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증거된 예수님의 부르짖으심에 있어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씀은 아주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하거나 또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게 합니다..
우선은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심에 있어서의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십자가 목숨값 구원에 있어..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 예수님께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있어서 완전히 다르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고, 특히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의 모든 구원의 일들을 위해 그렇게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까지 한 시작과 진행은 전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위치와 역할이 아니실 수 없음을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표현하신 것이며, 만일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똑같은 위치와 역할이신 분이라면 “어찌하여”, 또한 “버리셨나이까”라는 말씀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볼 때 그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표현에서는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어느 정도로 까지 철저하게 비참케 되셨는지, 얼마나 처절하게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을 위한 값을 대신해서 치르셨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구주 예수님의 메시야로서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하는 것인데..
곧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전적으로 합당할 수 있게 하신 것으로 다시 말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어둠과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철저하고 치열하게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이루신 것이며, 그렇기에 그 누구든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이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음이 가능케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아래 본문에서 성령님에 대해 표현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당시 그 시간에 그러한 성령님의 위치와 역할 또한 결코 부재였을 수가 없는 것임은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 단 하나,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실제로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아래 본문에서와 같은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구원 사역의 때 뿐 아니라 모든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심이 아닐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성령님께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분인 것으로..
구주 예수님께서 처녀의 몸에서 잉태케 되신 실질적인 하늘의 힘과 실제와 누림에 있어서도, 또한 마태복음 12장 28절에서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라고 증거된 말씀에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구주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있어서의 모든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들, 하나님 나라의 사건들 등에 있어서도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성령님께서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실제와 누림들이 되신 분임이 아니실 수 없는 것이며, 그렇기에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능히 감당하시고 심지어는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흘리시기까지의 죽음 이상의 고통을 이기시면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와 경험들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고 바로 그러한 성령님과 함께 십자가의 구원 사역이 가능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실상 그러한 사실과 이치는 성령님께서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의 이름과 함께 직접적, 실제적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힘과 권능을 생생하게 누리게 하시는 분인 것일 뿐만 아니라 따지고 보면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있어 제대로 된 응답과 현실적인 누림이 됨에 있어서도 직접적, 실질적인 힘과 실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성령님이 아니실 수 없는 것이고, 게다가 그 백성들이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되어 구주 예수님을 따라 좁을 길을 가고 십자가의 길을 가면서 크고 작은 모든 고통들을 하나하나 감내하고 능히 이길 수 있게 하는 직접적, 실질적인 힘과 실제이신 분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에 있어서의 성령님의 현실적, 구체적인 위치와 역할에 있어 이해나 유추가 그리 어려울 수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사실은 그와 같은 정도와 실상의 차원인 것일 뿐만 아니라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지 사흘 째 된 날에 부활케 되심에 있어서도, 오늘 우리들이 대략 2000년 전에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그 많은 시간과 공간들,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실제로 이신칭의의 구원이 가능케 됨에 있어도, 게다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죄악들, 악한 세력들과 싸울 수 있음도,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음도, 그로 인해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생생이 누릴 수 있음도, 더 나아가 세상 끝 날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이 실제가 됨에 있어서도, 심지어는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에 있어서도, 홍해 바다가 갈라지게 된 사건에 있어서도, 베드로를 통해 성전 미문의 나면서부터 못 걸었던 자가 그 자리에서 일어서게 됨에 있어서도 단 하나,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모두 다..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와 누림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또한 그 전에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뜻와 약속과 섭리 안에 있는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중 일부가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게다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그렇기에 근원적으로는 그 존재와 개념 상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가복음15:34)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6월 18일(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