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가 582장(통261장)
찬송 시 '어둔 밤 마음에 잠겨'의 작사자는 함경북도 경흥 태생이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장공 김재준(金在俊 1901-1990) 목사입니다.
그는 일본 아오야마(靑山) 학원 신학부를 나온 후 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구약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였던 1932년에 귀국하여 평양 숭인상업학교에서 교사로,
만주 용정(龍井)에 있는 은진중학교에서 교목으로도 일했지요.
김재준 목사는 조선인은 조선인의 손으로 양육되어야 하고, 신학교 역시 조선인의 손에
의해 세워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1940년 조선신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 신학교는 약칭 장로교단의 기장(基長)으로 불리는 대한기독교장로회 교단
신학교인 지금의 한신대학교입니다. 이곳에서 평생 교수를 거쳐 학장까지 역임한
그는 한국교회개혁비전을 제시한 선각자인데요. 1940년대 말부터 우리 한국교계에서
소용돌이친 보수신학과 소위 신신학(學)으로 불리는 자유주의 신학과의 논쟁이 있었고,
그로 인해 결국은 교계가 나뉘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일선에 계셨던 한국교회의
역사적인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유주의 신학의 기수’로 불리고, 박정희 정권하에서는
3선 개헌 반대 운동을 비롯하여 정부를 상대로 민주화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여
'행동하는 신앙인' 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이 찬송은 원래 1966년 대한기독교장로회 제50회 총회가 열렸을 때 '총회 기념가' 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때의 곡은 당시 연세대 교수인 나운영 장로의 작품으로 불렸지요.
이 곡은 '청년찬송가’에 수록되었다가 1967년 ‘개편찬송가’가 편찬되면서 이동훈 교수의
곡으로 바뀌어 수록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기장총회를 기념해 만들어진 만큼 원래 찬송 제목도 '교회' 인데요. 교회가 영혼 구원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국가에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기독교적
국가관과 사명을 가져야겠다는 그분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김재준 목사는 이 찬송이 애국가와도 같이 온 국민에 불리기를 바랐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도 오늘날에 삼일절, 광복절 같은 국가기념일마다 교회에서 애창되고 있지요.
찬송 시는 1929년 4월 2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타고르의 시 '동방의 등불'을 연상케 합니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동아일보 기자로부터 한국방문을 요청받고
응하지는 못했지만 한국을 소재로 이 4행시를 기고한 것입니다.
일제 강점 하에 있던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고 꿋꿋이 독립을 이루기 바라는
마음에서 보낸 격려의 시인 것이지요.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 코리아 / 그 등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될지니.”(주요한 번역)
곡명 '교회'는 ‘개편찬송가’ 편찬 시 편찬 위원이었던 이동훈(李東勳, 1922-1974)
선생님에게 위촉하여 작곡되었습니다. 이동훈 선생님은 바이올리니스트이면서 훌륭한
합창지휘자였지요. 그분이 활동하던 1960년대는 우리나라 아마추어 합창음악의 전성기라
할 만한데요, 대한합창단(나운영 지휘), 서울코랄(박재훈 지휘), 성종합창단(곽상수 지휘),
시온성합창단(이동일 지휘), 아가페합창단(김두완 지휘), 필그림합창단(이동훈 지휘),
한국오라토리오합창단(박태준 지휘) 등 앞 다투어 선의의 경쟁을 하며 활동을 하고
황무하기 이를데 없는 교회음악계에 발판을 마련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찬송가 작곡가들 거의가 이 합창단들을 지휘하며 외국의 유명한 오라토리오나
칸타타. 그리고 교회 찬양대를 위한 찬양곡(Anthem) 등을 번역 발표, 출판하고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흑인 영가 등을 연주함으로 고도의 합창기법을 구사하였고, 그들이 직접 작곡한
성가합창단을 통해 발표하면서 창작열을 불태우곤 했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찬양대가
이렇게 세계에 자랑할 만큼 훌륭하게 성장한 것도 아들의 개척자적인 헌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 : 김명엽 교수 새문안교회 음악아카데미 2대 원장
위 글은 김명업의 종교/예술에서 지자의 허락을 받아 요약정리하였습니다.
- 새문안교회 음악교육원 ‘교회음악소식 166(가을)호’에서
https://youtu.be/2zG5q5xBui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