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말하고 법을 말하면서 그 법정신에 용어를 가져다 씁니다.
대한민국의 정치이념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은? "홍익인간"이라고 버젓이 써놓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좌파 공산주의 유물사관이, 진보다고 해서 진보사관으로 온 역사교과서에 도배를 합니다.
이에 우파라고 하는 보수사관은 일제사관이라고 하는 반도사관, 식민사관을 전면에 내세워 신우파사관이라고 뻥을 깝니다.
도대체 이나라는 하나나라인지, 아니면 가미의 식민나라인지? 아니면 공산사회 민족진보의 나라인지?
읽어보다가, 역사교과서를 읽어보다가 역겨워서 던져버립니다.
유럽사관의 도입.. 민족이라는 말은 없어진다. 민족사관에 폐쇄된 민족은 역사에서 사라진다고 하는데...
http://kangch07.egloos.com/tag/%EC%A7%84%EB%B3%B4%EC%82%AC%EA%B4%80/page/1
에릭 홉스봄 (Eric Hobsbawm, 1917 ~ ), 20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맑스주의 역사가
영국의 대표적인 역사가의 한 사람인 에릭 홉스봄은 최근 민족주의 연구에서 매우 중요하다. 민족주의의 주류적 해석이라고 할 '근대주의적 해석'의 주도 인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민족이 근대 자본주의의 산물이고 민족이 민족주의를 만든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가 민족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민족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적 정체성은 대수로운 것이 아니며 쉽게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많은 민족주의는 반동적인 지배계급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시킨 것이므로 관제민족주의의 성격이 강하고 따라서 억압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이제 지구화 시대에 들어섰으므로 민족과 민족주의는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민족이 전근대 역사 속에서 발전해온 과정을 경시한다. 또 민족주의가 내부적 요인이 아니라 국가 사이의 경쟁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발전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더 나아가 민족주의가 선진국의 억압에 저항하는 힘으로서 제3세계인들에게 아직도 큰 도덕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무시한다. 전형적인 유럽중심주의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만이 아니다. 그 정도는 다르지만 서양 역사가들의 거의 대부분이 알게 모르게 유럽중심적인 역사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 사람들이 쓴 역사책에서 이런 점들을 주의하지 않으면 문제가 많이 생긴다. 그들의 잘못된 주장에 세뇌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 역사가들이 어떤 주장을 할 때 그 주장이 어떤 전제 위에 서 있는지, 그들의 주장 가운데 혹시 유럽중심주의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지나 않은지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이러한 유럽중심의 역사사관은 유신론적인 사관과 유물론적인 사관으로 진보사관에서는 민족주의의 사관은 관제민족주의(반동적인 지배계급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진보사관(진단학회) 등, 칼 마르크스의 역사관에 입각한 내용이 좌파라고 하고, 이는 민족주의 사관에 대한 유물론적 사관, 공산주의사관이 역사문제의 인식이라고 하여, 우리는 1980년대, 역사문제연구소의 연구결과, 이 연구회에 주 역사학자들을 "진보사관"론라고 합니다... 문제인식은 과연 정치권에서만 문제인가? 즉 반동적인 지배계급이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1980년대 이전에 전파한 역사관은 반동적인 지배계급의 역사논리이기에, 진보학파의 내용을 우리의 역사라고 해야 하는가? 과연 박헌영의 공산주의 역사관이 뭐 그리 대단하고 모택동의 공산주의 이론이 진보론인지? 알고 토론도 하지 않고, 지배와 피지배, 정권의 유지를 위하여 역사를 난도질하고 있습니다. 뉴라이트의 기본성향의 보수학자의 논리.. 진보사관에 대한 비판도 들어봐야 합니다. 과연 진보(공산 유물)사관의 역사교과서의 폐악은?
다른 부분은 사관의 차이로, 친일반공 대 친공반일의 차이라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두 사관은 전부 유럽중심사관의 민족주의 말살을 통한 이념과 사상의 극한대립으로 역사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수라고 하는 보수사관론자(식민사관, 반도사관 옹호)의 이야기에 중요한 것은, 바로, 고대사, 중세사도 인정하지 않고, 현근대사만이 우리역사의 참역사라고 하는 진보의 사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과연 진보사관만이 우리역사의 전부고 우리가 진보해 나아가야할 역사관인가?
분명한 것은, 두 넘다, 식민사관이고, 제국주의사관으로 전혀 중립이거나, 역사를 자주적으로 보지 않는, 비민족적인 사관으로 마치 비민족적인 사관이 "실증주의"사관이고, "유심, 유물" 등 유럽사관만이 우리를 지배한 역사논리라고 하지만, 아니지 않을까 하고 비판하는 재야사관에 대한 말도 하지 못하게 하는 탄압.. 강단사학(보수 및 진보 양측)의 논리는 비판을 수용은 커녕, 민족주의냐? 그거 없어져야 할 설화고 전설이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그거 부족국가의 한반도내의 작은 나라의 논리다.. 한자? 너희가 언제 문자(글자)가 있었는가? 그저 한자나 빌어쓰던 반노예상태의 민족일 뿐.. 일제 및 유럽(특히 독일과 러시아 유물론)에 의해 개화하여 역사를 피운 나라다.. 그러니,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 교육이 전부 외래어중심, 자신의 아들들은 외국어학교 졸업.. 개편할까 이제는?... 등등...
펀글: http://allinkorea.net/sub_read.html?uid=29078§ion=section14
이어 이계성 대표는 “전교조와 종북 교수가 쓴 한국사 교과서가 2300여개 고등학교에서 100% 채택했다. 김대중 노무현정권 장점만 부각하고 이승만 박정희 이명박정부의 단점만 부각된 교과서를 전국 고등학교에서 일제히 배우게 되면 아이들은 편향된 시각을 갖게 되고 민주당 홍보물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우리역사에서 100년 정도에 불과한 근현대사 부분을 한국사교과서에서는 절반 이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념·정파의 전쟁터가 된 것이다. 2010년까지 고교 신입생에게 지급된 근현대사 비중은 25% 정도였던 것이 금년부터 시행될 교과서에는 50~80%에 달한다고 한다. 교육부가 학생들의 수업 부담을 줄이겠다며 중학교에서 배운 근대 이전의 역사를 대폭 축소할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교육부에도 치밀한 기획와 장기적 계획으로 좌편향적 한국사 교육을 주도하는 좌익세력이 있어 보인다.
문제는 전교조와 종북교수(진보사관)의 교수가 쓴 교과서가 문제인가 아닌가가 아닙니다.
우리역사의 100년 정도에 불과한 근현대사가 우리 역사의 교과서에 절반이상으로 다루고 있다? 즉 개화후, 개화사상이 들어온 개신교의 도입과, 1920-30년대의 공산주의사상의 유입된 근현대사 100년이 교과서의 50-80%.. 그리고 조선시대까지만이 우리역사의 중심이고, 고려, 삼국시대는 모두 고대사로, 이는 인정할 것인가? 아니다.. 이병도의 식민사관인 반도사관, 고대사 불인정(단군조선), 그리고 삼국시대의 왜곡을 그대로 답습하여, 우리 역사의 최소 5000년의 역사가, 단 100년, 그리고 조금 더 가면, 600년의 훈민정음창제를 포함하여, 이씨조선의 창업이 우리나라의 민족국가역사의 시작이라고 하는 망발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잘못 알고 있는 역사문제연구소.. 좌편향이고 진보사학인 것은 좋지만,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두 부류가 전부 좌파고, 민족주의사관이나, 민족을 중심으로 한 역사에 있어서는 부정적이라는 사실.. 홍익인간, 그거 위서에 조금 나온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하나나라임을 인정할 수 없다.. 한은 하나의 준말로, 우리민족은 하나민족이고, 하나에서 나온 자손들이다. 그래서 하나민족이고 하나겨레고, 하나국가고 하나나라고, 하나둘셋하는 것이고, 천부경이 있고, 모든 정신, 언어, 문화는 삼신, 석삼극 삼극이나 하나인 삼일신의 삼위일체, 삼신일체 사고의 홍익의 세상, 홍익의 민주주의(모든 인간은 삼진을 가지고 태어난 평등한 사회관과 행복관, 그리고 정치관인, 삼신(삼선)사상) - 전부를 인정치 않습니다.
중국 모택동의 중국공산주의, 유심론이라고 하는 심이란? 덕이란, 형이상학적인 리론은 부정하고, 무위자연이다는 노자의 사상이 바로 공산주의와 같은 자연무위, 무위행정, 백성은 당이 하라는 것을 하면 되지 무슨 다른 자유는 인정치 않는다는 노자, 이론만은 중국공산당의 위대한 선비 이씨의 당나라 이론은 부추켜세우고 있습니다..
진보사관(역사문제연구소 및 좌편향 사관)은 이병도의 식민사관, 반도사관의 반대가 아니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식민사관으로 단, 유럽의 헤겔과 러시아 공산주의 유물사관에 기초한 것일 뿐, 우리 고대사를 인정하지 않는 반민족적인 사관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정치인이 자신은 반일친시민적인 정치이념을 표방한다고 해서, 민족주의사관이 아닙니다.
민족주의사관은 정치인이 만들어낸 반동적인 피지배계층 집권을 위해 만들어낸 사관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너무 황당하여, 있었던 역사도 없다고 하고, 실증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 난랑비서문의 삼국사기 진흥왕조의 이야기도 마치 사대한 주의다.. 현재도 군대에서는 오합지졸 병사를 당나라군이라고 하는데도, 우리는 마치 사대 중국적인 사관의 일색이었다고 하는데, 꼰대가 말한 주주사의 마루는 웃기지 마라, 공자꼰대가 말한 뜻도 다 있었던 내용이다, 유불도 이 삼도는 이미 우리 선사의 이야기에 나오고, 당시 화랑이던 난랑이 우리나라에는 신묘한 도가 있다. 이것이 풍류로, 선사(선인들의 역사)에 아주 자세히 기록되어 전수 되었다고 하는데, 전부, 이것은 옛날옛날 이야기로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에 있었더라고 하더라 하더라고 합니다...
진보는 무슨 개떡하고 비평합니다..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 고대사에 대한 진보건 보수건 모두 식민사관 병도사관의 강단학자일 뿐...
한국고대사 문제는 한국현대사 문제이다: 김 상태가 쓴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보고 듣고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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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한국고대사 문제는 한국현대사 문제이다: 김 상태가 쓴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보고 듣고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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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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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ipjc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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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 문제는 한국현대사 문제이다: 김 상태가 쓴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
나태영(한철연 회원)
한국고대사 문제는 한국현대사 문제이다
한국고대사는 말 그대로 한국고대사를 다루는 학문이다. 하지만 한국고대사를 다루는 사람은 현대인이다.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현대인들이 한국고대사를 주로 다룬다.이 책 글쓴이 김상태는 그래서 지금 한국고대사를 다루는 한국 사학자들 연구 방법을 냉혹하게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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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책보세, 2012
김상태는 실명 비판을 한다.
김상태는 강준만, 김갑수처럼 실명 비판 한다. 실명 비판 한다는 것은 나를 던지는 것이다. 용기가 없으면 실명 비판할 수 없다. 실명으로 칭찬하기는 쉽지만 실명으로 비판하기는 어렵다. 잘못하면 비판받은 사람한테서 고소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왕따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상태는 훌륭하다.
강준만, 김갑수, 김상태가 실명 비판하는 까닭은 공정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 이다. 우리 역사에서 90점 받아야 할 사람이 40점 받는 경우가 많다. 신채호 선생이 그렇다. 20점 받아야 할 사람이 90점 받는 경우가 많다. 안창호가 그렇다.
김상태는 대고조선을 주장하는 학자 신채호, 리지린, 윤내현, 복기대, 이덕일, 이희진,성삼제가 90점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고조선을 주장하는 이완용 양아들 이병도, 이병도 제자 이기백, 노태돈, 송호정, 오강원, 김정배, 이기동, 박노자가 마이너스 90점 받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박노자는 한국고대사 이야기 그만하면 좋겠다. 한국고대사 글 계속 쓰면 진보적인 글 쓰고 받은 점수 다 까먹는다. 진심으로 박노자한테 부탁한다.
그래도 이병도는 죽기 전에 정신 차렸다. 최태영 선생 덕에 정신 차렸다. 정신 차리고 대고조선을 주장하는 책을 최태영 선생과 함께 썼다. 그런데도 이병도 제자들은 아직도 얼이 빠져 있다. 너무 게으르다. 솔직하게 자신들 실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력 있는 사람들을 무시한다. 그들은 문헌사학을 포기했다. 오히려 문헌사학 대가 윤내현을 비난한다.
저들은 고조선 관련 자료가 적다고만 한탄한다. 하지만 고조선 관련 자료는 많다. 윤내현은 저들이 게으름 피울 때 다음과 같은 책에 흩어져 있는 고조선 관련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일을 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꽤어야 보배다‘ 윤내현은 서말이 안 되는 구슬을 꽤어 걸작품을 만들었다. 신채호 선생, 리지린한테 배우고 두 분을 뛰어넘는 일을 해냈다. 그런데도 저들은 윤내현이 이룬 것을 시기하고 질투만 한다. 윤내현을 한국 고대사학계에서 매장하려고 한다. 나는 저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진정 학자인가?
한국사료:『삼국사』 ,『삼국사기』, 『제왕운기』, 『고려사』, 『제왕운기』, 『고려사』, 『응제시주』, 『세종실록』〈지리지〉, 『동국통감』, 『성호사설』, 『동국통감』등등 〮… .중국사료:『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 『통전』, 『만주원류고』(서평자 주: 청나라 정사, 신채호 선생이 인정하는 책, 책 나온 지 300년 만에 공무원이 번역), 『요사』, 『대명일통지』, 『관자』, 『산해경』, 『수경주』, 『여씨춘추』, 『염철론』, 『전국책』, 『실원』등등〮… .(171쪽)
이기백은 비겁했다.
이기백은 『한국사 신론 』에서 자신이 식민사관 없애려고 애썼다고 말한다. 거짓이다.이기백이 한국사가 식민사관 벗어나게 한 것 별로 없다. 《한국사 시민강좌》 편집장 이기백은 《한국사 시민강좌》서영수, 이기동이 잘못을 지질러도 침묵했다. 이완용 양아들 이병도 제자답다. 이기백은 똑똑한 인간이다. 일본이 저지른 식민사관 한계를 알 것이다. 그런데도 못난 스승 이론을 고치려고 애쓰지 않았다.
‘이기백은 《한국사 시민강좌》 2집의 편집인이면서도 서영수의 거짓과 이기동의 빨갱이 때려잡기를 교정하거나 만류하지 않고 그대로 용인했다. 아니 편집인으로서 그들을 옹호하고 조장했다는 쪽이 더 맞아 보인다. 이기백 자신이 이미 윤내현 때려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316쪽)‘고상한 선비차림으로 행세해 온 이기백에 대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317쪽)
윤내현한테 몹쓸 짓한 이형구
‘1981년 필자가 귀국한 후 단국대학교 사학과 모 강사가 필자의 석사논문(주45)을 빌려간 다음 이를 윤내현에게 전달하였다고 했는데 아직까지도 반환되지 않았다. 윤내현의 글(<기자신고>, 1983)에는 필자의 석사논문과 일치하는 견해도 있으나 어디에도 전거가 보이지 않는다.’(486쪽, 이형구)’결국 이형구의 석사논문의 결론은 기자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만주와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이론으로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 이론의 방계 가운데 하나다. 따라서 이것은 기자가 만주와 한반도에 온 적이 없다는 윤내현의<기자신고>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이형구는 지금까지도 이 이론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견해가 윤내현과 일치했다는 말인가?그럼에도 이형구가 저런 주장을 떠들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인용한 자료 가운데 일부와 그에 대한 해석의 일부가 같다고 우기는 것이다.’(488쪽)
이이화는 한국고대사 공부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이이화는 기초적인 내용도 모른다. 성실성도 부족하다. 성삼제가 쓴 『고조선 사라진 역사』만 봤어도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타깝다. 사마천은 『사기』란 책에서 사기 쳤다. 고조선 한나라 전쟁에서 고조선이 이겼는데도 한나라가 이겼다고 사기를 쳤다.
’한나라는 조선을 침략하여 승리하고 나서 한사군을 세웠기 때문에 굳이 왕검성을 버리고 요동에 낙랑군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 -이이화, 《이야기 한국사》 1권, 266쪽(이 책 93쪽에서 다시 인용)’고조선과 한과의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데 한의 장군들이 작전 실패의 책임 등을 물어 연이어 처형당하고 있는 것이다.‘’위산의 군대는 황제 직할의 정예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위산은 패수를 건너보지도 못하고 회군한다.그러자 한 무제는 위산도 처형한다.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한 위산에 이어 한무제는 제남 태수 공손수를 파병한다. 고조선을 침공하라고 추가 파병된 공손수는 도리어 아군 장수인 누선장군을 체포한다. 보고를 받은 한 무제는 제나 태수 공손수도 처형한다.‘(『고조선 사라진 역사』, 성삼제, 121쪽)
독자 여러분한테 묻는다. 당신들이 한 무제이다. 한나라가 고조선한테 이겼다면 당신들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장군들 목을 치겠는가? 독자 여러분은 이 책에서 이 부분만 읽어도 이 책 산 보람을 느낄 것이다.
‘소고조선의 뼈대와 『삼국사기』불신론
송호정은 자신의 주저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36쪽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가 형성 과정을 중심 주제로 설정한 것은 고조선이 국가 형성과 동시에 곧바로 멸망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송호정이나 주류 고대사학계가 자신들의 입장을 이런 식으로 명확하게 밝히는 일은 거의 없다. 사실 이 문장도 상세히 읽어보지 않으면 여간해서는 찾아내기 어려운, 구석에 숨어 있는 문장이다.’ ‘절반은 실수이고 절반은 이 책의 원본인 자기 박사논문의 지도교수가 노태돈이기 때문으로 보인다.’(189쪽)
‘어쨌든 고조선이 국가 형성과 동시에 망해버렸다는 것은 과거 고조선이란 조그만 부락이 위만조선이 등장하는 서기전 2세기 무렵에야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 수준으로 발전했다가 곧바로 한나라에 망해버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서기전 2400년경에 건국되어 반만년 민족사를 이루어왔다는 고조선의 역사는 틀렸다는 얘기다. 이것은 소고조선론의 핵심 논리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하나만 덧붙이면’ ‘바로 한사군 이야기다.’
‘1. 고조선은 서기전 2세기 무렵 국가가 되었다가 곧바로 망해버린 나라다. 최소한 서기전 1500년 이전부터 국가를 이루었던 중국의 은(상)나라나 그 뒤를 이은 주나라 및 춘추전국시대의 나라들에 비추면 고조선은 그 기간 동안 줄곧 후진적인 부락 집단에 불과했다.
2. 그 작은 나라를 한나라가 정복하여 한사군을 설치했고 이 가운데 낙랑군은 고조선 지역에 오래 남아 400년간 지속되며 이후 한반도 국가와 사회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한사군 이야기다.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인데 이것도 꼭 기억해두어야 한다.
주류 고대사학계가 가진 모든 이론적 논증구조의 핵심은 한사군이다. 이것은 일제시대 일본인 관변사학자들이 만든 전통으로서 그 일본 식민사학과 이것을 그대로 이어받은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의 철의 법칙이다.
이들은 고대사 어느 시대를 말하든 일단 한사군, 특히 낙랑군의 위치와 그 낙랑군이 존재하던 시기를 기준으로 한다. 한사군의 위치를 기준으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 옥저 등의 위치를 비정하고 한사군이 존재하던 시기를 기준으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옥저등의 시기를 배정한다. 고조선이 미개한 부락집단으로 전락한 이유도 근본적으로 여기에 있다. 나아가 이들의 위치를 기준으로 만리장성의 위치를 설정하고 심지어 이들의 위치와 연대를 기준으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의 기록까지 마음대로 뜯어 고친다.’
‘둘째, 만일 한사군이 한반도 내부에 있었다는 이론이 무너지면 일단 고구려사를 연구한 송호정의 사부 노태돈의 평생 업적부터 휴지 조각이 된다. 한사군이 한반도 내부에 있었다고 보는 노태돈은 고구려 성립 시기부터 그 위치, 영역, 군사적, 정치적 활동 전체를 한반도 내부에 있는 한사군과의 관계를 통해 배치하고 정리하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일이 이쯤 되면 한반도 내부의 한사군을 전제로 한 기존의 신라사, 백제사, 가야사, 전체도 모두 무너진다. 다시 말해 이병도, 이기백, 김정배, 노태돈,송호정으로 이어지는 해방 이후 70년간의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의 고대사 이론 전체가 먼지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들이 윤내현 등장 이전에는 별로 신경도 안 쓰던 고조선사에 목숨 걸고 달려드는 실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디 이론만 무너지겠는가. 이론이 무너진 순간 그들의 수십 년간 나태와 권위주의와 학문적 무능력과 매국적 식민사학도 다 드러나게 된다. 국사 교과서에 이들의 수십 년 학문 내용의 오류와 본질이 기록되고 우리의 자녀와 후손들이 이 기록을 배운다고 생각해 보라. 이렇게 되면 한국 주류 고대사학계 전체는 밤잠을 못 이룰 것이다.
이들이 목숨을 걸고, 윤내현을 왕따시키며 심지어 역사학자로 역사 문헌을 포기하면서까지 한국 고대사를 왜곡하려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192쪽)
과연 진보사학자들은? 진정한 역사학자인지? 아니면 유물사관에 기대었다고 이들이 진정한 역사학자란 말인가 말인가?말인가 말이다...
http://tadream.tistory.com/5500
한국 고대사학계와 진보 사학자의 ‘추악한 혈맹’을 까발린다
진보사학과 식민사학의 혈맹, 강만길과 이이화에 대한 의구심, 진보진영의 진정한 위기….
이것은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의 필연적 결론 중 하나다. 필자가 이 책에서 누차 강조했듯 고조선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단순히 역사학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군부독재’ ‘매카시즘’ ‘민족주의’ ‘민주화운동’ ‘남북분단’ ‘골수주사파’를 포괄하는 한국 현대사 전체의 문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결단이 이이화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이이화는 이 결단을 회피하거나 모호하게 둘러댈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이는 한국의 진보가 이미 죽었다는 걸 의미한다. 이는 곧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의 모습으로 연결되는데 모두 알다시피 통진당 구당권파는 이런 결단을 잊어버린 지 오래된 진보의 추악하고 비통한 모습 중 하나다. 그런데 이이화마저도 그 결단을 모른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는 통합진보당 구당권파만이 아니라 한국의 모든 진보가 다 그렇다는 뜻이 되고 만다.
강만길 역시 대표적인 진보 원로사학자다. 또 재야의 이이화와 달리 강단의 진보사학을 대표한다. 강만길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데(위원회 후반부는 성대경 씨가 후임 위원장을 맡음), 이 위원회는 2009년 11월 문을 닫으면서 총 1006명의 친일인사 명단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명단에는 앞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들어 있는 이병도와 신석호가 빠져 있다.
이들은 해방 이후 한국 사학계를 주무른 거물들로 이병도는 서울대 인맥을, 신석호는 고대 인맥을 대표한다. 강만길은 고대 사학과를 졸업했고, 신석호는 그의 직계 스승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강만길의 주류 사학계 구출하기, 자기 스승과 인맥 비호하기라는 의구심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지나친 비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위원회에서 두 사람을 뺀 것은 자체 규정에 따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일반적으로 강만길의 학문적 업적과 그의 삶을 감안할 때 강만길을 그런 식으로 의심하기는 곤란하다. 더구나 강만길은 자신의 근대사 분야 연구업적인 《자본주의 맹아론》이 한국 사학계에서 식민사학의 극복을 위한 거의 유일한 연구라고 자부했다. 이는 그의 자서전 《역사가의 시간》에 잘 묘사되어 있다. 이런 그가 친일인사를 사적으로 비호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반일을 주장하는 진보사학.. 그런데 이병도와 신석호는 뺀다.. 왜냐고? 자신의 역사관에 지대한 영향을 주신 분이니까? 스승? 지랄 선생이지, 스승은? 스승은 스님이라고 하는데, 전혀 고대사를 인정도 하지 않으니, 식민사학이지 극복도 아니다. 개신교, 강단사학자들이 만든 진보사학. 과연 올바른 민족사관이나, 우리나라 "하나"사상이나 인정하고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역사는 오늘 다 평가하지 않습니다만, 이들은 식민사관에 물든 제국주의사관(일제사관과 러제사관)으로 우리나라 한국 사학계를 이끌어왔다고 하는 "강단사학자"들.. 이들이 말하는 진보는 믿을 수 없는 유럽중심의 역사관의 강제이식으로 일제사학에 유물사관까지 못을 박아, 빼도박도 못하는 정신의 말살입니다...
비록 재야에서 조용히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역사는 기원전 2333년 이전에 존재했고, 실제했다는 이병도의 마지막 가기전에 한 참회의 유언은 그냥 지나가다 개가 왈왈 짖는 정도의 똥개사관이런가 합니다...
믿음은 두번째 명으로 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으로 지명이요. 역사는 있었기에 우리의 DNA에 흐르고 있는 위대한 대웅의 자손이기에 한강의 기적은 물론 한반도의 기적, 대한의 당연한 웅심의 발로이니, 그 역사야말로 우리 대한(배달한국)의 위대한 역사정신입니다. 서서히 일어날 것이고, 깨어납니다.
아직도, 멋도 모르는 중생들에게 1천만 시민운동단체를 만들면, 시정장악, 권력의 쟁취가 가능하니, 얼쑤겠지만, 역사를 왜곡하고 거짓하는 자는 그 벌이 만세에 미치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거짓보다도 속임이 더 큰 죄라는 것은 알고 정치를 해야 합니다.
-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