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은 복음 선교의 날입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18-20
주변을 돌아봅니다. 가까운 이들을 바라봅니다. 가정, 주변, 이웃, 교회 등 각 공동체에 가엽고 보잘 것 없고 스스로 어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서로 친하고 좋고 편하고 그리고 만남에서 즐겁고 기쁜 이들도 나의 이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마찬가지 나의 이웃입니다.
좋고 편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사람들. 나에게 불편이나 힘들게 하거나 하지 않고 좋게 대해주는 사람. 그들을 통하여 마음에 위안과 기쁨이 있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주님의 일이고, 복음의 일이지만 사랑과 자비의 길에서 오랜 시일이 요하고, 많은 에너지와 수고와 힘을 드려야 하는 이들을 만날 때, 만남을 가지고 나서도 주춤거립니다. 나의 행로와 여정에서 그를 어찌해야 하는가? 다른 누구보다도 더 사랑과 관심을, 도움과 나눔을 하고 주고받아야 하는 그런 과정에서. 주춤거리는 그런 마음을 갖습니다.
'사랑에 경계가 있는가? 사랑에 주춤 거림이 있는가? 사랑에 득실을 따지는가?'
사랑이란 무엇인가?을 생각합니다. 사랑은 스스로 살아가기 어려운 이, 보살핌 받음이 미흡한 이, 제대도 선을 위한 돌봄을 받지 못한 이, 보살핌의 권리를 잃은 이, 자기가 받아야 할 권리와 존엄 마저 깨닫지 못한 이, 정신적 심리적 공동체적으로 적응할 수 없는 이들, 곧 사랑과 권리에서 소외된 이들을 먼저 돌보는 것이 '사랑'이라고 여겨집니다.
물질적, 경제적 물리적 환경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해서는 물리적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면 되고, 그것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도움과 나눔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과 정서와 정신적 소외와 상처와 아픔 등이 오래동안 그의 마음 속에서 어둠의 질곡으로 남아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그것을 알 수도 깨달을 수도 없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알고 나서 구체적으로 그의 구원과 구제를 위해서 나서야 하는 것. 그런 노력과 성실함과 항구함이 '사랑'이라고 여깁니다.
주변에, 가정, 형제, 친구, 동료 등 이웃들과 멀리 있으면서 갖가지 간난과 소외, 권리와 존엄을 생각할수도 없는 이들에게,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서고 성실함과 지속함으로 나아갈 때, 사랑으로 '선교'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복음 선교의 날입니다. 오늘도 약하고 권리를 잃으며, 정서적 정신적 공동체적인 소외를 가진 이들을 바라봅니다. 그들을 향해서 나아가며 그들을 실제적으로 도와주고 서로 연결합니다. 그런 사랑의 배려, 그것이 선교임을 압니다.
주님,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 사랑의 계명 안에 머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 때, 나 또한 당신 사랑안에 머뭄을 압니다.
이재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