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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사람사는 이야기 충무공 가묘(假墓) 터, 고금도
단풍 추천 0 조회 272 11.07.28 10:25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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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7.29 14:38

    첫댓글 역사는 찬란합니다..공부 많이했습니다..읽으면서 다 알고있던건데 설명하라하면
    하나도 생각이 않나는 역사...즐감했습니다..^*^

  • 작성자 11.07.30 07:55

    막상 이순신장군에 대해 누가 물어오면 막연해서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풍전등화의 전란에 충무공의 펼친 기운은 세계 해전사의 한 페이지로
    역사가 되어 후학들에게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해전에서 이순신의 전법을 흉내내는 일은 다반사일 정도로
    지구 역사상 최고의 해전 전략가로 평가되고 있죠.

    부하들에게 싸우면 이긴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게 제일 중요했습니다.
    질 싸움을 하지 않는 거죠. 이길 위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기는 싸움만 했으니까요.
    그러니 조정에서 싸우라고 독려해서 싸울 수가 없었던 거죠.
    지는 싸움을 일부러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 11.07.28 15:07

    단풍님의 글은 언제나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것처럼 여러가지 정보와 역사가 녹아 들어 있습니다
    게다가 이해를 도와주는 다양한 사진까지 곁들여서...
    아산에 사는 저도 충무공의 탄생지가 아산인줄 알았습니다
    현충사 가는 입구의 은행나무숲이 좋아서 계절별로 숱하게 가는 현충사인데 설명을 건성으로 보고 다녀서 말이죠
    그러고보니 서울이 출생지였었다는걸 읽은 기억이 나네요 ㅋㅋㅋ 제가 이렇답니다

  • 작성자 11.07.30 07:59

    서울 인현동은 지금 인쇄골목입니다. 백병원에서 연결이 되는데,
    당시 유성룡과 어려서 같이 장난하며 자란 동네가 인현동이죠.
    많은 형제들과 놀다가 잘못한 일이 있어 아버지에게 회초리를 맞게 되었는데,
    형들은 징징 울고 짜고 했지만, 이순신만 독하게 눈깜짝하지 않고 회초리를 맞았다고 하죠.
    무과에 응시, 말에서 낙마 골절이 되었는데, 끝까지 골절을 숨기고 무과를 치른 일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의 초고령화 진입이라는 것에 걸맞게 현충사도 노쇠한 기운을 보이더군요.
    코드는 1970년대에 맞춰서 있어서, 2010년을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쇄락해 보이고
    퇴색해 보이는 것이 현충사이기도 하죠.

  • 11.07.28 16:15

    이렇게 비오는 날 여유롭게 천천히 읽는 재미가 솔솔 합니다~ 일단 글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니까요~ ㅎㅎㅎ

  • 작성자 11.07.30 08:00

    음주 해독이 안되어 이번 주는 고생이 많습니다.
    남도 여행 그림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숙제가 밀려 있으니까요.
    첫째는 고딩동창을 만난 것이고 둘째는 진도식당에서 마신 탓입니다.
    점점 술을 이기는 힘은 없어지거나 약해져서 술이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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