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의 화인(5부)
5. 얼굴이 까만 아이 청미의 담임인 예쁘게 생긴 여선생은 형사들을 대하자마자 눈물부터 쏟았다. 눈치를 챈 다른 여선생들도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닦아 냈다. 담임 선생은 청미를 몹시 예뻐했던것 같았다. 그녀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청미를 칭찬하더니 다시 울기 시작했다. 교장을 비롯해서 여러 선생들이 그들 주위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형사들은 그녀를 데리고 숙직실로 자리를 옮겼다. 담임 교사 박선희는 스물다섯 살의 처녀였다. 그녀는 교사가 된지 사년 만에 처음으로 1학년 담임을 맡은 것인데 하필 자기 반 아이가 유괴되는 바람에 그야말로 어쩔줄 몰라 하고 있었다. 학교가 파한 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그녀가 책임질 일은 못 되지만 아무튼 담임 교사로서 책임감을 안 느낄수 없었다. "어제 청미 양이 분명히 학교에 왔었나요?" "네, 틀림없이 왔어요." "정확히 몇 시에 수업이 끝났나요?" "열두시에 끝났어요." "그때까지 청미는 학교에 있었나요?" "네, 있었어요."그녀는 틀림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수업이 끝나자 바로 집으로 돌아갔나요?" "네, 주의깊게 보지는 않았지만 그런 걸로 알고 있어요. 학교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두 명의 형사는 순서 같은 것도 없이 닥치는 대로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당황하고 얼떨떨한 기분이었지만 자기가 아는 한 성실히 대답해 주었다. "어제 열두 시경엔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 마중을 나왔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네, 우산을 들고 학교까지 찾아온 엄마들이 많았어요." "빗속으로 어린아이들이 집에 가기 위해 몰려 나갔는데…… 혹시 따라 나가 보시지 않았나요?" 1학년 담임이면 걱정이 되어서라도 차도까지 따라 나가 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거기에 대해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 차도까지 따라 나가 길을 건네 주는데 어제는 마침 때맞춰 전화가 걸려 왔어요. 좀 긴 통화였어요. 전화를 받고 나서 나가 보니까 이미 아이들은 학교 밖으로 사라져 버리고 없었어요." 그것이 큰 실책이었다는 듯 그녀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청미의 성격은 어떻습니까?" "더없이 명랑하고 활달해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아요." "그렇다면 어제 집에 돌아갈 때 혼자 가진 않았겠군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함께 간 아이를 찾았는데 그런 아이가 없어요. 몇번이고 물어보았는데 집에 갈때 청미를 본 아이가 없어요. 참 이상해요. 비가 많이 오고 그래서 집에 돌아가느라고 정신들이 없었나 봐요." "청미 부모 중 누가 학교에 찾아오나요?" "그야 물론 청미 어머니께서 찾아오시지요." "자주 찾아오는 편입니까?" "네, 자주 찾아오시는 편이에요. 한 달에 두어번은 찾아오세요. 다른 어머니에 비해 좀 극성인 편이에요. 청미를 무척이나 사랑하시니까 그러신 거겠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청미 엄마는 어제 마중을 나가지 않았다. 아무리 청미가 비옷에 우산을 가지고 갔다고 하지만 어린애가 비바람 속을 걸어오는데 마중을 나가지 않았다. 섹스 필름에 몰두하다 보니까 우산 들고 나가는것이 귀찮아졌거나 아니면 깜박 잊었겠지. "아시겠지만 학교에서 청미네 아파트까지는 걸어서 오분밖에 안 걸립니다. 만일 청미가 집으로 곧장 갔다면 그 오분 사이에 유괴당한 겁니다." 오분이라는 시간은 유괴를 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시간이다. 물건을 차에 싣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어린애라 하지만 사람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끌고 가는 것인데 그것을 오분 사이에 해치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박선희는 오분이라는 말에 새삼 놀라는 듯했다. 그녀로서는 그렇게 구체적인 시간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오분이라는 시간은 매우 짧죠.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목격자가 있으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 시간에는 학교에서 빠져 나오는 어린이들도 많았고 학교 앞에는 행인들도 많은 편 아닙니까?" "네, 그래요. 하지만 우리 반 아이들한테 물어 봤더니 청미를 본 아이가 없대요." "저희들이 학생들을 모아 놓고 물어 보면 안되겠습니까?" 박선생은 당연히 그래야 되겠지만 일단 교장 선생님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교장은 그것을 쾌히 허락해 주었다. 자기 학교학생이 유괴당한 마당에 그만한 편리쯤 봐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낯선 어른들이 들어서자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일제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 여러분……." 박 선생은 아이들의 주의를 자기 쪽으로 유도했다. "내 말 잘 들어야 해요. 여러분, 홍청미가 누구죠?" "내 짝이에요." 남자 아이가 한 손을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그 아이의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네, 청미는 우리 1학년 5반의 착한 어린이죠?" "네!" 아이들은 병아리 같은 입으로 일제히 대답했다. "청미는 여러분의 친구지요?" "네!" "그런데 청미가 오늘 학교에 안 나왔어요. 어제 집에 들어오지 않았대요. 청미가 어디 갔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어요. 청미 엄마 아빠는 지금 몹시 걱정하고 계셔요. 여러분, 우리 청미를 찾아야 할까요, 찾지 말아야 할까요?" "찾아야 해요!" 아이들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청미를 찾아야 하지요. 자, 그럼 지금부터 여기 계신 아저씨들의 말을 잘 듣고 바른 대로 대답해 주어야 해요. 여기 계신 아저씨들은 청미를 찾기 위해 애쓰시는 경찰 아저씨들이에요. 자, 우리 애쓰시는 아저씨들을 위해 박수 한번 쳐요." 아이들은 웃으며 힘껏 박수를 쳤다. 짓궂은 아이들은 책상을 두드리기까지 했다. 조태가 눈짓을 하자 허걸이 교단 위로 올라섰다. 수십 개의 천진스런 까만 눈동자들을 대하자 젊은 형사는 당황했다. 너무도 맑고 투명한 빛에 그는 자신의 오염된 육체가 발가벗겨지는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은 착한 어린이들이기 때문에 바른 대로 대답해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이 바른 대로 대답해 주면 우리는 청미를 빨리 찾을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여러분들이 숨기거나 틀리게 대답하면 청미를 찾기가 어려워집니다." "틀리게 대답하면 잡아가나요?" 청미의 짝이라는 아이가 당돌하게 물었다. 아이들은 긴장한 눈으로 형사를 바라보았다. 허걸은 대답하기가 난처했다. "1학년 5반에는 모두가 착한 어린이만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없을 거예요. 학생 이름은 뭐지요?" 청미의 짝은 발딱 일어섰다. 영양 과다로 몸뚱이가 비만해진 아이였다. "고릴라!"누군가가 소리치자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까르르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청미의 짝은 눈을부라리며 주먹을 흔들었다. 고릴라는 그의 별명인것 같았다. 박 선생이 나서서 아이들을 나무랐다. 장난해서는 안되며 진지하게 아저씨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주의를 주자 아이들은 잠잠해졌다. "학생 이름은 뭐지요?" "김철호입니다." 비만아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철호는 어제 집에 갈 때 청미하고 함께 가지 않았나요?" "아뇨." 아이는 단호하게 머리를 저었다. "그러면 함께 가지는 않았어도 청미가 집에 가는 것은 봤겠지요?" "네, 봤어요." 아이의 대답이 갑자기 작아졌다. 별로 자신이 없는듯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미는 누구와 함께 가던가요?" 거기서 비만아는 대답이 막혔다. "정말 봤나요?" 철호는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요." "아까는 봤다고 대답하지 않았나요?" 아이의 자세가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깨물었다. 얼굴이 붉어지면서 입술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잘 모르겠어요." 아이는 똑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네, 수고했어요. 자리에 앉아 주세요." 철호는 자리에 털썩 앉더니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분하다는 표정이었다. 시끄럽던 실내는 어느새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져 있었다. 아이들은 낯선 아저씨의 얼굴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허걸은 아이들을 찬찬히 살펴볼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여러분들 가운데 어제 학교 공부를 끝내고 집에 돌아갈 때 청미하고 함께 간 사람 있으면 손을 들어 보세요." 그는 똑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고 기다려 보았다.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아무도 손을 들려고 하지 않았다.허걸은 기대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도 없나요?" 그는 아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입을 다문 채 하나같이 빤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거짓의 그림자 같은 것은 비치지 않았다. "그럼 집에 갈 때 청미를 본 사람도 없나요?" 아이들은 역시 대답이 없다. 약속이나 한듯 입을 다물고 있다. 시야에 들어오는 수십 개의 얼굴들 가운데 얼핏 눈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는 지나치다가 그쪽을 주시했다. 여럿 가운데서 그 얼굴을 찾는 데는 육감같은 것이 필요했다. 그 얼굴은 다른 빛나는 얼굴들에 가리워 빛을 잃은채 가만히 날개를 접고 있었다. 남자아이였는데 유난히 작고 초라한 차림이었다. 얼굴은 까맣게 타 있었고 머리칼은 윤기를 잃어 누르스름했다. 얼른 보기에도 몹시 가난한 집 아이임을 알수 있었다. 그 아이에게서 취할 점이 있다면 유난히 큰 두 눈이었다. 다른 아이들의 눈이 천진스럽다면 그 아이의 눈은 지혜롭게 반짝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아이는 얼른 시선을 피했다. 다른 아이들과는 그 점에서 어쩐지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허걸은 그 아이로부터 얼른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청미와 제일 친한 친구는 누군가요?" "저요!" 한 아이가 손을 들자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나왔다. 그 아이들도 어제 집에 갈때 청미를 보지 못했다고 단언했다. 허걸은 얼굴이 까만 아이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 아이는 그의 시선을 피해 딴 곳을 바라보았다.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떠들거나 하지 않고 무성한 그늘에 묻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주눅이 들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혹시 어제 청미가 누구하고 함께 걸어가는 걸 본 사람 있나요?" 같은 내용의 물음을 조금씩 표현을 바꾸어 가며 되풀이해서 물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보았다고 말하는 어린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윽고 교단을 내려온 허걸은 담임 선생을 한쪽으로 불러 얼굴이 까만 어린이에 대해 물어 보았다. 박선생은 아이가 듣지 못하게 작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이 반에서 제일 가난한 집 아이예요. 불쌍한 아이예요. 하지만 공부는 제일 잘해요." "얼굴 표정이 어둡고 말이 통 없군요." "네, 본래 그래요. 통말이 없고 조용하기만 해요. 다른 애들에 비해 아주 어른스러워요. 그런데 왜 그러시는데요?" 박 선생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아, 아닙니다. 마음에 걸려서 좀 물어 본것뿐입니다." "그 애는 고아예요." "그래요?" "외할머니 밑에서 살고 있는데…… 그 할머니는 시장에서 콩나물 장사를 하고 있어요." 그 소년의 이름은 최민기라 했다. 민기의 아버지는 아이들 셋을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났다. 원래 소년의 아버지는 농부였는데 머슴살이 끝에 마련한 서너 마지기의 논밭을 가지고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 어느 날 죽기 아니면 살기로 논밭을 팔아 가지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어찌어찌해서 구청 청소부로 취직이 되었다. 청소부 생활 삼년째 접어든 어느 겨울날 새벽, 그는 거리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차에 치여 죽은 것인데 사고 차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유족들에게는 보상금 한푼 전해지지 않았다. 그때민기의 어머니는 임신 7개월의 몸이었다. 겨울이 다 갈 무렵 그녀는 아이를 낳았는데 딸이었다. 핏덩이를 어느 집 앞에 버리고 돌아온 그녀는 한달 가까이 실성해서 돌아다니다가 남편처럼 차에 깔려 죽었다. 시골에서 딸네 집에 얹혀 살던 민기의 외할머니는 서울로 올라와 자신의 불운을 탓하며 딸이 남기고 간 자식들을 거두어 콩나물 장사를 시작했다. "아들만 셋인데 민기가 막내예요." "그 아이를 숙직실로 좀 불러 주시겠습니까?" 숙직실로 가서 기다리고 있자 박선생이 최민기를 데리고 들어왔다. 아이는 큰 눈에 두려움을 가득 담고 있었다. 허걸은 아이의 앙상한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공부를 잘한다지?" "……." 소년의 큰 눈에 의혹의 빛이 서렸다. "이름이 뭐지?" "최민기예요." 소년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청미하고 친하니?" 소년은 얼른 대답하려 들지를 않았다. 허걸이 되풀이해서 묻자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박선생은 의외라는 듯 소년을 바라보았다. "정말 청미하고 친하니?" "네……." 형사들의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허걸은 자신의 육감이 적중한데 대해 내심 만족했다. "청미하고 어떻게 친하니?" 담임선생은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반복해서 물었다. 민기는 공부를 잘하지만 성격이 너무 내성적이고 생긴 것이나 차림새가 너무 초라했기 때문에 아이들의 업신여김을 받아 외토리로 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청미와 친하다니 담임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청미가 연필도 주고…… 지우개도 주고…… 색종이도 주고 그랬어요." "그래? 넌 무얼 줬지?" 민기는 고개를 힘없이 저었다. "음, 그래. 좋아. 너 청미 보고 싶겠구나?" 소년은 끄덕였다. "청미 어디 간 줄 모르니?"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대답하는 것이 아주 간단했다. 끄덕이거나 고개를 젓는 것으로 모든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어제 집에 갈때 청미를 봤지?" 소년은 움직이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팔짱을 낀채 벽에 기대 서서 묵묵히 구경만 하고 있던 조태의 조그만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청미를 봤지?" "민기야, 아저씨가 묻는 말에 바른 대로 대답해야지." 박선생이 재촉했다. 민기는 두려운 눈으로 아저씨들을 쳐다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허걸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여기서 실마리가 풀리려나 보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함께 집에 갔니?" 민기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어디서 청미를 봤지?" "저어기서요." 소년은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거긴 학교 후문이에요." 박선생이 옆에서 거들었다. 그들은 민기를 데리고 학교 후문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 박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 "민기는 집이 후문 쪽에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다녀요. 이 학교는 아파트 입주자 자녀들이 대부분이에요. 고급 맨션이기 때문에 대개 중류 이상이에요. 그 애들은 아파트가 정문 쪽에 있기 때문에 정문으로만 다녀요. 반면 가난한 아이들은 후문으로 다녀요. 그 애들은 아파트에 살지 않고 후문 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빈촌에 살고 있어요." 그러면서 박선생은 어제 학교가 파한 후 왜 청미가 후문 쪽에 있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윽고 그들은 학교 후문 쪽에 다다랐다. 그 일대는 신개발 지역이었기 때문에 후문 쪽으로는 아직 집들이 들어서 있지 않았다. 여기저기 아파트 신축 공사가 시작되고 있을 뿐으로, 멀리 보이는 마을까지 이어져 있는 길은 온통 수렁이었다. 학교의 앞과 뒤가 너무도 대조적인 것에 허걸은 놀랐다. "여기서 청미를 봤단 말이지?" 민기는 더욱 작게 오므라드는것 같았다. "청미 집은 저쪽인데 왜 여길 왔지?" 박선생이 따지듯 물었다. 소년은 겁먹은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내가 우산이 없으니까 여기까지 같이 온 거예요." "아, 그러니까 여기까지 우산을 쓰고 함께 왔다 이 말이지? 네가 우산이 없으니까 우산을 받쳐 준거구나?" 허걸은 반색을 하고 물었다. 소년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청미는 정말 착한 애구나. 그런데 아까 교실에서 물었을 때 왜 청미를 봤다는 말을 안 했지?" "……." 민기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두 손을 만지작거렸다. "왜 그랬지?" 박선생이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민기는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입을 한층 더 꼭 오므리는것 같았다. "누가 말하지 말라고 했니?" 소년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 허걸은 거기에 대한 대답을 듣는 것을 포기했다. 민기 자신도 그 이유를 뚜렷이 모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워낙 내성적이고 주눅이 들어 있는 판에 자기가 청미를 봤다고 말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받는 것을 자청할 리가 있겠는가. 그럴 바에는 언제나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는 편이 편하지 않겠는가. "어디서 헤어졌지?" "여기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