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하나의 주제로 귀결됩니다.
“본래적인 것을 찾기”
본래적인 것 즉 본질을 찾자는 말은
날이 갈수록 제게는 샛별처럼 빛나는 말입니다.
본질을 찾는 자가 동시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근원적인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스도는 나와 어떤 관계인지,
교회는 무엇하는 곳인지,
믿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이 말은 결국 ‘나의 현존재가 어떠한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목회자는 대개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에게 말해 줄 것’을 끊임없이 찾습니다.
책을 읽어도 누구에게 말할 것을 찾아 밑줄 칩니다.
이번 주 설교에 어떤 감동을 줄 예화가 있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가르침은 제일 먼저 나에게로 향하는 것입니다.
저 가르침이 나를 뒤집어놓는 변화부터 하는 것이지요.
그 연후에 바깥에 말하든 말하지 않든 하는 것입니다.
질문을 자신에게 하는 자는 자신에게서 답을 찾지 않습니다.
그는 나를 넘어 더 나은 답이 있음을 아는 자입니다.
내게 답이 있다면 찾을 필요가 없이 그냥 내키는 대로 살 뿐입니다.
나를 넘는 답이 있음을 인정하는 자는 내가 가진 답에 머무름이 없습니다.
그는 ‘더 좋은 것을 준비하셨나이다’하며 더욱 듣고자 합니다.
나를 넘어서니 스승이 보이고 책이 보입니다.
‘아이구, 요즘 세상에 무슨 좋은 가르침이 있나’하며 한탄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어둠이 짙어질수록 별빛은 더욱 빛나는데 왜 별은 보지 못하고 어둠만 봅니까?
보려 하지 않고, 듣지 않으려 하며, 배우고자 하지 않는 나를 한탄할 일입니다.
성서는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마 11:5, 병행구절 눅 7:22)
예, 나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첫댓글 아멘. 자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