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한 한국의 경찰, 검찰, 그리고 법원> - 7(법원편)
(사진은 출국하는 기내에서. 공항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저는 서울서 부터 타고 온 법무부 차량에 실려 직접 활주로를 달려 비행기가 정착해 있는 출입구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남편과 재회를 했습니다. 탑승 후 우리 부부는 법무부 직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습니다. 끝까지 우리의 안전을 걱정해 주고 따뜻하게 배웅해 준 대한민국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이글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 부부는 탑승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텅 빈 기내로 안내되었으며 자리에 앉으니 승무원이 신문을 가져왔습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진절머리가 난 저는 <한겨레> 신문을 집어 펼쳤습니다. 출국하기 며칠 전, 이 신문사의 허재현 기자와 나눈 인터뷰가 전면에 올라 있었습니다. 기사를 읽고 있자니 지난 두달간의 악몽이 되살아나서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일반적으로, 기자의 질문을 들으면 그 기자의 수준을 알 수가 있는데, 허재현 기자는 손으로 꼽을 수 있는 몇 안되는 훌륭한 기자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미국으로 돌아온 저는 ‘강제출국 및 입국금지’ 처분에 대해 한국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모든 소송은 변호인단이 대신 했고, 미국에 있는 저는 간혹 언론을 통해 진행 소식을 듣고 있었습니다.
당시 제 강연(박근혜 씨의 표현에 따르면 ‘종북콘서트’)과 관련해 두 건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제가 제기한 행정소송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제 강연의 사회자였던 황 선 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재판이었습니다.
황 선(Sun Hwang) 씨는 무려 50개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으며, 그 중 하나가 제 강연(‘통일토크콘서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저의 1심 판사는 ‘황 선 씨의 1심 판결이 본 행정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황 선 씨의 1심 판결이 나올 때 까지 재판을 연기한다’고 했습니다.
마침내 황 선 씨의 1심 판결이 나왔는데 50개 혐의 중 제 강연(‘통일토크콘서트’)을 포함 49개의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후일 2심에서 50개 혐의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으며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됨.)
제 강연이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으니 저는 제 행정소송에서 당연히 승소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패소였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또 ‘코미디’였습니다.
판결문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신은미 씨는 SNS 등을 통해 활발히 자기 의견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으니 구태여 한국에 올 이유가 없다. 그러니 강제출국 및 입국금지를 취소하지 않아도 된다.’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SNS를 통해 의견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으니 오지 않아도 된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판결 내용입니다. (내가 강제출국을 당하고 입국금지된 이유가 내 강연의 국가보안법 위반 때문이었는데, 강연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는 판결이 났으면 당연히 내가 승소해야 되는 거 아닌가? 후일 이 판결이 법조인들이 뽑은 그 해 최악의 판결이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음.)
국가보안법 자체가 ‘코미디’이니, ‘대동강맥주가 맛있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검경의 조사도, 법원의 판결도, 모두 ‘코미디’였습니다.
저는 2심에서도 패소했습니다. 판결은 ‘국가보안법을 위반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한국의 공공질서와 안전을 해칠 위험이 있다’는, 대략 이런 이유에서 였습니다. 한 마디로 ‘술은 마시지 않았으나 음주운전은 맞다’는 판결이었습니다.
2심의 판사는 이동원이라는 분이었는데 후일 대법관에 지원하며 과거 경력 중 꼽을만한 판결로 제 소송판결을 ‘자랑스럽게’ 첫 단 위에 올려 놓았더군요. 그리고 대법관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지, 거의 7년이 다 된 2021년 10월, 한국 헌법재판소는 저에 대한 검찰의 처분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제까지 한국의 검찰이나 법원으로 부터 그 어떤 사과 한 마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끝으로 올바른 판단을 해 준 헌법재판소 그리고 무료 변호를 자청해 주신 심재환 변호사님, 김종귀 변호사님을 비롯한 변호인단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무료 변호를 제안해 주셨던 박주민 변호사(의원)님께도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까지 긴 글을 읽어주신 페친님들, 팔로워님들, 그리고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요즘 검찰개혁이 화두가 되니 과거 제 경험이 떠올라 연재로 올려 보았습니다. 이제 다시 저는 북한 기행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4월 30일 ·
<내가 경험한 한국의 경찰, 검찰, 그리고 법원> - 6(검경편 후기)
(이전의 긴 글들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회는 이 사건과 관련해 검경의 조사를 경험하며 느낀 후기입니다. 사진은 강제출국 시 공항의 기자회견 장소로 들어서며)
결국 저는 언론이 ‘예언(?)’한 대로 한국 국내법(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5년간 입국금지와 함께 강제출국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제게 여러 의문을 남겼습니다.
첫째, 저는 2014년 겨울 이전에도 고국으로 부터 초청을 받고 수십차례 똑 같은 내용의 강연을 한 적이 있으며, 이전 글들에서 언급했다시피 박근혜의 한국정부는 저의 책을 우수문학도서로 선정해 전국의 공공 도서관에 비치했고 통일부는 저를 출연시켜 다큐까지 제작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단순히 <TV 조선>과 <조선일보>의 가짜뉴스에 ‘속아’ 검경이 조사에 나선 걸까?
후일,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고 김영한 비서관의 비망록을 언론보도를 통해 접한 적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통일토크콘서트’를 종북몰이에 이용하라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제 강연을 ‘종북콘서트’라고 칭하며 우려를 표한다는 뉴스도 보았습니다. 유명인도 아닌, 한낱 해외동포 아줌마의 강연이 일국의 대통령이 언급할 정도로 그렇게 중요한 국사였을까? 제 변호인단은 이를 일종의 ‘수사 가이드라인”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대통령이 검경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제게 이렇게 알려 주었습니다. 당시 큰 이슈가 되고 있던 ‘통합진보당 해산’ 그리고 ‘청와대 십상시 문건’ 사건을 ‘물타기(?)’하는 거라고. ‘통합진보당을 왜 해산하려는지’, ‘청와대 십상시 문건’이 뭔지 전혀 모르는 저는 그저 왜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잘 모릅니다. (어쨌든 통합진보당은 2014년 12월 19일 해산됐고 저는 약 2주 후 ‘형식적인(?)’ 검찰조사를 끝으로 강제출국을 당했습니다.)
둘째, 아무런 ‘빽’도 없는 제게 경찰 간부가 집에서 키웠다는 과일을 대접하고, 부장검사는 자신이 제일 아낀다는 차를 대접하는 등 경찰과 검찰은 상당히 친절했습니다. 고국이 민주화가 되어 그 무시무시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에게도 이런 친절을 베푼다고 당시 저는 생각했습니다.
한편,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시키는 일이니 할 수 없이 하고 있는 경찰과 검찰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 제게 일말의 동정심이 있어 친절을 베푼 걸까? 제가 그런 생각을 했던건 검사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검사는 제게 “신 선생님, 언제까지 이러고 계실 겁니까.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으시렵니까? 어서 ‘무리를 일으켜 미안하다’는 유감표명을 하시고 미국으로 가세요”라고 제안했을 때, 제가 이를 단호히 거절하자 검사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신 선생님, 제 위에 총장있고 그 위에 또 있습니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대체 그 ‘위’는 무엇인가, 누구인가? 위에 언급한 청와대 김기춘? 박근혜? (아니면 최순실?)
그리고 제가 강제출국을 당한 후 조사를 받고 구속된, 강연 당시 사회를 보던 황 선 씨에게 검사는 “이게 이렇게 까지 할 일은 아닌데 ‘황(당시 법무부 장관)’이 시켜서 할 수 없이 한다”는 식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정황이 이러하니 검경이 동정심을 갖고 제게 친절을 베풀지 않았나 생각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회를 본 황 선 씨에게는 구속을 시키는 등 왜 그리 가혹했을까? 여전히 의문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끝으로, “대동강맥주가 맛있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검경의 조사는 한마디로 ‘슬픈 코미디’였습니다. 국가보안법 자체가 코미디이니 관련 조사도 코미디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만일 페친님들께서 검경이 죄를 추궁하며 “ ‘참이슬’ 소주가 맛있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면 어떤 느낌이 들으실까요?
제가 검찰에 출두할 때 저는 경찰에 비해 조사가 훨씬 짧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검사가 경찰에서의 수사기록을 놓고 ‘이 진술이 본인이 한 것이 맞는지, 경찰에서 진술을 강요받거나 위압은 없었는지’ 등을 묻는 사실확인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검찰은 법률적 검토를 마치고 기소여부를 결정하리라고.
그러나 경찰조서에서 혐의점을 못찾아서 인지 검찰은 생각지도 못했던 자료들을 가져와서는 어떻게든 죄를 짜맞추고자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럴 거면 경찰수사는 왜 했는지? 만일 제가 사는 나라에서 검사가 수사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관여한다면, 평범한 시민들로 이루어진 배심원단이 검사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의심하게 되어 모름지기 쉽게 유죄평결을 받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더욱이 만일 검사가 출세욕(?)이 강해 District Attorney(지검장?)이라도 되고 싶으면 더더욱 수사를 피하고 객관성과 공정성과 중립성을 지키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District Attorney는 주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입니다.
4월 29일 ·
<내가 경험한 한국의 경찰, 검찰, 그리고 법원> - 5(검찰편)
(4회에 이어)
(사진은 검찰청에 출두하며)
[‘우울한' 새해, 2015년이 밝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잡혀있어야 한단 말인가. 나도 개인적인 생활이란 게 있는 사람이고, 집에 아이들이 있고 살림을 하는 주부다. 문득, 어서 빨리 나를 재판에 회부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법정에 서서 사실을 명명백백히 밝히고,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단을 받고 싶다.
그리고 출국정지가 해제돼 집에 돌아가 엄마를 걱정하면서 기다리고 있을, 사랑하는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텔레비전을 켰다. 여전히 나에 대한 '중계방송'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나를 검찰에 송치할 것이며, 검찰은 기소유예 후 강제출국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기소(indict)' '불기소(dismiss)'는 알겠는데 '기소유예'는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그나저나 아직 검찰에 송치도 안 됐는데 언론은 '기소유예 후 강제출국 시킬 것'이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는지…. 한국 언론은 검·경의 속내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나?
언론이 보도한 대로 나는 검찰의 소환을 받고 2015년 1월 7일 출두했다. 내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나타나자 건물 앞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마이크를 들이민다. 나는 기자들에게 마음에 있는 말을 모두 토해내고 청사로 들어섰다. (이때 검사는 내게 ‘위(?)에서 보면 안좋으니 인터뷰에 응하지 말라’는 조언을 했고 나는 한쪽 귀로 듣고 흘려 버렸다.)
검찰청 조사실에는 속기사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검사 두 사람이 교대로 질문을 하고 밖에서는 부장검사라는 분이 지휘를 하고 있는 듯했다. 경찰에게 받았던 질문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한심한' 질문들을 반복해서 듣는다. 강연 그리고 책과 연재 기사에 나오는 '대동강 맥주' '휴대전화' '북한의 강물' 등등. 참다못한 나는 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지금 언론의 허위·왜곡 보도 때문에 이 자리에 오게 됐는데 검사님 역시 똑같이 왜곡된 질문을 하시니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실망이고 당황스럽네요. 훌륭하신 분들께서 죄를 캐내시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하시네요. 정말 애쓰십니다."
이번엔 내가 강연장에서 부른 <심장에 남는 사람>이라는 북한 노래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아느냐" "지도자를 찬양하는 이런 노래의 배경 정도는 알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 "심장에 남는 이가…" 검사는 숨도 안 쉬고 장황하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검사에게 "이 노래는 한국의 많은 가수들도 부르고, 또 음반에 수록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미국에 돌아와 알아본 결과 이 노래는 영화의 주제가로, 영화의 내용은 한 여기자가 취재를 가서 만난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그리고 ‘심장에 남는 사람’이란 그 여기자가 사랑하게 된 남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 진작에 알았더라면 보기 좋게 그 검사의 말을 반박했을 텐데…)
그랬더니 돌아온 검사의 대답, 시쳇말로 '돌아버릴' 지경이다.
"같은 노래라도 듣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다시 말해 '관객의 질에 따라 노래의 질이 달라진다'는 분석이다. 세상에 그렇게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합격한 수재들이 음악에 대해서는 이처럼 무지할 수 있을까.
나는 되레 그 반대라고 설명해줬다. 노래나 연주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라, 연주자가 곡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감정과 기법으로 연주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덧붙여 "강연장(토크 콘서트)을 찾은 사람들 중에는 어린아이도 있고, 학생들도 있고, 가정주부도 있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는데 검사께서는 그들을 모두 '빨갱이'로 몰아가고 싶으신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검사의 논리에 따르면 예전 평양에 방문해 '원조 빨갱이들' 앞에서 공연한 한국 가수들의 한국 노래는 모두 '이적 노래'가 되고 만다.
검찰은 경찰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것이라는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비록 경찰이 '질긴놈'이라는 아이디로 소환장을 보냈다 할지라도 수사 수준은 검찰보다 나은 듯했다. 적어도 경찰은 "노래란 듣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무지한 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내 경험에 비춰 보니, 검찰이 갖고 있는 수사권을 경찰에 줘도 별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검사는 내게 "왜 북한의 인권문제라든가 또는 3대 세습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냐"라고 물었다. 나는 검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검사님은 외국 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인권문제 같은 걸 알아보러 다니시나요? 저는 북한 문제 전문가나 학자로 북한을 연구하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관광하러 간 거예요. 외국 관광객들이 한국에 와서 쪽방촌을 찾아다니고, 감옥이나 구경하고, 집회 장소에 찾아가 인권 유린 문제를 파악하고 다니나요?" 검사는 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어 검사는 '신은미씨가 종북인사 황 선(Sun Hwang)씨에게 이용당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즉, '당신의 의도는 그게 아닌데 황선씨에게 이용당했으니, 이를 인정하라'는 것 같다. 나는 단호히 반박했다.
"만일 주최 측이나 황선씨가 내게 어떤 특정한 발언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거나, 그래서 내가 그들이 부탁한 발언을 그대로 했다면 그들에게 이용당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게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없어요. 나는 그들과 청중에게 북한에 대한 나의 관찰 내용과 내가 보고 느낀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그러자 검사는 "신은미씨는 북한에 이용당하고 있다, 게다가 신은미씨 스스로가 그 빌미를 제공한 것이 된다"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 사건을 북한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검사에게 "북한에 빌미를 제공한 것은 내가 아니라 한국의 언론의 가짜뉴스가 아니냐"라고 답했다.
나아가 나는 검사에게 "나를 이용한 것은 황선도 아니요, 북한도 아니다, 정작 나를 이용한 것은 한국 정부다"라고 말했다.
"한때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제 책을 우수문학도서로 선정해 전국 공공도서관에 비치했지요. 게다가 통일부는 나를 다큐멘터리에 출연시켰고요. 통일 홍보 목적으로요. 그러더니 이제는 언론을 동원해 절 '종북몰이' 하고 있잖아요. 나를 기소하려면, 문체부와 통일부도 함께 기소하셔야죠."
검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국에 와서 '종북몰이'를 당하면서 검·경 수사를 받고 있자니 내 책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생각난다. 내가 기행문에서 언급했듯이, 사실 북한도 내 기행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나는 기행문에서 북한 김일성 주석과 남한 박정희 대통령을 함께 거론했다.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 궁전을 방문했을 때, 그곳을 찾은 북한 주민들의 표정 속에서 나는 그들이 김일성 주석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일성 주석의 서거 당시 북한 주민들의 오열을 거짓으로만 생각했던 나는 그들의 슬픔이 진실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책에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많은 국민들이 통곡하지 않았던가"라면서 북한 주민들의 오열도 사실일 것이라고 써놨다. 바로 이 부분이 문제가 됐다. "어떻게 김일성 주석을 일본군 장교로 독립군을 토벌하던 박정희 대통령과 비교할 수가 있느냐"라는 반응이 나왔다.
솔직히 이는 북한의 관점에서 볼 때 큰 '불경'을 저지른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유신시대 당시 남한에서도 어떤 여성 통일운동가가 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을 비교했다고 해서 징역살이를 하지 않았는가.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책 속에서 북한을 "가난한 나라"라고 묘사했기 때문이다. 나는 책의 서문과 본문에 "내게 북한은 어떤 나라냐고 물으면 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나라'라고 답하곤 한다"라고 써놨다. 이것이 문제가 됐다. "북의 인민들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왜 당신은 가난하다고 평가하느냐"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내가 수양딸 설경이의 집 방문을 부탁하려고 북한 '해외동포위원회' 부국장이라는 분을 만났을 때 그는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를 지적했다. 그러나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가운데 지나가는 이야기로 할 정도였다. "신 선생이 남쪽에서 태어나 자랐고, 또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으니 이해한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지금 내가 검·경의 수사를 받으면서 이 난리를 겪고 있자니, 대체 한국은 정말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맞긴 한 건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검사는 내게 "'물의를 일으켜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겠냐"라고 물었다. 내가 거부하자 이번에는 조금 수위를 낮춰 "'물의를 일으켜 유감이다'고 표명할 수 있지 않겠냐"라고 재차 묻는다. 나는 거꾸로 "언론의 허위·왜곡 보도로 내가 이런 곤란을 겪었으니 참으로 유감입니다"라고 맞받아쳤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언론의 허위·왜곡 보도와 마녀사냥식 '종북몰이'로 엄청난 고통을 입었고, 사제 폭발물 테러로 생명까지 잃을 뻔한 피해자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라니…. 이 나라에 정의라는 게 있긴 한 걸까.
검사는 마지막으로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했다. 나는 검사에게 "혹시 시간이 나시면 제 책을 한 번 읽어보시라"고 부탁했다. 시간이 없다면 서문만이라도. 죄를 캐내기 위해 읽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봐달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꼭 한 번 북한을 방문해보시라"면서 "그러면 제가 책을 통해 무슨 말을 한 건지 이해가 되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장검사라는 분은 내게 "신 선생님이 의도한 것과는 달리, 사람에게는 이따금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라면서 "모국에서 있었던 일은 훌훌 털어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가시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리고 나와 장시간 사투를 벌이며 조사를 벌였던 한 검사는 내게 "혹시 미국에 가게 되면 신 선생님 댁을 방문해도 좋습니까? LA 갈비라도 구워주실래요?"라고 농담도 던졌다.
이 검사 농담이 사뭇 미국 스타일이다. 훌륭한 농담이며 여담이다. 검사와 무고한 시민과의 관계는 이래야 한다. 나는 "그럼요, 언제든지 오세요"라고 답례했다. 그리곤 마음속으로 '꼭 오시라, 정원에서 멋진 파티를 열어 드리겠다'라고 속삭였다.
장시간 조사를 마치고 속기록을 점검하는 시간. 경찰조사 때보다 속기록 두께가 훨씬 더 두꺼워 보인다. 이 과정 역시 몇 시간 소요됐다. 나는 오전 3시가 넘어서야 검찰청을 떠날 수 있었다.
나는 검사들이 비합리적으로 비이성적이라서 조사 중에 그런 '한심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들 역시 경찰과 마찬가지로 국가보안법에 의거해 위반사항을 캐내는, 그저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조사를 받는 동안 부장검사는 제일 아낀다는 차를 대접해주기도 하고, 수시로 다과를 내다줬다. 특히 내 건강을 세심히 살펴준 검사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남과 북의 오작교가 되어>(2016, 도서출판 말, 99~108쪽))
4월 28일 ·
<내가 경험한 한국의 경찰, 검찰, 그리고 법원> - 4(경찰편 마지막)
경찰편 마지막 회입니다. 5회 부터는 검찰 및 법원편입니다.
(3회에 이어)
(사진은 2013년 8월 통일부에서 다큐 동영상을 촬영하며)
[책과 <오마이뉴스> 연재 기사에서 북한을 고무·찬양한 혐의를 찾지 못한 경찰은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수 없겠다는 판단을 했는지 이번엔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를 밝히기 위한 조사에 돌입했다.
수사관은 내게 "통일콘서트가 어떤 행사인지 다음 중 하나를 골라주십시오. 정치, 경제, 예술, 문화"라고 물었다. 나는 "문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수사관은 내 대답을 무시하고 '외국인이 무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통일 토크콘서트 같은 정치활동을 했으니, 이는 출입국관리법 위반인 동시에 강제 추방 사유가 된다'고 말했다. 수사관의 말 한마디에 문화 행사가 '정치 활동'으로 둔갑해버리는 순간이었다.
지난 2014년1월, 한 무리의 미국인들이 한국에 입국해 대북 전단을 날렸다. 이 미국인들이야말로 여차하면 남북 간에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정치 활동을 한 것이다. 요즘 수많은 외국인들은 나처럼 무비자로 입국을 하는데, 그 미국인들은 도대체 무슨 비자를 받고 한국에 입국했길래 그런 대담하고 위험한 정치적 활동을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통일부는 "강제로 규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왜 이들에게는 '정치 활동'의 낙인이 찍히지 않았는지 법무부는 밝혀주기 바란다.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에 관련한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이번에는 '외국인이 무비자로 들어와 강연 활동을 하고 강연료를 받았으니 불법 취업'이란다. 나는 전국 순회 통일 토크 콘서트의 주최 측으로부터 강연료를 받지 않았다. 막상 한국에 와서 주최 측 사람들을 보니 형편이 너무나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돈마저 털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모국 방문 중에 2곳으로부터 강연료를 받았다. 한 곳은 서울의 한 자치단체였으며 또 다른 한 곳은 내가 신앙간증을 한 교회였다. 돈을 받았으니 이는 입국 목적에 위배되며 출입국관리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외국인이 다른 나라로 여행 오면서 한 번쯤 여행국의 출입국관리법을 읽어보고 와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말까지 했다. 내 대답은 이랬다.
"전 세계 수백만 해외동포들이 모국을 방문하면서 외국인이 관광을 오는 것 같은 기분으로 한국에 방문하진 않을 것입니다. 마치 내 집에 오는 기분으로 입국을 하겠죠. 저도 그런 마음으로 입국했습니다. 하여간 좋습니다. 선생님(수사관)께서는 외국여행 갈 때 여행가는 나라의 출입국관리법에 관한 준수사항을 일일이 읽으시는지요?"
수사관은 이에 대해서도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내가 두 군데서 강연료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이것이 불법이라면 출입국관리법 위반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처벌도 달게 받겠다. 그러나 내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강연료를 받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다.
2013년 8월 대한민국 통일부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했을 당시 나는 통일부가 주는 출연료를 받았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외국인을 불법으로 고용한 게 되는 걸까. 경찰은 똑같은 혐의로 통일부도 수사해야 하는 게 아닐까. 통일부가 외국인에게 주는 출연료는 합법이고, 교회나 자치단체가 주는 강연료는 불법이란 말인가.
나는 출입국관리법 위반에 관한 조사를 받으면서 얼마 뒤 강제추방될 것을 직감했다. 강연 내용과 책을 아무리 살펴봐도 '종북 혐의'를 찾을 수 없었지만, 대통령(박근혜)마저 '종북 콘서트'라 지칭한 상황 아니겠는가. 그냥 내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강제추방의 구실을 찾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계속되는 수사관의 질문은 미국 내 강연활동과 지인에 관한 것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라와 있는 미국 내 강연 동영상이나 기사를 놓고 '고무 및 찬양' 혐의를 찾아내려는 게다. 미국 내 강연이라 해봐야 한국에서 했던 강연들과 다를 게 없는데도 말이다.
내가 한국에서 한 활동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삶까지 조사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한국 정부는 외국인의 본국 내 활동까지도 수사한다는 말인가. 명백한 불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수사관에게 "조금 전에 제게 '왜 외국인이 한국에 입국해 입국 목적에 위배되는 일을 했냐'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외국인인 내가 본국 내에서 무슨 활동을 했는지는 왜 문제 삼나"라고 응수했다.
아무런 대꾸없이 수사관은 내가 미국 내 소위 '종북 인사'라 불리는 사람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펼쳐놓고 나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추궁했다. 그 사람은 내게 '칠순 잔치와 출판기념회에 참석해달라'고 물었고, 나는 이메일에 '사정상 참석하지 못한다'라고 답했다.
수사관은 내가 메일에서 그 사람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했으니 가까운 사이가 아니냐고 물었다. 나도 수사관을 '선생님'이라 호칭했는데, 그렇다면 내가 수사관이랑 가까운 사이라는 말인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라는 말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일부 언론은 이러한 수사 내용을 어떻게 알았는지 곧바로 방송을 내보냈다. 그리곤 나와 '종북 인사'라는 그분과의 관계를 두고 허위보도를 일삼았다. 이를 본 한 외신 기자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무슨 메일을 사용하시는지요?"
"미국 야후 계정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경찰이 이메일 내용을 알 수 있었을까요?"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그 외신 기자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어떻게 메일의 내용을 알 수 있었냐'고 물었다. 경찰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알아냈으며, 더 이상 말해줄 수 없다'고 답했다 한다.
당시 나는 한국 경찰의 이메일 해킹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던 것 같다. 후일 미국에 돌아와 들은 바에 의하면, 내가 '종북 인사'라는 그분께 보낸 메일을 그분이 자신이 운영하는 누리집에 올려놨다고 한다. 아마 경찰은 그 누리집에 올라와 있는 메일을 채집했으리라.
여하튼, '선생님'이라는 호칭도 잘못 쓰면 고초를 당할 수 있다는 교훈을 국가보안법 수사를 통해 터득하게 된 것 같다. 이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일 게다.
조사가 끝나고 녹취록을 점검하는 시간인 것으로 기억한다. 수사관이 "오늘도 일일이 다 고치실 거죠?"라고 말하며 연필 한 뭉치와 지우개를 가져다 준다. 또 다른 수사관은 나를 두고 대답을 잘한다면서 "선생님 이런 조사 처음인 것 맞아요?"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수사관의 농담에 미소를 보였으나 나는 씁쓸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한평생 경찰 조사는커녕 교통 순경과 이야기를 나눈 기억조차 없다.
돌이켜보니, 세 차례에 걸쳐 총 수십 시간에 이르는 밤샘 조사를 받는 동안 경찰 역시 참 수고가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대한민국 엘리트 경찰인 그들이 '대동강 맥주가 맛있다고 했는데, 북녘에 흐르는 강물이 깨끗하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따위의 우둔하고 수준 낮은 질문을 할만큼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질문을 하는 직업일 뿐인 것이고, 그들은 그들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했을 뿐일 것이다. 이 생각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내가 조사를 받는 동안 수시로 차를 대접하고, 집에서 손수 키웠다는 과일을 가져다 주는 등 많은 친절을 베풀어준, 예우를 갖춰 대해준 수사관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수사가 진행 중인 중간 중간에 "통일 토크콘서트에서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발언은 없었다" "신은미씨가 '소환에 불응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등의 사실을 언론에 확인시켜준 경찰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 (<남과 북의 오작교가 되어>(2016, 도서출판 말, 83~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