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벗들!
연일 계속되는 장마비로 누군 급히 계획을 수정해야할 것이고, 또 누군 날씨만큼이나 우중충한 기분에 젖어 있을 수도 있겠고, 아직 소녀적 감성이 풍부한 어떤 친구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상쾌함을 느끼기도 하겠지, 아! 또 있구만, 지금이야말로 시심이 발동하기엔 좋은 조건이고 따라서 무언가 작품을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겠지.
이런 여러 상황을 간파한 내가 예서 그냥 넘어갈 수 없지. 현실의 복잡한 상황에서 한발 비껴나 시계바늘을 한 20여년 전으로 돌려봄이 어떨까 ?
쇠망치를 든 선생님(?)
아마 천하의 이기응선생님에 대한 이런저런 기억의 한자락씩은 모다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다만, 기억의 내용에 따라선 참으로 상반된 기분이 들기도 할 것은 당연할 것이고,
중학교 1학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인 추운 겨울, 우린 화제로 상동중고에선 제법 고풍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던 건물동이 하룻밤사이에 잿더미로 변하여 잃어버린 것을 애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음악시간이면 음악실로 가서 노래를 불렀던 기억도 있고, 이것저것 알지 못하는 기자재로 들어찬 방송실이 있드랬고, 그곳을 드나드는 선배들이 대단히 부럽기도 했었는데.......
그 건물에 교실을 두고 있었던 우린 졸지에 교실을 잃고, 예비고사가 끝나 텅빈 고3 선배들 교실(교무실 2층으로 기억된다)로 옮겨 1학년을 마쳤다.
어느날 쉬는 시간 예의 왁자지껄, 호떡집에 불난 지경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을 즈음, 느닥없이 들어선 말로만 듣던 이기응선생님, 그 소란한 분위기를 한순간에 뒤집어 업었고, 연이어 숨돌릴 틈도 주지않고, 모두 양말을 벗고 책상위에 발을 올려 놓을 것을 명하였으니, 좀 눈치가 둔한 나로서도 이미 무얼 위한 준비동작인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추운 겨울에 발을 매일 저녁 깨끗히 씻는 경우가 많았겠는가 ? 급한 나머지 늘 시꺼먼 발을 자랑하던 누구라고 하면 모두가 그의 유별난 행동으로 익히 알 수 있을 어떤 친구는 손바닥에 침을 묻혀 때를 지우느라 바빳드랬지.
이런 그런데 이를 어쩌리, 우리들의 이기응 선생님 손엔 앙증맞게 생긴 쇠망치 하나가 들려 있었고, 좀 더럽다 싶은 친구의 발등을 그 망치로 가격하였으니 엄동에 얼어있는 발을 가격당했으니 그 아픔이야 다시 말해 무었하겠는가 ?
천하의 이기응선생님과의 정면 대응은 이때가 처음이고 보니, 아마 지금도 그때를 쉬 잊지 않고 기억하는 듯 싶다.
중학교 2학년 우린 창고 교실에 살았다.
졸지에 건물동이 한동 없어졌으니, 새학기가 되자 부족한 교실로 인해 우린 창고로 사용중이던 곳을 교실로 사용하게 되었는바, 사실 중학교 시절에 대한 기억의 대부분(특히 지금도 친구들을 만나면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배꼽을 잡고 웃을 수 밖에 없는 기상천외한 기억들 - 특히 난 그 시절 우리들의 천하 악동 팅구리 김정열에 대한 거의 경외심이 들 정도의 행동들에 대한 많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곳에서 생산되었다.
그 당시 세계사를 담당하였던 이기응선생님이 기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도 당연하다.
사실 이기응선생님이 연출한 일들에 당하는 사람들이야 오죽하랴만, 그리고 대부분 한번쯤은 당해보기도 했지만 관객의 입장이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이를 즐겼으니 이런 이중심리가 있으랴?
한편 좀 고리타분한 수업에 비해 어떤 날은 대부분의 수업시간이 이기응선생님의 넘치는 장난끼로 채워지기도 했으나, 또 수업을 진행할 땐 참 열정적으로 강의를 했던 것이 인상적으로 남았고, 역사공부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는 계기도 되지 않았나 난 개인적으로 그리 생각한다.
정연호에 대한 기억
지난 연말 송년회에서 만나 인사를 하였더니 나는 너무도 그를 잘 기억하고 있건만 아쉽게도 그는 날 잘 알아보지 못했다.
사실 정연호가 시장모퉁이 어딘가, 혹은 아우라지 어딘가에 살았던 것외에 내가 기억하는 것은 당시 그 교실에서 함께했던 것이 전부이지 싶다. 헌데 근자에 그가 결코 쉽지않을 뿐만 아니라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은 묘하게 그 시절과 겹쳐지면서 거의 존경스러운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삐뚤"과 "코너 플레이"
이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행여 전혀 불손한 의도가 있지 않음을 당사자와 벗들이 넓게 이해해주길 바란다. 추억이란 좀 특이해야 머리에 입력이 되고 오래가는 것이고, 회상할 거리가 되는 것임에.....
다시 염려되어 사족을 달면, 아마 어린 시절의 모습과 지금이 너무도 동일하다면 굳이 이렇게 수고스럽게 추억이란 이름으로 벗들과 회상을 나누지는 않을 것이야, 김정열이 그랬고, 불과 5~6년 지났지만 느닥없이 내 곁에 등장했던 이태원이도 어릴 적 모습과 너무도 변한 현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으며, 세상을 온몸으로 헤쳐나온 그의 지난 삶에 고개가 숙여질 지경이었으니.....
당시 권투가 압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시절이어선가 이기응선생의 코너플레이는 너무도 유명하였던 바, 창고교실에 있었던 그들은 아마 모르긴 해도 한번쯤은 이를 다 당해보았으리라, 양쪽 볼을 양손으로 휘어잡고, 교실 구석 각진 모서리에 머리를 이쪽저쪽으로 부딪히며 "코너플에이"를 연발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유독 정연호를 기억하는 것은 그의 별명이 "삐뚤"(이것도 이기응 선생님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이었고, 그의 머리통이 좀 삐뚤어진 것에서 연유하는바 다른 친구들에 비해 그에 가해진 코너플레이가 유별나게 기억된다.
입이 큰 아이(?)
이기응선생님의 넘치는 장난끼는 참으로 많은 화제거리를 연출하였는데, 그 선생은 조금이라도 좀 이상하다 싶은 것은 곧바로 찾아내었고, 이를 활용하여 사건을 연출하였다.
아마 이도 그랬지 싶은데, 난 지난 연말 송년회에서도 정연호의 입을 유심히 관찰했었다. 그 당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자기 주먹을 쥐고 이를 입속에 넣을 수 있을까 ? 아마 지금은 모다 불가능할 것이야. 하지만 당시엔 가능한 친구들도 있었을 걸 ?
어느날 이기응선생님은 정연호를 불러세워 주먹을 쥐고 입에 넣을 것을 요구했는데, 아마 정연호는 기억할랑가 모르겠다만 아 손이 입으로 쑤욱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
그 뒤 몇몇 친구들은 이를 흉내내다가 입이 찢어지기도 했다나 어쨋다나.
사실 지난 연말 송년회에서 그때의 기억을 나누고 싶었지만 기회를 잡지못했다. 가까운 시일내에 그 생생한 기억으로 함께하고 싶다.
단언컨대 그저 얌전하고, 아무런 기억거릴 제공치 못한 친구라면, 이렇듯 추억을 나누진 못했지 않았을까 ? 나처럼 말이야. 난 내딴엔 꽤나 설치고 다녔고, 많은 친구들이 날 기억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연호가 날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