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여행 정보
http://cafe.daum.net/jinaopen1/H8vK/2
■ 가는방법 이스탄불 국제 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며 2004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아시아나 항공과 터키항공이 직항으로 운항하고 있다.
현지어 : 이이 권네르
현지어 : 비르 쉐이 데에일
현지어 : 알라하으스마를라득
현지어 : 에벳
현지어 : 하유르
터키의 요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여 더욱 맛있는 요리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터키인들은 아침은 빵 두 조각에 수프와 차를 마시는 정도로 한다. 차는 홍차맛과 비슷하지만 끓이는 시간과 넣는 향료에 따라서 맛이 다르다. 빵은 에크멕과 피데라고 하는 두 종류의 빵이 있는데, 바게트 모양과 비슷한 피데가 식탁에 자주 오르는 편이다. 식당에서 에크멕이 자주 오른다. 점심은 육류에 샐러드를 곁들여서 먹는다. 저녁은 가족이 함께 음식을 먹는다. 음식은 수프, 육류 음식, 밥, 마카로니, 만두의 일종인 뵤렉을 먹고, 후식으로는 과일, 과자를 먹는다. 터키 요리는 향신료와 향미 야채가 많이 들어간다. 대표적인 소스는 토마토 소스인데 음식점에 가면 빨간 빛깔의 요리가 눈에 띄는데, 이것은 익힌 토마토를 넣고 끓인 양고기와 콩 요리이다. 딜이라는 향채나 고추를 넣어 매운맛을 내고, 고추는 양파와 함께 고기 요리에 넣는다. 흰색 치즈와 요구르트도 빠질 수 없는 향신료이다. 대표적인 요리는 케밥과 쿄프테로 케밥은 고기 산적의 일종으로 소금과 후춧가루를 사용한다. 섭조개 요리는 섭조개가 아닌 팔라프(밥에 고기, 새우를 넣고 버터로 볶은 음식)가 가득 들어 있으며 먹을 때 레몬 즙을 곁들여 먹는다.
터키의 공중전화는 연결이 나쁘기 때문에 전화를 사용할 때에는 수화기들어 신호음을 확인 한 후에 다이얼을 돌린다. 터키의 우체국을 PTT라고 하는 황색 간판으로 표시된다. PTT의 국제전화를 이용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전화를 사용할 있다. ▣ 주 터키 상주대사관 ▣ 긴급연락처 220V/50Hz 터키는 치안이 양호한 편으로 범죄가 자주 일어나지 않는 편이지만 여행자를 상대로하여 범죄가 급증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대도시인 이스탄불, 앙카라, 카파도키아, 이즈미르 등에서 수면제를 이용한 범죄 발생을 볼 수 있다. 친절하게 접근하여 수면제를 넣은 음료수를 넣은 후 관광객에게 마시게 한 후에 금품을 가져가는 수법이므로 호의적인 친절에 대하여 잘 살핀 후에 받아들인다. 터키 리라를 사용한다. 2004년 1월 현재 100터키 리라는 0.09원이다. 계산하기 쉽게 터키리라로 표시된 금액에서 0을 세개 빼면 비슷한 금액이다. 터키의 도시에서 대중교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시내버스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것과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 두가지가 있는데 요금은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개인회사의 버스는 안내원이 요금을 직접 받고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은 버스표를 요금함에 넣는다. 터키의 독특한 교통수단으로 '돌무시'라는 것이 있다. 대략 15명 내외가 탈수 있는 미니버스로 정류장이 정해져 있지는 않아 손님이 있으면 세우고 내려준다. 돌무시는 거리에 따라 요금을 다르게 받으며 일반 버스보다는 저렴하다. 터키 내에서 장거리로 이동할 때 국내선 외에 주로 이용되는 것이 시외 장거리 버스인데 유럽의 기차보다도 나은 수준이다. 버스는 냉난방 시설이 잘 되어 있으며 버스 회사에 따라 다양한 스케줄을 제공한다. 먼 거리를 이동하므로 시간과 숙박비를 절약하기 위해 야간 버스를 이용하는 배낭여행객이 많은 편이다. 전철은 이스탄불에만 있으며 노선이 다양하지못해 대부분의 여행객은 전철보다는 버스를 이용한다. 요금은 대중교통 수단 중 가장 저렴한 편에 들며 역 근처에서 토큰을 구입해서 이용한다. 터키의 택시는 현지의 대중 교통수단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면 이용해 볼 만하다. 하지만 길에서 택시를 잡기는 쉽지 않으며 관광지 주변에 서 있거나 혹은 숙소에서 전화로 불러서 이용한다. 택시와 돌무시 버스의 중간형태로 돌무시 택시가 있는데 대략 10명정도가 탑승 할 수 있으며 요금은 돌무시 버스보다 비싸고 택시보다는 저렴하다. 손님을 태울 때는 아무곳에서나 서지만 일단 손님을 태우면 목적지까지 직행한다. ■ 이스탄불 도시정보
# 교통편 아타투르크 공항의 터미널은 국내선과 국제선으로 나뉘어져 있다. 셔틀버스가 이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데 6시부터 22시까지 20분마다 운행되고 있으며 요금은 뮤료이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공항버스가 있어 이를 이용할 수 있는데, 시내 중심인 탁심까지 매일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또한 공항에서는 ESENLER OTOGAR 까지는 이용자가 있을 경우에는 비정규적으로 운행되며 AKMERKEZ까지는 오후 9시까지 매시정각 1시간 간격으로 버스가 있다. 구시가의 트램은 숙박 시설과 구경거리가 모여 있는 길케지 Sirdeci 에서 술탄아흐메트 Sultanahmet 을 거쳐 베야짓 Beyaxit 그리고 악사라이 Aksaray 구간은 잇는다. 트램은 매우 깨끗하고 편리하며 특히 술탄아흐메트에서 베야짓 구간의 디반 Divan Yolu 도로는 트램의 통과를 위해서 차량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신시가의 트램은 1량 또는 2량으로 베이오울루 Beyoglu에 있는 이스티크랄 Istidlal 도로를 통과하여 탁심 Taksim과 튜넬 Tunel지하철 구간을 운행하는데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 호텔과 각 공공기관, 회사가 밀집된 지역이며 차량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신시가의 탁심 Taksim, 구시가의 에미노뉴 eminonu시내 버스 터미널은 규모가 크고 승강장이 행선지 별로 되어있어 이용 하기가 편리하다. 신구시가를 오고 갈 경우 이용하면 편리하고 도로변 정류장 표시는 희색 팻말로 버스 정류장 이름이 쓰여져 있다. 그 옆의 행선지의 종점과 버스 번호가 쓰여진 빨간 팻말이 있으므로 알아 보기 쉽다.티켓은 정류소의 지정된 매표소에서 사는데 표를 팔지 않는 정류소도 있기때문에 필요한 만큼 미리 사두는 것도 좋다. 매표소에서는 버스 안내도 해준다. 버스 정면과 측면에 있는 표지판을 보면 노선을 알 수 있는데 정면에는 버스 노선의 발착점과 버스 번호가 있고 측변에는 그외 다른 경유지가 씌여 있다. 승차는 서스 앞쪽으로 타서 황색 박스에 티켓을 넣고, 내릴 경우엔 한국에서 처럼 버튼을 누르고 뒷문으로 내리면 된다. 안내방송이 없으므로 주변인에게 도움을 얻는것이 좋다. 신시가의 지하철은 1875년 완공된 유럽 최초의 지하철로 세계 최단거리이다. 파리 지하철의 시험 작품으로 만들어진 이 지하철은 갈라타 교 근처의 카라쾨이에서 트램의 종점인 튜넬 역가지 운행되면 불과 3분 정도가 걸린다. 구시가의 지하철은 앞으로 구시가와 신시가, 아시아 지구를 각각 연결해서 보다 편리한 교통수단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현재 구시가의 악사라이 Aksaray에서 오토가르 Otogar를 지나 바클쾨이 Baklkoy를 잇는 구간이 완공된 상태이며 동유럽이나 그리스, 터키의 각 지역에서 버스로 들어온 여행객이 쉽게 시내로 올수 있다. 오토가르는 악사라이 역에서 여섯 번째이며 중간에 지하철이 지상으로 나오기도 한다. 한 구간이 약 5분 거리이다. 유럽에서 기차로 이스탄불에 들어오게 되면 유럽 지구갈라타 Galata교 근처의 실케지 Sirkeci역에 도착한다. 그리고 아시아 쪽의 터키 내륙에서 올라왔다면 아시아 지구의 하이달파샤 Hydarpasa 역에 도착하게 된다. 택시는 다른 교통편에 비해 비싼편이다. 여행객을 상대로 팁을 요구한다든지 먼길로 돌아 우회 하거나 그 전의 미터기를 지우지 않는 운전수들도 있으므로 주의 하도록 하고 미터기를 꼭 확인 하도록 한다. 바다에 인접해 있는 이스탄불의 세 지역을 오가기 위해서는 페리가 중요한 몫을 하고있다. 구시가의 에미노뉴를 비롯한 신시가의 카라쾨이, 카바카쉬,아시아측의 위스큐다르 등 승선장은 아주 많다. 구시가의 에미노뉴 승선장 주변은 버스 터미널과 실케지 기차역을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아침, 저녁으로 터키의 유럽과 아시아 지구를 페리로 출퇴근 하는 직장인들고 크게 혼잡하며 자리 싸움도 심한 편이다. 여행자들은 주로 에미노뉴와 카라쾨이 승선장을 이용 하게 되는데 각각의 승선장에는 행선지가 명시되어 있으므로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보스포루스 해협 행과 프린스 제도 행의 관광여객선을 이용한 이스탄불 여행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구분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1023년까지 1600년 동안 수도였던 이스탄불에는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오스만 제국시대에 이르는 다수의 역사유적이 있다. 게다가 이들은 서로 건축양식이나 종교등도 달라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어 많은 여행객이 찾고 있는 곳이다. 이스탄불을 효과적으로 여행하려면 무엇보다도 건축이나 종교, 역사에 대한 지식기반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이해가 쉬우며, 볼 것들이 많으므로 시간적으로도 충분한 것이 좋다.
▣ 여행상식 1 ▣ 여행상식 2 ▣ 즐길거리/활동거리 1 ▣ 즐길거리/활동거리 2 ▣ 즐길거리/활동거리 3 ▣ 즐길거리/활동거리 4
■ 터키 수도 앙카라 도시정보
# 교통편 2004년 현재 우리나라에서 앙카라까지 직항으로 운항하는 항공편은 없다. 대부분 이스탄불을 경유하는 경우가 많고 그 외 유럽의 대도시를 이용하여 앙카라에 도착한다. 교통량이 많은 편인 앙카라에서는 시내 버스의 통행이 빈번하게 이루어 지고 있어 편리하게 이용가능하다. 청색의 버스는 차내에서 티켓도 판매하고 있지만 적색의 버스는 차내에서 티켓을 판매하지 않으므로 미리 구입해야한다. 만약 앙카라 국제공항으로 가야 한다면 철도역 오른편에 있는 하바쉬Havas공항행 버스를 타면 된다. 시외버스는 앙카라로 향하는 도시중 이스탄불에서는 6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하루 평균 50여대의 교통편이 지원되고 있다. 에게 해의 미즈미르에서는 9시간 정도가 소요되고 하루 20여편의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안탈리아는 10시간 정도이며 이외의 도시와도 연결이 용이하게 버스노선이 구축되어 있다. 터키의 기차시설은 버스에 비해 낙후되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앙카라와 이스탄불 구간의 기차는 시설이 좋다.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앙카라의 곳곳에는 역사적 숨결이 묻어 있는 곳이 많다. 앙카라의 관광은 울루스 지역에서 시작하여 아타 투르크 동상이 있는 삼거리에서 로마 유적, 성과 박물관을 보고 오페라 지역으로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이다. 시가 부분은 앙카라의 성의 요새를 중심으로 넓은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뉘고 있으며,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유서깊은 도시이니 만큼 로마 시대 이후 최고의 번영을 누렸던 시대의 유적들을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앙카라의 관광안내소Gazi Mustafa Kemal Bulvar는 기차역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 길거리/활동거리 1 ▣ 즐길거리/활동거리 2 ▣ 즐길거리/활동거리 3 ▣ 즐길거리/활동거리 4
* 개장시간 : 일요일과 종교적 휴일에는 폐점 .
궁은 세부분으로 나뉘는 데 정치와 행정이 이루어졌던 공공빌딩과 왕좌가 있는 홀이 가운데 있고 홀 옆으로 하렘이 있다. 궁에는 대략 250개가 넘는 방과 43개의 홀이 있으며 각 방의 실내장식을 각각 다른 분위기로 꾸미는 화려함을 보인다. 탁트인 홀에 매달린 수정 샹들리에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받은 헌상품으로 무게는 4.5톤이며 750개의 촛불 챔프가 켜져 있다. 궁과 궁의 각방을 꾸미는데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해도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사실 이 궁은 오스만제국의 약화가 가속화 되어가는 시점에 서구화를 지향하고 국력 쇄신을 도모할 목적으로, 보스포러스 해변가에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해 초호화판으로 건립 되었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막대한 건축비는 왕궁 재정을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오스만 제국의 멸망을 초래하였다. 궁전 내의 시계는 9시 5분을 가리키고 있는데 공화제가 확립된 후 초대 대통령인 아타투르크도 이곳을 관저로 사용하다가 1938년 11월 10일 집무중에 죽었기 때문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서이다.
블루 모스크를 나오면 굉장히 넓은 술탄아흐케트 광장이 있다. 잘 조성된 평온한 이 광장은 여행객과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서쪽은 광장은 로마시대의 대 경기장 터였다.
사원의 내부에는 비잔틴 문화를 상징하는 다수의 모자이크 벽화가 남아 있는데 그리스도를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의 모자이크 벽화나 휴스티아누스 대제가 화려하게 묘사된 그리스도 좌상은 특히 유명하다.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 벽화는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 오스만터키에 의해 함락되면서 모두 옻칠로 가려지게 되었다. 여기에 첨탑과 미흐라브(Mihrab, 메카의 방향으로 움풀 패인 곳)가 더해져 이슬람교 사원으로 변모한 것이다. 1931년 미국 고고학 조사단에 의해 숨겨진 벽 안의 모자이크화가 발견된 후 성 소피아 사원은 비잔틴 시대의 최대 유적으로 또 다시 각광으로 받고 있다.
궁전은 그 자체가 하나의 마을이다. 의사당이나 술탄의 거실은 물론 왕실의 여인들이 거처했던 하렘은 더욱 흥미롭다. 제 2정원의 오른쪽에는 굴뚝이 딸린 큰 부엌이 자리잡고 있는데 천장이 돔으로 된 10개의 큰 방과 28개의 굴뚝이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수많은 사람들이 생활 했음을 알수 있다. 골든 혼에서 바라보는 톱카프 궁전은 마치 한폭의 그림이다. 그러나 그 장엄한 아름다움 외에도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군사상 최적의 요새임을 알수 있다. 이곳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언덕 끝에 동서교역의 접점인 보스포루스 해협을 향해 대포를 포진해 놓았던 군사요지이다. 이때문에 "Top대포, Kap문, Palace 궁전"에서 톱카프 궁전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최고 전성기에는 4~6000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생활했던 만큼 궁전 자체가 하나의 마을 이었을 정도로 궁전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아직도 궁전을 복구중으로 미공개된 부분이 많다. 현재 각종 유물과 보물은 4개의 방으로 나뉘어 전시 되고 있다. 총 몇점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 따라서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이 궁전에만 하루 정도 투자하는 것이 좋다. 아야소피아 Ayasofya 성당의 뒤편으로 돌아가면 곧게 뻗은 길 끝에 있는 궁전 입구인 '제국의 문'의 웅대함이 멀리서도 느겨진다. 제국의 문을 들어서면 지금은 주차장으로 쓰이는 제 1정원이 나온다. 우측의 매표소에서 티켓을 구입해 들어가면 바로 제 2정원의 잘 다듬어진 화단과 푸른 잔디가 있다. 정원을에워산 궁전 내부의 건물들은 각기 독특하고 오른쪽 끝에 또 다른 매표소가 있는 곳이 바로 하렘이다. 하렘은 독립괸 박물관으로 취급되고 있으므로 별도의 티켓을 구입해야만 입장이 가능하다. * 개장시간 : 화요일 휴관
암굴교회라 불리는 이곳의 교회들은 애초의 목적인 수도외 기도를 위해 출입구와 통풍, 자연광을 위한 작은 창문 정도를 제외하고는 외부에서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맨 처음에는 1년 365일을 뜻하는 365개의 교회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그보다 적고 관광객에게는 약 30여개가 개방되고 있다. 몇개의 유명한 교회들이 있는데 괴뢰메에서 가장 크고 벽에 프레스코 벽화가 가장 잘 보존된 '토칼르 교회'와 수도원 시설을 비교적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카란륵 교회'등이 있다. 그 외에도 성 바르바라 교회, 뱀이 있는 교회, 차르클루 교회등이 있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그 기원은 정확하지 않지만 주거인구가 늘면서 그 규모는 차츰 커졌고 이들이 지하에 도시를 만들게 된 이유는 종교적인 탄압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하도시는 맨처음 길 잃은 양을 찾으러 동굴로 들어간 양치기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현재까지 30여개의 지하도시가 발견되었다. 현재 지하도시는 네브쉐히르에서 약 30km정도 떨어진 데린쿠유와 카이막클르에서 볼 수 있다. 지하도시는 지상으로 통하는 몇개의 출입구를 제외하고는 지상에서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며 그 출입구 조차도 우물이나 동굴 같은 것으로 위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출입구 안으로는 커다란 돌문의 특수 장치가 있어 안에서는 열고 닫기가 손쉽지만 잠긴 상태에서는 밖에서 여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것으로 보아 지하도시는 방어에 최선을 다 한 것으로 보인다. 지하도시의 규모는 상당히 방대하고 복잡해서 현재까지도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으며 따라서 완전히 개방된 것은 아니다. 세월이 흘러 인구가 늘어나면서 계속해서 도시를 늘려가 지하 몇 층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1964년 일반에게 공개된 카이마크르 지하도시는 현재 지하 4층 까지만 개방되어 있다. 약 2만명 정도가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곳은 위에서 보내는 신호가 지차 끝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만든 울림통이나 환기구 등이 잘 갖춰져있다. 입구로 들어서면 여러 갈래의 통로가 나 있다. 지하도시에서 길을 잃으면 밖으로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입구에서부터 빨단 카이마크르에서 남서쪽으로 약 10킬로미터 거리에는 이보다 더 큰 규모의 지하도시를 건설했던 사람들은 이슬람교가 유세했던 당시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카파도키아는 터키의 지리적 중심에 위치하면서도 고난의 역사가 많이 남아 있는 유적기의 고장이기도 하다. 원뿔형 바위가 넓게 분포하고 있는 비경 속에는 초기 기독교 역사의 슬픈 수도자들의 고난이 서려 있고 이들이 고행을 했던 장소들은 누구나 쉽게 볼 수 없었던 계곡과 깊은 산중의 골짜기들이었다. 지금은 이슬람을 신봉하는 사람들과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지만 오래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조교에 대한 숭고한 사랑을 후세의 사람들은 성지를 찾아다니며 느끼고 있다. 터키가 기독교인들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는 것도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숭고한 신앙심으로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의 고통스런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지하도시는 가이드의 안내로 돌아볼 수 있는데 매우 복잡하고 미로형의 구조를 띠고 있어서 자칫 길을 잃기 쉽다. 때문에 가이드가 안내하는 경로 이외에는 입장할 수 없는 곳이 많다. 지하도시의 각 장소들은 지금도 불을 피운 흔적이나 선반 모양의 침대들이 있어 당시의 용도를 알수 있다.
온천수가 흘러 나오는 지역 이외에도 곳곳에 고대 유적들이 들어서 있어 원형극장이나 신전등 당시의 건축물도 구경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