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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31] I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묵상 I 마태 13,36-43
그때에 36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7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38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39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40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41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42불구덩이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3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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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묵상] : 가라지의 길과 예수님의 길 <독서 : 예레 14,17ㄴ - 22 / 복음 : 마태 13,36 - 43>
내가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가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과의 만남은 나한테 힘과 용기와 희망을 주어 활기찬 삶으로 나아가게 한다. 하지만 나와 좋지 않은 관계를 맺는 사람의 경우, 나를 지치고 힘들게 할 때가 많다. 더욱이 상대방이 나를 모함하고 빈정거리거나 험담하고 사사건건 나를 반대한다면 이를 버텨내기란 참으로 쉽지가 않다. 속이 상하고 분하고 야속하며 미움이 가득해 저주를 퍼붓고 싶을 수도 있다.
질문을 던져본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그 사람일까? 그 사람은 온전히 악한 사람, 사탄과 같은 존재일까? 온전한 악인, 사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과 싸워야 하는 것인가?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그 사람이 아닌, 그 사람 안에 있는 악의 힘일 때가 많다. 따라서 싸워야 할 진정한 상대는 그 사람이 아니기에,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그에 대한 미움과 실망을 부질없이 누구한테 말하는 것은 오히려 나한테도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싸움의 상대가 악의 세력이기에 악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악을 이기는 방법은 오로지 완전한 선이다. 오로지 완전한 사랑이고, 진실이며, 철저히 자제된 침묵이다. 그렇게 싸워야 이길 수 있다. 악의 세력과 싸워 이긴 예수님의 방법이 바로 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우
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께서 악에 맞선 방법을 배워 익히려 하지 않을 때가 적지 않다. 예수님의 길은 가라지가 아닌 참된 밀로 추수 때까지 자라는 길이다...........◆
[말씀자료 : 박상병 신부] |
[나해]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2018-07-31) I 묵상기도방 |
시작기도 : ▷
크신 주님, 삶 안에서 보게 되는 많은 죄악과 고통스러운 일들 앞에서 나약한 저희는 희망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저희의 이성으로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일들 앞에서 절망하기보다, 악 마저 허락하시는 크신 주님의 섭리와 지혜를 살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의 섭리에 순응함으로써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
오늘의 기도지향 : 실직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오니
그들이 실망하지 않고 빠른 시일내에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오늘의 복음 : [나해]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마태 13,36 - 43
그때에 36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와, “밭의 가라지 비유를 저희에게 설명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37예수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고, 38밭은 세상이다. 그리고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39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40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41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42불구덩이에 던져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43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영적독서 : 삶의 사건들에 대한 순종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잊기 쉬운 순종은 이른바 '삶의 사건들'에 대한 순종이다. 이 개념은 분명히 신학적이고 실존적인 어려운 물음을 제기한다. 운명주의나 수동적 태도에 빠지거나 일어나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여기는 문제가 아니다. 하느님은 악도 죄도 바라지 않으신다. 일어나는 일 중 많은 것이 하느님이 바라신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 지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지혜안에서 그분이 허락하셔서 일어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 악을 제거하길 바라신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든 간에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일련의 상황은 여전히 있다. 하느님은 이런 상황을 바라시진 않으나 허락하시며, 그 상황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괴롭히더라도 우리가 신뢰와 평화 속에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초대하신다. 악에 순응하라는 것이 아니라 악을 허락하시는 하느님의 신비스러운 지혜에 순응하는 것이다. 이런 순응은 타협이 아니라 악보다 더 크신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표시다. 이런 태도는 고통스럽지만 많은 열매를 맺는 순종이다. 이런 순종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뒤 사건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우리가 맞닥뜨리는 것 앞에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로마 8,28)는 믿음으로 자녀다운 포기와 신뢰의 태도를 하늘의 아버지께 지니도록 초대한다는 뜻이다..........[자크 필립, '성령 안에 머물러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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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연중 제17주간 화요일(2018-07-31) I 말씀 묵상방 |
주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백성에게 커다란 재앙이 내릴 것이라고 하신다. 이에 예레미야는 백성을 대신하여 주님께 간구하고 죄를 고백하면서 참회한다. 그는 주님께만 희망을 두고 있다. 벌을 거두시고 재앙에서 백성을 구해 주실 분은 오직 주님뿐이시라는 것을 예레미야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제1독서). 가라지의 비유는 역사 속에 계시는 하느님 나라의 역동성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인간의 역사 한가운데 세우셨다. 인간의 역사는 하느님께 속한 무리와 하느님을 등진 무리 사이의 싸움판이다. 하느님 편에 선 정의로운 사람들이 결국 승리할 것이다. 역사는 하느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나타남을 기다리는 끊임없는 긴장의 연속이다(복음). |
<말씀묵상-1> : †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
하늘 나라란 예수님 자신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확장되고 건설되어지는 나라이다. 따라서 하늘 나라는 예수님이 현존하는 나라이며 예수님의 가르침과 이상이 실현되어지는 나라이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당신의 뜻과 이상을 말씀해 주시고 그것을 가르쳐 주시고 그렇게 살도록 교육시키셨다.
이렇게 당신의 뜻을 전하고 그렇게 살도록 교육시켜 온 이들이 바로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며 이들이 바로 좋은 씨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뜻과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이를 받아들이는 좋은 씨를 만들어 밭에 즉 세상에 뿌렸다. 그 이유는 좋은 씨인 하늘 나라의 자녀들로 하여금 당신의 뜻을 전하고 당신의 뜻대로 삶으로써 당신의 뜻이 실현되어지는 하늘 나라를 건설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당신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당신의 뜻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라지라고 말씀하셨다. 밀과 가라지가 분명히 다르듯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삶의 목표가 다르고 행동이 다르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악한 자의 자녀들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런 삶을 살아가도록 조장하는 이를 악마라고 말씀하셨다. 악마란 예수님의 뜻과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요, 예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방해하고 훼방을 노는 자이다. 즉 하늘 나라의 건설을 방해하는 자요, 피괴하는 자이다.
좋은 씨를 뿌리는 밭인 이 세상은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들만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그것을 방해하고 피괴하는 악한 자의 자녀들과 함께 공존하는 곳이다.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어는 곳이든 그것이 세상이든 교회이든 또 거룩한 이들이 모여 산다고 하는 수도 공동체이든 성직자의 단체이든 또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모인 본당의 어느 단체이든 그리고 가정이든 그곳에는 반드시 밀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법이다.
아무리 성인들이 모인 공동체이라도 聖人만 모인 곳도 없고 아무리 악한 이들이 모인 곳이라고 해도 악인들만 모여 있는 곳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밀과 가라지인 선인과 악인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즉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방해하고 파괴하는 악한 자의 자녀들이 있다.
이런 와중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인 좋은 씨가 해야할 몫이 있다. 하늘 나라는 이미 건설되어 있는 곳에서 하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하늘 나라가 건설되지 않고 있는 악한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하늘 나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많은 반대 세력과 부딪쳐야 하고 그 세력들로부터 방해를 받고 때로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희생을 치루어야 한다. 그것이 하느님의 자녀들인 좋은 씨가 자라면서 겪는 어려움이요, 수고이다. 하늘 나라인 예수님도 이 세상에 하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반대 세력들로부터 많은 박해와 모욕과 저항 세력을 만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도 나를 먼저 미워했다는 것을 알아 두어라."(요한 15, 18)고 말씀하셨고 당신뿐만 아니라 당신을 따르는 모든 이들도 같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것을 아시고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이들! 하늘 나라r라 그들의 것이니.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 나라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마태 5,10-12)라고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악한 자녀들 즉 남을 죄짓게 하고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굴복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복음 즉 예수님의 뜻과 이상을 전하고 보살피고 희생을 치루는 이들에 의해서 건설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악한 자녀들의 존재는 하늘 나라를 건설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커다란 짐이며, 어려움이지만 또 한편 그들이 있기 때문에 좋은 씨인 하늘 나라의 자녀들은 더욱 튼튼하게 자랄 수 있으며 자신을 돌보는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즉 함께 공존하고 있는 악한 자녀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사랑해주고 용서해주고 인내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녀들인 좋은 씨는 더욱 빛나게 자라고 마침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나는 의인으로 성숙될 수 있는 것이다.
운동도 어떻게 보면 적인 상대방이 있어야 열심히 운동을 하게 되듯이 하늘 나라를 건설하는 의인들인 하느님의 자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 있다고 해서 즉 남을 죄짓게 하고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이 있다고 해서 하늘 나라를 건설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좋은 씨인 하늘 나라의 자녀들이 더욱 필요하며 하늘 나라의 자녀들의 존재가 빛나고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의 자녀들인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을 가리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어야 하는 이유는 그리고 세상의 빛이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늘 나라의 자녀들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악한 자녀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며 그들 가운데에서 하늘 나라의 자녀들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돋보이게 하신 말씀이다. 하늘 나라의 자녀들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표현한 말씀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는 반드시 악한 자녀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 때문에 내가 하늘 나라를 건설하지 못한다는 것은 합당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만일 하느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하늘 나라를 건설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악한 자녀들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씨를 뿌리시는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스스로 하늘 나라의 자녀로서 존재하기를 포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악한 자녀들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고통을 나누며 그들을 이해하고 인내하는 나의 영적 투쟁이 부족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에 웃는 이가 승리하는 이다. 마지막까지 달리는 자만이 승리의 월계관을 받을 자격이 있다. 마지막 날에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의인은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꿈이 있어야 한다. 이상이 있어야 한다. 한번뿐인 내 인생의 꿈이 없다면 그리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할 나의 이상형이 없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고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인생은 미완성이라고 했다. 물론 완성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완성시켜야할 작품이 있어야 한다. 하느님께 드릴 봉헌물인 선물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모상인 나의 모습을 하느님을 닮도록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다. 그것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것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악한 자녀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그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선한 행동을 통해서 완성되는 것이다. 결국 내가 마지막에 도달해야 하는 나의 모습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의인의 모습이다.
바오로는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내 뒤에 있는 것을 잊고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면서 목표를 향하여 달려 갈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를 부르셔서 높은 곳에 살게 하십니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며 내가 바라는 상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모두 이와 같은 마음 가짐으로 살아 가야 합니다."(필리 3, 12-15)라고 말씀하셨다.............◆
[말씀자료 : 유광수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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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2> : † 당신은 좋은 알곡입니까?
사실 교회는 거룩하고 완전한 사람만 모이는 곳도 아니고 더더욱 사랑이 넘치는 천국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세상 안에 존재하고 있고 세상과 함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는 예수 믿는 사람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안 믿는 사람도 들어오고 하느님이 아들만 있는 곳이 아니고 하느님을 믿지 않는 마귀의 자식들도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마치 세상 안에는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교회 안에도 예수 믿는 사람과 믿는 않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사실을 바로 알고 단순한 낙관론에 빠져서 신앙생활에 시험당하거나 유혹당하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36-43절을 보십시오.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십니다. 밭은 무엇입니까? 세상입니다. 좋은 씨는 무엇입니까? 천국의 아들들. 즉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가라지는 무엇입니까? 악한 자의 자녀들. 즉 사탄의 자녀들입니다. 가라지를 심은 원수가 누구입니까? 마귀요. 밭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삽니다. 추수 때가 오면 가라지는 거두어 불에 태우고 그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고,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 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 몇 가지 알아 둘 것이 있습니다.
1.교회 안에는 하느님의 아들들과 사탄의 자식들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분명 모내기를 할 때에는 알곡만 심었어도 반드시 가라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완전해 질 수가 없습니다. 물론 알곡은 처음부터 알곡이요. 가라지는 처음부터 가라지입니다. 알곡이 가라지 되는 법도 없고 가라지가 알곡 되는 법도 없습니다. 이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교회 안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2.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락과 피를 구별할 수 있습니까. 구별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추수 때까지는 가라지와 알곡을 구별하기 어렵듯이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 가운데에서도 누가 가라지이고 알곡인지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처음에는 순수하게 사목을 하더니 말년이 되어서는 점쟁이 되어 버린 사람도 있습니다. 목사 중에 잘못된 목사가 얼마나 많습니까(물론 신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러니 직분을 가지고 알곡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성경공부, 제자훈련, 기도, 헌금과 봉사를 많이 한다고 알곡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아무도 몰라요. 누가 알곡이며 가라지인지 말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3. 하느님의 자녀 아닌 사람들 즉 가라지를 뽑아 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알곡이 다치기 때문에 가라지가 보여도 뽑아내지 못합니다. 잘못 뽑아 알곡을 건드리면 얼마나 손해인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구든지 알곡으로 알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격려하고 세워주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4.주님이 오시는 재림의 때에는 확연히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주님이 오시는 세상 끝 날에는 확연히 구별이 될 것입니다. 모두가 알곡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사랑의 교회가 완전한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다 알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사랑의 교회를 통해서 할 수만 있다면 가라지가 최소치가 되고 알곡은 최고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알곡이십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까. 알곡의 증표가 있는가를 항상 확인 하십시오.
(1) 변화 - 지속적으로 말씀과 기도에 삶이 더 깊어지고 달라지고 변화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10-20년 신앙생활을 해도 극본적인 변화가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자신을 스스로 체크해 보셔야 합니다. 여러분 가라지인 줄 모릅니다. 가라지는 성장과 변화가 없습니다. 이 점을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2) 순종 - 하느님의 아들들은 하느님의 말씀과 명령에 어떻게해서든지 순종하려고 애를 씁니다. 완전하기는 않지요 그렇지만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순종이 없으면 열매가 없습니다. 열매가 없으면 알곡이 아니라 가라지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느님에 말씀에 순종하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그 힘과 열정을 다할까를 생각하는 사람이 알곡입니다.
(3) 헌신 -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죄와 사망에서 나 같은 것을 구원해 주신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함과 사랑과 평화를 다 갚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더욱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어찌하든지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바쳐서 더욱 기쁘게 주님을 위해 헌신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이 주신 일에 소극적이지 않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입니다. 먼저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하고자하는 열정이 있습니다. 하느님나라에 대한 꿈과 비전을 갖고 달려가는 믿음에 사람입니다. 이런 마음이 어느 정도 인가를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명심할 것은 가라지를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가라지로 인해서 시험과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 하십시오. 특별히 오랜 신앙생활을 하신 분들께 부탁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굳어지지 않도록 여러분 스스로를 깨어 확실하게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좋은 알곡으로서 우리의 순종과 헌신과 섬김이 하늘에 해 같이 빛나기를 바랍니다..............◆
[말씀자료 : --- 신부 / 편집 : 까따꿈바 묵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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