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7일 AM09:30 MBC라디오 여성시대 "윤병대의 맛있는 여행" (FM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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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인사)
MC> 절기상으로는 일년중 태양의 높이가 가장 높고, 낮의 길이가 제일 긴 하지를 앞둔 탓인지 벌써 낮이면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고, 왠만하면 짜증을 안내고 싶어도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훔쳐야 하니 슬슬 짜증이 나지요.....이럴 때 뭐 청량감 넘치는 그런 시원한 여행, 맛있는 여행 없을까요...?
윤> 이번 주말부터 장마가 올라 온다는 예보도 있고, 장마 때면 습도가 높아져 더욱 덥게 느껴지니, 이럴 때 일수록 정신건강에도 좋은 여행을 꼭 떠나 보시라고 권하고 싶은데, 세상사는 일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으니, 여행을 못 가시드라도 이 방송 들으시며 마음만이라도 즐거우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장마가 오기 전에 정말 기운 돋우어 주는 그런 맛있는 음식을 찾아 여수로 한 번 가 보겠습니다.
MC> 여수하면 지난번에 돌게장을 한 번 소개 해 주신적이 있는데 오늘은 또 어떤 맛있는 요리를 소개 해 주시려는지.....?
윤> 여수는 이 시간을 통해 돌게장 뿐만 아니라 상차림이 네 번이나 나온다는 회한정식도 소개 해 드린 적이 있는데요.
오늘은 여름이 오는 이맘때 몸 보신도 하실 겸, 또 이맘때가 되면 여수사람들 다 드신다는 "하모 유비끼"(ハモ湯引)를 소개 해 드릴까 합니다.
MC> 하모 유비끼....다소 생소한 이름인데요...그건 어떤 요리죠?
윤> 지금쯤 여수하면 고단백 저칼로리 건강식 하모(갯장어)가 제철을 만나 토실토실하게 물이 올라 있습니다.
하모(갯장어)가 무엇이냐는 분들을 위해 먼저 소개부터 해야겠습니다.
우리나라 바다에서 잡히는 장어는 네가지 종류로 구분됩니다.
먼저 양념장을 발라 살살 구워먹는 뱀장어(민물장어), 고소한 맛의 아나고(붕장어), 소주 안주의 일등공신 꼼장어(먹장어)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하모"입니다.
첫번째 뱀장어(장어, 민물장어)는 (일본어명 : 우나기うなぎ)로, 바다에서 부화해 담수인 강에서 성장, 다시 바다로 나가 알을 낳고 죽는 우리에게 "풍천장어"로 더 알려진 사실은 민물고기입니다.
두번째가 우리가 잘 아는 "붕장어"로 많은 이들이 "아나고"란 이름으로 부르는데, 뱀장어가 주로 담수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아나고(アナゴ, 穴子)'는 "바다의 뱀장어" 즉 바다에서 사는 장어로 인식된 이름이고, 우리말로는 바닷장어, 참장어, 붕장어'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세번째로 안주로 인기가 있는 "곰장어"는 "먹장어"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소개하는 일본이름 '하모(ハモ)'라고 불리는 "갯장어"는 지방에 따라 해장어(海長魚), 참장어로도 불리는데, 부산을 비롯한 남해안 지역 사람들은 일본 학명인 "하모"를 더 친숙하게 부릅니다.
하모 라는 이름은 이빨이 날카롭고 한 번 물었다 하면 잘 놓지 않는 습성 때문에 '물다'라는 일본말 '하무'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갯장어는 크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고 특히 앞쪽에는 휘어져 있는 큰 송곳니가 있습니다.
갯장어는 2m까지 자라는 대형 종이고, 이 갯장어는 충무 고성만∼서해 안마도 해역에서만 잡히는데다 조업 시기도 5∼9월로 한정돼 일제 시대에는 패류인 '새조개'와 함께 전략 품목으로 정해져 현지 경찰의 엄격한 통제 하에 일본으로 전량 수출하였고, 한국인은 구경조차 힘들었으며 특히 서민은 맛보기 힘든 고급 어종 이었습니다.
MC> 아~~ 그러니까 장어 종류군요. 그런데 장어하면 풍천장어가 유명하다고 소개 해 주신적이 있는데 이건 또 어떻게 요리 해 먹는 건가요?
윤> 장어는 미용식이자 건강식으로 이미 소문이 자자한 먹거리입니다.
민물장어와 먹장어는 혈액에 약간의 독성이 있어 구이 밖에는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모는 회와 데침회 두 가지 요리로 다 해먹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빨이 날카롭고 잔가시가 많아 전문 요리사가 아니면 쉽게 조리하기 어려워 일반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요리는 아닙니다.
하모는 그래서 전문 횟집을 찾아 맛을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하모는 장어류 특유의 스테미너 식품인 점이 가장 큰 매력인데, 그 힘이 얼마나 센지 한 번 요동치기 시작하면 잡고 있는 사람이 제대로 서 있지 못할 정도로 휘청거립니다.
무더운 여름날 허기졌을 때 보양식으로 그만 이라고 하지만 하모는 단순히 스테미너 식이라 해서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갯장어 요리의 본향(本鄕)이라고 불러질 만큼 갯장어 요리로 유명한 여수에서는 "‘하모 개시’라는 횟집 플랜카드를 보고 여름이 왔음을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름철이면 갯장어 전문식당 들이 성업하게 됩니다.
이런 하모가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 우리에게도 알려지기 시작 했는데, 일본 사람들은 복날이 되면 아침부터 일본의 장어 음식점 앞에 길게 줄을 설 정도이고 주로 간장 소스를 발라 구워 먹거나 구운 장어를 밥에 올려 덮밥을 만들어 먹습니다.
교토가 일본 최고의 미인들의 고장이 된 것도 하모 덕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후 하모의 명성이 점차 국내로 알려졌고, 덩달아 국내 수요도 늘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생산지인 여수와 고성지방을 중심으로 붐이 일었습니다.
부산은 그보다 조금 더 늦은 2000년대 초반 들어 대중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모는 이제 국내 수요도 맞추기가 힘들 정도가 됐다고 합니다.
최근 일본 수출량이 준 데다 미식가들 사 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우리에게 알려졌으니 이것이 겨우 10년 전의 일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19A50E4C18F23459)
MC> 그럼 하모는 지금 여수에 가면 어디서나 저렴하게 먹을 수 있나요?
윤> 하모를 처음 잡기 시작했다는 하모의 본고장 여수 "경도"는 여수 "국동항"에서 나룻배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나옵니다.
가는 길마저 어찌 이리 운치가 있을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이 돌산대교가 한눈에 보이는, 이 곳의 식당들은 하모 전문점답게 메뉴는 살짝 데쳐 먹는 식인 "하모 유비끼"와 '하모 회' 딱 두 가지입니다.
데침요리인 "유비끼(湯引)"는 13세기 칭기즈칸이 대륙을 평정하던 시절, 투구에 물을 끓이고 즉석에서 조달한 양고기와 야채를 익혀 먹던 야전형 요리에서 생겨났다고 전해지며 이를 일본에서 현대적 요리로 개선한 음식으로 샤브샤브(しやぶしやぶ)라고 하는데, 샤브샤브는 원래 '살짝살짝' 또는 '찰랑찰랑'이라는 뜻의 일본어 의태어에서 온 말로 대부분 파나 양파, 약재 등을 우린 육수에, 얇게 저민 쇠고기나 생선 등을 팔팔 끊인 육수에 살짝 데쳐 익히고 이를 소스에 찍어 상추쌈으로 먹는 방식의 음식을 말합니다.
특히 갯장어 샤브샤브인 유비끼는 건강 영양식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음식선호 추세가 더해지면서 여름의 강장음식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지고 있습니다.
유비끼에 쓰이는 육수는 장어 뼈와 머리, 인삼과 감초 등의 한약재를 넣고 10시간 이상 고아낸 것입니다.
여기에 살 전체에 섬세한 칼집을 넣어 포 뜬 하모를 살짝 익혀 먹으면 됩니다.
팔팔 끓인 육수에 하모 한 점을 넣어면 고기 색깔이 하얗게 변하면서 하얀 살점이 오그라들면서 하얀 꽃이 피듯 뭉실뭉실 떠오릅니다.
오그라드는데 그 모습이 아름다운 눈꽃을 닮았다. 호사꾼들은 이를 "하모꽃"이라 부르며 초고추장이나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먹습니다.
담백하게 즐기려면 그냥 소금에 살짝 찍어 먹으면 됩니다.
눈을 슬며시 감고 한점 한점 음미하는 그 맛은 "탱탱하면서도 부드러운 맛” 때문에 차마 눈을 뜨지 못할 정도입니다.
하모 유비끼는 담백하면서도 혀를 감치는 부드러움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맛입니다.
미식가들도 곧잘 여름철이면 식중독이나 비브리오균의 위험성 때문에 생선류를 금기시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펄펄 끊인 육수에 데쳐 먹는 ‘샤브샤브’만큼은 예외입니다.
더구나 근래 들어 생선 소비량이 크게 늘면서 여름철 생선 샤브샤브의 선호도는 갈수록 증가추세입니다.
하모는 다른 장어류와 달리 맛이 뛰어나 횟감으로도 단연인기고, 특히 일반 생선류들이 알을 품어 육질이 퍼석해진 7~8월에 육질이 더 쫄깃합니다.
게다가 100% 자연산인 점도 하모를 더 찾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유난히 가시가 많은 하모회는 아나고 보다는 부드러우면서도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데, 하모회를 야채에 쌈을 싸 먹거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무방하지만, 양파에 얹혀 먹는 전통 방식을 따른다면 더욱 맛있는 별미로 느껴질 것입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1EFA0E4C18F24888)
MC> 입에 침만 잔뜩 고이고...오늘도 여지없이 당하고 말았습니다...그 맛있는 갯장어 실컷 먹었으면 배도 부른데 뭘 보고 오면 좋을까요....?
윤> 이맘때 여행은 유명한 관광지를 찾기 보다는 오히려 찬찬히 조상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여행을 단순히, 다른 지방으로 가서 좋은 거 보고, 맛난 거 먹고, 재밋게 놀다 오는 정도의 “관광”으로 이해하고 있는 분이라면 별개의 문제이겠지만, 그 지방의 문화와 역사를 알고자 하고 현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지역 고유의 특색이 뭔지 경험해 보고싶어 하는 이들이라면 당연 그 지방의 역사유적지를 먼저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또 그런 부류의 여행자는 어느 정도 참 여행의 맛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고, 여행지에서 느끼는 지적욕구의 충만이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수에서는 충무공의 호국 혼이 머무는 진남관을 찾아 보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사실 진남관은 제가 꼭 가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우리나라 현존 목조 단층 건물중 그 규모가 가장 큰 것은 경복궁 "경회루"이고, 그 다음이 이 곳 "진남관" 그리고 그 다음이 "세병관"입니다.
진남관(鎭南館)은 여수시 군자동(君子洞)에 있는 조선시대의 전라좌수영 군사들의 의식을 치르기도 하고, 타지에서 손님들이 오면 연회를 하기도 했던 객사 건물로입니다.
지금의 진남관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 중심기지로서의 역사성과, 폭 14m, 길이 54.5m로, 그 명성에 걸맞게 2.4m 둘레의 기둥이 68개나 서 있는 현존하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대 규모입니다.
진남관은 "남쪽의 왜적을 진압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 곳은 원래 역대 임금의 궐패를 봉안하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날 망궐례를 지내던 곳입니다.
그런데 한양서 천리 길이 넘는 이 어촌에 무슨 귀한 손님이 오신다고 주위에 수십 여 동의 건물을 거느리고 궁궐을 방불케 하는 위용으로 그렇듯 크게 객사를 지었을까?
여수의 진남관은 시내에 있으면서도 멀리 여수 앞바다와 돌산대교까지 보이고 높은 곳에 위치해 탁 트인 느낌을 줍니다.
바다를 바라보는 누각 "망해루"를 지나면 진남관의 또 다른 입구가 나오고 이 가파른 계단을 지나면 드디어 진남관입니다.
우리나라 건물들의 지붕을 보면 참 신기한 것이 직선 속에 보이는 자연스런 곡선으로, 긴 팔작지붕 형태의 지붕에 민흘림 기둥이 단조롭긴 하지만 웅장한 건물 하나를 내 카메라로는 한 프레임에 도저히 담을 수 없을 만큼 길어, 그 때서야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지방 관아 건물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그런데 길지만 균형을 잡고 서있는 폼이 더 당당합니다.
나무를 그대로 살려 만든 기둥들과 서까래와 마룻바닥이 참 보기 좋고, 지금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그 빛이 바랬지만 무척 화려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무늬들과 놓치기 쉬운 구석구석에 새겨진 다양한 조각들이 이 건물을 만든 장인의 숨결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억지로 새로 덧칠을 칠하지 않은 그 모습이 더 자연스럽고 좋아, 마루에 걸터앉아 바다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노라니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잠시 대청마루에 누워 보니 내 귓가에 옛날 우리의 앞바다를 호령하든 장군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한참을 마루에 드러누워 시원한 바닷바람 맞으며 한 잠을 자며 꿈을 꾸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