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청 앞 광장. 시청 건물을 배경으로 한 거대한 걸개그림. 그 위에 스크린을 겸하여 쓸 흰 천 덧씌워져 있다. 이 스크린 위에 대통령의 축하메시지를 담은 동영상이 담기기도 하고 항쟁 당시의 사실을 담은 기록 사진 등이 투사될 수 있다. 걸개그림의 이미지는 넉넉한 생명력의 들판 모습. 걸개그림 양쪽에 전봉준을 비롯한 세 장두의 영정이 놓이고, 만장과 깃발이 삼면 객석의 뒤를 장식해서 판의 울타리 같은 느낌을 준다. 배우들은 걸개그림 뒤를 이용해 옷을 갈아입거나 대소도구를 보관하되, 등퇴장로는 객석 사이로 난 사방의 길목을 다 쓴다.
등장인물
농민군들, 아낙들, 장두들과 전봉준 등은 배우들이 직접 연기하고, 조병갑, 김학진, 지주들, 관군, 포졸 및 일본군 등은 크고 작은 인형을 이용해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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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마당
관객들 몰려드는 사이에 적당한 노래 공연(노래패 별도 섭외), 대중을 향한 선무방송과 어우러져 펼쳐진다.
이 때 배우들은 무대를 꾸미거나 몸을 풀고 소품을 나르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먼저 몰려든 관객들과 난장을 튼다. 장고를 묶어주거나, 함께 몸을 풀고 죽창을 깍고 나르며 걸개그림을 거는 일 등이 모두 관객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관객들이 어느 정도 모이면, 배우들 나서서 자리를 정돈하고 공연에 관한 간단한 안내 및 주의사항 등을 일러준다.
판이 대충 정리되고 해가 어슴프레 넘어가면 본마당을 연다.
서장 / 귀베인 혼령들의 춤
대나무 몇 그루 판에 서 있다. 그밖의 대소도구들 몇이 무작위하게 널린 가운데 피묻은 흰옷들이 걸려 있다. 애절한 해금소리 들려오는 가운데 귀베인 혼령들 꿈을 꾸듯 등장한다. 남자들은 타이트팬츠만 걸치고 있고, 여자들 또한 비슷한 느낌의 상하의를 걸치고 있다. 얼굴엔 한쪽 귀가 없는 가면을 썼다. 혼령들, 서서히 흰옷을 입는다. 옷을 다 입자마자 파도가 밀려드는 듯한 음악 터져나오고 현해탄을 넘어오는 혼령들의 춤 이어진다.
첫째 마당 / 하늘 같은 나락, 하늘 같은 자식들-.
혼령들의 춤이 끝난 뒤 해금 연주 아련히 이어지는 가운데 노파와 아이, 자갈밭을 갈아 엎으며 개간하는 힘겨운 노동의 동작-.
아이 : 할머니, 이 자갈투성이 땅을 멋헐라고 이릏게 파싼대요? 저 동네 앞바래기 존 땅도 많은디-.
노파 : 아이고 우리 새끼야. 그게 어디 우리 땅이디야? 해마다 근근이 남의 땅 부쳐먹고 사는 거 하도 징해서 인자 땅임자 눈치 안 보고 살어 볼라고 이 짓 허는 거 아니여? 너도 심껏 파 어서. 인자 이 놈만 잘 맹글어노먼 우리도 우리 땅이 생긴다 그말잉개 잉?
아이 : 할머니 글먼 여기다 농사지어갖고는 도지를 한 푼도 안 주고 다 우리가 그냥 먹는 거여?
노파 : 말허먼 멋헐 것이냐? 도지 안 주는 것은 물론이고, 저 균전사란 양반이 묵정밭 개간히서 농사 지먼 그 땅에 대히서는 나라에서도 세미를 면히준다고 힜당개-.
아이 : 야 진짜 우리 땅요? 할머니-. 글먼 나도 인자부텀 열심히 히야지. 참 할머니 나도 땅 좀 있 으먼 진짜 좋겄는디, 내가 일군 디는 내 땅으로 안 히 주실랑개라우?
노파 : 그리라 근디 너 그거 니 땅 맨들어갖고 멋헐라고 그냐?
아이 : 아그들이 그는디 감옥간 아부지도 돈 이백 냥만 있으먼 그냥 나오실 수 있다고 글던디 이 놈 맹글어서 농사지먼---안 될랑가요. 아녀라우. 아니랑개라우 할머니? 나도 부자 한 번 되야 볼라 고라우. 약속만 단단히 히 주시랑개요?
노파 : 느아부지-. 아부지 많이 보고 싶지야? (갑자기) 아가 을남아. 얼름 여기 좀 와 봐라-. 저기 저 거 아지랑이 맞쟈? 저기 산밑에 말여
아이 : 맞다 야 겁나게 크게 지었네-. 할머니 인자 진짜 봄인개벼-. 글지요?
배우들, 장단에 맞춰 힘차게 뛰어들어오며 봄을 맞는 환희, 물줄기를 가로막아 보를 막는 노동, 씨뿌리고 가꾸는 기쁨 등을 춤으로 표현한다. 장단을 바꿔가며 농사춤으로 진행되는 사이에 논의 나락과 논둑의 아이들이 함께 자란다. 마침내 가을이 되어 나락들을 베어 거둬들이는 동작을 하는 어른들 사이로 다 자란 아이들도 흥겹게 뛰어 논다. 판의 가운데에 나락 가마니가 쌓이고 그를 둘러싸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습-.
아낙 1 : 아이고 되다. 먼 노므 나락이 그냥 눈 깜짝헐 새 쑥쑥 커 버린다냐?
아낙 3 : 참말로 좋네 잉. 사방이다 낫가리 죽 쌓아 놓고 봉개 밥 안 먹어도 배가 지절로 불 르네요 잉?
아낙 4 : 오랜만에 일겉은 일 좀 힜더만 막걸리 한 사발 생각이 간절허네 그랴? 안 그려들?
아낙 6 : 쌀이다. 아가 나락이여. 인자 울애기 살었고만, 아가 얼름얼름 쌀밥 히 먹고 기운 채리자 잉?
아낙 2 : 하이고 되다. 새참 먹다가 그냥 놀래서 하도 정신 없이 비었더니 오매 가슴 뛰는 것좀 봐-. 여기 여-.
아낙 3 : 아 저 노므 예펜네가 암만 사내들 씨가 말러붙은 동네래도 글지 어디서 가슴패기를 떠들어감서 난리댜 난리가?
아낙 4 : 아 누가 아니랴? 을남이만 히도 벌써 사내 티가 슬슬 날라고 허는고만-.
아낙 7 : 거 씨잘디기 없는 소리들 구만 허고 일루 와서 이 노므 나락 좀 자세허니 들여다 보더라고. 베렸네 베렸어. 올농사도 베렸당개.
아낙 5 : 오매오매 또 반절은 쭉젱이 나겄고만 잉? 못살어 참말로
아낙 6 : 어디, 어디 어떤 논이서 나온 놈이 그렇대요? 쭉젱이가 반절이네 에이 또 쭉젱이가 반절여-. 쭉젱이가 반절이다아-.
아낙 4 : 어디 어디 헐 것도 없어. 다 곯았네 다 곯았어. 아이고 이게 벌써 몇 년 째냐고?
아낙 2 : 이게 다 사내가 없는 농사들을 져 놔서 근당개-. 아 사내 없이 먼 생산인들 지대로 될 것이냐고?
아낙 3 : 큰일이네 큰일여-. 아 일 열심히 허먼 하늘이 다 알어서 도와준다고 그맀쌌드만 다 말짱 헛말여-. 어무니, 이쪽치도 다 못쓰겄는디요.
아낙 1 : 이게 다 나랏님인지 나릿님인지 거 백성들 귀헌 중 몰르고 지 뱃속만 채울라고 눈 알이 삘개갖고 설치는 놈덜 때미 재수가 없어서 그런겨.
아낙 5 : 그나지나 아까 새참먹다 남은 밥좀 없는가? 어째 이릏게 별시럽게도 허기가 자꾸 지까 잉?
아낙 2 : 오매 이상허네. 거 서방도 없이 먼 일 저질러놨간디 배가 고파? 멀쩡허니 다 똑같 이 노나 먹어놓고?
아낙 7 : 거 원평댁은 맥읎시 이상헌 소리만 헐라고 허지 말어. 그 사람이야 금방 밥 먹고도 돌아슴서 밥 없는가 허는 사람이잖여.
아낙 4. : 없으먼 더 배 고픈 거잖여. 빌어먹을 노므 시상, 하기사 농사 못져 배고픈 것이나 농사 잘 지어놓고 배 고픈 것이나 배 고프기는 한가진디 잉. 아 어디 술 좀 없을랑가?
아낙 5 : 그려. 농사 잘 되먼 멋헐 것인가? 그게 어디 내 입으로 밥 되고 술 되야서 들으갈 것이래야 말이지. 안 그려들-.
아낙 6 : 아줌니. 농사 잘 되먼 우리 애기 돌리준다요? 울애기 쌀밥 먹으야는디-. 울애기 쌀 밥 먹으얀당개요-.
아낙 1 : 아 인자 지발 좀 정신 좀 채려 이 사람아. 배 곯아서 죽은 자식을 누구헌티 가서 돌리달라고 헐 것이여? 염라대왕헌티라도 갈랑가? 정신 채리라고-. 애아부지 살어나올 때까지라도 견디야 헐 것 아니여?
아낙 6 : 울애기 쌀밥 먹으야는디-. 울애기-. 쌀밥-.
아낙 2 : 에이 팽, 무심헌 노므 서방들. 긍개 그냥 죽은 디끼 살고 말 것이지 멋헌다고 동헌 까정 우 몰려들 갔다가는 그 고생들인지 몰라.
을남 : 아줌마. 아부지랑 아저씨들이 거기 그러고 간 것이 먼 잘못인가요? 왜 그렇게 말씀허 신대요?
아낙 3 : 니 말이 맞다. 원평댁은 거 속 좀 상헌다고 애기들 듣는디 그게 먼 소리여-. 헐 소 리를 히야지.
아낙 2 : 오죽허먼 글겄소? 벌써 이게 몇 달짼디. 맨날 온다 풀려 나온다 소문만 돌지 안 오 잖여. 와야 서방이지-. 에이구-.
아낙 7 : 농사가 암만 못쓰게 되얐어도 논임자들이 도지 내는 것 늦궈줄 리 없고 또 때 되얐 응개 세금덜 내라고 난리들 떨 참인디 먼 재주로 산댜? 아이고 이 빌어먹을 노므 세상 이 어찌 나락 비여노먼 더 걱정여-.
을남 : 어무니, 글먼 이참에도 아부지는 못 나오는 거여?
아낙 3 : 아니여. 인자 곧 나온다고 힜응개-. 글고 니가 일궈논 그 밭이치는 농사가 잘 될 팅 개 아무 걱정 말고 기들려 보자 잉.
잠시 사이
둘째 마당 / 거대한 갈퀴손, 그리고 분노와 봉기
관객들의 등 뒤로부터 포졸의 거대한 팔과 다리가 각각 둘씩, 솟구치듯 삐어져 올라서 판을 휘젓는다. 팔과 손가락의 모습은 조잡한 방식으로 만들되, 위압적인 크기였으면 좋겠다. 그 팔뚝을 들고 판을 휩쓸거나 나락가마니를 흩어버리기도 하고, 판 바깥으로 밀어내서 끌어가기도 한다. 포졸역을 맡은 배우들은 다음 대사 가운데에서 몇을 골라 짧게 웅얼거리듯 반복적으로 내뱉는다. 하지만 포졸들 대사는 농민들의 대사나 자신들의 대사 안에서도 논리적 연관성을 갖지 못한 채 진행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대사를 동작만으로 처리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포졸들, 사람들을 이 구석 저 구석으로 몰고 다니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핍박한다. 각각의 사람들은 서로 무리를 짓되 겹쳐 서기도 하고 똑같은 일을 두 번 이상 당하기도 하면서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동일한 형태의 수탈과 학정, 유린 등을 보여준다.
포졸 1 : 새로 개간한 땅이 있으면 응당 세미를 내도록 한다.
포졸 2 : 세미를 자발적으로 갖다 바칠 것이니라.
아낙 3 : 아니 균전사란 자가 자갈묵밭을 개간하는 데에는 세미를 물지 않겄다고 힜담서 그 게 먼 말이다요?
노파 : 손등 발등 다 터져감서 한겨울에 땅 갈어갖고 인자 겨우 나락꼴 좀 볼 만헝개 멋여? 멋을 내놔? 아이고 또 속았네. 저저 도척 같은 놈들- 또 속았어어.
아낙 5 : 우리는 소출을 다 합혀도 나락으로 석 섬인디-
아낙 4 : 우리는 두 섬-
일동 : 세금에 환곡에 다 갖다 바치고 나면 우리는 뭘 먹고 살어?
아낙 1 : 아예 이 노므 논들을 떼며다가 관아 앞에다 바치고 말자-.
일동 : 도둑놈들-.
아낙 4 : 제에밀헐, 글안히도 아슬아슬헌 목숨-.
아낙 5 : 물세까지 더 갖다 붙여 놨으니 인자 다 죽은 목숨인겨-.
아낙 1 : 일년내 농사진 거 세금으로 다 바치고 나면 도대체 어뜨케 살란 말이여?
아낙 7 : 뱃속에 있는 새끼 군대 안 나간다고 무명필 걷어가지-
아낙 2 : 애를 배는 게 무신 죄냐고 도대체?
일동 : 세금땜에 못살어-. 날도둑놈들-.
아낙 3 : 그나저나 지난 번 등장 때 잡아 가둔 사람들은 언제나 풀려 나온대요?
아낙 2 : 새파랗게 젊은 사내들 다 잡아가 놓고 농사는 누가 지어서 세금을 낸단 말이요?
아낙 1 : 자식들 데꼬 풀죽이라도 끓여 먹고 살아야 헐 것 아니요?
아낙 4 : 물세를 좀 감혀 주시오 예?
아낙 3 : 제발 사람 좀 살리시요-.
일동, '제발 사람 좀 살리시요' 하다가 '느그들이 사람이냐?' 하며 우루루 몰려 나선다. 장단 급박해지며 포졸들 허공으로 물러나는 듯하자 사람들 네 귀퉁이를 돌며 따지고 매달리고 한다. 하지만 번번이 허공을 휘젓고 있는 포졸들의 주먹에 의해 내팽겨쳐지게 되고 마지막에는 피묻은 형상들로 판 가운데 나동그라진다.
앞장의 포졸들 잠시 사라진 사이-, 더 많은 포졸들(장대인형) 등장한다. 역시 위압적인 음악에 거들먹거리는 동작으로-, 판의 한 가운데 거적에 싼 한 남자의 시신을 버리듯 내려놓는다. 사람들 질겁을 하여 판 바깥쪽으로 밀려 나는데 아낙 3과 아이, 그리고 노파가 소스라쳐 시신 주위에 몰려 들었다가 망연자실하여 주저앉아 통곡한다. 노파, 포졸들을 향해 달려들어서 매달려보지만 이내 무릎 꿇리워지고 소년을 감싸 안은 채 한 구석에 가둬진다. 잠시 사이 장단 바뀌며 아낙 3을 가운데 두고 포졸들 그녀를 농락하기 시작한다. 반항하고 빌기도 하지만 마침내 능욕을 당하고 만 아낙 3, 자식을 바라보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을남, 노파의 만류를 뿌리치고 일어나 아낙 3의 시신을 끌고 판을 휘저으며 분노하다가 동헌 쪽을 향하여 시신을 놓고 앉아 동헌을 노려본다. 가능하다면 이 때 자신의 분노와 의지를 담은 춤동작을 만들어 보여줘도 좋다. 잠시 사이, 전봉준 부친의 시신을 지게에 메고 판을 돌아나오다가 을남을 만난다. 두 사람 서로 마주보며, 말없이 서 있다가, 을남 격렬한 동작으로 어미의 시신을 끌고 어디론가 뛰어나간다. 전봉준, 조용히 지게를 내려놓고 사라진다. 잠시 사이. 어디선가 낫과 호미, 괭이 등을 든 한 무리의 사람들 나타나서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 되얐지 그냥 이대로 지내서야 어디 백성이 한 사람이나 남아 있겄어'라고 외치며 판을 휩쓸고 나간다.
전봉준, 높이 올려 놓은 대 위에 나타난다. 소년, 깃발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는 동안 전봉준 대사한다.
전봉준 : 우리가 의를 들어 이에 이름은 그 뜻이 다른 데 있지 아니하며 불쌍한 백성을 도탄 중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의 위에다 두고자 함이다.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들의 목을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강적의 무리를 내쫓고자 함이다. 양반과 부호 앞에 고통을 받는 민중들과, 방백과 수령 밑에 굴욕을 받는 소리들은 우리와 같이 원한이 깊은 자라 조금 도 주저말고 이 시각으로 일어서라. 만일 이 기회를 잃으면 후회하여도 믿지 못하리라.
배우들과 인형들, 판을 휘돌아 가며 깃발과 죽창을 들고 싸운다. 이곳 저곳의 관아를 쳐부수고 무기를 탈취하거나 죄수를 풀어주고, 포졸들을 징치하는 등의 동작을 두루 형상화해 보여준다. 그 과정에 옥에 갇혀 있던 사내들 하나둘씩 풀려 나와 대열에 합류한다. 여자들, 합류한 남자들과 어우러져 깃발춤으로 싸움과 승리를 표현한다.
깃발춤의 사이에 다음과 같이 외쳐서 차례차례 관아를 점령해가는 과정을 표현한다. '2월 14일 고부관아요, 무장이요 태인이요 부안이요 흥덕이요 영광이요 장성이요 정읍이요 원평이요 전주성으로 가자' 등.
세째 마당 / 용머리고개
배우 하나, 나서서 관객들에게 재미있느냐고 묻고 싸우느라고 한참 지쳤으므로 잠시 쉬어가겠노라고 한다. 그리고 지게목발노래의 후렴을 알려준다. 관객들 어느 정도 후렴에 익숙해지고 다음 장면 준비가 끝나면-,
깃발춤의 끝에 전주성을 향해 사라져갔던 배우들, 노래를 부르며, 관군들이 지키고 있는 성문 형상과 용머리고개, 다가산, 대포 등을 나타내는 간단한 형상의 미니어쳐를 들고 나온다.
노래 / 삼기 지게목발노래를 응용해서-.
아하아 에헤이요 에헤에헤에헤 에헤이 에헤이요
아아헤 이히이이요오 어어 어얼싸 돌아왔네 어얼싸 좋구 좋다.
달 떠온다 달 떠온다 해가 지고 어얼싸 달 떠온다 어얼싸좋구 좋다.
돌아왔네 돌아왔네 농군 시절이 어얼싸 돌아왔네 어얼싸 조옿구 조옿다.
쳐부시세 쳐부시세 전주성문을 어얼싸 쳐부시자 어얼싸 조옿구 조옿다.
배우들 노래를 하며 미니어쳐들을 판에 배치해둔다. 전주성문에는 포졸인형 몇을 함께 매달아 두고, 전주성과 다가산, 용머리고개 사이를 흐르는 전주천 물도 표시해 둔다.
장두들, 둘러 서 있는 군중들 앞에 서서 연설한다.
장두 1 : 여러분, 여기까지 오는 동안 고생들 많으셨소-. 이게 다 저 인륜도 모르는 악질 사또 이속 나부랭이들과, 불쌍헌 백성들 등쳐 먹고 살만 피둥피둥 찐 부호 지주놈들 혼내주자고 나선 길이 니 우리 피로한 것 다 잊고 마지막 힘을 다해서 전주성을 깨뜨리러 갑시다.
장두 2 : 자, 여러분 힘을 냅시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얼마나 많은 농투사니 백성들이 우리 를 맞아 환호하였던가를 기억합시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게 다 저놈들의 학정에 시달린 농민들의 한숨과 억울하게 맞아 죽은 우리 친지들의 피와 살점 덕인 것이오.
장두 3 : 자,이제 저놈들로부터 빼앗은 대포를 저 산 꼭대기에다 걸고 먼저 한 방 놀 참이오-. 저 철 환이 날아가서 남문에 명중하면 곧바로 저 산꼭대기에서 삼색기가 힘차게 펄럭일 것이오-.단방 에 전주성이 바삭 부서져 불에 탈 수 있도록 우리 다같이 함성을 질러서 힘을 모읍시다. 야아-.
군중들 따라서 환호한다.
아낙 하나 판 안으로 뛰쳐 들어 오며 울부짖는다-.
아낙 : 아이고 안 되요. 그 포 쏘면 절대로 안 된단 말이요-. 아이고 사람 몸뗑이가 한 번 죽을라먼 우습도 않게 죽는 것인디, 저 큰 놈으 포를 쏴 대면 우리 서방은 어찌 살란 말이오?
장두 1 : 무슨 일이시오?
장두 2 : 아니, 저 성문을 안 부시고 우리가 어찌 저 놈들을 잡아 족친단 말이오?
아낙 : 아이고 그리도 안 된단 말이오-. 우리 서방이 마침 오늘이 번 스는 날이라 성문 지키러 간다고 새벽밥 지어 먹고 나갔응개 시방 영락 없이 저 성문 위에 있을 것이란 말이오-.
장두 3 : 허어 참, 그 딱헌 일이오 그려-. 아니 그렇다고 지금 한참 홍계훈이 부대가 우리를 쫓아서 금구 쪽으로 내달아 오고 있을 판인디, 어쩌란 말이오-.이거 참 큰 일이네 잉-.
아낙 : 긍개 나도 나쁜 놈들 혼내 주자는 디는 당신네들 허고 똑 같은 생각이당개요-.
장두 2 : 아, 그러먼 우리 급헌 사정도 좀 알긴 알 것 아니오?
아낙 : 긍개 우리 서방 번 마치고 나오느 뒤에 포를 쏘면 안 되시겄소? 내 그 뒤에는 우리 서방까지 다 당신네들하고 한 편이 되어 싸우라고 시킬 참잉개요-.
장두 1 : 이거 우리 장두들이 장두라고 혀서 우리 맘대로 헐 수 없는 일잉개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헌 티 한 번 물어 봅시다-. 여러분 이 아낙 사정도 딱허고 또 그렇다고 혀서 우리들 갈 길을 늦출 수도 없는 형편인디 어쩌면 좋겄소? 지금 저 대포를 쏴야겄소? 아니면 한 나절이라도 연기를 혀야 쓰겄소? 여러분들 생각 좀 들어 봅시다.
장두 2,3 관중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강경한 입장을 밝히는 의견이 나오자,
아낙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발 밑에 엎드려 오열한다.
아낙 : 아이고, 내 말 좀 한 번만 들어 보쇼-. 당신네들이나 나나 다 저 놈들헌티 시달리고 살기는 마찬가지랑개요-. 우리가 당신들 포에 맞어 죽는 것이 좋은 일이오, 아니면 당신들 편에 싸우다 가 차라리 저 놈들 총에 맞아 죽는 게 떳떳헌 일이오? 우리도 사람답게 살다가 죽더라도 죽을 라고 이러는 것 아니오-. 지발 덕분 한 발짝만 물러서 생각 혀 주시랑개라우?
두세 사람 정도의 서로 반대되는 의견을 들은 뒤,다시 고뇌에 싸여서 서로 수군거리고 있는 장두들-.
논의 끝에,
장두 1 : 이렇게 합시다. 여기 모인 우리 농민군 동지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러서 저 성문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군사들을 쫓는 것이오.
장두 2 : 좋은 생각이기는 헌디 우리들 소리만 갖고는 저기까지 잘 안들릴랑가 몰릉개 저 관객여러분 들 심을 좀 빌리먼 어떻겄소?
장두 3 : 딱 좋네 딱 좋아. 글먼 우리가 먼저 한 번씩 외치먼 그대로 심껏 따라 외치는 것이요 잉?
장두들, 돌아가며 외친다. 듣거라-. 시방 우리가 것따 대고 포를 쏠 참잉개 얼름 비켜라. 당장 안 치나먼 죽는다-. 치나라-. 형택아부지는 특히 빨리 치나시오-. 진짜 쏜다 잉-.
소리를 한참 지르고 난 뒤에 한 배우 성문에 매달려 있던 관군들을 치운다. 일동 함성-.
장두 1 : 자, 이제 한 시각도 지체할 수가 없소-. 우리 뒤를 쫒는 경군놈들이 당도하기 전에 어서 성 문을 깨뜨립시다.
장두 2 : 자 발포 준비-.
장두 1 : 발포 -!
포를 쏜다. 날아가는 포탄과 이를 뒤따라가는 일동의 시선, 빗나갔을 때의 탄식소리 등이 다 느껴질 수 있도록 형상화한다. 한두 번의 실패 이후 포탄이 성문에 명중하고 성문은 넘어진다. 일동 환호와 함성-.
장두 3 : 자, 여러분 성문이 깨졌소.
장두 2 : 이제 다같이 성안으로 진격합시다. 자 진격-.
사람들, 걸개그림 쪽으로 힘차게 뛰어들어간다.
네째 마당 / 대동세상
사람들 환희에 차 웅성거리다가, 전봉준을 수행하고 있는 장두들의 손짓에 풍물패들 잠잠해진다.
장두 1 : 여러분들 잠깐 내 말 좀 들으시오-. 전주성문을 지키던 군졸들은 모두 간곳도 없이 도망질을 쳤고, 전라감사는 우리허고 뜻을 같이 허기로 이미 약조힜소.
장두 2 : 그러고, 제대로 된 농민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여기 이 전주땅 선화당에 대도소를 설치허고 우리 농민군들이 장악헌 골골마다 집강소를 두어서 몇백년 썩은 정치를 뒤집어 엎고 참말로 백 성들 귀헌 중 아는 새 정치를 펼칠 참이오.
장두 1 :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여기 계신 녹두장군을 중심으로 쇳덩이맹키로 단단히 뭉치야 헐 것이오. 여러분 우리 함성을 질러서 녹두장군님의 연설을 들어봅시다.
전봉준 : 지금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세상은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이 남녀 귀천이 따로 없이 사람답 게 살아가는 세상이오-. 사람은 곧 하늘과 같은 존재이니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사람보다 더 중 한 것이 없소. 임금 또한 하늘 아래 있는 것이니, 지금 우리의 싸움은 곧 불의한 탐관오리들 뿐 아니라 부패하고 무능한 임금 및 그를 떠받들고 있는 양반 나부랭이들과의 싸움인 것이오. 따라 서 이제껏 천대 받고 멸시받으며 살아온 칠반 천인들은 물론 노비들과 과부들도 다 사람으로서 의 존엄함을 되찾아야 할 것이며, 불량한 양반들을 살찌우는 데만 쓰였던 모든 세금제도는 혁파 될 것이오. 땅은 모든 일하는 작인이 다 나누어 소유하게 할 것이로되 나라에 내는 세금은 공동 경작한 땅의 소출로 충당할 것이오.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세상을 이루고 적당들의 반격을 물리치기 위해서 우리 군대의 기강을 추상같이 하고 무기를 완벽하게 갖춰야 할 것이오. 군령은 삼엄하게 세울 것이로되 적이든 아군이든간 사람 목숨을 업수이 여기면 안 될 것이오-.
장두 1 : 우리는 모두 몇 년 겹친 흉년에 도적놈들헌티 이리저리 뜯기고 뺏겨서 먹을 것 입을 것 없 이 살아왔소-. 저 놈들 도적 창고를 헐어 맨 먼저 할 일은 우리 모두가 배 불리 먹고 어서 빨리 사지에 심을 얻는 일이요.
장두 2 : 솥을 서른 개든 마흔 개든 있는 대로 다 내다 걸고 모두가 배 불리 먹을 때까지 밥을 짓도 록 할 것이요. 그렁개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나와서 밥들 먹읍시다. 자. 밥지게들 들이시오-.
배우들, 주먹밥을 가득 담은 지게와 바구니 등을 들고 들어와 판 가운데 펼쳐놓는다.
관객들과 함께 어우러져 밥을 먹으며 자연스럽게 밥먹기 시합을 유도하고, 준비한 장기들을 펼치며 논다. 노는 과정에, 배우들은 관객 가운데 남녀 각 여러 명을 뽑아 훈련을 시키기도 하고, 다른 일감을 주어 참여하게 한다. 밥을 나누어 먹고 노는 장면은 관객들을 다시 돌려보내서 생업에 종사하라고 일러주면서 끝내고, 장두 하나 나서서 판을 정리한다.
배우 1 : 자 어뜨케 배불리들 드셨는게라우? 뭣보다 밥이 하늘인 것잉개, 특히나 내알 죽을지 모레 죽 을지 모르는 이런 쌈판이서는 밥은 그냥 뵈는 족족 먹어버리야혀. 아 안 그리요?
배우 2 : 저 배좀 보게 저-. 아 관객여러분들 드시라고 맨들어논 음식을 혼자 다 줏어먹었는가 저 배 좀--. 어 참 크다.
배우 1 : 에이. 참. 자 그러면 배들도 부르고 장기자랑도 한 판 잘 허고 놀았응개 다시 한 번 그 시절 로 돌아가보는디-. 관객여러분께서 잘 보고 참여허셔서 인자 익숙허시겄지만, 시방 이 국면이 어 떠헌 국면이냐?
배우 2 : 질문여?
배우 1 : 아니 그냥 물어보는 거여.
배우 2 : 국면은 무슨 거창허게 국면여-. 밥 잘 나눠 먹고 잘 놀았다 그런 국면인개비지-.
배우 1 : 맞어, 우리 농민군들이 전주성을 팍 깨 버리고 전주에 입성을 히 갖고 잠깐 동안 대동세상을 만들어 즐기는 씬이었다 그 말이요.
배우 2 : 씨인? 이런 제미 주먹밥 잘 얻어 먹고 양놈 방구 뀌고 앉었네-.. 그나저나 밥 잘 노나 먹고 잘 놀먼 대동세상이여?
배우 1 : 암먼-. 근디 그것을 그냥 맘판으로 암캐나 허는 것이 아니라, 전주를 중심으로 히서 이른바 집강소라 허는 농민자치정부를 세워서 아주 체계적으로 개혁을 히 볼라고 혔겄다-.
배우 2 : 개혁? 요새 개혁 개혁 허다가 그냥 개애역 험서 느닷없이 오바이트허는 사람들 많은디 조심 혀. 그거 존 거 아닌개벼.
배우 1 : 그리서 오늘 이 자리서는 그 당시에 농민군들이 단행한 집강소통치를 통한 개혁이라고 허는 것이 뭐이었는가 한 번 하나씩 따져보자 이것이여.
배우 2 : 거 좋네-. 긍개 멋멋이 있었는가부터 먼저 읽어봐야겄네? 이름하여 폐정개혁안이라, 근디 그 거 누가 읽어?
배우 1 : 아 당연히 전봉준 장군께서 읽으시겄지-.
배우 2 : 또? 아 그 배우 존 건 다 혼자 헝개 이번에는 좀 바꾸더라고?
배우 1 : 누구?
배우 2 : 아 여기 이렇게 눈 초롱초롱헌 젊은이들 많이 모였응개 이 청년들 보고 돌아감서 하나씩 읽 으라고 허지 머-.
배우 1 : 거 존 생각이네. 그러더라고 글먼-.
관객을 시켜 폐정 개혁안을 읽게 하고 한 조항씩 읽을 때마다 나머지 배우들이 합창하며 들어와서는 그 조항을 둘러싼 에피소드를 펼친다.
폐정개혁안
1. 도인과 정부 사이에는 해묵은 미움을 말끔히 씻어 없애고, 서정을 협력할 것
2. 탐관오리는 그 죄목을 꼼꼼히 조사하여 일일이 엄하게 징계할 것
3. 횡포한 부자의 무리는 엄히 징계할 것
4. 불량한 유림과 양반배는 그 버릇을 징계할 것
5. 노비문서는 태워 없앨 것
6. 칠반천인의 대우는 개선하고 백정의 머리에 쓰는 평양갓을 벗게 할 것
광대패들 풍물을 치며 들어온다. 덩실거리며 노는 사이에 원형의 포장을 둘러친다. 풍물패 포장 앞에 자리잡고 앉으면 꼭두놀음을 시작한다.
산받이(장구) : 떼루 떼에루 띠여라차 떼에루 떼에에루 떼루야 하 나니네 좋다-.
상쇠 : 자 이 날이 무슨 날이냐 보자
산받이 : 날은 무슨 날, 두 번 다시 올랑가 말랑가 싶은 광대세상, 전주땅 한복판이다, 사람 껍데기 쓰 고 짐승노릇헌 놈들 다 잡어다가 홀라당 활라당 벳겨 놓고 족치는 날이지-.
상쇠 : 그래 어뜨케 잡어 족치나?
산받이 : 똑 요러고 혼구녁을 낸단다 어디 보자- 나와라-.
장단, 굿거리로 돌며 흥을 돋구는데, 포장무대 위에 기생들 나타나 교태를 부리며 민요 한자락을 부른다. 그 뒤를 조병갑과 양반 둘 흥청거리며 쫓는데 기생들은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을 친다. 마침내 붙들린 기생들과 농탕질을 치며 한바탕 논다.
산받이, 장단을 멈추며-,
산받이 : 저 쌩판 듣도 보도 못헌 영감탱이 하나 나왔구나. 그래 거그는 어디 사는 누구인고?
조병갑 : 떼루떼루 떼루야-. 거 누가 날 불렀느냐?
산받이 : 그래 내가 불렀다. 어디 사는 누구길래 이 난리통에 그리 흥청대는가?
조병갑 : 내가 저 전라도라 고부땅에서 불쌍헌 백성들 자알 보살피니라고 이 몸 다 뿌서지는 중도 몰 르고 밤낮이 없이 뛰는, 어진 군수 조병갑이니라.
산받이 : 박첨지 대신 나왔구나. 말로만 듣던 조첨지라네-. 그래 거 젊은 기생들 보살피니라고 욕깨나 보는구나. 그건 그렇고 그 젙의서 해실배실 알랑거리는 그자들은 누군고?
조병갑 : 조정 걱정 백성 걱정에 어진 군수 선정비 걱정까지 걱정으로 날이새는 이 고을 유지양방님 들이시다 왜-.
산받이 : 허어 그래 그러먼 오늘은 무슨 일로 이리 모여 풍류적으로 걱정이셔?
조병갑 : 우리 고을에 몇 안 되는 불순한 무리들이 몇 달째 동헌에 몰려들어갖고 세금을 감허라는 둥 관정발악을 허는데도, 어진 마음에 심히 혼내지도 못하고 속을 끓였더니, 이분들이 나를 위로하 느라고 친히 자리를 내어서 잠시 머리를 식히는 중이니라. 인자 되었느냐? 자 다시 풍악을 울릴 것이니라.
산받이 : 허어 저 놈이 세상 돌아가는 줄을 저리 모르니 어디 몇 조금이나 가는가 보자-. 쳐라-.
홍동지 등장한다. 머리에는 두건을 두르고 죽창을 꼬나쥐었다.
산받이 : 허 무슨 일로 그리 불뚝거리며 나오는가?
홍동지 : 에라 쉬-. 이 순 네미헐 노므 사똔지 양반인지 백성들 다 죽는 지 몰르고 지들끼리 찧고 까 불르며 노는 꼴을 내 더는 못 보겄구나-. 어디들 모여 노느냐?
산받이 : 기생들 끼고 저 아래로 꽃놀이 갔다-.
홍동지 : 꽃놀이 갔다네. 조병갑이 잡으러 가자-.
홍동지 덩실거리며 조병갑 일행을 쫓는다. 조병갑, 판을 돌며 덩실거리다가 더 빠른 걸음으로 도망을 친다. 기생들 조병갑을 붙들고 늘어지자 이를 팽개치고 혼자 도망하는데, 홍동지 이들을 모두 끌고 다시 판 중앙으로 돌아와 희롱하며 논다.
홍동지 : 이 놈 이 죽일 놈 조병갑이 이 천하에 쳐 죽일 놈아. 니 죄를 니가 아느냐 모르느냐? 글고,
멀쩡헌 사람 끌어다가 잿놈이라고 패고 풍각쟁이라고 업신여기던 양반인지 개다리 소반인지 요 악독헌 놈들아. 느그 시상이 천년 만년 갈 중 알었쟈? 인자부텀 여그는 우리들 시상인개 느그는 인자 다 죽었다 잉? 오매 오진거 우리가 이러고 하루 아침에 웬수를 갚어버릴 중 누가 알었으까 잉? 모가지 디밀어라 얼름.
산받이 : 아따 그 아깐 것들을 그리 쉽게 쥑여서야 어디 먼저 가신 광대조상님들 해원이나 히 드리겄 어? 글지말고 그 놈을 어찌고 처치를 히야 속이 시언헐랑가 좀 두루 물어보더라고?
홍동지 : 물어봐? 그러지 뭐. 여보쇼들. 이 놈을 우리가 잡었응개 이 자리서 능지처참을 히야겄는디 어찌들 생각허쇼?
일동 : 죽입시다. 그 놈 헌 짓을 생각허먼 백 번을 죽여도 시원치 않소- 어서 죽여라
상쇠 : 잠깐. 내 말 좀 들으시게. 이 놈을 처단허기 전에 꼭 물어볼 말이 있는디 그걸 알아보고 나서 죽여도 죽여야 우리들 분이 좀 풀리겄어. 니 놈의 배아지는 어떻게 생겼길래 처먹어도 처 먹어도 끝이 없느냐?
풍물패 1 : 어 이놈이 그래도 대답이 없네. 도대체 쌀은 몇백석이나 돌라 처먹었느냐?
----- 2 : 그래도 대답이 없어. 술은 얼마나 처 먹었느냐?
----- 3 : 돈은 몇 냥이나 처먹었으며 기생은 몇 년이나 줏어 먹었느냐?
상쇠 : 어 이 놈이 묵비권을 행사하는구나. 어디 두고 보자. 그래 이 조병갑이를 살려주자는 사람 이 혹 있소? 그런 사람 있으면 이 앞으로 썩 나서 보시오. 네 이 놈 오죽하면 너를 살려주자는 사람이 하나도 없느냐?
산받이 : 너는 죽어야 쓰겄다. 당장.
홍동지 : 죽이란다-.
홍동지 이들을 모두 묶어 장대 끝에 매달고서 판을 휘돌아 나간다. 광대패, 풍물을 한참 치며 포장을 걷는다. 설장고와 상모놀이가 이어진다.
7. 청춘과부는 개가를 허락할 것
과부 1, 판을 휘돌며 등장하고 그 뒤를 이어 여러 아낙들이 줄을 지어 등장한다.
과부 1 : 오매오매 존 거 잉? '청춘과부는 개가를 허락할 사' 이렸응개 인자 나 같이 박복헌 년도 팔 자가 화들짝 피어불겄네? 오매 존 거. 말허자먼 인자 밤이 확 달러진다 이 말 아녀?
과부 2 : 참말여 그게-? 오매 시상에 서방 죽고 삼 년만에 이게 먼 희소식이랴 시방-. 어디여 긍개 어 디로 가먼 서방을 준다고?
과부 3 : 참 내. 서방이 그렇게 많겄어 어디? 난리통에 남정네들 씨가 말러갖고 사방에 과부들 천진디 천하에 녹두장군이래도 한꺼번에 이 많은 과부들을 다 어뜨케 개가를 시키겄어?
과부 1 : 듣고 봉개 그 말이 맞네-. 글먼 먼 순서가 따로 정히져 있을랑가?
과부 2 : 동네 접장 어른한티라도 가서 물어봐얄랑가?
과부 3 : 에이 그런 걸 어뜨케 물어봐. 그냥 다소곳이 기들리고 있으면 먼 통보가 있겄지.
과부 1 : 하이고 기둘릴 것이 따로 있지. 꽃겉은 나이 스무 살에 혼자 되야갖고 10년이 휭허니 그냥 지내갔는디 괜히 개가를 시키주네 마네 험서 가슴에 불만 질러놓고 또 기둘려? 하이고 나는 못 기둘려-. 어디여 어디로 가야 허냐고?
과부 3 : 낸들 알어?
과부 2 : 청춘과부라고 힜응개 한 살이래도 젊은 사람부터 어뜨게 히 준다는 얘길 거여 잉?
과부 1 : 말도 안 되는 소리 허덜 말더라고? 누가 더 어맀을 때부터 혼자 고생힜냐 그것이 기준이겄 지. 과부도 다 우아래가 있는 것이다 그 말여. 어디 가서 당체 그런 소리 말더라고.
과부 3 : 하이고 참 입씨름헐 것을 갖고 입씨름을 히야지 누가 들으까 겁나는고만 왜 이려 대로상에 서 점잖덜 못허게들?
과부 2 : 흥 글먼 남정네라고 몇 남도 안 힜는디 다 늙은 과부들부터 그 문제를 해결히준다 그러먼 한참 청춘인 과부들헌티는 어느 세월에 차지가 돌아와? 흥 참 늙어갖고 욕심도 많여. 원 말도 안 되는 소리 허고 앉었네.
과부 1 : 멋여 시방 머락힜어 다 늙었다고 눈구녁이 삐어도 유분수지. 누가 늙어 누가 -.
과부 2 : 왜 이려 어따대고 삿대질여 시방?
두 사람 붙들고 옥신각신 싸우는데,
과부 3 : 그것이 먼 정히놓고 배급 주는 것이간디 내가 볼 때는 말여 다 생긴 대로 능력 닿는 대로 될 것이고만-. 아 두고덜 보더라고? 그 다음은 먼 조항여? 아 까깝헝개 팍팍 읽어번지더라고?
8. 무명잡세는 모두 없앨 것
전봉준, 판의 가운데 서서 다시 연설한다.
전봉준 : 들으시오. 자 이제 배불리 먹은 사람들은 수세로 낸 곡식들 다 되받아 가지고 돌아가시오-. 부정한 방법으로 긁어 모은 세미는 더 이상 관가의 것이 아니오. 원래 백성들의 것이니 그대들 백성들의 손으로 다시 지고 가시오. 가서 온 식구들 배불리 먹이고 심을 얻어서 다음 싸움을 준 비하시오-.
일동 환호한다. 간간이 전봉준 장군 만세를 외치기도 한다.
한 곳에서 쌀들을 받아 지고 흩어져 가는데-,
아낙 1 : 그란디 이걸 이릏게 다 나눠줘 버리고 나면 싸움 싸우는 군사들은 멀 먹고 싸운대요?
농민 1 : 아 그게 그러니께 싸우는 사람 안 싸우는 사람이 따로 없이 모두가 다 나서서 한 묶음으
로 싸울 일잉개 다 잘 먹어 놔 두자 그 말씸인감만. 안 그려?
농민 2 : 암만 그러제-. 그건 그렇고 물세 낸 걸 다시 되돌려 준다면은 낸대로만 돌려 주는 것여?
농민 3 : 아 그렇겄지 그럼 낸 것 이상으로 가져 갈라고 혔간디?
아낙 2 : 아니 그런디 저 집 여펜네는 멋을 저렇게 많이 이고 간디야? 내고 말고 헐 것도 없어갖
고 물세도 거즘 안 냈을 참인디?
아낙 3 : 어디 이잉? 그라고 봉개 그렇네-. 아이고 참말로 염치도 좋네그랴? 어이 춘포댁 거그는 얼매를 냈간디 그렇게 몽땅 타 가는 것여?
아낙 4 : 남이사 얼매를 내고 얼매를 타던 말던 무슨 상관이댜? 그 집 일이나 걱정 헐 것이고만!
아낙 2 : 멋여? 참말로 뻔뻔시럽네 잉? 아니 그게 다 어띃게 싸워서 얻은 쌀들인디 함부로 퍼 가?
아낙 4 : 퍼 가다니? 먼 말을 그렇게 매정시럽게 헌댜? 오죽허면 이러겄어? 오죽허면?
아낙 1 : 아 내싸 둬-. 다 알아서 잘 나눠 주셨겄지-. 거 괜시리들 시비네 시비가?
아낙 3 : 아니 시비가 아니라 경우가 그게 아니잖여 경우가. 혼자만 더 먹자고 내도 않은 물세를
되받어간다는게 말이 되냐 말여?
아낙 4 : 아니 멋을 혼자만 더 먹자고 허는 짓여 이게? 딸린 새끼들은 많지 서방도 없이 혼자 사
는 년이 먼 수가 있겄어? 남의 사정도 모르고 째진 주뎅이라고들 나불대 쌌는구만 이 퉤--.
아낙 3 : 아니 멋여? 어따 대고 욕지거리여?
아낙 2 : 이 년아 너만 자식 있냐? 침까정 뱉어? 너 죽고 나 죽자 이 독한 년아-.
아낙들 뒤엉켜 싸운다. 사람들 말리며 아수라장이 되는데-, 전봉준 다가간다.
전봉준 : 잘 들으시오-. 다른 사람이 다 내는 물세를 못낸 집안이라면 그 빈궁한 사정을 더 물어
무엇하겠소? 비록 세상을 잘못 만나서 세금도 못 낼 처지가 되었다고는 하나 둘러보면 이 아낙과 같은 이들이 어디 한둘이 아닐 터, 무엇보다도 중한 것은 사람 목숨이니, 자식들이 굶 고 있다면 물세를 내고 안 내고에 관계없이 살리고 봐야 할 것이오. 어서 이고 가시오-.
아낙 4 : 고맙구만이라우-.
아낙 2,3 : 지들이 생각이 짧었구만이라우-.
9. 관리채용은 지벌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할 것
10. 왜와 간통하는 자는 엄히 징계할 것
11. 공사채를 물론하고 기왕의 것은 모두 없앨 것
12. 토지는 평균으로 나누어 짓게 할 것
잠시 사이,
조명 색깔이 바뀌며, 첫 장면에 등장했던 8명의 배우들, 새끼를 들고 길게 들어오며 노래한다. 노래하며 판을 우물 정자로 나누어 새끼로 논두렁을 친다. 가운데 땅을 제외한 주변의 여덟 공간에 각각의 배우들이 들어가서 농사를 짓는다.
노래 / 오매 오진 거 내 땅이지야
땅 땅이야 내 땅이로구나
오지고도 신통헌 거 내 땅이야 내 땅
도랑물 심껏 흘러 출렁출렁거리고
어린 것들 논두렁 뛰어댕기는
내 땅 비록 손바닥만한 논 한 두럭이래도
오매 오매 오진 거 내 땅이야 내 땅이로구나
노래가 끝나면 각자의 논두렁에 앉아 쉰다.
아낙 1 : 을남이네 말여. 조금만 참었으면 이런 존 세상 봤을 판인디 멋헐라고 죽냐 아가. 그깐 노므 몸뗑이가 멋이 그리 대수라고 아이고 불쌍혀.
아낙 7 : 잊어버리장개 인자. 그보담도 싸움 나간 을남이나 몸 성허니 돌아와갖고 이런 존 세상이서 농사도 열심히 짓고 살으얄 판인디 잉.
아낙 1 : 맞어 인자 남정네들이 일본놈들이랑 다 몰아내고 돌아오기만 허먼 말여 내 땅에다 농사짓고 이 놈으로 밥 히먹고 자석들 시집장개도 보내고 오매 존거 잉-. 참말로 우리 땅여 이게?
아낙 6 : 아가 아가 저기 저 논 보이지야 저게 다 니 논이다 잉? 인자 배 곯지 말고 살자 잉?
아낙 5 : 아 따거 이 노므 거머리가 얼매나 뜯어먹었든가 그냥 똥골똥골히졌네 어이 받더라고-.
아낙 4 : 깜짝이야. 아 그것도 다 뜯어먹을 만헝개 글겄지. 아 우리 논이는 그런 거 없당개
아낙 3 : 어이 원평댁 아 좀 쉬어감서 허드라고?
아낙 2 : 쉬기는-? 나는 밤에도 집에 안 들으가고 이 논두렁서 살랑만 이러고 존디 어찌 쉴 맘이 나 겄는가? 거그는 안 그려? 하기사 집이라고 들으가 봤자 뭐 밤농사질 일도 없응개
아낙 5 : 참 내. 나는 말여 그냥 암껏도 안허고 여그 앉어서 논만 치다 보고 있어도 그냥 쌀밥 고봉으 로 먹은 것 맹키로 배가 지절로 불르당개-.
아낙 3 : 그나지나 이게 참말로 우리 땅인가? 나는 녹두장군이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헌다 그맀어도 이릏게 빨리 우리헌티꺼정 땅이 돌아올 중은 참말로 몰랐당개-. 거그는 이럴 줄 알었능가?
아낙 6 : 아가, 너도 인자 불쑥불쑥 커서 녹두장군 되자-. 녹두장군 되야서 느그아부지도 찾어가고 총 도 쏘고 말도 타고 잉? 아부지도 좋아헐겨-. 어서 커서 녹두장군 되자 우리 애기야?
아낙 7 : 그려. 녹두장군만 자꾸 생기먼 좋겄네-. 이 사람아. 그걸 안 사람이 멫이나 되얐겄어. 다 긴 가민가힜지.
아낙 1 : 인자 우리 땅 있응개 열심히 농사지어갖고 세금도 열심히 내고 글더라고 잉?
아낙 4 : 먼 소리여 세금 내는 땅은 따로 있다잖여-. 저그 저 가운데 배미 말여. 거그는 우리가 다 한 꺼번에 농사지어갖고 고스란히 나라에다 바치는 거여.
아낙 1 : 맞어 참 그맀지. 나는 그냥 옛날 생각만 자꾸 난당개-. 근디 이게 참말로 생신가? 어이 자네 들 팔뚝들 좀 한 번 꼬집어 볼랑가
아낙들, '맞어 참말로 이게 생신가? 꿈이먼 안되는디, 꿈이먼 어찌까 잉' 하며 각자 팔뚝을 꼬집어 본다. 안 아프다. 서로들 멍하니 쳐다보는데,
갑자기 음악소리와 함께 일본군과 관군 형상을 한 거대한 손과 발 다시 등장한다. 판에 놓여있는 새끼줄로 아낙들을 묶어서 판 바깥으로 내동댕이친다.
다섯째 마당 / 출정
판 주위의 농민군들 어둠 속에서 일제히 주문을 외기 시작한다.
판 한 가운데 전봉준 서 있다.
전봉준과 장두들 한바탕 칼춤으로 기운을 북돋운다. 나머지 농민군들과 아낙들 주문을 외며 판에 등장하여 선다.
전봉준 : 사람을 사람답게 바로 세워 살리자고 나선 길, 이제 돌이킬 수 없소. 모두들 다시금 뚜렷이 들으시오. 우리가 모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들한테까지 더러운 세상 대물 려 살게 할 수는 없는 일이오. 하나가 죽어서 열을 살리는 길이 열려 있으니 그 길을 죽는 길이라 여기지 맙시다. 자 진격이오. 엊그제 들어왔다는 왜놈들이 전열을 가다듬 어 나서기 전에 적어도 충청도 땅을 넘어서야 할 것이오. 갑시다. 떠날 채비들을 서두 르라 이르시오. 무기와 군량을 점검하고 행장을 간추리라 하시오. 이제 목표는 오직 하나 한양성으로 쳐 올라가는 것뿐이오.
두령들 : (사방으로 흩어지며) 자 진격이오. 모두들 일어서시오. 한양성으로 쳐 올라갑시다.
능선 위의 농민군들과 아낙들 일제히 함성과 함께 뛰어 내려오며 노래한다.
농민군들의 노래 : (합창)
종을 울려라 북을 울려 떠나자 새벽 안개 아직 자욱할 때
식구들 아직 따뜻한 꿈 속에서 곤히 뒤채리라 자거라 천국같은 잠
관군놈들 왜놈들 뒤뚱거리는 사이 화살 한 닢 되어 그 심장에 꽂히리니
아아 기약하지 않는다 돌아올 길 처량한 눈빛으로 기다리지 마라
한 번 가면 못올 길 북을 쳐 축복해다오 다시 못 볼 다정한 벗들이여
여섯째 마당 / 마지막 싸움, 죽음의 벌판
밤, 우금치 가까운 어느 이름모를 언덕 위, 을남이와 농민군들, 추위에 떨며, 초조하고 두려운 모습으로 둘러앉아 있다.
농민군 5 : 어째 이릏게 쥐죽은 디끼 조용허까 잉?
2 : 긍개말여, 아까 장두들 얘기허는 걸로는 시방 저짝 산 골짜기 속에 경군들허고 왜놈들이 꽉 들어찼다드만-.
3 : 오매 징헌 왜놈덜. 즈그 나라서 편히 살 것이지 멋헐라고 남의 나라 일에 끼어들어갖고 지랄들인가 몰르겄네 잉?
4 : 근디 그 소문이 참말인가? 왜놈들은 우리도인들 시체마다 귀를 싹 비어가버린다던디-. 어이 자네는 그런 소문 못들었는가?
5 : 귀뿐이간디? 코도 비어간다잖여-. 개백정들이 따로 없다고 안 혀?
2 : 허허허 코뿐여 붕알도 다 따간다데 이 사람들아. 죽은 목뗑이 귀비어가먼 어찌고 코 비 어가먼 어찔 것인가?
1 : 딴 거는 다 몰라도 붕말만은 안되는디. 저승 가서라도 새장가 가갖고 자식들 낳고 재미 지게 한 번 살어봐얄 것인디-. 긍개 이 사람들아 죽지 말으야허는 겨-. 살자고 나선 길 잉개 죽덜 말더라고?
무언가 툭 하고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소리, 농민군 4, 벌떡 일어나며 외친다. "누구여. 거그 누구냐고?" 일동 소스라치게 놀라서 전투태세를 취하는데,
2 : 눈 떨어지는 소리여-. 빌어먹을 노므 날씨, 쌈도 싸우기 전에 동태 되야 죽겄고만-.
3 : 나는 아까부텀 양쪽 발모가지가 어디로 가 버맀는가 숫제 발 시런 중도 몰르겄고만-.
4 : 고실고실헌 쌀밥이나 한 그릇 고기국에 팍 말어 먹으먼 조깨 덜 추울 것인디 잉.
5 : 조깨만 참더라고. 이참에 저 건너 왜놈들만 싹 해 치우고 나먼 이나 한양까정 일사천리 로 들이닥칠 참이라고 힜응개, 고깃국이 문제겄능가?
1 : 누가 아니랴? 저것들만 아니먼 우리가 진작 서울꺼정 밀고 올라가고도 남었을 것이라고 들 혀 쌌드만. 조병갑이보다 더 징그런 웬수들이랑개.
3 : 그렁개 이참에 아주 혼구녁을 내서 확 쫓아버리야 혀-. 맘덜 단단히 먹더라고
4 : 하이고 참말로 먼 재주로 저 도깨비겉은 놈들을 혼낸다요? 이런 구식 화승총허고 죽창 몽둥이 갖고-. 저것들 총은 10리나 나간다는디-. 아이고 나는 어째 왜놈덜 얘기만 나오 먼 사지가 벌벌 떨리고 그는가 몰르겄네.
을남 : 무섭기는 뭐가 무서워. 나는 안 무서워라우. 나는 안 죽을 참잉개-. 인자 두고 보더라 고요-. 녹두장군께서 그러셨잖여요? 우리 도인들은 다 한울님이나 마찬가징개 가슴패기 다 부적 붙인 것만 꼭 간수허고 싸우먼 왜놈 총알도 피헐 수 있을 거구만요.
5 : 기린봉서 싸울 적에 안 봤간디. 그거 믿고덜 뒤로 물러스지 말라고 혀서 다들 겁도 없이 막 나섰다가 그냥 다 관군놈들 총알받이 신세 되야갖고 죽었잖여.
2 : 긍개 말여, 참말로 그렇게 쉽게들 죽을 중 누가 알었간디? 그냥 앞에 가던 사람덜이 우 루루 다 죽어나자빠져갖고 궁굴어 내리오는디. 소리 질를 틈도 없이 나는 그 밑이서 깔 려 죽는 줄 알었당개-.
4 : 말도 말어. 내 옆이서 어떤 노인양반 하나가 허벅다리에 총알이 백혀갖고는 글도 나는 안 죽는다 험서 궁궁을을 혀쌌는디 버르적거리다가 이마빡에 또 한 방을 맞고는 그냥 두 눈 멀거니 뜨고 뒤로 넘어가는디 아이고 징그러-.
1 : 그만들 혀-. 시방 그런 얘기가 먼 소용이 있겄다고들 지나간 얘기만 자꾸 히 싸? 날 새 먼 그냥 우리는 여그서 죽을 각오를 허고 저쪽 우금치 고개로 달라들으야는겨. 이 놈으 총이 총구실을 지대로 못허먼 몽둥이로라도 쓰고 죽창이 빠개지먼 대갈빼기로 디리받 어서라도 왜놈들 한 놈이래도 더 죽이고 죽으야는겨-.
2 : 맞어. 어이 그만 두고 잠이나 자더라고. 누구는 안 무서서 이러고 있간디?
3 : 인자 어디 도망갈 디도 없는 것이고 저것들 다 몰아내고 한양꺼정 올라가 갖고 새시상 맹글기 전에는 살어도 산 목숨이랄 것이 없당개. 죽는 게 무서먼 여그까정 안 왔지 안 그려들?
4 : 그 말이 맞긴 맞는디-. 나는 어째 자꾸 오금이 질려갖고 지레 죽겄네. 지레 죽겄어-.
을남 : 아저씨, 죽으믄 이 노므 시상 더런 꼴 더 이상 안 보고 오죽 좋겄으요? 억울허게 먼 저 죽은 사람들도 다 만나고라우-, 나는 죽은 울아부지랑 어무니도 만나고 그렃 참잉개 요. 여그서 이러고 사는 것보담은 백 번 났지라우-.
5 : 우리 어린 장두님 말씀이 딱 맞는고만-. 내일이먼 다 양단간에 결단이 날 것인디 먼 걱 정인가? 허허 먼 걱정이냐고? 어 이참에는 참말로 누가 오는디? 후천! 군호를 대쇼!
전봉준, 장두 한 사람을 대동허고 '개벽'이라 외치며 나타난다.
일동 일어서며, '아이고 접주님 오시는개라우?'하며 인사한다.
전봉준 : 아 일어슬 것 없소들. 앉어서 편히들 기셔도 좋습니다.
장두 : 편히들 앉으시랑만요.
전봉준 : 추운 날씨에 노고들이 많소. 어디 아픈 사람은 없으신가요?
농민군 4 : 아이고 접주님, 말씀 마시게라우. 춤고 배 고프고 안 아픈디가 없-.
1 : 다덜 괜찮허고만이라우. 그런디 접주님께 한 말씀 여쭐 것이 있고만요.
2 : 예. 지난 번에 우떨 가슴패기다 붙이라고 허신 그 부적 말씀인디요, 그것이 내일도 진짜 영험이 있겄지라우?
전봉준 : 예, 그게 다 우리들이 독헌 맘으로 싸움에 나서면, 한울도 우리를 보혀 줄 것이라는 뜻으로들 알고 기시먼 되는 일이오. 열심히 마음 속에 주문을 외고, 사지를 정갈히 히 갖고 악독헌 것들을 몰아내야겄다는 일념을 갖고만 있으믄 내일 싸움도 우리들 뜻대로 될 것잉개, 흔들리지 말고들 준비허시자 그 말요,
5 : 글도 자꾸 딴 생각이 들먼 어찌게 히야 쓰까요 잉?
전봉준 : 지나간 몇 달 동안을 잘 생각히 보시오. 우리가 전주성을 차지허고 잠시 좋아지는 가 싶던 저 놈들 태도가 일본놈들을 불러들임서 확 뒤바뀌었소. 그리고는 동학수도허는 자는 물론이고, 지난 번 봉기에 가담헌 사람들허고 그 식구들까지 짐승 잡듯 다 끌어다 죽이고 있소. 시방 우리가 여그서 두려워허거나 물러나먼 저 놈들의 발악은 더욱 극에 달헐 것이오. 심이 있는 놈들은 그 심을 못쓰게 맹글어놓기 전에는 절대로 약헌 사람들 헌티 선의를 베푸는 법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인자 곧 내일이오. 억울허게 죽어 간 식구들을 생각허고 남아 있는 자식들을 생각헙시다. 특히나 이 부대는 비록 어리지 만 용맹하기 짝이 없는 이 소년장두가 있응개, 한 발짝도 뒤로 물러스지 않으리라 믿겄 소. 죽기를 각오헌 사람만이 이길 수 있응개 이 길을 겁내지 말고 나랑 같이 갑시다.
일동 : 알겄고만요. 명심허겄습니다요.
집단 마임으로 이어지며 간간이 정지동작으로 보여주는 전투 장면. 반주 음악, 흐르는 가운데, 대오를 지어 결연히 행진하는 농민군들의 모습, 무기와 의복을 손질하며 길가에서 쉬고 있는 모습,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서 언덕배기에 엎드려 있는 모습, 적들의 크기와 위세 앞에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우다가 죽어가는 처절 비장한 장면 등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싸움의 모습은 음악에 맞춰 본격적인 춤이 될 수 있게 한다.
일곱째 마당 / 밀고와 압송
전봉준 허름하게 변복하고 판 한가운데 홀로 앉아 명상에 잠겨 있다.
밀고자 부부 등장한다.
밀고자 1 : 저 자요 저 자가 바로 난리를 꾸미고 무고한 생목숨들 꼬드겨다가 다 맞고 총 맞 어 죽게 만든 그 자랑개요?
밀고자 2 : 그래 저 저런 자들이오. 만고에 흉악한 반역의 괴수-.
밀고자 1 : 자. 어서들 잡아가시오.
밀고자 2 : 내가 그깐 노므 돈 멫 푼 땜시 이러는 거 아니요 잉? 이게 다 순진헌 백성들 목 심을 보전하고 나라를 지키는 길 아니겄냐 그거요?
밀고자 1 : 아 얼른 가서 민병대 사람들 좀 불러 오란 말요-. 어서 잡아가랑개. 저런 자들만 아니면 우리가 불안히야 헐 이유가 없다 그 말이오.
밀고자 2 : 인자는 제발 그 노므 난리좀 안 일어나게 말이오-. 조용히 좀 살자 그 말이요. 아 돈 때미 그는 것 아니요, 아니당개-.
밀고자들 대사하는 사이에 탈을 쓴 민병대들 몽둥이를 들고 등장하여 전봉준을 에워싸고 서로 소근거리며, 손짓하며 서서히 다가간다.
전봉준 밀고자를 한참 동안 쳐다 보다가 일어서며-,
전봉준 : 그래, 가자-. 그대들 같은 자들이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바뀌어도 사라지지 않으니, 혁명 또한 영원히 계속될 것이니라. 가자.
민병들 전봉준에게 오랏줄을 던지고 끌어 당겨 묶는다.
무대 한가운데로 함부로 끌고 나와서 봉준을 묶은 끈을 앞자리의 관객들에게 건네준다. 봉준 스스로 올가미에 걸린 듯 줄에 얽혀들며 서서히 노래한다.
전봉준 : 사나이 세상에 나서 일세의 풍진을 걷지 못하니
부질없어라 이 한 목숨 끌려가는 겨울길이여
모질고 악독한 탐욕의 무리들 오랑캐 불러다가 제 백성 도륙하니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는 바다가 되는구나
내 비록 치켜든 칼 다 쓰지 못해 천추에 길이 멍든 백성들 가슴
울부짖는 원통한 소리들 차마 달래지 못하였으나
잊지 말아라 눈보라 벌판에 뜨겁던 불길 골짜기 울리던 쇳소리 아우성
논두렁 베고 누운 부릅뜬 눈들 이름모를 개울가에 떡메같은 주먹 제 홀로 웅크린
아아아 사나이 한 세상 부끄럽지 않으나 후회 없으나
아직도 못 죽어 태풍이 된 그대들 외치는 소리 차가운 가슴에 사무치는구나
군중들 : (전봉준의 독창에 맞춘 합창곡으로)
가지 마시오 장군 그 모진 길 죽어 못 돌아 올 천 리 한양길
그 많은 추격과 밀고를 피해 숱한 배반과 음모를 넘어
우리들 가슴에 영원히 숨어 영원히 식지 않는 불길이 되고
칼끝이 되고 창끝이 되고 마지막 총탄이 되어 다시 한 번 새세상 일궈 보자던
동지여 벗이여 녹두장군이시여 돌이키지 못할 길 가지 마시오
전봉준과 군중들의 노랫소리 서로 엇갈리다가 갈수록 뒤섞이며 작아진다.
여덟째 마당 / 공초와 효수
전봉준, 판의 한 가운데 단아하게 앉아 있다. 주변에 실제 배우들이 머리 부분만 기이하게 하늘로 솟구친 기괴한 형상의 탈을 쓴 인형의 모습으로 둘러 서 있다. 인형들은 연기자들이 그 안에 들어가 조종하는 모습이 보일 수 있게 고안되어야 한다.
인형들 서로 돌려 가며 공초문의 내용을 낭독한다.
인형 1 : 피고는 동학당이라 칭하고 비도의 괴수로 접주라 부르고
인형 2 : 작년 삼월 상순에 영솔기도하여 고부 외촌 창고를 헐고 전곡을 빼서
인형 3 : 그 후 안핵사 이용태가 고부로 내려와서 동학수도하는 자를 잡아 살륙을 과히 하매
인형 4 : 피고가 친히 그 도를 영솔하여 흉기를 들고 전라도 무장에서 일어나 고부 태인 원 평 금구 등처를 갈새
인형 5 : 한 번 고부로 몰려 갔다가 하루 밤낮을 접전 후 영문포군을 파하고
인형 6 : 전진하여 장성에 이르러 경군 7백여명을 만나 또 격파하고 주야겸행으로 행진하여 4월 26,7일께 관군보다 먼저 전주성을 들어가니
인형 7 : 그 다음날 초토사 홍계훈이 성 밖에서 거포를 놓고 공격하기로 피고가 그 무리와 함께 응전하여 자못 관군을 괴롭게 하니라.
전봉준 : 우리 동학 농민군은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자이니 탐학하는 관리를 없애 고 그릇된 정치를 바로잡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며, 조상의 뼈를 우려 악을 행하여 백성 의 고혈을 빨아먹는 자를 없애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며 사람으로서 사람을 매매하는 것과 국토를 농락하여 사복을 채우는 자를 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
인형 1 : 그 후 피고는 일본 군대가 대궐로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필시 일본인이 아국을 병 합코저 하는 것인 줄 알고 일본병을 쳐 물리고 그 거류민을 내쫓을 마음으로 다시 기병을 도모하여
인형 2 : 처처관아에 들어가서 군기를 강탈하고 은진 논산을 지나 당수 만여 명을 거느리고 동년 10월 26일쯤 충청도 공주에 다다랐더니
인형 3 : 일본병이 먼저 웅거하여 있는지라 전후 2차 접전하여 보았지만 두번 다 대패하였는 지라 피고의 무리들이 점차 흩어져 수습지 못하게 되었기로
인형 4 : 부득이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모병하여 전라도에서 일병을 막으려 하더니
인형 5 : 응모자가 없는 탓으로 동모 3-5인과 의논하고 각기 변복하여 가만히 경성으로 들어 가 정탐코저 하여
인형 6 : 피고는 상인처럼 하고 단신으로 상경, 태인을 떠나 전라도 순창을 지날 때 민병한 테 잡힌 것이니라.
인형 7 : 위에 기록한 사실은 피고와 그 동보자 손화중, 최경선 등이 자복한 공초압수한 증 거문적이 분명할지라. 그 소위는 대전회통 현전 중의 '군복기마작변관문자부득시참'이라 하는 율을 조한 것이니라.
전봉준 : 너희는 외적을 이용하여 자국을 해하는 무리들이다. 그 죄 가장 중대하거늘 도리어 나를 죄인이라 이르느냐? 너희는 나의 적이요 나는 너희의 적이라 내 너희를 쳐 없애고 나라 일을 바로잡으려다가 도리어 너희 손에 잡혔으니 너희는 나를 죽일 것뿐이요 다른 말은 묻지 말라. 내 적의 손에 죽기는 할지언정 적의 법을 받지는 아니하리라.
인형들 모두 : 위의 이유로써 피고 전봉준을 사형에 처하노라.
인형 1 : 개국 504년 3월 29일 법무아문 권설 재판소 선고
인형 2 : 법무아문 대신 서광범
인형 3 : 협판 이재정
인형 4 : 참의 장 박
인형 5 : 주사 김기조
인형 6 : 주사 오용묵
인형 7 : 회심 경성주재 일본제국영사 內田定鎚
전봉준 : 나를 죽일진대 종로 네거리에서 목을 베어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내 피를 뿌려 주 는 것이 옳거늘 어찌 컴컴한 적굴 속에서 암연히 죽이느냐
인형들과 무대 밖의 배우들, 무작위적으로 소리를 지른다. '종로요 네 거리요 녹두장군 마지막 가는 길이요-, 종로 네 거리에서 보내시오-'
외치는 소리 일순간에 멎으면, 조명 어두워지고 수레의 기둥들 끝에 전봉준의 목이 달려서 솟구친다. 그 아래 반듯이 쓰러져 있는 전봉준의 모습.
종장/ 진혼
음악, '새야 새야 파랑새야'를 응용한 연주곡 흐르는 사이에 서장에서 돌아왔던 귀 베인 혼령들, 작은 꽃상여를 메고 등장한다. 혼령들, 봉준의 시신을 메고 투박하고 애절한 진혼의 춤을 춘다. 춤이 이어지는 사이 꽃상여 안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아낙들을 중심으로 한 나머지 배우들은 함께 민요 파랑새를 부른다.
노래 굿거리에서 세마치 장단으로 바뀌면 배우들 봉준을 에워싸고 그를 일으켜 세우며 함께 진혼의 춤을 춘다. 풍물패 장단을 받아 판으로 올라가며 관객들을 끌어내어 뒷풀이로 잇는다.
동학농민혁명군의 전주입성 10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마당극
서울로 가는 전봉준
전주시청 앞 광장
1999년 5월 30일 오후 7시 30분
극본 공동구성
음악 류장영
안무 김경미
연출 곽병창
제작 / 창작극회. 창작소극장
주최 / 사단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전주시
사내 2 : 긍개 말여 사방으서 사람들은 픽픽 죽어가는디 언제나 이놈으로 저것들 피맛을 좀 보까 잉?
사내 3 : 죽은 사람이사 빌어먹을 노므 시상 다 잊어번지겄지만 살어서 병신 된 사람들은 또 어찔 것 인가? 그 꼴은 더 못 본당개?
사내 4 : 배들 용배 말여, 그 사람은 그 날 나온 뒤로 그냥 반 실성이 되야갖고 즈그 마누라도 못 알 어보고 헛소리만 핑핑 히싼다는 거여. '아이고 잘못힜구만이라우 잘못힜응개 살려만 주시랑개요' 험서 자꾸 마루 밑으로 기 들으갈라고 그런댜.
사내 2 : 아이고 속 터져. 저 때려죽일 놈들 웬수를 다 어찌케 갚으야까 잉?
사내 3 : 때려 죽여야지. 그걸 몰라서 물어? 빌어먹을 노므 시상-. 아 하늘이 무너지든, 땅바닥이 찢 어지든 인자 다 나스야 헌당개-.
사내 1 : 맞어 살 길은 딱 한 가지밲이 없어, 아 딱 한 가지랑개.
사내 2 : 긍개 말여 사방으서 사람들은 픽픽 죽어가는디 언제나 이놈으로 저것들 피맛을 좀 보까 잉?
사내 3 : 죽은 사람이사 빌어먹을 노므 시상 다 잊어번지겄지만 살어서 병신 된 사람들은 또 어찔 것 인가? 그 꼴은 더 못 본당개?
사내 4 : 배들 용배 말여, 그 사람은 그 날 나온 뒤로 그냥 반 실성이 되야갖고 즈그 마누라도 못 알 어보고 헛소리만 핑핑 히싼다는 거여. '아이고 잘못힜구만이라우 잘못힜응개 살려만 주시랑개요' 험서 자꾸 마루 밑으로 기 들으갈라고 그런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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