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9월 26일 연중 26주일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한국 천주교회는 사도좌와 뜻을 같이하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과 이민자들에게 더욱 깊은 사목적 관심을 기울이고자 2001년부터 ‘이민의 날’을 지내고 있다(주교회의 2000년 춘계 정기 총회).
보편 교회가 2019년부터 ‘세계 이민의 날’을 1월(주님 공현 대축일 이후 주일)에서 9월 마지막 주일로 옮겨 지내기로 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이에 맞추어 ‘이민의 날’을 지내기로 하였다(주교회의 2019년 춘계 정기 총회).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위원장 정신철 주교)에서 ‘세계 이민의 날’(9월 마지막 주일) 명칭을 보편 교회에 맞추어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World Day of Migrants and Refugees)로 변경할 것을 제안하였다는 설명을 듣고,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로 명칭을 변경하기로 하였다(주교회의 2021년 춘계 정기 총회).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8-43.45.47-48
그때에 38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제107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9얼 26일)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담화 (2021년 9월 26일)
더욱더 넓은 ‘우리’를 향하여 함께 걸어 나갑시다
한국 교회는 전 세계 교회와 더불어 9월 마지막 주일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로 정하고 이주민과 난민들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특별히 올해는 그 의미가 더욱 깊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이민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이주민들과 난민들을 기억해 왔지만, 이 명칭은 그 본연의 뜻을 신자들에게 정확히 전달해 주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3월 주교회의 2021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는, 9월 마지막 주일이 ‘이주민’만을 위한 날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치, 경제, 종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고국을 떠나 있는 이주민들과 난민들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형제자매이기에 미래를 향하여 그들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또한 올 한 해 우리 교회는, 한국 천주교회 차원의 사회적 약자로 열악한 처지에 놓인 이주 노동자들을 선정하고, 이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에 힘쓰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각 교구에서는 어려움을 겪는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하며 그들을 향한 형제적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국민과 함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이겨 내고자 노력하면서, 아울러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주 노동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하느님의 자녀이며, 많은 경우에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어려움과 고통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코로나19에 가려져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사건들이 있습니다. 섬에서 짐승처럼 부려지다가 탈출한 한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지내다 혹한의 추위에 동사한 캄보디아 여성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이처럼 열악한 노동 환경과 차별 대우는 수많은 이주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고, 때로는 목숨마저 앗아가 버립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도 어려운 현실과 고통 속에 있기는 마찬가지지만 많은 기관과 단체가 그들의 처우 개선을 위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받는 이주 노동자들을 대변해 주는 기관이나 단체는 많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외국인 이주 노동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배척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이런 모습에 주님의 말씀이 깊이 다가옵니다. “너희 땅에서 이방인이 너희와 함께 머무를 경우, 그를 억압해서는 안 된다. 너희와 함께 머무르는 이방인을 너희 본토인 가운데 한 사람처럼 여겨야 한다”(레위 19,33-34).
우리 신앙인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주 노동자들을 어떤 마음으로 만나면 좋겠습니까? 올해 제107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을 맞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당신의 회칙을 인용하며 하신 말씀을 새겨 봅니다. “보건 위기가 지난 뒤에 최악의 반응은 열광적 소비주의와 새로운 형태의 이기적 자기 보호에 더욱더 빠져드는 것입니다. 부디 더 이상 ‘다른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모든 형제들」, 35항). 이는 더욱더 넓은 ‘우리’를 지향함으로써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오로지 ‘나’만을 위하고 ‘자기 나라’만을 위하는 폐쇄적인 편협함에서 벗어나자는 호소입니다. 다시 말해서 온 인류가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으로 이 어려움을 함께 극복해 나아가자는 뜻입니다. 또한 교황께서는 ‘우리’라는 의식에 이주민들과 난민들을 초대하십니다. 이렇게 교황께서 호소하시는 더욱더 넓은 ‘우리’는, 보편성과 다양성 그리고 포용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더 넓은 ‘우리’는 인류를 다양성 안에서 친교를 맺고 서로의 다름을 통하여 하나가 되게 할 것입니다.
이에 발맞추어 한국 교회는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서 코로나19를 지혜롭게 극복해 나가고자 사순 시기부터,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과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시복 시성 운동의 하나로 ‘교황님과 함께하는 백신 나눔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의 코로나19 상황이 다만 어느 한 나라에서 잦아든다고 해서 종식될 문제가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가난한 나라에서도 백신 접종이 가능하도록 전 세계 인류와 함께 이 나눔을 실천하였습니다. 이 백신 나눔 운동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우리’라는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형제적 사랑’입니다. 이 ‘형제적 사랑’으로 이주 노동자들은 물론 난민들을 ‘우리’ 안에 초대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서 일하며 생활하고 있는 이주민들과 난민들은 더 이상 남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는 이미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더 넓은 ‘우리’를 알게 해 주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이주민과 난민이라는 말에는 다양성이 있고, 이 다양성은 우리를 풍요롭게 하고 성숙하게 합니다. 우리가 이 다양성을 존중할 때, ‘형제적 사랑’이 실현될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구분될 수 없고, 어떤 차별도 없는 한 형제자매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더 넓은 우리’를 삶으로 보여 주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참모습을 회복하는 일이며, 이것이 바로 우리 신앙인의 사명입니다.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2021년 9월 26일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정 신 철 주교
<그대들의 재물은 썩었습니다.>
▥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5,1-6
1 자 이제, 부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닥쳐오는 재난을 생각하며 소리 높여 우십시오.
2 그대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대들의 옷은 좀먹었습니다.
3 그대들의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그 녹이 그대들을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그대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그대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재물을 쌓기만 하였습니다.
4 보십시오, 그대들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 귀에 들어갔습니다.
5 그대들은 이 세상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렸고, 살육의 날에도 마음을 기름지게 하였습니다.
6 그대들은 의인을 단죄하고 죽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대들에게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축일9월 26일 성 고스마 (Cosmas), 다미아노 (Damian)
신분 : 의사, 순교자
활동 연도 : +303년?
같은 이름 : 고스마스, 코스마, 코스마스
전승에 따르면 성 코스마(또는 고스마)와 성 다미아누스(Damianus)는 아라비아(Arabia)의 명문 가정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로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훌륭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들은 시리아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의사가 되어 소아시아 남동부에 위치한 실리시아(Cilicia) 지방 에게해(Aegean Sea) 근처에 살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환자와 가축들을 무료로 치료해주었다. 의료기술이 뛰어나 명의라는 소리를 들었을 뿐만 아니라, 의약으로 낫기 어려운 병자들도 간절한 기도로 돌봐줘서 육신과 영혼의 건강까지 치유해주는 의사로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이에게 칭송을 받았다. 실제 기도의 힘으로 중병이 완치되는 기적도 일어났다.
3세기 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에 대한 대박해를 시작했을 때,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누스 형제는 실리시아의 집정관인 리시아스(Lysias)에 의해 체포되었다. 곧바로 그들은 배교할 것을 강요당하며 모진 고문을 받았다. 하지만 굳은 믿음을 지니고 있던 이 형제는 끝까지 집정관의 요구를 거부하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전설에 의하면, 리시아스가 처음에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누스를 돌로 쳐 죽이려 했으나 그 돌이 되돌아와 던진 이들이 다치고, 다시 십자가에 묶어 놓고 화살을 쏘았으나 그 화살 또한 쏜 사람에게 되돌아와 꽂혀버렸다. 그래서 활활 타오르는 불 속에도 바다에도 던졌지만, 그래도 죽지 않자 참수형에 처했다고 한다. 이때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누스 외에도 그들의 형제인 성 안티무스(Anthimus), 성 레온티우스(Leontius), 성 에우프레피우스(Euprepius)도 함께 처형당했다.
그들의 순교 후에 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또 그들의 높은 신앙심을 증명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고 전해온다. 이미 4세기 초부터 예루살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지에 그들을 기념하는 성당이 건립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그들이 순교한 지 백 년이 되었을 때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그들의 유해를 모신 대성당을 건축했는데, 이곳은 점차 주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6세기에 교황 펠릭스 4세(Felix IV, 526-530년 재위)도 로마에 두 성인에게 봉헌한 대성당을 건립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 이전, 두 성인의 축일은 다른 형제들과 함께 9월 27일이었는데, 이날은 바로 로마의 성당이 봉헌된 날이라고도 하고 순교한 날이라고도 한다. 현재 그 성당은 재건축되었으나 내부에는 두 성인을 묘사한 6세기의 모자이크가 여전히 남아 있다. 또한 두 성인은 이미 6세기경부터 로마 전문(Canon, 오늘날 미사 경본의 감사기도 제1양식)에서 기억하는 성인들 명단에 추가되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성 코스마와 성 다미아누스는 약제사의 수호자이고, 성 루카(Lucas) 복음사가 다음으로 의사들의 수호성인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축일9월 26일 성녀 유스티나 (Justina)
신분 : 동정 순교자
활동 지역 : 안티오키아(Antiochia)
활동 연도 : +304년경
같은 이름 : 유스띠나
역사적인 확실한 근거는 희박하나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는 안티오키아에 살던 이교도로서 잡귀신들을 불러 마술을 부리는 마법사였다고 한다. 그는 이런 능력 때문에 그리스, 이집트, 마케도니아 그리고 심지어는 인도까지 두루 여행하면서 그의 능력을 과시하고 추종자들을 모았다. 그런데 한 이교도 청년이 안티오키아의 그리스도교 신자로 미모의 처녀인 성녀 유스티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성 키프리아누스에게 그녀의 사랑을 완전하게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고, 성 키프리아누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온갖 예식을 거행했으나 성녀 유스티나의 굳은 신앙심 때문에 모든 것이 허사로 끝났다. 그는 자기 창고에 있는 모든 도구를 동원해 성녀 유스티나를 괴롭힐 악마들을 불러냈다. 그러나 성녀 유스티나는 십자가의 표지로 마귀들의 공격을 막아 냈다. 이에 그는 갑자기 자신이 무력해지면서 억누를 수 없는 어떤 무서운 힘에 압도당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 자신이 오히려 위험한 지경에 빠진 것이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이때부터 악마의 도움을 구하지 않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악마가 그를 덮치고 괴롭히기 시작했다. 지난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친 성 키프리아누스는 십자가를 만들어 악마의 세력에서 빠져나오는 행운을 맛보게 되자, 즉시 에우세비우스(Eusebius)라는 사제에게 달려가서 교리를 배우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 그는 온갖 마술 서적을 불태우고 자기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희사했으며, 마침내 이교도 청년과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사제가 되었고 또 안티오키아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성녀 유스티나는 수녀원장이 되었다.
그 후 그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어 다마스쿠스(Damascus)로 압송되어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성 키프리아누스와 성녀 유스티나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황제 앞으로 끌려나가 재판을 받았고, 니코메디아(Nicomedia, 오늘날의 이즈미트)의 갈루스(Gallus) 강 언덕에서 황제의 명으로 참수형을 당해 순교했다. 이때 성 키프리아누스를 찾아와 위로했던 테옥티스투스(Theoctistus)라는 신자도 함께 처형을 당했다. 그들의 시신은 매장되지 않고 6일 동안 방치되어 있었으나, 밤중에 그리스도인 선원들에 의해 로마(Roma)로 옮겨졌다. 그들의 유해는 루피나(Rufina)라는 귀족 부인의 영지에 매장되었다가 후에 콘스탄티누스 성당 안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오늘 축일을 맞은 고스마, 다미아노 형제들과 유스티나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