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季刊 『大韓民國 詩書文學 』第 14回 新人文學賞 隨筆部門--정희숙-심사평
난 그래도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안은 희극배우였다.
정희숙
얼마 전 굵은 빗줄기가 온 종일 쉴 새 없이 쏟아져 퍼부어 내리던 날 밤이었다. 평소에 가깝게 지내온 가정이기도 했지만, 심야에 30대 동포여성으로부터 숨이 넘어 가는듯한 정말로 다급한 음성으로 SOS 응급구제를 요청하는 절규의 전화가 걸려왔다.
“좀 도와주세요. 우리남편이 며칠째 열이 나고 잠도 못 주무시더니, 이제 목이 부어올라서 물도 못 넘겨요.”
Anti-biotic이란 약 좀 구할 수 있으면 시급히 구해달라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이 약은 극단의 진정제로 의사의 처방전이 없으면 구할 수 없는 약이다. 더구나 미국 땅에선 더 그렇다.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의료 보험 제도도 그 비용이 너무나 비싸서 돈 없는 사람들에겐 도움의 길이 전혀 열려있지 않다. 때문에 병원비나 약값이 우리의 상상을 초과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그녀의 애절하고도 다급한 전화사연을 받고난 후 밤새 고통에 있을 그들을 생각 하니 영 잠이 오질 않았다, 그래 이국 만리타국에서 고생하는 그녀를 동포애로서 적극 도와주자 마음을 먹고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정학과 담당의사(가족담당)에게 진료의뢰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내목이 좋지 않은 것 같다 편도선이 부은 것 같으니 처방전 좀 써달라고 했다. 의사는 나의 예상처럼 그 약은 다른 약과 달라서 절대로 직접진찰 해보기전엔 줄 수가 없다며 거절했다.
평소에는 전화 한통화로 처방전을 약국으로 보내 주곤 했었지만, 이번엔 상황이 전혀 달라진 처방케이스이기에 병원에 직접 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아프지도 않은 몸을 이끌고 양심상 벌벌 떨리는 마음으로 편도가 아픈 척하면서 단골병원클리닉으로 갔다. 거짓말을 하는 심장이 얼마나 떨리던지, 마치 큰 도둑질하고 잡혀온 사람모양 앉아서 담당 진료의사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면서 잠시 생각해봤다. 정말 도둑질 하는 사람들은 어떤 심장을 가지고 있을까 하고…
마침내 담당의사가 들어왔다. 나는 완전히 거짓환자를 연기하는 배우가 되어야 했다. 원래 목소리가 허스키한 나는 속으로 기침을 하기도 하고, 침 넘기기가 힘든 것처럼 인상을 쓰며 고통을 호소해야만 했다. 마음 한편에는 의사 중에서도 가정학과 의사는 별로 실력이 없는 사람이니 쉽게 해결 되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계속 진찰을 해보더니 한다는 말이 아무리 봐도 당신은 지금 아픈 사람 같질 않다는 것이다. 그리곤 언제부터 아팠느냐는 둥 꼬치꼬치 물어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로이때 나의 머릿속에는 온통 약을 구해야 된다는 일념으로만 가득 찼기에 계속 시간만 끄는 의사에게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지금 도대체 누구 목을 가지고 그러는데요? 지금 아픈 목이 당신 것이요? 내 것이요? 내가 아프다면 아픈 것이지, 내가 지금 시간이 남아돌아가서 한가하게 와서 당신한태 시간 낭비 하는 줄 아세요.”
일침을 가하듯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속으론 벌벌 떨면서도 완전히드라마속의 연속극 대사연기를 멋지게 한 것이다.
내가 짜증스런 화를 벌컥 내자, 담당의사는 “O.K O.K”하면서 약 처방을 잘해주면 되는 것 아니냐하면서 “제발 화내지 마세요”라고 부드럽게 수긍해주며 5일치분의 약 처방전을 내주었다. 약 처방전을 들고 나오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잡으러 오는 것만 같은 느낌에 걸음아 날 살려 달라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왔다.
아직도 미국이 좋다고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지금 한국이 모든 면에서 볼 때 다른 나라보다 앞서가는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의료보험제도를 비롯해서 여긴 매달 가족보험료가 너무나도 비싸서 감히 의료혜택을 엄두도 못내는 분들이 많다. 나는 이러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병원, 소셜오피스, 보험회사, 변호사사무실, 법원 안가는 곳이 없이 뛰어 다닌다. 남들을 돕기 위해서 나는 내가 아닌 완전히 무대 위에서 주어진 주역을 맡은 배우처럼 변신한다. 때론 당당하고 당돌한 맹순이의 표상 또순이 같은 한국여자로 둔갑하고, 때론 눈물도 보여야 하는 연기자처럼 일주일에 몇 번의 드라마 같은 삶속에서 연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랑하는 나의 따뜻한 조국은 이곳보다 의료혜택이 저렴해서 살아가기엔 적합하다는 걸 알고 이민사 적응이 힘든 만큼, 조국 그리움을 뼈저리게 느끼게도 한다.
이러한 행동을 취한 어글리 코리언인 나를 이해 못하시는 분도 더러 계시리라 믿는다. 하지만 그때 그 상황을 아시는 분이라면 얼마든지 이해하고도 남을 거란 생각을 한다.
세 사춘기 아이들 중 남자 아이 둘은 대학생, 여자아이는 고등학교를 다니지만 내년엔 대학을 간다. 남편은 집에서 하루종일 빈둥거리고 엄마만 하루에 열두 시간 반찬을 만들어 파는 고된 장사를 하며 살아간다. 힘든일에 시달리던 엄마가 하루는 출근하다 넘어져서 허리가 다쳤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도 가슴 아픈 적도 있었다. 누가 연방 합중국, 미국이란 나라를 그리도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을 했던가…
나도 미국생활이 이젠 30년이 넘었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건 울타리 없이 노닐던 유년시절에 그때의 고국이 절실히 그립기만하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고국을 등지고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오셨던 분들 대부분이 하는 말을 변하지 않는다.“ 돈 벌어서 한국가야지”라는 말은 이민사회에서 꼭 듣게 되는 말이다.
우리에겐 돌아갈 조국이 있다는 것, 오늘의 삶이 나를 힘들고 지치게 만들지만 내일을 향한 마음을 내려놓고 본향에서 황혼을 맞을 꿈을 가지고 있기에, 오늘도 우린 열심히 희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
외국땅에서 초라하게 살다간 한 여인
정희숙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에서 누릴 복이 정해져있는가? 파라다이스의 꿈을 그리며 더 좋은 복, 더 큰 꿈을 그리며 건너온 이곳 미국, 어느덧 3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후덥지근하고 비릿한 바다 냄새를 실은 바람이 탐스럽게 매달려있는 코코넛 열매를 당장이라도 땅바닥에 떨어뜨려 버리려는 듯 주위를 맴돌다가 사라지는 플로리다 한 여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바보처럼 이용당하고 숨이 끓어진 후에도 맛이 가서 버려지는 생선처럼 둘둘 말려 봉고차 트렁크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어디론가 실려 갔다가 일주일 후에야 화장 되어 돌아온 시신, 값싼 비닐봉지 안에 5파운드쯤 되는 모래주머니처럼 재로 변하여 우리의 손에 들려지는 순간 난 온몸이 그 자리에 굳어 버리는 듯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고 현기증이 일었다. S라는 여인은 자그마한 키에 당차고 바지런 하며 얼굴은 항상 미소를 머금고 활기가 넘치는 모습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 당시엔 건강만 있으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던 곳이 이 미국인 나라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신앙심도 대단하여 모두들 힘들어 하는 외국생활에 슈퍼 우먼처럼 살아갔다. 하지만 혼자 살기엔 고독하고 외로웠던 S는 아는 분의 소개로 누군가를 알게 되었다 그저 행복하기만 했고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니 지금 당장 죽는다 할지라도 행복한 나날들이였다. 시간은 흘렀고 이제는 이 남자는 내 남자라고 마음을 놓으려고 할 즈음 K는 철새처럼 날아가 버렸다. S의 신분으로 미국에 자리를 잡게 된 K는 한국에 두고 왔던 가족을 미국으로 데려오고 본 가족에게로 돌아가 버렸던 것이다. S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였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행복했던 순간들을 떨쳐 버리지 못한 채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안고 흐르는 세월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휘청거리며 화장품 장사로부터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변변한 옷 한 벌 사 입지 못하고 그리고 정상적인 신체검사 한번 받아보지 못한 S의 몸속엔 이미 암 덩어리가 자라고 있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항상 S를 짓눌렀지만 혼자의 목숨 부지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만 했다. 고통에 못 이겨서 병원으로 실려 갔을 때엔 암세포가 이미 온몸에 퍼져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 할지라도 현대 의학으로는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항이었다.
몸이 약하여 방사선 치료도 불가능하여 하루하루 고통을 호소하며 기적을 기다릴 수밖에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한국엔 언니와 남동생이 있지만 연락 하는걸 극구 말리는 것을 몰래 수첩을 뒤져 언니에게 연락을 했다 한숨에 날아온 언니는 10년 동안 보지 못했던 동생이 초라한 모습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은 대단했고 마음이 찢기는 듯 몸부림치며 우는 것이었다. S의 몸은 꺼져가는 작은 촛불처럼 점점 더 빠른 시간에 쇠약해저 가고 있었지만 한 많은 세상이 무슨 미련이 그리도 많이 남아 있었던지 간절히도 기적을 바랐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 가면서도 그이가 또 다른 병원 입원실인줄로만 알고 깨끗해서 좋다고 하던 S였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가 그 병원을 도착 했을 때는 S는 숨을 거둔 뒤였다.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길조차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 외롭고 초라하게 생을 마감한 것이다. 죽어서도 관하나 준비되지 못한 불쌍한 한 여인의 이국땅에서의 마지막 길……
죽은 사람은 두 시간 이상 병실에 두지 않는다 하면서 호스피스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표정이 없는 남자가 나타났다. 우린 자리를 비켜 주었다. 한참 후에 그남자는 머리서부터 발끝까지 하얀 시트로 꽁꽁 말린 시신을 밀고 나왔다.
모든 것이 낯설고 의문투성이였다. 시신을 밀고 가는 그를 뒤따라 차에까지 갔다. 그 남자는 트렁크를 열더니 시신을 마치 장작개비 던지듯이 아무렇게나 던져 넣는 것이 아닌가, 그 광경을 본 난 아찔하게 현기증이 일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S는 한줌의 재로 변하여 작은 종이 박스에 담겨서 돌아왔다.
미국인 교회에서 박스 안에 담긴 S의 시신을 올려놓고 장래예배를 드려 주었다. 마지막 가는 S를 위하여 우린 최선을 다해서 꽃 장식을 해주었다. 장래 예배가 끝난 뒤 우린 이제 S를 어떻게 처리해 주어야 할지 난감했다. 산 좋고 물 좋은 우리 고국이라면 곱게 묻어줄 곳도 또는 흐르는 강물 위에 뿌려줄 곳도 많지만 열대지방에다가 조금만 숲이 보인다 하는 곳이면 악어가 우글대는 이 플로리다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따라 쉽게 그칠 온종일 비가 내렸다.
우린 우리가 가끔 가던 인적이 드문 공원을 택하기로 했다. 공원 안을 들어가 한참 운전해서 들어가면 외진 곳에 정자처럼 지어져있고 얕은 물줄기가 모래를 살랑 살랑 뒤흔들며 일렁이는 곳이 있었다. 외국 부부 두 사람과 몇 사람이 함께 해 주었다. 마치 모래주머니처럼 S를 손에 덜렁 덜렁 들고서 그곳에 도착 했다 비가 내려서 인지 다행히 인적은 없었다.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그 광경을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 할 수 없다. 한 사람은 망을 보고 있다가 “지금 이예요” 라고 신호를 하면 빠른 동작으로 쏟아 붓기로 약속했지만, 지금이라는 소리가 들릴 때 마다 “안돼!” 하며 울부짖는 S의 언니 비명 소리에 우린 불안하고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한참 후에야 우린 한 여인의 시신을, 한줌의 재로 변해 버린 한 여인의 육체를 모래주머니를 비우듯이 버리고 왔다.
이것이 한 인간의 삶의 마감이란 말인가? 파리 목숨보다 못한 한 인간의 마지막 모습, 누군가에게 들킬까봐 떨었고, 마지막 가는 한사람에게 이렇게 밖에 해줄 수 없다는 현실의 비참함에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먹히질 않았다. 하지만 그런 쓰디쓴 아픔의 기억들도 시간 속에 묻혀서 사람들의 기억의 저 편으로 멀어져 가고 있다.
외로운 타국생활 이방인의 삶 불쌍한 사람은 단지 이 한 사람뿐만이 아니다. 미국까지 와서 남편에게 버림받아 정신 병원에 버려진 여자,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
오늘도 변함없이 해는 떴다가 붉은 노을을 곱게 남기고 멀어져 고 있다. 노을 저무는 서 쪽 하늘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시간, 야무진 희망으로 행보하게 웃으며, 친구들과 해가는 줄 모르고 입술이 새파랗게 물들도록 진달래꽃잎 따 먹던 어린 시절 그립기만하다.
상처도 때로는 추억이 된다
심사위원: 이혜화, 장기오, 김후남
우리의 기억 속에는 살아 움직이는 여성이 많다. 여성에게 암흑의 시기라는 조선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우리는 쉽게 밟아도 밟아도 다시 피어나는 민들레 같은 흔적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조금만 깊게 눈길을 주어도 그네들의 삶은 여성이 아니라 어머니요 아내라는 서글픈 모습임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우리에게 한때는 ‘드림’의 나라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누군가의 아내요 어머니에게도 ‘드림’이었는가? 참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의 어머니였던 그네에게는 고난의 시간이었고 누군가의 아내였던 그네에게는 아픔의 시간이었다. 정희숙의 <난 그래도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안은 희극배우였다>외 1편을 신인상으로 결정한다. 정희숙의 글에는 ‘드림’일 수 없는 ‘드림’의 현장에 서 있는, 여성이 아니라 어머니요 아내로 살 수 밖에 없는 그네들의 이야기가 살아있다. 지금의 상처가 기억의 시간 어디쯤에서 아름답고 치열했던 추억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현실을 고발하기 보다는 한발자국 물러나 관조하는 모습을 연습한다면 좋은 재료를 가지고 더 좋은 이야기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다음 작품으로 해소되기를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