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존석굴을 뒤로 하고 인각사를 향해 좁은 지방도로를 지나는데 산길에 물이 흥건합니다.
이런~
요즘 비도 안왔는데...?
의아해 하며 좀 더 오르니 파쇄석(?) 공장인 듯~
먼지 풀풀 날리는 공장이 나타납니다.
이어 길을 가로막는 살수차 등장~
그래서였구나.
그동안 세차 하는거 힘들어서 진땅 열심히 피해다녔는데 이번에는 꼼짝없이 걸린 듯 합니다.
안동, 영천행 도로,
인각사 표지판을 지나~
인각사에 도착합니다.
미리 보고 온 사진대로 도로에서 한걸음만 들어가면 바로 절 마당입니다.
山門 느낌은 참 안나는군요.
그러고 보니 오늘 지나온 지보사, 삼존석굴, 그리고 여기 인각사 까지 일주문, 사천왕문 같은 사찰 진입문이 모두 없었네요.
이 지역 사찰에서는 그런 건 별로 신경 안쓰는건지, 절집 살림이 거기까지 여력이 닿지 않는건지 모를 일입니다.
표지석 하나로 대신한 시원한(!) 인각사 대문 앞에 염소 붙들어 매고~
인각사 안내문을 읽습니다.
이런 역사를 지닌 사찰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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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생략하고 현대로 넘어와 인각사의 1,500여년 역사를 5분 만에 일별합니다.
도로 건너편에 병풍처럼 둘러친 저 암벽이 학이 둥지 틀고 사는 "학소대"라는 얘기군요.
어쩐지 범상치 않아 보이는 풍경이더라니~
청춘남녀 한쌍이 지나가는 학소대로 내려가 봅니다.
그러니까,
저 학소대 너머 화산에 거대한 기린 한마리가 앉아서는 낮잠을 자려고 고개를 뉘었는데 그 뿔이 여기 인각사 자리에 닿았더라...
이런 얘기인가 본데~
과연 신라시대에 이 땅에 기린이 있었을까 누구나 한번씩은 시비를 거는 그 문제는 잠시 미루어 두고,
그리고 기린이 있었다치고 한 천미터쯤 되는 기린이었다고 인정해 주고,
기린이야 원래 모가지가 긴 짐승이라 저~쪽 화산에서 이쪽 인각사 자리까지 모가지를 드리울 수도 있었을테니,
어떻게 생긴 기린이었는지 기린 그린 그림을 한번 보자구요.
먼저 혀 좀 풀고~
" 간장공장 공장장은 강 공장장, 된장공장 공장장은 공 공장장
경찰청 철창살 외철창살, 중앙청 창살 쌍창살
어항 속 붕어알은 네붕어알이냐 내붕어알이냐~"
준비됐으면 따라하세요.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잘 그린 그림, 네가 그린 기린 그림은 잘 못 그린 기린 그림"
신라시대 부터 우리 조상님들이 보셨던(!) 기린 그림입니다.
사슴의 몸에 용대가리, 그리고 외뿔(유니콘)이 달린 동양의 기린~
아프리카 초원에 멀대같은 오리지날 기린 보다 훨씬 멋지지 않나요?
원래 기린이 살지 않는 동양에서 기린은 예 부터 상상 속의 동물로서 "기린아"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상서롭고 뛰어난 능력을 지닌 영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 기린이 목을 길게 빼서 인각사 마당에 머리를 두고 낮잠을 자다가 목이 마르면,
학소대 밑 위천에 혓바닥을 내밀어 강물을 홀짝홀짝 핥아먹는 그 옛날 신라시대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거칠 것 없이 훤하게 열려있는 인각사 마당으로 들어섭니다.
일연연구원 처마 밑에 사람은 없고 8729 전화번호가 이런 것들을 팔고 있네요.
초석잠이라~
도라지 말린 것 처럼 생겼는데 상식없는 스카우트는 금시초문입니다.
검색~
그거 참 오묘~하게 생긴 물건이군요.
누에를 닮았다 하여 "누에 잠(蠶)"자를 쓴다는데 누에 보다는 굼벵이에 가까운 모습이네요.
식물과 동물의 경계가 애매해지는 모습에 얼핏 동충하초가 생각납니다.
차마 사진 올리기가 민망한 "코코 드 메르"라는 열대 식물 이름도 떠오르는데 궁금하면 한번씩 찾아보세요들~ㅎ
<사진 출처 - 시골풍경>
본존을 모신 극락전 마당으로 들어서면~
절집 크기에 딱 알맞은 아담한 신라 삼층석탑이 서 있습니다.
KS 규격품 처럼 안내문 없이도 "나? 오리지날 신라석탑~"이라고 하는 듯 합니다.
지대석이 땅에 묻혀있고 기단 갑석과 옥개석이 일부 깨지긴 했으나 보기 드물게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있는 게 고맙네요.
자세히 들여다 보니 앙화 부분(?)이 완전 오리지날은 아닌 듯 하지만~
찾아보니 1942년에 찍은 사진 자료가 있습니다.
일제시대임을 증명하듯 검은색 일본 승복을 입은 모습이 씁쓸해 보이네요.
깨지긴 했으나 안상과 연화문이 선명한 배례석도 격식에 맞게 놓여있고~
탑과 극락전 가운데 석등(얼핏 노주인가 했는데 석등이 맞는 듯~) 일부가 남아있네요.
상하층 기단과 팔각 석주를 보면 공을 많이 들인 꽤 큰 석등이었을텐데 화사석 부터 윗부분이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왼편에 국사전~
아마도 일연국사를 모시는 전각인 듯 합니다.
극락전 뒤편, 허름한 일본식 느낌의 건물에 손바닥만하게 미륵당이라는 현판(?)을 붙여놓았는데 문이 닫혀 있습니다.
살짝 열어보니 열리네요.
인터넷에서 보고 왔던 돌부처가 앉아있습니다.
깨지고 상처입어 콧대 세움 수술까지 받았지만 긴 세월의 풍파에 망가진 몸은 이미 원형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건물 소유주에 복전까지 받고 있으니 풍찬노숙하는 삼존석굴 비로자나불상 보다는 나은 신세인 듯~
안내문에 '입술이 두툽(어딜 가도 거슬리는 誤記들~!)하고"는 " 입술이 도톰하고"로 고쳐야 할 듯 합니다.
미륵당 왼쪽으로 돌아가면 절터를 발굴하여 나온 기와 조각을 탑처럼 쌓아놓았습니다.
참 많기도 하네요.
그만큼 건물들이 많은 큰 절이었다는 얘기겠지요.
옆에 마치 백엽상처럼 서 있는 미니어쳐 산령각~
마치 인형극 배경으로 쓰이는 소품 같은 느낌입니다.
힘들어서 쇠기둥의 부축을 받고 섰지만 그대로 주머니에 넣어가고 싶은 앙증맞은 모습에 한참 동안 아빠 미소를 머금고 들여다봅니다.
누군가 올린 글에 문을 열고 찍어놓은 사진이 있던데 굳이 그렇게 까지 하고 싶지는 않네요.
국사전 뒤편,
드디어 인각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보각국사 비각이 보입니다.
국사탑은 비를 지나 저쪽에 있으니 순서가 바뀌었지만 비를 먼저 보기로 합니다.
비록 처참하게 망가진 모습이지만 명불허전 왕희지의 살아서 날아갈 듯한 일필휘지~
읽어낼 수 있는 글자는 몇자 안되어도 시대를 초월하여 전해지는 명품의 향기를 음미하는 호사를 누리고 왔습니다.
비가 이런 몰골(!)이 된 것은 바로 너무 잘쓴 글씨 탓이니 미인박명이란 말이 허언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은 이런 모습이지만 온전한 비문이 탁본으로 전해져 원문 그대로 새 비석을 세울 수 있는 근거가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고려국 화산 조계종 인각사 가지산하 보각국존비명 병서....
인각사에서는 2006년에 3억 8천만원을 들여 보각국사비를 재현하여 세웠습니다.
원문의 내용과 글씨를 최대한 정확하게 복원하려고 했겠지만 건립 후 전문가들의 지적에 따르면 여기저기 오류가 많다고 합니다.
http://www.oeker.net/m/bbs/board.php?bo_table=garden&wr_id=2457474
비석을 지나 보각국사탑과 불상을 보러 갑니다.
보각국사 정조지탑~
탑이라 하였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승려의 부도입니다.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보물 제428호. 높이 약 2.42m.
본래 이 부도는 사역(寺域)으로부터 약 1㎞거리의 마을 뒷산에 위치하는 이른바 부도골[浮屠谷] 주변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62년 면사무소에서 이전하였다.
자연석으로 된 지대석(地臺石) 위에 8각의 하대석(下臺石)을 놓았는데, 상면은 급한 경사를 이루었고, 그 중앙에는 8각의 낮은 굄을 나타냈으며, 이 굄과 연이어서 작은 연화(蓮花)를 조각하였다.
그 위의 중석 역시 8각이며, 각 면에는 넓은 구획을 마련하고 그 내부에 동물상을 조각하였으나 뚜렷하지 않다.
상대석 역시 8각이지만 원형에 가깝고, 그 밑에서부터 단조롭고 소박한 연화문을 선각으로 나타냈다. 8각의 탑신 전면 광곽(框郭)내에 ‘보각국사정조지탑(普覺國師靜照之塔)’이라는 자경 6㎝의 해서로 탑명을 새겼다.
후면에는 문비(門扉)가 새겨졌으며, 나머지 6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과 연화좌 위의 보살입상을 돋을새김하였다.
사리공은 탑신 상면에 마련되었고, 8각 옥개석(屋蓋石) 밑에는 낮은 받침이 있으며, 두꺼운 추녀 밑은 전각(轉角)에 이르러 위로 느리게 반전(反轉)되었다."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부분 발췌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빛이 좋은 시각이었으면 좀 더 분명히 볼 수 있을텐데 아쉽네요.
탁본을 보면 글씨가 좀 더 뚜렷이 보입니다.
기단과 탑신을 둘러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동물상,사천왕상,보살상 들이 조각되어 있지만 뚜렷이 보이지 않아 탁본으로 대리만족해야겠군요.
부도와 나란히 앉은 불상~
광배는 깨졌지만 노천 불상치고는 비교적 원형이 살아 있습니다.
편안해 보이는 자연석 대좌가 인상적이네요.
인각사의 스타~
일연스님과 삼국유사 특별전시회가 열리는 전시관입니다.
컨테이너형 전시관을 보며 언뜻 세월호가 떠오르는 건 무슨 조화인지...
3년 전 봄, 은둥이 염소와 합천 영암사지, 해인사를 돌아볼 때 곳곳에 걸려있던 세월호 위령 현수막들이 요 며칠 세월호 인양 뉴스와 오버랩되면서 뜬금없이 일연전시관 앞에서 순간 멈칫해졌습니다.
일연 스님 초상~
당시로는 드물게 장수했던 스님의 노년을 상상하여 그린 듯 합니다.
효심이 지극하여 출가 승려임에도 노모를 극진히 봉양한 효자로도 유명합니다.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 누구나 외웠던 김부식의 삼국사기, 일연의 삼국유사의 주인공~
지금 전해지는 삼국유사는 일연스님 생존 시에 간행된 것이 아니라 1392년에 개국한 조선 건국시기 1394년에 간행된 것이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그래서 단군조선을 건국 당시의 이름인 "조선"이라 하지 않고 이성계의 조선과 구분하는 의미로 "고조선"이라 하였고, 오늘날 까지도 단군조선을 고조선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죠.
전시관 여기저기~
좁은 공간에 많은 자료들을 걸어놓아 여유있게 구경하기에는 불편합니다.
인각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들~
실물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시관을 나와 바라본 전경~
이렇게 보니 일주문이니 사천왕문이니 등을 세우지 않아도, 삼국유사 탄생 역사에 의미를 두고 편안히 돌아볼 수 있도록 이대로 유지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사전 뒷마당의 와편들과 함께 이쪽 마당에는 각종 건물 초석, 기단 등 출토된 석재들이 가득합니다.
해도 기울어가니 이제 집에 가자~
용대가리 기린 뿔 옆에 쫄아있는 염소 궁뎅이 한번 만져주고 출발합니다.
STOC 공식(?) 집결장소 문경 도자기전시관 주유소에 들러 배고픈 염소 밥 주고~
탑박스 춤추도록 달음박질하여 복귀~
오늘 주행거리 476km~
GPS와 약 8km 차이가 나는군요.
gps앱을 차이나에서 만든건가~
군위 둘러보기,
긴~~~하루였습니다.
2017. 3. 19. 여주 스카우트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혼자 라이딩 쪼까 심심하지 않으신지요?
ㅎㅎ
전혀요~
원래 독립군 스타일이라. ㅎ
헤~역시 !!! 볼게 많아욧^^
요세 알바덕텍에 카페서도 살짝만 들렸다 가는지라 글보기가 쉽지않네요
스카우트님 글은 정독을 해야하기에 ㅎㅎ 잘보았습니다!!
덧니님 댓글 오랜만이군요.
잘 봐주니 고맙습니다~ㅎ
후기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리얼리티해서 직접 다녀온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문외한이라 대충 읽어도 머리가~~~^^*
인각사와 학소대는 다녀온적이 있어서
좀 더 자세히 읽게되네요...
정성어린 후기 감사합니다...
꾸뻑~~~^^*
역시나 삼삼이님 발자취의 향기(!)가 서린 곳이었군요. ㅎ~
한번 마음먹기 쉽지 않은 곳이라 무리를 했지만 하루에 세군데는 조금 버겁네요.
경주 박투어 후기는 언제쯤 볼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