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 이상훈 : 숨어있던 역사를 발견하는 소설적 재미

[정병철]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

-이상훈 장편소설/파람북 2021년판

숨어있던 역사를 발견하는 소설적 재미

이 책은 재미가 있다. 재미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때문이다.

1 신라 삼국통일의 역사적 재조명

오랜 기간 신라는 이 땅에서 외세를 이용하여 자국의 영토 확장을 꾀하다 되려 이 민족의 운명을 만주를 비롯한 광활한 북방에서 한반도 안으로 갇히게 한 동시에 하마터면 그들이 끌어들인 외세에 의해 그 자신마저 복속당할 뻔 했던(혹은 그 뿌리마저 사라질 뻔 했던) 반민족적인 국가로 치부되어 왔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러한 신라를 당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이었던 당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백제와 고구려에 세워졌던 웅진도독부와 안동도호부를 몰아내고 기벌포 전투를 마지막으로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완전히 쫓아내는 성과를 이루었다며 만일 신라가 나당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면 이 민족의 운명은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며 그 의미를 부각시켰다.

2 세계 최대 제국이었던 페르시아와 신라의 관계

경주에서 한 번씩 페르시아와 관련된 유적과 유물이 나왔지만 뒷받침할 충분한 자료가 없어 그 관계 규명이 쉽지 않던 터에 결정적인 자료가 영국 국립박물관에서 발견되었다.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기록한 페르시아의 대서사시 <쿠쉬나메>가 그것이다. 참고로 <쿠쉬나메>에서 신라는 ‘바실라’로 표현되어 나온다. 그리고 또 하나는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서 발견된 옛 소그드 왕국의 궁전 벽화에 나타난 전형적인 동이족 복장의 두 사신. 두 사신은 신라인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하며 그 사신들의 출현으로 당시 신라는 페르시아 지역까지 교류를 넓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 소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신라 원성왕의 묘를 지키는 서역인 무인상,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 등을 역사적 시간대를 아우르며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여 페르시아와 신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규명해내려 하고 있다.

3 성경 속의 역사

성경에서 신약은 기독교에서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언행의 기록이고 구약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로 오기 전까지 유대 민족의 탄생과 그 계보를 이어오는 과정을 기록한 경전이다.

흔히 경전은 그 성격상 신성시되는 경향이 있어 성경 또한 현실과 동떨어진 신화적인 내용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그래서 흔히 경전 내용의 사실여부를 놓고 믿음의 확인으로까지 확대되는 복잡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 성경 속에서 작가는 페르시아 과거의 찬란한 역사적 발자취를 찾아내어 역사적 현실로 옮겨온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신비한 종교의 세계와 역사적 현실 사이를 즐겁고 재미난 경험으로 오가게 된다. 인간처럼 살아 숨쉬기도 하는 종교의 세계 속으로 걸어들어 가는 것이다.

4 역사와 종교의 필연적 만남, 그리고 진리와 질서

페르시아는 원래 불교의 나라였다고 한다. 그 불교의 나라 페르시아가 망하면서 당시 그리스 영향을 받은 간다라를 통해 불교가 한반도까지 유입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사산조 페르시아가 들어서게 되면서 조로아스터교가 생겨났는데 이는 인류 최초 유일신 신앙으로 그 후의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들의 신앙은 현재도 세계 문명을 형성하는 거대 종교다.

지금은 과학의 발전으로 마치 과학이 진리의 최선두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인류 문명의 태동기에는 조금 전에 언급된 불교, 조로아스터교, 기독교 등의 종교가 세계와 세상을 이루는 질서의 진리로 숭앙되며 지상의 인류를 지배해 왔다.

이 작품에는 그런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과 그 역할을 잠시잠깐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5 화려한 역사 속 인물의 등장과 거대한 문명적 배경

전체 스토리의 주인공은 당연히 소설작품 제목에 나오는 신라 공주와 페르시아 왕자다. 그러나 이들은 가공의 인물일 경우가 짙다. 페르시아가 망하면서 왕국의 부흥을 책임지게 된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과 신라에 망명해서 만난 신라 공주 프라랑,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 페리둔. 소설이고 역사적 자료가 없어 픽션일 가능성이 짙지만 모를 일이다. 언젠가 자료가 발굴되어 역사 속에서 현재로 걸어나올 지도.

이들의 인연과 관련해서 신라 고승 원효대사와 요석공주가 등장한다. 이것은 불교가 페르시아에서 건너왔기 때문인데, 줄지어 의상 대사와 서역까지 종교적 순례의 길을 걸었던 <왕오천축국전>의 저자 혜초 스님도 등장한다.

신라 화랑 죽지랑도 등장하는데 작가는 죽지랑과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이 서역에 친선대사, 즉 사신으로 죽지랑이 왔으며 둘은 그 당시 조우한 것으로 작품 서두를 시작하며 그 후 신라로 망명한 후에도 그 관계를 펼쳐나간다.

동서양의 제국간-당나라와 이슬람제국-에 문명의 주도권을 놓고 한 판 승부처가 된 중앙 아시아의 ‘탈라스 전투’에서는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군 ‘고선지’가 등장하고, 현종과 양귀비의 당나라에 반역의 기치를 내건 ‘안녹산의 난’의 안녹산도 등장하는데 안녹산은 페르시아 유민으로서, 당시 페르시아를 당나라에서는 안식국으로 불러 페르시아 사람들은 대개 ‘안’씨 성을 썼다고 한다.

페르시아 제국의 웅대함을 조명하기 위해 그리스를 침공했던 페르시아 대왕 ‘크세르크세스 2세’도 등장하며, 신라의 문무왕부터 시작해서 원성왕까지 역대 신라의 왕들과 당나라 측천무후,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 칭기스칸 등 역사적으로 이름난 인물들이 두루 등장한다. 그리스, 무하마드의 이슬람, 이집트. 아시리아, 오스만 터어키 등 유럽에서 중앙 아시아를 거쳐 동아시아까지 거대한 공간과 시간적 스케일 속에서 소설적 작품 배경을 이루고 있다

일상 속에서 바쁘게 쫓기듯이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가만히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해주고 아울러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202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