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싸구려 이미지 벗고 어느새 고급차 반열에
선박, 고부가 LNG운반선 세계 시장 점유율 80%대
‘메이드 인 코리아’의 고부가가치화는 한국 수출의 오랜 숙제였다. 산업계와 정부는 이 숙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고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진전을 이뤘다. 2000년대 들어 섬유·가전·정보통신·철강·석유화학 등 주요 제품이 성과를 냈다. 특히 가전 분야에서 LG나 삼성 브랜드는 고급제품 이미지 구축에 성공했다. 최근 들어서는 자동차와 선박의 고급·고부가화 행진이 두드러진다.
제네시스는 지난해 8월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가 발표한 충돌평가에서 3개 차종이 최고 등급인 ‘톱 세이프티 픽 플러스(이하 TSP+)’ 등급에 선정됐다. 사진은 TSP+ 등급을 받은 제네시스 GV70. [사진=현대차·기아 제공]
●자동차 수출단가 높아지고 고급차 위상 정립 =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 최초 공식 기록은 1976년 6월 에콰도르에 수출한 현대자동차 포니 6대다. 이후 1986년 엑셀과 르망을 미국에 수출하며 자동차 수출국 반열에 올랐고 1995년에는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한국산 자동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오랫동안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싸구려차’ ‘중저가차’의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졌다. 일부 차종에서는 고급차 이미지 구축에도 성공했다. 자동차 수출단가 상승이 이를 뒷받침한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우리나라의 완성차 수출 대수와 수출액은 각각 252만 대, 64조5000억 원으로, 대당 수출단가는 평균 2559만원이다.
완성차 수출단가는 2018년 1670만 원, 2019년 1792만 원, 2020년 1983만 원, 2021년 2277만 원, 2022년 2350만원으로 계속 상승해 왔다. 지난해 1~11월 자동차 평균 수출단가 2559만 원은 5년 새 53%(889만 원)가량 오른 것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국내에서 생산한 차 1대를 해외에서 팔아 받는 돈이 5년 만에 900만 원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업계에서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SUV와 친환경차가 해외시장에서 인기를 끈 것이 수출단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11월 SUV 수출량은 183만 대로, 수출 승용차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2.8%에 달했다. 전기차도 전년 동기 대비 65.7% 증가한 31만6654대를 해외에서 팔며 하이브리드차(28만3685대)와 함께 수출을 견인했다. 소형차 중심의 수출이 어느 새 중대형차·친환경차 중심으로 바뀌었다.
수출단가 상승은 환율 덕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5년간 환율상승률이 18%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가격이 높은 SUV와 전기차의 수출 비중 확대가 수출단가 상승에 기여한 바가 더 크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수출단가 상승은 그만큼 우리나라가 비싼 차를 해외에 많이 팔았다는 뜻”이라며 “한국산 자동차가 저가라는 인식이 불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가 이를 증명한다. 제네시스의 지난해 1~11월 미국 내 판매는 전년보다 10.6% 증가한 6만2372대였다. 제네시스는 지난해 8월 미국 시장조사업체 ‘JD 파워’가 선정한 신차 첨단 기술 만족도 조사에서 전체 브랜드 순위 1위를 차지했다. 현재 제네시스는 GV70 전동화 모델을 제외한 거의 모든 물량을 울산 공장에서 만들어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 수주 = 지난해 한국 조선업계는 전년보다 수주량이 크게 줄어 중국에 3년 연속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내줬다. 하지만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의 수주 비중을 늘리고, 암모니아 운반선 등으로 수주 선종 범위를 다양화했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4149만CGT(표준선 환산톤수)로 지난해보다 18.7% 감소했다. 한국은 전년 대비 37.6% 감소한 1010CGT(점유율 24%)를 수주하며 중국(2446CGT·59%)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2020년까지 3년 연속 수주 1위에 올랐지만, 자국 발주 물량이 뒷받침된 중국에 2021년부터 수주량이 밀리고 있다. 또 약 4년치 수주잔고(남은 건조량) 확보에 독(건조공간)이 꽉 차 선별 수주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도 수주량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선박 수주의 질(質)은 크게 개선됐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 운반선은 554만CGT였는데 한국과 중국은 각각 441만CGT, 113만CGT를 수주하며 80%, 20%의 점유율을 보였다.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 운반선은 한국이 전체 발주량의 80% 이상을 가져가며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하는 선종이다. 2022년 중국이 수주 점유율을 30%까지 늘리며 쫓아왔지만, 지난해에는 다시 격차가 벌어졌다.
또 한국 조선업체들은 대표 친환경 선박인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 암모니아 운반선, 암모니아 추진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등으로 수주 선종을 넓혔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초 유럽 선사와 국내 HMM으로부터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12척과 7척을 각각 수주한 것을 시작으로 7월에는 세계 최대 규모 액화이산화탄소운반선 2척을, 9월에는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 등을 계약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메탄올 추진 컨테이너선 16척, LNG운반선 7척, 암모니아 운반선 2척을 수주하며 수주량 대부분을 친환경 선박으로 채웠다.
한화오션은 최근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 4척을 잇달아 수주한 데 이어 3600t급 잠수함인 ‘장보고 Ⅲ 배치(Batch) Ⅱ’ 3번함 건조 계약도 체결했다.
[한국무역신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