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노래
문성해
옛날의 노래는 모래였다네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흘러내렸다네
발가락 사이로 따뜻하게 파고들었다네
누군가 와서 상한 깃털 같은 마음을
모래 속에 파묻고 가면
파도가 데려가 씻기고 씻기고
햇볕은 말리고
바다는 절여주고
갈매기는 품어주었다네 흰 알처럼
옛날의 노래는
하루종일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네
그 위에 뒹굴 수 있었다네
부드러운 요처럼
부서져 내린 노래는
스스로 마을로 흘러들어
부뚜막에도
뜨락에도
요대기 위에도 포슬포슬 기어들어
까슬까슬 눈동자 속을 파고들었다네
심장 속에도 붉게 박혔다네
어떤 노래는
아주 사적이라서
죽을 때까지 아무도 퍼갈 수 없었다네
―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 (2023년 / 10월호)
문성해
200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자라』, 『아주 친근한 소용돌이』, 『입술을 건너간 이름』,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내가 모르는 한 사람』, 동시집 『오 분만!』, 동화집 『국수 먹는 날』. 김달진문학상 젊은시인상, 시산맥작품상 수상.
첫댓글 문성해 시인은 참 세세하고 마음 깊이 스미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바닷가를 하염없이 거닐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