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일기(10) : 역답사(포항역/서경주역)
1, 과음에 의한 정서적 침체에 더해 코로나에 걸리자 몸과 정신을 지배한 것은 일종의 무력감이다. 심하게 열이 나거나 몸살은 없지만 무언가 활력이 소실되었고 흥미가 사라졌으며 지루함까지 느껴졌다. 이런 느낌은 현재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허무함까지 부여하였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육체적 쇠퇴의 진짜 위험은 삶의 의욕을 빼앗는 거라는 누군가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런 퇴영적 기분으로 보내는 순간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 그저 과거에 했던 방식인 루틴대로 행동하는 것이었다.
2. ‘걷기’는 부정적 기분을 날려보는 데는 최적인 듯하다. (수)요일 역답사를 떠나기 전까지 계속되던 침울한 감정이 두 곳의 역 답사를 약 5시간에 걸쳐 마무리하면서 조금은 약화되었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때, 그저 ‘걷는 것’ 이것이 정신과 육체에 주는 최상의 치료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답을 모르면, 땀이 온 몸을 적실만큼 열심히 걸어라.’
3. 최근 새로 만들어진 역들을 보면 과거 역들에서 발견했던 ‘낭만’이 이제 실종되었음을 확인한다. 과거의 역은 사람과 사람이 만났으며, 만남 속에서 추억과 기억을 공유했던 공간이 형성되었고 사람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던 장소였다. 하지만 KTX를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역들은 시 외곽에 오로지 이동을 위한 장소를 만들어졌다. 그런 이유로 주변에는 어떤 편의시설이나 사람들이 찾아갈 장소는 없다. 거대한 주차장만 역 주변에 만들어져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바쁘게 표를 사고 목적지로 향한다. 역은 빠르고 효율적인 목표에 충실해져 가고 있다. KTX에서 창밖은 더 이상 낭만적인 시선이 머물 수 없다. 빠른 속도는 정상적인 관찰을 어렵게 하고 대부분의 승객들은 창문을 가리고 잠에 빠질 뿐이다.
4. <포항역>에서는 버스를 타고 시내 쪽으로 이동했다. 걸어서 이동하기에는 여러 가지 조건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포항의 도심을 걷는 것은 나름 괜찮은 시간이었다. 죽도 어시장 중심을 흐르는 포항운하의 신선한 물길과 물길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배들의 풍경은 해안가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을 도심에서 만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포항 시청 쪽으로 이동하니, 과거 철길을 시민들의 산책로로 만든 ‘철길 숲 길’이 나타났다. 상당히 긴 거리를 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이제 도심 속 숲길은 대부분의 도시의 일상적 풍경이 되고 있다.
5. <포항역>과 <서경주역>을 가지 위해서는 ‘양평’에서 가기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영천역>에 주차하고 <동대구역>과 <포항역> 사이를 하루 편도 4차례 운행하는 기차를 이용해야 했다. ‘영천역’에서 ‘포항역’까지 철길 코스는 낭만적인 풍경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약 1시간이 조금 넘는 코스에 반 정도가 터널을 지난다. 영천과 경주 그리고 포항을 지나면서 높은 산맥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경관도 대부분 황량한 들만 이어진다. 기차 창문에서 보는 여행은 <경북선> 코스가 월등히 아름답다.
6. 경주는 경주 도심에 있던 <경주역>이 사라지고 도심에서 떨어진 <서경주역>과 <신경주역>으로 대체되었다. <서경주역>에서는 약 1시간 걸으면 도심으로 들어갈 수 있는 강과 만난다. 그 곳에서 ‘경주’의 본격적인 모습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입구에서 돌아와야 했다. 다음 기회, ‘경주’의 도보 답사를 기약하며 깜깜한 어둠을 배경삼아 서경주역을 향해 걸었다. 모든 것이 고요해진 들판, 그 사이를 고독하게 걷는 것은 지방 답사에서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이런 저런 코스를 약 5시간 정도 걷자, 기분이 조금 편안해졌다. 다시 글도 쓸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 왕복 5시간의 차량운행, 약 5시간의 답사, 약 2시간의 기차여행, 바쁘게 보낸 하루였다. 그 바쁨이 정신을 들게 한다. 과음과 코로나의 시간, 다시 반복하지 않아야 할 시간이다.
첫댓글 - 그저 ‘걷는 것’ 이것이 정신과 육체에 주는 최상의 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