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종석
통산기록 17시즌
356경기 1791⅓ 이닝 93승 133(3위) 14세이브 3홀드 3.76평균자책점 1016탈삼진 31완투 6완봉
수상기록
1992 KBO리그 투수 골든글러브
1992 KBO리그 신인왕
1992 KBO리그 최우수 평균자책점
최동원이후 다시 한번 자이언츠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우완 안경에이스
충격의 데뷔시즌 1992년
경성대에 진학할 예정이었으나 진학 한 달 전, 경대 앞에서 노점상을 하던 어머니가 오토바이에 치이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집안에서 생계를 책임지는 이가 홀어머니뿐이었고, 그 시기에 대학 진학은 사치라는 생각에 더하여, 결정적으로 어머니의 입원비 마련을 위해 계약금 1천 5백만원, 연봉 1천만원으로 자이언츠에 입단하게된다. 여담으로 경희대에 입학할수있었지만 당시에 경성대가 부산고 동기들과 같이 입학할수있다고 하여 염종석은 경성대를 선택하게 된다.
입단후 데뷔 2경기만에 2:1 완투승을 거두게되는데 9승까지는 전부 완투승으로 달성했다.
92년 시즌 염종석의 기록을 살펴보면
35경기 204⅔이닝 17승 9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33, 127탈삼진, WHIP 1.01이라는 그야말로 고졸 신인투수의 퍼포먼스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다활약을 펼친다. 신인왕, 골든글러브를 동시석권했고 이 당시 시즌 WAR은 무려 8.40
2006년 류현진이 신인왕, MVP를 동시석권했을때 WAR이 7.78이었음을 감안하면 염종석이 보낸 1992년 시즌은 KBO리그 역사에 남을 시즌이었던것
전설이 된 92년 포스트시즌의 염종석
정규시즌과 포스트 시즌까지 포함하면 무려 235와 1/3이닝을 투구하면서 롯데 자이언츠의 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한 몸을 바쳤다. 특히 포스트시즌 동안 30과 2/3이닝을 투구해 4승 무패 1세이브 1.4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는데 이 해 기록한 4승은 최동원이 기록한 한국시리즈 4승(포스트시즌)과 타이기록인 엄청난 기록
아쉬움이 가득한 통산기록 그리고 혹사
혹사의 여파로 그 후엔 10승 이상을 거둔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수술과 재활로 자리를 비운 1996년과 2000년을 제외하고 매 시즌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며 솔리드한 선발 투수로 활약해 주었다. 애초에 통산 QS가 130회 이상이다. 하필이면 92~93년을 제외하고 가장 잘 던졌던 해가 팀 역사상 최악의 시즌이었던 2002년이라서 8승밖에 못 쌓았다.
데뷔 시즌에 망가진 선수 치곤 통산 1800이닝 가까이 소화하면서 평균자책점이 3점대라는 점에서 그가 혹사당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기록이다. 8888577 시절에는 무너진 마운드 속에서 팀 내 최다승을 기록하기도...
길고 긴 암흑기를 끝낸 2008 시즌에도 필승조는 아니었지만 이닝을 제법 소화하며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었고 포스트시즌 엔트리에까지 포함됐는데도 시즌 후 롯데에서 방출당하며 은퇴했다. 이 때까지 통산 승수가 93승이었기에 7승만 더 하면 100승을 채울 수 있었기에 구단을 두어 번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번복은 없었다.
염종석은 100승에 대한 미련과 채우고 싶은 마음이 매우 컸기에 다른 팀에서 뛰며 7승을 채우려 했다. 스톡킹에 출연하여 밝힌 바로는, 방출 후 가장 먼저 SK, 그 다음에 한화에게 연락이 왔다고 한다. 타 구단의 영입설이 사실이었던 것. 당시 SK의 감독이 김성근이었기에 SK의 가득염은 염종석의 팔 상태를 걱정하여 SK로 오는 것을 만류하였고 한화의 김민재는 자율 야구를 하던 김인식 감독의 스타일이 네 스타일에 딱 맞는다며 한화행을 권했다고 한다. 당시 한화의 선발 상황상 4,5 선발이 가능해 보였기에 그렇게 한화행을 거의 정한 상태였다. 그런데 롯데 단장의 제안으로 함께 밥을 먹으며 밖으로 보이는 사직 야구장을 보고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이때 한 생각이, '롯데 유니폼을 안 입고 100승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였다고 한다. 한화 유니폼을 입고 사직에 와서 던지면 어떤 마음일까? 이건 아니다. 깨끗하게 그만두자. 그리 100승을 포기하고 은퇴를 결정하며 롯데 원클럽 맨으로 남은 것이다.
첫댓글 팔,어깨보면 수술자국 엄청나죠...
92년도 잠실에서 봤던 기억 나네요~
저 대단한 투수를 혹사시킨 구단
93승 다음에 "133(3위)" <== 이건 뭘까요?
통산 다패 3위의 기록입니다.
@우에스기 타츠야 넵..감사합니다^^
부모님이 운영하던 갈비집에 염종석이 왔었는데 키가 엄청크고 덩치도 엄청났던 기억이.....
내가 서비스로 콜라 2병주고 싸인 받음..ㅋ
저도 예전에 부산에서 아르바이트할때 마주쳤는데 혹시 염종석 코치님 아니신가요? 라고 물으니 엄청 환한 얼굴로 예 맞습니다라고 대답해주시고 싸인도 해주셨네요ㅎㅎㅎ
마지막 에피소드
짠하네요
별개의 내용으로 팬서비스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ㅋ ( 걍 무뚜둑 한 편 )
근데 또 결혼할 때 팬들 초대한 것은
또 신기함 ㅋ
저는 두번 마주쳤는데 두번 다 좋았어요ㅋㅋㅋ
알바할때한번 마트에 장보러갔는데 웬 키 큰 아저씨가 돌아다니길래 보니까 염종석 선수였고 따봉 날려주니까 웃으시면서 따봉 날리시더라구요ㅋㅋㅋ
당시 선동렬때문에 눈만 높아져서요~~
염종석 공은 훌륭했는데 투구후 수비가 전혀 안된 선수로 기억이됩니다
입스 증세를 겪었다고 했습니다.
번트 수비할때 1루 송구를 잘못했다고ㅠ
신인때 롯데를 우승시킨 투수.. ㅎㅎ
92년은 염종석의 해였죠
데뷔한신인이 한국시리즈 우승시키고, 골든글러브까지
생각해보니 그때가 롯데 마지막우승이었네요ㅠㅠㅠ
정규시즌은 정민철이 위였다 저는 보는데 가을야구에서 염종석이 진짜 미쳤죠 ㄷㄷㄷ
@난 소중하니깐..... 정민철
평균자책점 2.48, 195 2/3이닝, 14승 4패 7세이브, 11완투
염종석
평균자책점 2.33, 204 2/3이닝, 17승 9패 6세이브, 13완투 2완봉
둘다 정말 어메이징 시즌이었네요 그것도 고졸신인이....
@우에스기 타츠야 웁쓰.. 기록 보니 염이 나아보일정도네요 우열 못가림 ㄷㄷㄷ
@난 소중하니깐..... 미세하게 염종석이 좀 더 좋습니다 염종석만 아니었다면 정민철이 신인왕을 받았을거에요ㅎㅎ
대단했죠 👍
해태전은 대놓고 슬라이더만 던지는데도 그 강타자들이 당함. 선동열이 염종석 던지는거 보면서 붙고싶어하는거같은 포스가 인상적이었죠 그때 썬은 부상으로 못뜀
요약: 롯데 개객끼들
인기.많아서 92 서태지에 버금 사는 염태지...부상 그런 내막 같은거 모르고 데뷔 시즌만 잘하고 그 이후는 늘 기대치에 비해 성적이 미치지.못해 그다지.좋아하지.않았고 주형광이 매번 등판때마다 승리 공식 역시 믿을건 주형광뿐이다라며 주형광을 엄청 좋아했는데 염종석 선수 정말 비운의 선수..인성이 좋아서 은퇴후에 더 좋더군요...
내쫓을땐 언제고 갑자기 밥은 왜? 에라이 ㅗㅗ 껌팔이들
강병철 쓰레기 ㅡㅡ
고맙습니다. 종석이형. 형 아니었으면 내 생애 롯데 우승은 못 봤을듯.
롯데 개색히들
난 자이언츠 팬이다
야구판에서 사라져야될 롯데
고딩때 잠실서 염종석이 연습 투구하던 공이 관중석으로 날라와 친구얼굴에 맞았는데 다행히 쎄개던진건아니라 맞은김에 싸인공하나 달라했지만 무뚝뚝하게 웃으며 공 안준선수....
염종석 데뷔 시즌 끝무렵에 가면 어깨가 완전히 맛이가서 직구 위력이 뚝 떨어지니 볼배합 중 슬라이더 비율이 70%대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롯데 프론트도 강병철도 진짜 어지간히 미치지 않고서야 말이 안되는 짓이었습니다
야알못인대 롯대가 우승하던 염정석 투수는 기억남 ㅎㅎ 아주 어릴때 ㅎㅎ
강병철이 이분 말아먹었죠....
갓 고졸 신인 졸라 혹사시키더니...
윤학길. 염종석. 주형광...
잘만 간수했더라면..... 왕조를 열수있는 멤버들이었는데.
롯데 ㅂㅅ들은 겨우내 먹을 곶감을 하루 다쳐먹는 헛짓거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