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때리는 채찍
누가복음 16:19∼31
한 사형수가 형장에서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그의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사형수는 어머니의 귀에 대고
“내가 이렇게 사형수가 된 것은 어머니 때문이에요.
당신이 내가 잘못할 때 한 마디라도 꾸짖었다면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텐데”라고 말하고
어머니의 귀를 물어버렸습니다.
외아들인 자식이 나쁜 짓을 할 때
그 어머니는 채찍을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아들은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사형수가 되고 만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잠 23:13∼14)
지금 우리에게 채찍이 있는지요?
방자하게 행할 때 꾸지람이 필요하고
오만해질 때 채찍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부자의 버림받은
영혼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고운 옷을 입고
잘 먹으며 호사스럽게 살았습니다.
그는 먹고 입고 노는 데 모든 것을 투자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영혼에 대해서는
생각도 관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목숨은 있었지만 영혼을 잃은 자입니다.
만약 목숨을 위한 것이라면
사람이 식후에 하품하는 것이나
하마가 배불리 먹은 후
하품하는 것에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마와 다른 것은
영혼을 가졌다는 것에 있습니다.
부자는 그 영혼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를 보십시오.
비록 가난하고 병든 인생을 살았지만
나사로는 영혼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는 죽었을 때 낙원으로 이끌려갔습니다.
부자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영혼을 깨우쳐주는 사람이 없었고
자기 자신 역시 영생에 관해
관심조차 갖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불쌍한 존재였습니다.
부자를 때리는 채찍이 없었습니다.
그 영혼도,그 생명도 깨우쳐주는 채찍이 없었습니다.
그는 불쌍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목회자에게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째아들이 중학교 3학년 때
주일에 교회에 가지 않고
친구들과 강으로 놀러갔습니다.
저녁이 되어 불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채찍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종아리를 때리면서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나는 네가 일류대학에 가고 출세해서
돈 많이 벌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나님 사랑하고 믿음을 지켜
신앙의 자식이 되기를 더 원하고 있다.
왜 거룩한 주일을 우습게 여기느냐?”
종아리를 맞던 아들은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 후 그 채찍은 아들의 신앙과 장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 변호사가 된 그 아들은
모범적인 가정을 이루었고
교회에 훌륭하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채찍에 대한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사무엘하 7장 14절에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벌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하시면서
채찍 없는 인생은 불쌍하게
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채찍으로
그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십니다(히 12:6).
우리가 진정 영혼을 사랑한다면
채찍을 들어야 합니다.
채찍은 아프지만 하나님은
그 은총을 빼앗지 않습니다(삼하 7:15).
영혼을 때리는 채찍은
바로 내 자신에게 먼저 필요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부자는 자기 영혼에 대해
채찍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 영혼은 저주 받았고
음부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채찍 없는 세대는 영적 암흑입니다.
채찍 없는 엘리 제사장과 그 아들들의 방자함이
제사장 가문을 망하게 했듯(삼상 2:34)
영혼을 때리는 채찍을 통해 구원과 생명의
존귀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진정 영혼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채찍을 드십시오.
고정열 목사(안성제일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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