐하면 그때는 소리나는 대로 적는 8성 종법을 썼기 때문인데,

이를테면, 동사 “맞다”를 자음 앞에서 “맛다, 맛고, 맛니” 따위로 쓰고,

모음 앞에서 “마자, 마ᄌᆞᆯ, 마ᄌᆞᆫ” 따위로 썼던 것이다.

그러면 어근이 “ᄆᆡᆽ-/믲-”이냐, “ᄆᆡᆽㄱ-/믲ㄱ-”이냐 다툼이 남지만

자료 부족으로 결론 지을 수 없는 얘기인 데다가,

뭐가 됐든 날짐승인 “매”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므로

여기서 편히 이야기를 줄일 수 있겠다.

여담으로, 미꾸라지는 《훈몽자회》(1527)에서 “믯구리”로 처음 등장한다.

「믯글- + 이」로 분석되는 믯구리는 곧 “미끄러운 놈”이라는 뜻이 되며

나중에 “작은 것”이라는 뜻을 갖는 접미사 “-아지”가 덧붙어서 “미꾸라지”가 된다.

(강아지, 송아지, 망아지, 되야지(돼지), 바가지 할 때 그 “-아지”)

7. 결론

날짐승 “매”랑 「매달다, 매만지다, 매섭다, 매끄럽다」 사이의 연관성은

옛말로써 보건대

첫소리 ㅁ만 같을 뿐  거의 모든 것이 다르므로,

없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매 키우는 분의 이야기는 재미로만 들으시면 좋겠다.

여기 자료는 모두 국립국어원이 제공하는 어원 정보를 참고했다.

네이버 사전 검색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고

레퍼런스가 달려 있으므로, 원문도 구글 검색으로 거의 바로 나온다.

[켄츠]

이걸 누구보라고 이러는 거요
매형 거 장난이 너무 심한거 아니오

[작은외침]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