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이 사진은 자금성의 '건청궁'인데... 현판 옆에는 내가 읽을 수 없는 문자가 병기되어 있다.>
오늘은...
지난 회에 이어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화려한 궁전 중 하나인
자금성을 마저 둘러보고자 한다.
오늘날 중화민족의 본류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중국,
타이빼이 섬에 있는 또 다른 중국인의 국가를 '지류국가'라고 부르면 대만인들은 서운하겠지만...)
의 수도인 북경에 있는 자금성은 그 위용과 화려함 만큼 그 이면에는
어쩌면 동북아시아의 수 천년 역사가 응축된 역사적 사실을 품고 있다.
그 사실이 누구에게는 영광으로, 또 다른 누구에게는 아픔으로 기억되기도 하겠지만...
갑자기 어러한 생각을 하게 된 연유는
자금성을 둘러보다가 내부 전각의 현판이 한자와 함께 병기된
내가 잀을 수 없는 '이상한 문자'로 표기된 사실을 발견하면서 생각해 본 단상들이다.
그 흔적은 만주족(滿洲族, Manju, 중국어 병음 Mǎnzú)의 흔적이었다.
만주족은 원래 그 혈연적, 문화적, 역사적 기원이
만주(중국 동북부; 랴오닝 성, 지린 성, 헤이룽장 성)에서 발상한 퉁구스계 민족이다.
여진족의 후신으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뜻으로 후금(청나라)을 건국하였다.
원래 ‘滿洲’라는 한자는 만주어의 민족명 Manju의 차음이다.
이들은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의 하나이다.
만주족은 대대로 동북지역에 살았으나 여러 가지 역사적인 원인으로
지금은 거의 중국 전국 각지에 분포되어 있다.
2000년 현재 싯점에서는 중국에 1,068만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주요 분포 지역은 동북 3성으로 7,185,461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그 중 랴오닝 성이 4,952,859명으로 가장 많다.
과거에는 만주어를 일상어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청나라 시대에 진행된 민족 문화의 한족화(漢族化)로 인해
현재는 만주어의 사용 인구는 극소수로, 거의 모두 중국어를 사용한다.
중국학 연구에 일가견이 있는 P. Huang에 따르면,
만주의 선사시대 조상들은 황하유역, 몽골 유목민, 태평양 연안과
바이칼 호 근처의 탈가 지역에 살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최초의 조상들은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에 살았던 숙신이었다.
결국 만주족은 고대 우리나라의 고구려 및 발해시기에 우리와 경쟁, 또는 겨루던 여진족의 후손이다.
한 때 여진족은 동북아시아의 광범위한 지역을 정복하여 12세기에 금나라를 세웠다.
당시 여진의 일파인 완안 부족이 지배했다.
물론 후에는 몽골족인 칭기스칸의 원나라에 정복되었다.
그 후 1586년 누르하치가 여진족의 세 부족을 통합하고 연합된 부족의 이름을 만주족으로 바꾸었다.
누르하치는 유목 법령을 통합하여 강력한 제도를 만드는데,
이는 후금(後金)과 중국을 점령한 후의 청(淸)제국이 된다.
누르하치의 아들 홍 타이지는 여진족이 만주족이라고 호칭하게 하였고,
이후 여진족이라는 호칭을 금지하였다.
한편 만주어는 우리 말의 기원이기도 한 퉁구스어 계통의 언어의 하나이다.
물론 만주족이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진건 아니다.
1931년에 일제는 조선과 중국 침략의 야욕을 품고 만주국괴뢰정부를 수립하고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선통제)인 아이신교로 푸이를 황제 자리에 앉힌다.
이 때 이미 만주에서 한족의 인구가 만주족의 인구를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만주족들 사이에서도 이 계획은 민족적 반향을 얻지 못했다.
만주국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과 함께 사라졌으며 만주국의 강역은 중국에게 넘어갔다.
(이상 위키백과 참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두고 문화유산을 보면
그 의미가 남다르게 다가오기도 하니...
지금부터 다 보여드리지 못한 자금성의 내부 모습을 보여 드린다.
지금부터 보여드리는 사진은 자금성의 내성 모습들이다. 찬찬히 둘러 보시기 바란다.
아시겠지만...
태화전은 궁궐의 정전으로
자금성의 정전은 이 태화전을 중심으로 중화전과 보화전이 외전이다.
정전은 황제가 직접 주재하는 조회 장소이며
황제의 등극, 조서 반포, 대전 거행의 장소이다.
이에 비해 중화전은
황제가 태화전으로 나갈 때 궁이 너무 넓으니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ㅎㅎ)
정전으로 행차 전에 신료들의 조배를 받거나 상주문을 열람하는 등
국가 최고 통치자의 사전 준비, 또는 내밀한 의사결정을 위해
확보해 둔 예비전각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또 다른 외전인 보화전은
외교사절이나 신료들과의 연회를 위한 연회장의 기능을 하는 곳이다.
궁궐 내부의 영빈관 격이다.
이러한 전각들의 내부나 좀 더 자세한 사진은
다음 회에 자세히 보여드릴 예정이다.
첫댓글 형언할수없이 웅장한 자금성 실물을보면 가위에 질릴것 같네요 .대단히 감사 합니다 ...
아니..금호할배께서 못읽는 글자가 다 있니껴??그건 글자 아니고 그림이겟지여..ㅎㅎㅎ너무 멋진 사진...감사하니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