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는 이 땅의 청소년들이 성장기의 끝에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다. 그러나 단 하루 수능일에 청춘을 '올인'해야 하는 제도는 수 년째 부작용을 낳고 있다. 5일 1교시 대학수학능력고사를 치르던 전북남원의 한 여학생이 시험장 부근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고 수능을 친 다음 날 서울에서도 한 여학생이 "수능성적이 낮게 나와 대학도 못 가게 생겼다"며 아파트 25층에서 떨어져 숨졌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언론들은 한결같이 '여고생 또 투신 자살', '수능성적 비관 여고생 또 투신자살' 등 수능을 치르고 나면 으레 있는 사건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잘못된 제도로 한 해 200명이 넘게 자살하는 참담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의 매스 미디어들은 이러한 죽음이 개인적인 책임으로 외면하고 만다. 아이들의 죽음에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 할 교육부조차 책임을 통감한다는 말 한마디 없다.
전국에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이 70여만명이나 되는데 적응하지 못하는 한 둘 정도 자살하는 게 뭐 그리 대수냐?'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공정하지도 못한 제도로 자살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사람은 누굴까? 물론 한 나라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가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수능 제도의 잘못은 무엇일까?
우선 교육부는 언제나 학생들을 일렬로 나열하고만 있다. 학력고사에서 수능이라는, 암기식 교육에서 사고력을 키워나가는 교육으로 제도를 바꾸긴 했지만, 그 역시 학생들을 점수대로 나열시키고 만다. 학생이 가지고 있는 다른 재능은 상관없이 점수로만 학생들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 현 수능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특별히 문제 삼지도 않아도 됐을 수능이 대입위주의 교육정책 때문에 지탄 받고 있다.
교육부의 책임에 못지 않게 참회해야 할 곳은 언론사다. 시도 때도 없이 학벌을 부추기고 서울대학 일이라면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빠뜨리지 않고 보도해 왔던 것이 보수언론의 자세다.
투신 사건 이후 인터넷 게시판에는 수험생들의 글이 폭주하고 있다. 모 포털 사이트의 토론방에 올린 게시물들을 통해 본 '요즘 애들의 사정'은 자못 충격적이었다.'하루를 망친 것뿐인데 죽음까지 생각해야 하는 사회가 원망스럽다'며 게시물을 통해 가슴속 깊이 쌓인 좌절과 절망, 분노를 담아내고 있다. '대학입학정원 역전 시대' 등 대학 가기 쉬워졌다는 허울 좋은 말들은 수험생들의 가슴에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소위 '상위권 대학'에 가기는 오히려 전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50점이 떨어진 재수생입니다. 학교, 아무 데나 갈 수야 있겠죠. 그렇지만 2년 동안이나 열심히 했는데 납득이 안 되는 점수를 받고 보니 망치로 맞은 듯한 느낌입니다. 저에게 닥친 시련이 너무 힘듭니다. 이럴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악몽이었으면 합니다. 하룻밤의 악몽이었으면..'(jih) '인생이 결정난다는 하루를 망친 것'에 대한 수험생들의 부담감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루아침에 진학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학생들이 '패배자의 낙인'을 감당하지 못해 자살을 고려할 정도의 극한 상황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자살은 결코 나약하고 철없는 일부 수험생들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능을 본 거의 모든 학생들의 마음속엔 '이럴 바에 차라리.'라는 위험한 생각이 들 정도로 이들의 박탈감과 절망감은 깊은 것이다.
교육개혁을 반드시 실현하겠다던 참여 정부도, 고심 끝에 개혁장관을 뽑았지만 개혁에 대한 마인드도 비전도 찾아보기 어렵다. 벌써 참여정부 출범 1년이 다 돼 가는데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을 '교육개혁위원회'를 만들고 또 무슨 위원회를 만드느라고 부산을 떨고 있지만 정작 뾰족한 대안은 감감 무소식이다. 솔직히 말해 교육개혁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교육에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교육의 근본 모순이 학벌에 있고 일류대학문제를 해결하면 교육이 정상화 될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제도의 잘못으로 죄없는 아이들이 수없이 죽어가는 모습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이제 교육부와 교육자 그리고 학부모들은 죽음으로 항거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