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내(잉걸)가 다 읽은 다른 나라 소설들의 목록(겸 짧은 감상문)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이곳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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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도적과 개들 』 (‘나집 마흐프즈’ 지음, ‘송경숙’ 옮김, ‘도서출판 벽호’ 펴냄, 서기 1998년)[ 이 단행본 안에 중편소설인 「 도적과 개들 」 과, 장편(掌篇. 아주 짧은 작품)소설 - ‘꽁트’ - 모음인 「 쉰다섯 개의 거울 」 이 들어있다 ] :
배신과 좌절과 절망을 겪은 한 남자가, 감옥에서 나온 뒤에 자신을 부추기고 속인 사람들에게 복수하려고 하나, 자꾸 실패하는 이야기( 「 도적과 개들 」 )와, 미스르( 영어권에서 ‘이집트’로 부르는 나라의 바른 이름. 이는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의 정식 국호가 ‘대한민국’인 것과 같다 ) 사람 쉰다섯 명의 삶과 죽음을 하나씩 하나씩 소개하는 형식으로 미스르의 근현대사를 그려낸 이야기( 「 쉰다섯 개의 거울 」 ).
이 책을 읽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과 같다.
“만약 근/현대의 미스르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면,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이나 CNN 뉴스나 (할리우드 영화인) <미이라> 1편 대신, 이 소설들을 읽으라. 이 소설들은 미스르인 자신의 ‘증언’이기 때문이고, 그래서 미스르를 이해하는 데 [서양의 자료보다] 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 마치 한국인이 근대 왜국(倭國)의 침략과 점령과 식민지배를 받고 서기 1949년 이후에는 종일(從日. 왜국[日]을 [종처럼] 따름[從]. 이완용 같은 인간들의 성향을 평가할 때에는 ‘왜국과 친하다.’는 뜻인 ‘친일’이 아니라, 이 말을 쓰는 편이 더 정확하다고 한다 ) 세력이 세운 왜국의 꼭두각시 정권(이자 독재정권) 아래서 오랫동안 짓눌렸듯이,
근대 ~ 현대(서기 19세기 ~ 서기 1950년대 전반 이전)의 미스르 사람들이 영국의 침략을 당하고 식민지배를 받은 뒤, 그 다음에는 영국의 꼭두각시 정권(괴뢰 왕국) 아래서 짓눌린 사실(그리고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식민지배와 독재에 맞서 싸웠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것에 무릎을 꿇고 복종했다는 사실, 어떤 사람들은 포기하고 현실에 영합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정권의 거듭되는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으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므로, 그 때문에라도 파라오와 메르(‘피라미드’를 일컫는 미스르 이름)를 뛰어넘어 ‘살아있는, 오늘날의 미스르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이 소설들을 읽어야 한다.”
2. 『 수호지(水滸志) 』 완역판( ‘시내암’ 지음, ‘이문열’ 옮김, 전 10권, ‘(주)민음사’ 펴냄, 서기 1991 ~ 1994년 )[ 이 완역판의 제 10권 끄트머리에 붙은 ‘진침(陳忱)’ 선생이 쓴 ‘속편’ 격인 소설 『 수호후전(水滸後傳) 』 의 축약본 포함 ] :
‘고전이기 때문에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다 읽은 책. 솔직히 말하자면, ‘원작(『 수호지 』)’에서 ‘고구’/‘채경’을 비롯한 간신들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송나라 황제 휘종(본명 ‘조길’)이 그들의 말에 여러 번 속아 넘어가며, 주인공 송강(宋江)이 그 모든 것을 참고 또 참으며 다른 나라(요나라)와의 전쟁이나 다른 농민군(방랍[方臘]의 군사를 비롯한 ‘반란군’/‘역적’)을 ‘토벌’하는 일을 맡아서 하다가, 나중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양산박의 ‘108 영웅’이 지나치게 잔인한 짓(예를 들면, 사람을 죽여서 그 살코기를 먹는 일이나, 한때 정인[情人 : ‘연인’을 일컫는 옛말]이었던 사람을 칼로 죽이는 일)을 하기 때문에, 거부감이 안 들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속편’인 『 수호후전 』 이 – 양산박의 옛 영웅들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이 송나라를 침략한 금나라에 맞서 싸우고, ‘원작’이자 ‘전편’에서는 끝까지 살아남았던 네 간신[고구/채경/동관/양전]을 죽여서 철저하게 응징하며, 죽은 양산박의 영웅들이 남긴 자식들과 함께 가망 없는 송나라를 떠나 배를 타고 섬라국[타이(Thai)왕국의 전신(前身)인 ‘시암’왕국]으로 가서 그 나라의 반란을 진압하고 다른 침략군을 퇴치한 뒤 그 공로로 새 임금/새 대신들이 된다는 내용 때문에 – 『 수호지 』 보다 더 공감이 갔고, 더 재미있었다면 이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을 짐작하실는지.
나는 여러분에게 “이 소설을 읽느니, 차라리 『 홍길동전 』 을 읽으시라.”고 충고하고 싶다. 후자( 그러니까, 『 홍길동전 』 )는 덜 잔인하고, 이야기의 구조도 복잡하지 않으며, 주인공이 비참하게 죽는 비극도 아니고, 주인공의 행동과 동기도 훨씬 더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3. 『 몽테크리스토 백작 』 완역본( 전 5권.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오증자’ 옮김, ‘민음사’ 펴냄, 서기 2002년 ) :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와 한 권씩 한 권씩 독파함) 소년 시절, 그러니까 서른두 해 전에 읽은, 한 권짜리 축약본(그나마도 한 권을 다 채운 게 아니었고, 단행본의 80%만을 차지하는 분량이었다)을 읽을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작품.
여러 가지가 ‘충격 그 자체’였지만, 그 가운데 ‘말해도 괜찮은 것들’만 몇 가지 추려서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보루’라는 프랑스가 서기 19세기 초까지는 왕과 군주제를 지지하는 세력이 강한 나라였다는 것, 그리고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비롯한,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돈을 내고 백작/자작/남작 신분을 사서 귀족 행세를 했다는 것(그러니까, 유럽에도 ‘벼락출세해 귀족이 된 부자들’이 있었다는 사실),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신분을 내세웠던 에드몽 당테스가 베네데토와 그의 ‘가짜 아버지’를 연기할 사람을 자신의 ‘복수용 도구’로 써먹으려고 들면서도, 그들이 범죄자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역겨워했다는 것(베네데토는 위조지폐를 만든 적이 있는 데다, 살인죄도 저질렀고, 그의 ‘가짜 아버지’는 사기꾼이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탈리아의 산적 두목이지만, 자기 소굴에서 『 갈리아 전기(戰記) 』 나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을 읽을 정도로 머리가 좋은, 매력 있는 조연 ‘루이지 밤파’의 이야기, 에드몽 당테스가 페르낭이나 당글라르나 빌포르 같은, 자신들을 망친 악당이자 원수들에게만 자신의 정체와 본명을 드러낸 게 아니라, 나중에는 자신의 은인이었던 모렐 씨의 아들, 막시밀리앙에게도 자신의 정체와 본명을 드러낸다는 것을 ‘인상 깊은 대목들’로 들 수 있으리라.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소설이 (근대 프랑스 작가의 소설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랍인을 나쁘게 그린 점이라든지, 남주인공인 에드몽 당테스에게 복수하기를 포기하고 자신의 아버지인 페르낭을 떠난 ‘알베르’가 프랑스군에 입대해 프랑스의 식민지로 떠나는 것을 ‘올바른 일’로 그린 점이라든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이티가 단지 ‘주식 투자로 돈을 버는 곳들 가운데 하나’로만 나온 점은 좋게 보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재미있고, 뛰어난 작품임은 인정하나)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에서 온 사람들 앞에서는 거론하거나 칭찬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모욕하고 싶지 않고, 누구에게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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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내가 올해에 읽은 책들(서른여덟 권) 가운데 일부를 적은 명단인데, 어떻게 보셨는지? 부디 이 글이 여러분이 읽을 만한 소설을 고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빈다.
앞으로 내가 이 카페에 올릴 글들, 그러니까 ‘짧은 독서감상문’ 겸 ‘독서 목록’에 어떤 책이 들어갈 것인지, 그리고 내가 그 책에 어떤 평가를 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고, 나 또한 그것을 감히 예상할 수 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그것을 쓸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나아가 그 글을 쓰기 전에 내가 새 책 – 아직 읽지 않은/읽지 못한 책 말이다 –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기쁨을 안겨준다는 것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으리라. 그 말을 덧붙이면서 이 글을 매듭짓고자 한다.
- 단기 4356년 음력 11월 13일에, ‘올 한 해는 책 읽기로 시작해서, <독서 목록> 작성으로 끝나는구나.’하고 생각하는 잉걸이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