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KBO통산 16시즌
1831⅓이닝 126승 89패 227세이브(4위) ERA 2.98 1146탈삼진 559 사사구
수상
한국시리즈 MVP 2회 (1990, 1994)
다승왕(1998) - 최고령 다승왕
승률왕(1998)
구원왕 3회 (1986, 1987, 1989)
청룡-트윈스 프렌차이즈 역대 최고의 투수이자 KBO리그 최초, 최후의 100승-200세이브를 기록한 투수
트윈스가 우승한 두번의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MVP를 차지한 선수이기도하다.
선수생활을 꽤 늦게 시작했는데 중학교 1학년부터 3루수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선발투수 한명을 새로 뽑아야하는 상황에서 감독이 김용수의 선배들에게 누가 투수에 적합한지를 물었고 만장일치로 김용수라고 대답 이후 프로야구선수 생활을 은퇴할때까지 투수로 뛰게된다.
등번호 관련 비화
실업야구팀 한일은행을 거쳐 청룡에 입단하면서 아마시절부터 달았던 14번을 달고싶었으나 같은팀 선배였던 이광권 투수가 이미 달고있었고 김용수가 14번을 부탁했으나 거절 이후 남는 번호였던 38번을 달았으나 이번에는 김동엽 감독이 38번을 달아야겠다며 38번을 가져갔고 남는 번호였던 41번을 달게되었다.
그러나 훗날 김용수가 달았던 41번이 트윈스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남게된다.
은퇴
KBO 최초로 영구 결번식을 가진 선수지만, 은퇴식은 하지 않았다. 은퇴식을 본인과 구단 모두 원하지 않았고, 은퇴 당시 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 실제로 현역 생활 마지막 해인 2000년에는 마무리 자리를 장문석에게 넘겨 줘서 기록으로만 따졌을 때는 6승 4패 4세이브에 방어율 5.24였지만, 소화한 이닝은 무려 127이닝이었다. 김용수는 8월 즈음에 성적이 하락세를 타자 은퇴를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이후 성적이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현역 연장의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이광은 감독이 은퇴를 종용하디시피 했고, 구단 역시 이에 동조하는 입장에 가까웠다.
그렇게 김용수는 2000년 11월 20일 기자회견을 갖고 선수 은퇴를 밝혀야 했다. 프로입단 16년만의 일이었다.
이광은 당시 감독과 LG 구단이 등 떠밀듯이 은퇴만 시키지 않았으면 마무리로서는 아닐지라도 중간계투 투수로 몇 년 더 뛰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은퇴기자회견에서 김용수는 은연 중에 “1년 정도는 더 뛰고 싶었는데…”라며 기자회견 중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역 마지막 시즌이던 2000년에 이광은 감독과 투수운영에 관해 항명이 있었는데 특히 2000년 플레이오프 당시에 9회2사까지 김용수가 잘 막고있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광은 감독은 장문석에게 공을 넘겼고 장문석은 동점, 역전 홈런을 허용하며 LG 트윈스는 그해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한다. 후임감독이 베테랑을 중용하는 김성근 감독임을 감안하면 김용수의 은퇴가 너무나 아쉬웠던 상황 특히나 김용수는 현역 생활 내내 시즌/비시즌 가리지않고 매일 웨이트 트레이닝과 러닝을 빼놓지 않는 선수이기도했다.
피칭스타일
173cm라는 투수치고는 작은키를 가지고 있었으나 전성기 당시에는 빠르고 강력한 패스트볼을 뿌리는 파워피처타입이었다. 최동원, 선동열, 박동희를 제외하고는 150km를 던지는 선수가 흔치않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상당히 빠른공을 던지던 투수였던것
어떤 구종을 던져도 투구폼이 일정한것이 장점이었고 또 슬라이더, 커브, 스플리터같은 구종을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제구로 던졌기때문에 타자 입장에서는 상대하기 너무 어러웠던 투수
선발투수로도 100승, 구원투수로 활약하면서도 200세이브를 기록했을만큼 금광불괴같은 몸을 자랑했고 연습투구를 많이 하지 않아도 금방 몸이 풀리는 체질이었다고한다.
첫댓글 김태원 노히트노런도 그때 꼬마때 엄청 좋아했었는데.. 정삼흠,김용수 크
엘지팬으로 김태원 노힛노런 게임 생방으로 봤습니다. ㅋㅋ 근데 겜 말미에 땅볼는 세입같았는데
@목욕탕 헤이하치 슬라이딩했을때 세입이였다고 생각합니다..마지막 백인호 삼진잡던 역회전볼이 기억납니다
김태원 나오면 이길것 같고
정삼흠 나오면 오늘은 졌구나..
노송의 독문무공은 투구폼이 일정하다는거죠.
그게 영구결번이 되는거 ㄷㄷ
대표적으로 류현진
비대표적으로 심수창 ㅎ
@코리안숯불통닭 다저스에서 큰돈을 준 이유가 그거죠 류뚱한테
대한민국 중무리 그리고 선발,구원 전환을 준비기간 없이 했던 드문 선수 ㄷㄷ
실업, 프로 거치면서 특별히 아팠던적이 없었다고 할 정도로 체구는 작지만 튼튼했던 투수
아직 결정적일때도 직구 세개를 던지던 뚝심있던 모습 기억나네요
면도날.
운동선수는 이래야 한다 는 느낌을 주던 선수.. 그리고 최고의 안정감
마운드에서 감정을 잘 들어내지않는 선수가 김용수
자기관리의 끝판왕이셨죠
은퇴를 얼마 안남긴 시점에서도 슬라이더를 140가까이 던지심.
패스트볼일겁니다.
선수생활 말년에도 140-143 언저리의 패스트볼을 던졌고 슬라이더는 120 초반 언저리
@우에스기 타츠야 그때 기억나는게.. 경기후 기록지를 보는데 슬러이더가 139가 찍혔다고 좋아하시던 기사가 나온걸 봤어요 일시적으로 나온걸수도 있겠지만 40가까운 나이에 그렇게 나오기는 힘들죠 ㅎ
@NEW START77 오류겠네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구속
@우에스기 타츠야 지금 생각해보면 커터가 그렇게 기록된걸수도 있을거 같네요
@NEW START77 아마 패스트볼을 던졌는데 테일링이심해서 기록원이 그렇게 준거같습니다.
용수형 현역 때도 슬라이더 평균구속 130언저리였어요 아마 오류였을겁니다
@LG 트윈스 오류였는지 어떤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사를 본적이 기억이 있어서 적어봤습니다 일시적으로 나왔을수도 있고 기록원이 구종을 착각해서 그런걸수도 있었겠죠
선발만했다면 최소150승 200승가까이 했을테고 마무리만 했다면 최소300세이브는 했을 선수
선발만했다면 정말로 200승했을지도 모릅니다. 저 정도 급 베테랑 선수는 말년에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도 중요한데 하필이면 자신과 나이차가 그리 많지 않은 감독을 만났고 그런 감독이 김용수를 껄끄러워하는 바람에 은퇴 시점을 자신이 정하지못함...
@우에스기 타츠야 이광은이였죠? 지도 감독 못해서 짤려놓고..
@우에스기 타츠야 만약 김용수가 은퇴하지 않고 선수 생활 연장해서 김성근 감독을 만났다면 2002년 코시 우승을 삼성이 아닌 엘지가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근데 한때 삼성 팬으로서 상상도 하기 싫네요 ㅋㅋ
@[Timeless] 정말 주먹구구식으로 팀을 운영...
@넌 이미 죽어 있다 정말 그랬을지도 모를일이에요 선발, 중간, 마무리 가리지않고 던질수있는 투수였고 패스트볼, 스플리터, 슬라이더, 커브 모두 로케이션이 좋았던 투수였던지라
엘지 레전드 투수는 차명석 아닌가요?
타자하셨어야 했는데 포지션 잘 못 고른분
@LG 트윈스 ㅋㅋㅋㅋㅋㅋ
레전드라하기에는 누적, 수상실적 뭐하나 내세울만한 기록이 전혀 없어요
엘지는 프차선수를 너무 홀대함
청룡때부터 팬이었지만
순페이가 유지현 강제은퇴시키고
김재현이랑 이상훈 강제로 내보낼 때 학을 떼고 야구 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