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한복판이었다. 어머님은 자리에 누웠고 나는 무거운 일상에 당황하며 우왕좌왕했다. 사회적 도움을 받을 곳이 없어 집에서 모두 해결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일어나지 못하니 식사 수발은 물론 대소변과 하혈도 기저귀로 해결해야만 했다. 두 달 정도 종이 기저귀를 썼더니 엉덩이에 발진이 생겼다. 날이 따듯해지길 기다려 마당 구석에 큰 솥을 걸었고 면포를 사서 기저귀를 만들었다. 스무 장 정도의 기저귀를 매일 삶았다.
일을 도외주는 사람이 있었지반 퇴근하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버스에서 내리면 저만치 보이는 우리 집 마당에서 영혼의 손짓같은 흰 기저귀들이 펄럭이며 나를 불렸다. 이어서 기저귀 삶는 비릿한 죽음의 냄새가 뒤따라 마중 나왔다. 기저귀를 접을 때면 속이 울렁거리며 구역질이 올라웠다. 삶아도 사라지지 않는 죽음의 거무스름한 빛깔과 비릿함 때문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환자에 대한 안타까움은 흐려지고 내가 짊어진 고단함의 무게만 점점 전해졌다. 기온이 오르고 봄꽃 향기가 방 안으로 스며들 때쯤 힘없는 목소리로 "장미꽃 피었니?" 물었다. "아직요. 꽃 피면 보여 드릴게요." 어머님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아프다는 말도 힘들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식사 대신 맞던 수액도 몸에서 거부하며 상태가 점점 나빠지던 어느 날, 나를 불렀다. 어머님 방과 마주 보는 우리 방문을 밤에도 열어 두란다. 혹시 자다가 찾아올 죽음에 대비하고 싶은 바람이었으리라. 자려고 누우면 그 방에서 흘러넘치는 비릿한 냄새로 속이 요동쳤다. 모든 신경이 어머님 방 쪽에 집중되어 신음 소리가 나도 불안했고 소리가 나지 않아도 불안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낮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으니 직장 생활도 버틸 수가 없었다. 일주일 정도 노력하다가 결국 방문을 닫고 말았다. 밤마다 문을 닫을 때 들리는 '쿵' 소리는 마음의 문까지 닫는 소리였다. 다가온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에 시달리며 자식의 마음 문 닫는 소리를 듣는 어머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모래바람 거센 사막에 홀로선 선인장처럼 슬픔과 절망의 가시가 수없이 돋았으리라.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담장엔 빨간 덩굴장미가 활짝 피었고 햇살은 눈부셨다. 빨랫줄에 걸린 하얀 기저귀는 죽은 사람의 넋을 부르는 초혼魂招의 몸짓처럼 펄럭댔다. 문 닫는 소리가 점점 두껍게 다가가 마지막 삶의 끈을 쉽게 놓았으면 어쩌나. 나는 설움에 겨워 어머니를 눈물로 불렀다. 깊은 감사의 마음을 끝끝내 전하지 못한 것이 더 안타까웠다 오늘은 어머님 기일이다. 가시를 제거한 덩굴장미를 영정사진 앞에 놓고 머리를 숙인다. 그리움으로 일렁이는 남편의 눈빛은 나의 그리움과 서러움도 넉넉히 헤아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 마음을 콕콕 찌르는 것 같은 이 아픔은 무엇인가.
정옥순
한국문인협회.한국수필가협회 회원 한국수필우수작품상(2022), 한국디지털문학상 은상(2023) 수필집 <글꽃 머문 자리>(공) jos1213@naver.com 아름다움 뒤에 숨은 가시를 기억하려 합니다. 내 마음에도 가시가 자라지 않도록 오늘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