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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무지개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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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후기 스크랩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홍류동계곡을 따라 걷는 가야산 소리길 그리고 천년역사의 해인사 (2015. 5. 24)
김상규 추천 0 조회 392 15.05.25 13:53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2015. 5. 24. 경남 합천 가야산 소리길 (축전주차장 - 길상암 - 해인사 - 상가주차장)

누구랑 : 목포무지개산악회와 함께...

어디로 : 축전주차장(10:25) - 청량사 갈림길/쉼터(10:59-11:08) - 소리길 탐방지원센터(11:13) -

            와불상/중식(11:35-12:35) - 홍류문/입장료(12:53) - 농산정(13:11) -

            길상암 갈림길(13:38) - 길상암(13:43) - 적멸보궁(13:58) -  

            길상암 입구/명진교(14:15) - 낙화담(14:21) - 영산교/소리길 안내문(14:31) -

            해인사 입구/청량산 입구/버스승강장(14:36) - 성보박물관(14:40) - 홍제암(14:57) -  

            용탑선원(15:07) - 가야산 탐방지원센터/해인사 외나무다리(15:14) - 

            해인사 일주문(15:21) - 학사대(15:38) - 영지(15:45)  - 성철스님 사리탑(15:50) -

            성보박물관(16:07) - 상가 주차장(16:15)         

산행시간 : 5시간 50분 (중식 1시간)   

날씨 : 맑음

이동방법 : 목포에서 광주 - 88고속도로 - 해인사 IC - 합천 축전주차장까지구, 버스로 3시간 10분 소요

뒤풀이 : 산악회에서 준비한 깡다리찌개 등으로 뒤풀이...  


5월의 화창한 일요일,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홍류동계곡을 따라 걷는 가야산 소리를 향해 집을 나선다.

6시에 출발해야 할 버스는 목포에서 6시 40분이 다 되어서야 출발한다. 버스 안에서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잠깐 쉬다가 회원분이 준비해온 음식으로 소맥을 몇잔 먹고 잠을 깬다.


백운지구에서 가야산 만물상릉을 갈 1진은 하차하고, 소리길을 갈 2진은 축전주차장에서 하차를 한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걷는 홍류동계곡의 가야산 소리길, 오늘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간다.

쉴때 쉬어가고 앉을때 앉아가고...


와불이 있는 계곡에서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오늘 지각하신 분이 가지고 온 낙지로 탕탕이를 해서 맛있게 먹고 즐거운 점심시간을 여유롭게 보낸다. 그리고 또 숲속을 걸어간다....

홍류동계곡의 멋진 경관을 구경하면서 걷는 소리길이다... 

길상암 갈림길에서 길상암으로 올라서서 다시 적멸보궁까지 올라간다. 길상암 제일 위에 있는 문수전에서 딱 15분을 올라가야 나오는 보궁... 바위에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시원한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낙화대를 지나자 소리길도 끝이 보인다. 이제 천년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해안사 탐방이다. 상가지역을 쭉 지나서 홍제암으로 바로...

홍제암, 그리고 용탑선원을 지나자 탐방지원센타가 나온다. 탐방지원센터 아래에 있는 해인사 외나무다리를 구경하고 해인사로 향한다. 

내일이 석가탄신일로 연휴여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하고 멀찌기 서서 문 틈새로 살짝...

우두봉이 비친다는 영지를 지나 성철스님 사리탑으로 향한다.


오늘 아쉬운 것은 백련암까지 갔다 올려고 하였는데 성철스님사리탑을 지나서 1진을 만나 백련암은 가지 못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선다. 상자주차장에서 일행과 만나 버스에 승차...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는데 그 만큼 경치가 빼어난 멋진 트레킹코스였나 보다...


목포로 이동하면서 지리산휴게소에서 회원분이 준비해온 깡다리찌개로 뒤풀이를 하고 목포에 도착... 




^ 가야산 소리길 지도와 해인사 지도...



^ 팔만대장경 축전 행사장 입구...


^주차장에서 다리를 건너 소리길은 시작된다...


^ 다리를 건너면서 바라본 가야산...


가야산소리길은 홍류동 옛길을 복원하고 다듬어서 홍류동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한 저지대 수평 탐방로다.
 홍류동 계곡을 따라가는 가야산 소리길에는 주요 문화자원인 농산정, 칠성대 등 가야산 19명소 중 16개 명소가 있어 자연과 역사, 경관을 함께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길상암 ~ 해인사 구간은 낙화담을 비롯해 소리길 중 가장 빼어난 곳인데 이 경관 지역에 촉지도, 촉지판, 황토포장, 목재데크를 설치하여 휠체어로도 쉽게 이용이 가능하다.


소리길 탐방지원센터~농산정 구간
가야산소리길은 공원 외 구역과 공원 구역에 걸쳐 조성된 탐방로로 공원 외 지역에 위치한 소리길 입구를 시점으로 소리길 탐방지원센터까지 공원 외 지역으로 전형적인 농촌 전경이 펼쳐짐. 소리길 공원구역 입구 지점부터는 공원구역으로 굽이치는 계곡과 잘 보전된 소나무림을 만나볼 수 있고 교량 4개를 교차하면서 계곡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등 홍류동 계곡을 세밀히 관찰할 수 있음. 특히 농산정에서는 고운 최치원선생에 대한 역사를 배울 수 있고 정자(농산정)에 앉아 자연의 소리를 벗해 명상에 잠길 수 있는 곳이다.


농산정~길상암 구간
농산정을 지나 흙길 탐방로, 목재 교량을 지나면 돌로 조성된 탐방로가 나오면서 이전과는 달리 다소 경사도 있는 탐방로가 나타나고 약 200m 후 목재 데크 지점부터 다시 완만해짐. 목재 데크를 지나서 좌측으로 낙석위험 지역이 있어 탐방 시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하고 이곳을 지나면 소리길에서 유일한 암자인 길상암 입구가 나타난다.(계단에서 약 30m 위쪽 길상암 위치함)


길상암~소리길 6교 구간
길상암~소리길6교(종점) 구간은 낙화담을 비롯해 소리길 중 가장 빼어난 경관 지역으로 소리길의 백미라 할 수 있고 교량, 데크, 황토포장길 등으로 구성되어 탐방 편의성이 높은 구간임. 탐방로는 대체적으로 완만하며 2개의 교량이 있어 계곡을 교차하면서 새소리, 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피부로 느낄 수 있고 장애인들의 탐방을 위해 점자 안내판, 미끄럼 방지 장치, 곡선형 탐방로, 자연체험 공간 등 탐방 저해 요소를 최소화한 무장애 탐방로로 조성된 구간임. 탐방 포인트 : 물레방아(소수력 발전기)를 활용한 옛 시설물 복원 구간, 낙화담 전망대, 가야산 16명소 중 3개 명소(첩석대, 회선대, 낙화담)


^ 소리길을 시작하며 단체사진...



^ 소리길 시작...




^ 무인 셀프 매점...



^ 소리길을 다정히 걷는 부부의 뒤모습...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무슨 이야기를 할까...





^ 가야산 능선...







^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소리길을 더 이어진다...





^ 청량사 갈림길에 있는 쉼터에서 잠시 쉬어가며...


^ 청량사 갈림길 이정표...



^ 소리길 탐방지원센터...






^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다정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 계곡 뒤로 보이는 가야산 능선...








^ 소리길에 다양한 글이 새겨져 있다...



^ 와불 앞 계곡에서 낙지탕탕이를...


^ 즐거운 식사시간...




^ 와불...


^ 즐겁게 소리길을 걷고 계시는 두분...



^ 오영종 자문위원님...


^ 거북이가 헤엄쳐 달아나지 않을까...








^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그늘과 계곡을 걸으면서...


^ 홍류문...





가야산 국립공원 입구에서 해인사까지 이르는 4㎞의 계곡으로, 가을 단풍이 너무 붉어서 물이 붉게 보인다고 홍류동계곡이라 한다. 홍류동계곡에는 최치원 선생이 갓과 신만 남겨놓고 신선이 되어 버렸다는 전설을 말해주는 농산정과 시를 새겨놓은 큰 바위가 있다. 홍류동에는 농산정(문화재자료 172호)과 가야19명소 중 15명소(1개소 소실-완재암)가 있다. 나머지는 해인사가 1개(학사대), 상왕봉 인근에 2개(봉천대, 우비정)가 있다. 특히 이 곳은 농산정 맞은편에는 암각된 최치원 선생의 친필을 볼 수 있어 더욱 유명하다. 합천 8경 중 제 3경이다.


농산정과 제시석은 만년을 이곳에 숨어 산 신라의 최치원에 유래하는 유적으로, 농산정은 그가 바둑을 두었다는 사각(祠閣)이고, 제시석은 그의 농산시를 새긴 반석이다. 그 밖에 계곡을 이루는 절벽 · 암석과 맑은 물 및 울창한 노송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해인사 외에도 12암자가 있으며, 일대에서는 잣 · 송이버섯 · 산나물 등이 많이 난다.








농산정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72호. 신라 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崔致遠, 857∼?)이 지은 정자로, 은거 생활을 하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이다. 농산정은 건축연대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922년 해체되어 원래 모습대로 다시 지어진 것을 1936년에 보수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유림에서 최치원을 추모하여 정자를 세우고 농산정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세상의 시비가 귀에 들릴까 저어하여, 짐짓 흐르는 물소리로 산을 다 막았네(常恐是非聲到耳 故敎流水盡籠山)”라는 그의 자작시에서 연유한다.

현재의 정자는 1922년에 재건(再建)된 것이며 정자 옆에 ‘孤雲崔先生遯跡地(고운최선생돈적지)’라고 새긴 비석이 있다. 또 학사영각(學士影閣)도 있었으나 근년에 후손들이 정자의 동쪽 강 건너편으로 이건(移建)·중수(重修)하고 여기에서 봄·가을 마다 제사를 지낸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2칸씩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 농산정에서 회원님들...



^ 송진을 채취하기 위하여 소나무에 생채기를...









^ 길상암 갈림길...





^ 길상암 모습 제일 위가 문수전 대웅전...



^ 나한전...


^ 나한전 앞 탑...



^ 깊은 산중에 위치하고 있는 적멸보궁....


^ 보궁 내부 모습...


^ 길상암 문수전에서 바라본 모습...




^ 명진교 앞 길상암 입구...












^ 영산교 앞 소리길 안내문...



^ 청량산와 해인사 갈림길/버스승강장 앞...


^ 상가 앞을 지나가며...


^ 성보 박물관...











^ 홍제암 모습...

해인사에 속해 있는 암자로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 때 승병장으로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가 수도하다 세상을 떠난 곳이다. ‘홍제암’이라는 이름은 사명대사 입적 후 광해군이 내린 ‘자통홍제존자’라는 시호에서 따왔다. 광해군 6년(1614)에 혜구대사가 사명대사의 초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으며, 1979년 10월에 해체·보수공사를 실시하였다.

법당과 생활공간의 기능을 겸한 인법당(因法堂) 형식의 건물 1동으로 되어 있으나 일반적인 인법당과는 달리 사명대사와 관련이 있는 여러 기능의 공간들이 한 곳에 모여있는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기본 평면은 工자형으로 가운데 법당을 중심으로 조사전, 영각, 홍각, 조실, 시자실 등이 있으며, 각각의 공간은 툇마루를 통해 모두 연결되고 있다.


경사진 대지를 이용하여 홍각과 지장전은 돌출된 누각형으로 만들고, 법당 및 다른 공간은 단층의 구조로 만드는 재미있는 공간 배치를 보여준다. 또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구성한 공포의 수법도 각 공간의 위계에 따라 달리 표현하였으며, 기둥과 기둥의 간격인 칸의 크기도 각 공간의 기능에 따라 각기 달리 하였다. 밖으로 노출된 기둥은 둥근기둥을 사용하고 안에 있는 기둥은 사각기둥으로 처리한 점도 특이하다.


합천 해인사 홍제암 사명대사탑 및 석장비(보물 제1301호)와 영정이 모셔져 있는 홍제암은 여러 기능의 공간이 하나의 건물 안에 모여있는 특이한 형태의 암자로, 각 공간의 위계와 기능에 따라 건물구조나 양식의 수법을 여러 형태로 표현하고 있어 역사적 의의 뿐만 아니라 건축적인 가치가 크다.


백용성은 16세에 해인사로 출가하여 전국의 사찰을 돌며 심신을 수련하였다. 3·1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한용운과 함께 불교 대표로 참가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이로 인해 3년 동안 옥고를 치르고, 출옥 후에는 불교 종단의 정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대처승(帶妻僧)의 법통 계승을 인정하는 일본의 종교정책에 맹렬히 반대하였고, 불교의 대중화에도 힘썼으며, 서울에 대각사(大覺寺)를 창건했다.

그는 참선·염불·주력(呪力)·관법(灌法)·기도 등을 모두 섭렵한 폭넓은 고승으로서, 생전에 치아에서 금색 사리 1과가 나온 이적을 보였다. 법랍(法臘) 61세로 입적하였다.

사리탑이 해인사 용탑선원 옆에 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이 수여되었다.  



^ 용탑선원 뒤로 가야산 우두봉이 조망된다...


용성선사의 부도는 일반 고승의 부도와는 판이하게 다른 삼층석탑으로 조성되어 더욱 예우 추앙한 뜻이 엿보이며, 이는 부도 옆에 세워진 탑비가 이와 같은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즉 용성선사와 함께 삼일독립운동 민족대표 33인 대표자들 중에 포함되었던 한용운 선생이 비문을 짓고, 오세창 선생이 탑비의 頭篆을 하였다는 점은 용성선사가 근대 역사에 얼마나 큰 족적을 남기고 있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비록 예술적인 가치로써 미약한 점이 없지 않다고 판단되지만 독립투사 3인이 이루어낸 역사적인 산물로써의 중요성은 충분히 인정되는 바이다.    


^ 용탑선원 모습...


^ 가야산 토신골 탐방지원센터...




^ 해인사 일주문...



불(佛), 법(法), 승(僧) 불교의 삼보 가운데, 부처님의 가르침인 ‘법’을 담고 있는 법보사찰 해인사이다. 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사찰로 꼽히는 곳으로, 고려 때 만들어진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인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다. 신라 때 지어진 절로 의상의 맥을 잇는 제자인 순응과 이정 스님에 의하여 창건된 화엄종 사찰이다. 해인사가 법보종찰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조선 태조 때로 강화도에 보관하던 대장경을 지금의 서울시청 부근에 있던 지천사로 옮겼다 다시 해인사로 옮기면서부터이다. 이후 세조와 성종 대를 거치면서 건물을 새로 짓는 등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주차장에서부터 일주문까지는 제법 올라가야 하는데, 그 길에 성보박물관이 있으니 꼭 둘러보도록 하자. 해인사의 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특히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다양한 목판을 전시해 우리 전통의 우수한 목판인쇄기술을 알게 한다. 또한 불교조각실의 앉은 채 입적한 듯 사실적인 조각 수법이 돋보이는 목조희랑조사상과 팔만대장경을 소재로 한 백남준의 비디오아트가 특별한 볼거리이다.


해인사의 본전은 화엄종의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대적광전이다. 대적광전 뒤가 바로 장경판전으로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의 중심이다. 팔만대장경은 원나라의 침입을 받은 고려가 불력으로 물리칠 수 있기를 기원하기 위해 만든 대장경으로, 이전에 만든 대장경이 불타버린 후 만들었다 해서 재조대장경으로도 불린다. 나란히 선 수다라장과 법보전에 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데 자연의 원리를 이용해 햇빛, 온도, 습도, 환기 등을 조절하는 최고의 보관소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해인사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삼존상



대장경이란 범어로 ‘세개의 광주리’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말씀을 담고 있는 경(), 부처를 따르는 사람들이 지켜야 알 도리를 밝히고 있는 율(), 부처의 가르침을 해석하고 있는 론()으로 구성된다. 세계적으로 여러 종류의 대장경이 있지만 그 완성도 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바로 팔만대장경이다. 경판의 개수가 팔만개라 해서 이름 붙었으며, 경판의 크기는 가로 70㎝, 세로 25㎝, 두께 3.5㎝로 양면에 한 자 1.5㎝ 크기로 450여 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 팔만대장경은 직접 보지 못하고 사진 앞에서 웃자 셀카...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원래 가야면 야천리(倻川里) 탑동(塔洞)마을 반야사 터에 있던 것을 1968년 현재의 해인사로 옮기고 비각을 세워 보호하였다.


해인사에 있는 원경왕사비는 고려시대인 1125년(인종 3)에 건립하였다. 비의 높이는 2.3m, 너비는 1.2m이고, 재료는 화강석이다. 비문은 자경(字徑) 1.8cm의 해서(楷書)이며, 김부식(金富軾)의 형인 김부일(金富佾)이 비문을 지었고, 이원부(李元符)가 글씨를 썼다. 비는 귀부(龜趺), 신석(身石), 개석(蓋石)으로 이루어졌으며 모두 평박(平薄)한 것이 특색이다.


비문에 따르면 원경왕사의 속성은 신씨(申氏), 이름은 낙진(樂眞)이고 시호는 원경(元景)이다. 경덕국사(景德國師)와 대각국사(大覺國師)에게 사사하였으며 고려 숙종(肅宗:재위 1095∼1105) 때 승통(僧統)이 되었고, 예종(睿宗:재위 1105∼1122) 때 왕사(王師)가 된 후 귀법사(歸法寺)에 머물다 입적하였다. 이 비는 귀부의 문양과 옥개형으로 변한 개석 등의 조각 수법에서 고려 중기의 특징이 나타나 있다.    


1996년 5월 29일 보물 제1242호로 지정되었다. 해인사는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伽倻山:1,430m) 남서쪽에 있는 사찰로 신라 애장왕(哀莊王:재위 800∼809) 때 세워졌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이다. 이 석탑은 일종의 장엄탑으로 해인사 일주문(一柱門)에서 남쪽으로 약 50m 지점의 길가에 있다.


길상탑의 높이는 3m이고 재료는 화강암이며 통일신라시대인 895년(진성여왕 9)에 건립되었다. 2중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이다. 상·하층 기단에는 우주(隅柱:탑신의 모서리에 세운 기둥 모양)와 탱주(撑柱:탑의 기단 면석 사이에 세우거나 면석에 돋을새김한 기둥 모양)가 새겨져 있고 특히 상층 기단이 하나의 돌로 조성되어 있다. 탑신부는 옥신석(屋身石)과 옥개석(屋蓋石)으로 구성되었는데 옥신에는 우주가 본떠 새겨져 있고 초층 옥신이 높은 편이며 옥개 받침은 각층 5단이다.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불탑의 맨 꼭대기 지붕 바로 위에 놓여 상륜부를 받치는 부재)에 찰주를 꽂았던 둥근 구멍이 남아 있다.


1965년 탑의 내부에서 157개의 소탑(小塔)과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4장의 탑지석(塔誌石)이 발견되었다. 탑지는 진성여왕 때인 통일신라 말의 사회 혼란기에 봉기한 도적떼로부터 사보(寺寶)를 지키다가 순교한 해인사 승려들의 영혼을 추모하려고 이 탑을 세웠다는 내용 등으로 통일신라시대 불교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 성철스님 사리탑...


^ 성보박물관 뒤로 가야산 우두봉이 조망된다...


^ 목포로 돌아오는 길에 지리산휴게소에서 깡다리찌개로 뒤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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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5.25 21:57

    첫댓글 같은 장소를 다녀와도 이렇게 차이가 나지?ㅎ

  • 작성자 15.05.26 15:38

    후기 남길려고 사진 촬영하다 보니 이쪽저쪽 쏘다다니게 되네요...

  • 15.05.26 19:11

    멋지군요

  • 작성자 15.05.27 07:45

    같이 가셨으면 더 즐거웠을것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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