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내 가슴 속에 자꾸 불을 지르기에 괜히 속세에서 돈 몇푼 더 벌려다가 인생 종 치겠다 싶어
도대체 이 마음을 어디서 찾을꼬 고민하다가
나 이러다가 인생 종칠 것같애
차라리 산에라도 피했다 오는 게 좋을 것같아..
아내에게 협박 반 사정 반하여 새 등산화 하나 사달라고 해서 얻어 신고
용돈도 받고 해서 배낭에 짐을 꾹꾹 채우고 그전부터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지리산 길을 떠났다
백암산에서 출발하여 내장산까지의 20여시간의 종주도 따라왔던 아내다
사시사철 어디를 가나 힘든 산도 항상 아내와 같이 다녔다
둘 다 몇년 전부터 그토록 가고 싶었던 지리산
아내와 같이 가고 싶었지만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이번에는 나 혼자 떠나기로 한 것이다.
" 나 기다리지마. 이번엔 어쩌면 한 보름쯤..아뭏든 좀 오래 걸릴거야..."
사흘을 고민하고 꼭 필요한 것만 적고 추려보아도 더 이상 줄일 수가 없는 배낭 그리고 세월의 무게에 헐렁해진 다리 근육
거기다가 배운지 얼마되지 않은 커피 사랑에 드립 도구는 망설이다가 빼버리고 커피는 즉시 갈아먹어야 맛이 있다고 하여
칼리타 핸드그라인더와 모카포트와 그리고 예가체프 커피 한봉지 250그램을 넣었다
세상없어도 이것만은 누구 주지말고 나만 꼭꼭 아껴 먹어야지라고 몇번이나 결심하고..........
커피 없는 산행이 얼마나 사람을 잔인하게 하는지 익숙히 알고 있는 산사나이처럼 그렇게 나의 일탈은 시작되었다
저녁 6시경에 도착한 구례구역에 내려 몇일전 미리 예약해놓은 구례구역에서 가까운 대성여관을 찾아갔다
열차에서도 내내 피곤했고 객지에 왔으니 마음이 들떠 눈이 초롱초롱할 법도 했건만
왠일인지 초저녁인데도 피로가 밀려왔다
서울에서 사온 작은 전기 방석을 요밑에 깔고 으실 으실 추운 몸을 지져가며 아주 푹 잤다..
원래 지방에 다니면 찜질방을 이용하면 좋은데 여긴 시골이라 찜질방은 없었다
다행히 여관은 조용하고 깨끗했다
( 이런 시골에서 몇년간 책이나 썼으면...)
주인아주머니는 1층에서 식당을 하시는 데 저녁에 짐을 풀고 백반을 먹었는 데 그 맛이 담백하였고 마음도 즐거워졌다
새벽 3시경에 잠이 깨어 구례구역에 나가봤다
얼마 후에 기차가 도착하고 몇 명의 외국 젊은이들이 내린 후 피곤에 지쳐 의자에 쓰러져 앉고 또 졸고 있다.
연세대에 교환학생으로 온 말레이시아 학생들이었다..
물어보니 지리산 초입까지 가는 1인당 5,000원 하는 택시비를 절약하려고 새벽 6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성삼대까지 올라가려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은 그냥 운동화에 반바지를 입고 온 학생도있고 깊은 산행에는 조금 위험한 복장이어서 신경이 쓰였다..
나도 초행길이지만 같이 동행하며 보살펴주려고 그들과 동행했다
성삼대에 도착해서 노루목 산장 ( 성삼대에서 출발하는 지리산을 올라가는 주 통로인 이곳에선 주로 밥만 먹고 화장실 가고 잠시 짐풀고 밤새 달려온 지친 몸을 지리산에 적응 하느라 의자에 눕거나 쉬었다 올라가는 용도 반면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대성사로 내려오는 화대종주 코스도 있다 )에 도착하니 8시가 되었고 그 때부터 일기예보와는 달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리산은 일기예보가 잘 맞지 않는다고 한다
연하천 가는 길에 비를 맞아 꽃잎들이 떨아져 있었다
마치 내 앞길에 꽃길을 만들고 기다리는 듯...
나는 옛날 군생활하면서 터득했던 경험으로 미리 준비해간 큰 비닐봉투의 귀퉁이를 잘라 조끼처럼 만들어 입어서 옷은 젖지 않았으나 그 학생들은 그냥 비를 맞으며 올라갔다 다행히 날씨는 그리 춥진 않았다..그러면서도 같이 사진도 찍고 뭐가 그리 좋은지..더운 나라 젊은이라고 걱정을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역시..젊음이란 좋은거여.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삼도가 만나는 경계에 있다하여 이름 붙여진 삼도봉에서 잠시 쉬면서 학생들과 사진을 찍고 다시 올라갔다..
비에 떨어진 꽃잎들..세상에 지리산이 나를 이렇게까지 환대를..!!~~처음엔 이랬었다..룰루 랄라...
처음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숙소로 잡은 곳은 연하천 산장
장대같이 굵어진 비에 내일 또는 비가 그칠 때까지 여기서 내리 쉬면서 ( 등산에 대한 욕심을 버리려고 했다..여기까지 올라온 것도 등산인데 굳이 천왕봉까지 꼭 가서 해를 봐야하는가?..라고 하면서.) 오직 나의 마음 찾기와 느긋하기를 주문처럼 되뇌이며
집에서 싸온 김치를 끓이고 밥을 했다..
밥을 먹다가 반찬이 부족하면 옆 사람들에게 가서 조금만 달라고 했더니 혼자 왔냐고 하면서 같이 와서 먹자고 한다.
밥을 먹고 커피를 갈아 모카포트에 끓였다
잠시 후 아줌마 여자들 네명이 배낭을 지고 들어왔다
좀 늦게 도착한 것같다
산에서 여자들 수다 떠는 것을 들으니 축축하고 습기찬 지리산 적막한 비오는 밤이 활기가 차는 것 같다
지리산 가보신 분은 알겠지만 연하천 산장 취사장이 좀 좁고 지저분하지 않은가?..
샘물이 산장 마당에서 콸콸 쏟아져 ( 하긴 비가 그리 많이 왔으니,,) 세수하거나 밥 지을 물은 가까워서 좋긴 하다,,
아니 뇨자들이 자기들끼리 지리산을?..
그 용기가 이뻐보였다..
그래서 이것 저것 ( 나도 내일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한테 적선한다고 얻은 것도 있고...
그들이 내게 적선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의 짐을 가볍게 해 준것이므로 내가 적선한 것..ㅎㅎ) 좀 나눠줬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내 버너에 끓이던 피같은 김치찌개를 갖다 준 것이고 ( 이미 나는 내 마음 속으로 그들의 오빠..아니 아빠가 되어있었다..)
그 환호성과 호들갑에 이미 집 떠난 나의 마음은 취사장 천정을 붕붕 떠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떨리는 손으로 드디어 꺼낸 커피 봉지
난 태어나 전혀 예상치 못한 연하천 산장의 바리스타가 되어 요염한 자세로 사르륵 사르륵 핸드밀에 커피를 갈고 있었고
" 어머 오빠 왜 그렇게 멋있어?!!..!"
음..그래 니들이 인물을 좀 알아보는구나..이그 귀여운 것들..하며 만면에 흐믓한 웃음을 띄고
커피를 끓여 작은 컵에 따라 주었다..
앞으로 언제 내려갈지도 모르는 나의 외로운 길에 유일한 동반자가 되어줄 커피가
커피 전도라는 숭고한 사명을 위해 저 한몸 바쳐 이 축축한 세석산장 취사장에서 온몸이 갈리고 끓여지고 있었고
그들의 가여운 영혼은 하얀 김이 되어 모락 모락 하늘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정성스럽고 ( 내 피같은 ..) 커피를 받아든 그녀들이 무슨 말을 했으리라는 것은
여기에 다 적을 수도 없고 다 적을 필요도 없다
당신들도 다 추측할 수 있는 말들이다..
온갖 찬사 감탄 극찬 감동...
와..< 나. 용산 바리스타> 완전 필받았다...
얘들아 커피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마시는 것이 진짜야
내일 아침 일어나면 오빠가 커피 내려줄께~~..
무슨 괴성인지 모를 합창이 들려왔다..
내가 왜 이런 소리를 했을꼬?..
고아원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트럭으로 싣고 가서 온몸으로 들고 들어 갈 때라야 들어볼 수 있는.....
지금의 싸이가 아무리 뮤직비디오에서 대상을 받았다한들 그 때 내가 들은 찬사에 비교할 수 있으랴?..
#2
오지랍
비는 점점 굵어지고... 저녁 9시경
무슨 영어를 하면서 두 남녀가 비에 흠뻑 젖어 취사장으로 들어오는 데 남자는 한국인인 듯하였고 여자는 무슨 헐크의 딸처럼
거대한 몸집인데 그냥 반바지에 민소매 러닝셔츠 달랑 하나 입고 머리는 비를 흠뻑 맞았더라고..
이건 뭐 동네 뒷산 올라오는 복장인데..
비오는 날 밤중에 약 네시간이나 되는 캄캄한 밤의 산길을 걸어올라온 것이다..
들어와서 추위에 벌벌 떨면서 차가운 스팸을 하나 꺼내어 매점에서 사온 햇반하고 그냥 같이 먹겠다고 한다,,
아니 이 복장으로 얘네들은 무슨 고행을 왔다냐?..하고 놀라서 유창한(?) 잉글리시로 반겨주며 잔뜩 끓여놓은 김치찌개와 미리 해둔 밥으로 오들 오들 떨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뜨거운 인정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태원에서 원어민 강사를 하는 친구들인데 한국인인듯한 애는 미국에 유학 갔던 애고 여자에는 캐나다 사람인데 자기네 사는 동네에도 산이 가까와서 로키산인가 하는 산을 자주 갔단다,,
김치찌개든 뭐든 입에 안맞아도 무조건 먹어,,안 먹으면 죽는 거야....
아니 자기들도 이런 거 맛있게 잘 먹는단다
연신 고맙다고 하며 허겁지겁 그릇에 코를 박고 밥을 먹는다 아니 밥을 들이 마신다
얘네들 밥을 먹으면서 무슨 소리를 자꾸 낸다
울고 있음이 분명하다 아님 좋아서 웃든지..
주로 이런 상황에서 동양 사람들은 울고 서양인은 웃을 것같다 어떤게 낫다고 할 수는 없다 정서의 차이니까...
새들도 우리나라에선 밤새워 울다가 서양으로 날아가면 노래로 바꾸어 부른다고 한다
걔들은 우는 것을 싫어하고 노래하는 거를 좋아하니까..
전화번호 달란다 서울 가면 연락하고 꼭 저녁 한번 대접하겠단다
난 용산에 사니까 아무 때나 전화하라고 했다
아직은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제 4년밖에 안 지났다..
#3
아픔의 씨앗
다음날 아침 8시경.
그녀들은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하고 약속한 시간에 취사장으로 들어왔다
어머 화장을 안했네..뭐라고 하면서...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내 앞에 와서 기다린다...
나는 간밤에 이상하게 빗소리에 센치해져서 밤을 지새고 새벽부터 그녀들을 위해 밥도 지어놓고 매점에서 사온 비싼 ( 3,000원%#@!!! )스팸 한통을 다 넣고 김치찌개를 끓여놓고 있었다..지리산은 뭐든지 비쌈.헬기로 실어오거나 등짐으로 올리기 때문에..
하긴 내 커피도 그런건데..
그렇게 커피를 내려주고 밥도 주고 다시 커피를 내려서 후식으로 마시게 하고...
아침 일찍 떠나는 그녀들에게 내가 가지고 간 천금같은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담아 내려가는 길에 마시고 보온병은 다음에 내가 대전 내려가면 그 때 만나서 돌려달라고 하면서 사양하는 그녀들에게 억지로 떠다 밀고 서로 전화번호만 적어놓았다..그녀 중 한명이 커피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내게 커피를 주문하겠다고 하여 많은 기대를 하였으나 그녀들에게도 아직 연락이 없다....하긴 아직 4년밖에 안 지났으니..바쁜 일이 있나보다 하고 생각한다..보온병이라도 돌려주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참 아끼던 보온병이었는데....
다이소에서 5,000원 주고 산 딱 커피 한잔 담아지는 아담한 보온병이었는 데...
그 순간에도 나는
얘들이 태어나서 이런 대접을 받아본 일이 없겠지..아마 행복할 거야..
라고 생각했고 내가 좀 이상한 사람 취급만 받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었다..마누라가 지금 자길래 망정이지 이 글을 보면 도대체 이 인간은 내가 지금까지 수십년을 같이 살아왔지만 도대체 퍼주기 좋아하는 성격은 언제 고칠 수 있을까?..하며 결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것이 당연하지만( 참고로 우리 마누라는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으로 자기거 남 주기 싫어하고 남의 것 받는 것도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나는 내것도 남의 것 남의 것도 내것으로 여기는 습성이 있는 사람이다..그러므로 만약 누군가가 나랑 밥을 함께 먹는다면 내 밥값은 대신 내줄 각오를 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분명 커피를 향한 나의 사랑이 숭고한 인간에게 투영된 결코 신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 그러나 내 아픈 다리에게는 부끄러운 ) 선행이었다..
그리고 어제 밤을 같이 새운 밤새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사주도 많이 배우고 점도 본다는 마치 신선같고 무슨 도인 같던 좋은 사람과 ( 그는 세 병의 소주를 비웠고 난 한자루의 이야기를 비웠다 )
밤새 내려 마신 커피로 그렇게 한 스푼씩 장렬하게 산화하여
커피는 어느새 4분의 1 으로 ( 약 80그램 )줄어있었다
나는 산을 내려 온 후로 그 사람이 가장 기억이 나서 전화를 한번 했다
고마웠다고
지금도 당신 얘기가 생각난다고..
그날도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신발도 젖고 양말도 젖고 수건도 젖고 말릴 수도 없고 하루 더 놀았다
계속 김치찌개를 끓이고 밥을 하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먹이고 지리산에서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매점의 직원에게까지 커피 내려서 갖다줬다
아까 말한 것처럼 김치와 반찬과 쌀은 산장에 있을 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늘어난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에게 얻으면 되는 것이다..물론 타고난 변죽이 있어야한다
때로는 앵벌이도 한다..먹고 사는 일이 절박하므로..
형님..아니 누님..피곤이 쌓인 하산길..내려가시면서 다리도 아프고 어치피 버릴 거 무거울 텐데 산도 높은데 치우기 곤란하니 짬밥통에 붓지 마시고 남는 쌀이나 반찬 있으면 제가 다 받아드릴깨.. 제게 다 내려 놓고 편히들 가셔요..라고..
그날은 일부러 추석날 직후로 일정을 잡았고 딱히 갈데도 없는 나는 산에서 추석을 맞았기에 그날 산에 온 사람들은 모두 명절을 산에서 보낸다는 공감대 때문인지 추석맞이로 부쳐온 가자미며 그 귀한 전( 오!..신이여..제가 정녕 이 해발 1600미터 지리산에서 전을 맛 볼 수 있단 말입니까?..) 라고 감사 기도를 올리면서 그들이 남기고 간 부침과 동그랑 땡 그리고 고사리 나물 도라지 ( 오 마이갓!! 많이도 싸오셨네 그 손도 크신 언니...)
그런 기름진 것을 다 털어넣고 김치 찌개를 끓인 것이다..
지리산에 가면 주로 전라도와 경상도 두 지방의 음식을 맛본다..그런데 경상도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내공 역시 범상치 않아서
혓바닥에 닿는 순간 감전된 것처럼 짜리리 하니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맛이 독특하고 깊다..
아뭏든 하루 더 자고 나니 비가 그쳐 그날 오전 내내 젖은 옷을 널어 말리고 점심쯤 출발하려던 생각이 이상하게 그 좁고 낡은 연하천 산장이 좋아서인지 미적거리며 사람들하고 노닥거리다보니 ( 산에서 사람을 만나면 할 이야기가 참 많다 ..어디 사냐..무슨 일하냐..산엔 얼마나 다녔냐..어느 산에 가봤냐..지리산엔 첨 왔냐..아니 난 세번째다..난 해마다 온다.. 어디는 가을에 오면 좋고 어디는 봄에 오면 철쭉이 좋고 그쪽 등산로는 폐쇄되었고 어디 산장에 가면 사람이 미어터져서 잠자기도 힘들다는 절박한 생존에 관한 문제 등 지리산 산행의 경험에 관해..처음 본 배낭에 등산화에..스틱..에관한 질문..이거 어디서 샀냐?..써보니까 어떻더냐는 등..가격 등등...)
오후 1시
더 이상 미루면 다음 목적지인 벽소령에 해가 진 후에 들어가게 되므로 난 4시간 등산을 할 계획으로 길을 나섰다
가다가 쉬어가고 앉아서 한참동안 경치 보면서 도대체 나를 어디서 찾아야할꼬..그런데 타고난 이 놈의 입이 항상 문제
이 놈의 사람 좋아하는 습성은 지리산 꼭대기까지 따라와서 도무지 자신을 찾을 침묵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으니 나를 찾아 떠난 여행에 속절없는 시간과 ( 나를 찾겠다고 하고..)아내한테 빼앗아 온 100만원만 날린 셈이었다..
( 등산화 장비 등등 구입비 포함 )
#4
벽소령 가는 길
벽소령으로 가는길 초입에 있는 바위... 다시 또 오라고 인사하는 것같다...
이 바위에 앉아서 한참 쉬었다..길가에 신기하기도 하지..
벽소령 가는 길이 분명 네시간 걸린다고 했는 데 왠 존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길처럼 가파르고 현묘해서 도무지 얼마나 더 가야 벽소령 가는 팻말이라도 보일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척 지척 걸어가며 이것이 진정 내가 그동안 맛보던 즐거운 산행일까 하는 의심을 하며 그 수도 없는 봉우리와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갔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해답인가?..
< 결국엔 세상에서 루저가 되어 이 산까지 도망쳐왔는가?>..하는 생각에..
알 수없는 설움같은 것이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올라왔다..
울고 싶어라..혼자서 엉엉...
난 이렇게 지리산이 아름답고 또 이렇게 힘든 줄 몰랐어
내 신체 중에 가장 자신있는 부분이 다리이고
군생활할 때 강원도에서도 만 4년이나 산을 매일 오르던 사람인데
나의 자존심은 무참히 무너지고 있었다
이렇게 다리에 힘마저 없어지면 앞으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싸워가며 먹고사나
높은 계단과 도무지 사람들에 의해 길들여지지 않은 거친 돌 아니 바위들..
40대 때까지만해도 샌들을 신고 북한산을 뛰어서 올라가고 뛰어내려와서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았던 건각이었다.
저녁 늦게 벽소령에 도착했다.산장은 산에 올라가면서 미리 전화로 예약을 부탁했으나 직원은 [입소를 취소하여 남는 자리가 있을지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했었다..
벽소령은 이름이 범상치 않았듯 그 선 자리도 꼭대기에 있어 마치 외국의 산장처럼 아름다웠다.그 뒷 배경들은 모두 아래로 내리막길의 능선인데 저녁이 되자 밤안개가 자욱하고 바람이 사방에서 사정없이 세차게 불어와서 마치 세상에서 더럽게 살아온 나를 씻어내려는 듯 혹은 꾸짖고 채찍질하는 것같다.
벽소령 산장 앞에는 테이블이 붙은 긴의자들을 운치있게 배치해놓았는데 여인네 둘이 밥을 먹고 있는데 배도 고프고 해서 옆자리에 앉아 밥먹는 것을 구경했더니 같이 먹자고 해서 냉큼 건너가서 세상에 간장에 절인 취나물 장아찌가 그렇게 맛있는 거 첨 먹어봤다..
무슨 건강전도사인양 그녀의 반찬은 각종 산나물로 가득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마디 " 이 남는 밥으로 우리 누룽지 끓여먹을 건데 좀 드릴까요?.."
나, 울뻔했다..신이시여 제게도 이런 은총을..예비하셨나이까?..[언니들 그걸 질문이라고하세요?..]
나 또 커피 꺼내 끓여 보답했다..
그나저나 너무나 다리가 아팠다
2층 침실을 배정받았는 데 난 그 나무향기 흠씬 풍기는 우아한 목조 산장에 감탄할 겨를도 없이 계단을 네발로 기어서 올라가서 내 자리에 담요를 깔고 쓰러졌다
배낭이 무거웠나?.
지리산은 만만한 산이 아니었다.
너무 힘들고보니 마음까지 약해져 울고 싶었다
그러나 울 수는 없다 나는 어른이고 남자니까..그리고 내가 선택해서 온 길이니까..
그래, 이렇게 또 강해지는 거야..
다음날 아침
새벽에 일어나 커피를 끓이려고 보니 한번 끓일 분량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들 때문에 아니 이 놈의 오지랍 때문에..
이제 앞으로 남은 고독한 밤을 어떻게 보낼꼬..
탈탈 털어 끓이고 홀짝거리고 마셨다
# 5
이제 남은 것은 세석산장 그리고 천왕봉 일출을 보기 위한 마지막 산장인 장터목 산장
어제 벽소령 오면서 너무 시간이 촉박해서 불안했길래
아침 일찍 밥을 먹고 9시쯤 출발했다
이 시간이면 늦어도 오후 4시면 도착할거야 ( 7시간이니..)
그동안 다리도 단련되었으니 빨리 가겠지...
중간에 어디 숨어서 라면이라도 끓여먹어야지...
언제나 출발 후 30분 정도는 즐겁고 가볍다
그런데 너무 멀다..
내가 여기까지 왜 왔을꼬..
가도 가도 끝이 안보이는...
여름이었다면 더위에 체력이 바닥나서 지쳐
도로 돌아서 산을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덥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힘든 순간마다
히말라야에서
그 오지
빛도 없는
눈덮인 해발 8,000미터의 얼음 봉우리에서
오르다가 혹은 내려오다가 혹은 동료 선배 후배를 구하려다가
산에 묻혀간 많은 산악인들을 생각했다
그들의 말도...
산이 거기 있으니 산에 오른다
나에게는 도전하는 것만이 살아있는 것이다
그 의미를 이곳 여기서만이 깨달을 수있으리라 생각하며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곰곰히 생각했으나
마음을 파고드는 생각은 세상에서 할 일도 많은데 팔자 편하게 내가 여기 왜 왔지?..하고
산장까지 얼마나 남았나?..하는 생각 뿐이었다..
중간 중간 만나는 절경은 역시 산에서만 볼 수있는 기쁨
서두르진 않았다
경치가 좋은 곳에서는 혼자 두고 온 아내가 미안해서 영상 통화로 사진을 중계해주었다..한 30분 정도?..
추석에 혼자 집지키는 철없는 아내가 좋아한다
" 이상 해발 1700미터 지리산 쌍봉에서 장모 기자였습니다..." 박수 짝짝...
아내는 그 중계만으로도 방에서 좋다 하고 나는 산을 빙 둘러가며 또 뛰어가며 구석 구석 내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며 영상을 전송해주었다..
그리고 세석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6시..
힘겹게 산장을 올라가니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 사람들이 앉아 술도 먹고 밥도 먹는다..
배는 아까부터 고팠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항상 그렇지만 밖에 나가면 가장 쉬운게 라면 끓여서 국물에다 밥을 말아 먹는 거다
그러나 나는 언제 내려갈지도 기약없이 산에 올라왔기에 체력을 지키려고 조금 늦어도 밥을 해서 먹기로 했다.
산에서는 밥이 잘 안된다..짐을 줄이느라 코펠을 작은 것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물이 넘치는 바람에 밥이 설익었다
뚜껑에 돌을 올려 놓고 밥을 짓고 또 그 불에 김치찌개를 끓였다..
밥을 먹던 사람들이 내가 밥 짓는 것을 보더니
혼자 왔으면 이리 와서 같이 먹자고 한다
냉큼 가보니 추석 명절을 산에서 보내려고 명절 음식을 한가득 싸온 것이 아닌가?.
송편에 가자미 부침에 각종 나물..와!...군침이 돈다..
오늘 저녁에 내려간단다
그래서 다 비우고 가야한단다
내 반찬통에 다 덜었다
반 토막 남은 가자미 부침에
젓갈을 듬뿍 넣고 제대로 담근 전라도식 김장 김치에 워메 맛있는 거..
경상도 아저씨가 싸오신 매콤하고 바삭하던 그 맛있는 멸치 볶음까지도..
배 터지게 밥을 먹고 나니 약 3일분의 반찬이 늘었다
밥먹을 때 칠순으로 보이는 어떤 노인이 나보고 벽소령에서 여기까지 몇 시간 걸렸냐고 하길래 8시간 걸렸다고 했더니 자기는 세시간만에 올라왔다고 하면서 종아리를 걷어서 보여주시며 하시는 말씀이 자기와 연배가 비슷한 것같은데 뭐 그렇게 오래 걸렸냐고해서 충격
자꾸 그러면 우리 마누라한테 일를꺼야...
# 6
홀연한 원효대사와 동급의 깨달음
그런데
아까부터 마음 한 쪽에서 싸~~..하고 아린 구석이 있었다
이젠 내게 커피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
물론 산장 매점에서 믹스 커피는 판다
그러나 그것은 집에도 많다
그 전에 아내가 먹던 것..
버리기도 아까와 냉장고에 둔 열댓봉지가...
지리산까지 와서 내가 원두에 대한 정절을 버리고 저런 것을 사서 마실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불쑥 아쉬운 듯 눈을 돌린 배낭 안에 집에서 짐을 쌀 때 던져두었던 G7 커피 한봉지가 있는 것이 생각났다
내가 그걸 왜 넣었었지?..
하면서 그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찾았다
혹시나 무엇에 눌려 터져버리지는 않았을까?..
혹시 짐 넣고 빼고 넣고 빼고 하다가 어디 흘린 것은 아닐까?..하는 조바심으로....
전에 킨덱스 커피 식품박람회에서 베트남 커피 업체 부스에서 하나 가져와본 것인데 방구석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고 하다가 산에 가면서 내가 원두 커피 마실 때 누군가가 옆에서 침 흘리면 던져주려고 하나 넣어둔 것이었다
지금 배 고픈데 찬밥 더운밥 가리겠나?.
다행히 그 커피는 배낭에 터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g -7 이 무슨 정상회담 이름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그 맛은 달달하고 밋밋하여 동서나 별 다르지 않을 것이란 예상을 하며 그냥 이것으로 아쉬우나마 앞으로 몇일 동안은 커피와의 작별식을 성대하게 치르려고 마음 먹고 코펠에 물을 끓였다.
그런데 왠지 물을 끓이고 타고 하는 것이 어색하고 낯섫어 그냥 물이 끓을 때 커피를 뜯어 분말을 털어 넣었다..다행히 우리나라 d커피보다 양이 많은듯했다..잠시 더 끓인 후 가지고 간 작은 등산용 빨간 컵에 따라 훅훅 불어가며 한 모금을 마셨다.
시간은 저녁 7시 세석산장 남쪽으로 계곡비탈길이 쭉 내리 뻗고 그 경치는 벽소령과는 또 다른 장엄한 분위기였다
눈물이 났다
정말이다..
믹스 커피가 이런 맛이 나다니?..
너무나 맛이 있었다..
아니 내가 달달한 커피를 이렇게 좋아했단 말이야?..
그날 이후 다시 사서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날 마신 베트남 커피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고 절실했고 황홀한 커피였다고 고백한다..
첫댓글 너무나 맛깔나는 지리산 산행기를 읽어면서 왠지 상어의눈님이 끓이는 커피또한 참으로 맛날것 같다는...ㅎㅎ
저도 2년전 지리산 종주 했을때가 새록새록 뜨오르네요.
작년 무리하게 영남알프스 9산종주후 장경인대염으로 지금은 뒷산 오르기도 벅찬 신세가 되었지만요ㅠㅠ
글보면서 당장이라도 지리산으로 가고 싶어집니다^^
ㅎㅎ 저도 그 때 산에 갔다와서 한달간 고생했습니다...사진도 올렸습니다..다시 보세요..
지리산 종주의 백미는 태극종주~~90여km발바닥 땀나게 걸어줘야되는..산행이 아닌 고행인...
늘 그리운 지리산...
지리산 산행의 흑미는
취사장 앵벌이 그리고 퍼주기
@상어의 눈 그쵸??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술 퍼마시다 다 떨어지면 산꾼들이 묻어둔 술 파다 마시다
두어시간 눈 붙이고 달려도 피곤치 않던...그러나 이젠 꿈이나 꿔야 될~~ㅠ
@웅자 뭔 이제 오십 고개도 못 넘은 청춘이.... 나는 백암산 백양사에서 새벽에 시작해 얕으막한 숲길을 지나 내장산 8봉을 지난게 가장 기억이... 언제 한번 같이가요 살살~~
헐~~90키로...
난 무박으로 34키로 뛰다가 무릎인대 아작났는뎅~ㅠㅠ
대단혀요 웅자님ㅎㅎ
제 기억속에 잊지못할 커피맛도 지리산이네요..
88년도던가? 날짜도 생생한 8월 15일 천왕봉에서 일출을 기다리는데 왜 그리 춥던지...당시는 취사가 가능하던 시기라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커피를 끓였더니 여기저기서 한모금 마시자는 요청에 코펠째 돌려 마시기 했던 기억이 나네요..
라면 끓여 먹으려고 들고 온 물이 바닥 나서 배 고팠던...
사진들이 주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네요
거기에 상어의 눈님의 시각의 미학이 보태져 마치 한 편의 다큐를 읽는 듯 합니다
커피에 대한 갈증을 늘 느껴오는 저인데 커피 한 잔이 더욱 생각나네요^^
오셔
회원분중에 산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우연인지 아니면 달림씨 사랑하는 맘과 산을 사랑하는 맘은 통하는 것인지.
아무튼 좋습니다.
여백의 미학님! 여의도카페에서 커피 번개 한번~~~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몇년전에 다녀온 지리산을 다시금 떠올려봅니다 초보여서 나로 인해 함께 같이 한 칭구들이게 부담이나 되지 않을까하는 맘때문에 그저 앞으로만 전진을 하여 무엇을 보고 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ㅎㅎ하지만 벽소령의 안개와 연하천에서 벽소령까지 가는 길 금방 닿을 듯하면서 끝없이 계속 되었던 길이 떠오르네요.ㅎㅎ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벽소령까지 가는 길이 멀긴 멀었지요..ㅎㅎ
@상어의 눈 연소천에서 쉬다 떠나셨는데도 길다 느끼셨는데 전 새벽에 성삼재에서 시작했으니 초보가 얼마나 죽을 맛이었겠어요? ㅎㅎㅎ 성삼재가 맞나도 모르겠네요.. 여하튼 산은 좋아요 초보이지만..
@서들 성삼재는 맞는데 연소천이 아니라 연하천이네요..^^
@웅자 ㅋㅋㅋ 맞어여 연하천 ㅎㅎ 위에는 제대로 쓰고 밑에는..웅자님 사진 보니 알수있겠든데요 삼월 일일 저도 갔었거든요..
@웅자 지리산에 아름다운 웅녀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죠......백년 묵은 더덕주만 마신다는..
@서들 앞으론 알은체 하기에요..^^
상어의 눈님 지리산을 탈출한 곰이거든요? 사람들한테 쓸개도 다 털리고..어찌 산삼이라도 캐 먹겠다고 나섰다가 다리도 부리지고...사는게 참 얼척없는.ㅋㅋ
@웅자 사실 달림님에 대해 그저 몇곡 몇년전부터 좋아한것 뿐이니 조금은 쑥쓰럽드라고요 잘 알지도 못하고.. 하지만 좋아하고 궁금하니 갔었겠죠?
@웅자 산신령이 숨겨놓은 산삼 훔쳐먹다가..ㅋㅋ
글을 너무 맛깔스럽게 쓰셔서 읽다가 혼자 한참 큰 소리로 웃었어요~^^
숨가쁘네요.. 양말도 축축한것 같고..
지리산 산행 동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라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힘든 산을 극복하셨으니 댁에 있는 믹스 커피라도 한잔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