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남자들이 휴일에 외출을 하려면 왜 집에 계시는 분의 눈치를 봐야하고 왜 이리도
미리 설설 기는걸까? 무엇을 잘못해서일까? 아니면 비공식적인 행사에 쓸데없이 가서 돈낭비
한다고 생각해서? 내가 뭐 도둑질이나 막말로 애인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닌데...이제 나이 50
이 다 되어가는 이 마당에 이빨과 발톱마저 다 빠진 숫사자인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
히 마나님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조심스런 외출을 하고 미리 이 외출이 성사될 수 있도
록 작전에 돌입한다. 우선 4/28일부터 5/1일까지 4일간의 연휴 기간중 금요일 저녁을 포함한
4일간 아래와 같이 최대한의 복무규정을 이행한다.
4/27일 : 저녁식사 후 동네 영화관에서 '건축학개론'감상
4/28일 : 이불 빨래 및 집안 청소
4/29일 : 강원도 유람(속초 및 강릉의 유명 커피집 순례)
4/30일 : 혼자 집지키며 집안 청소 및 설거지
이 자질구레하지만 쉽지 않은 일들을 처리하고 마나님께서 5/1일 산에나 가자는 말에 "안 ~~
돼"라고 단호하게 외치었다. "나 농구보러 가야한단 말이야." 이 것으로 나의 노동절 외출은
결재를 득하였다. 나이들어 아직도 농구장을 기웃거리며 서성이는 나를 못마땅해 하던 마나
님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선후배의 모임에 간다는 말까지 덧붙인다면 그 것은 마치 "나를
죽여줍쇼"하는 자살 방조에 가까운 일이기에 그냥 중요한, 아주 중요한 농구 경기를 보고 곁
들여 저녁 식사까지 하고 온다는 선언을 하였다(아주 많이 늦을 지 모르니 나를 기다리지 말
고 주무시란 말씀). 나랑 동문이 아닌 마나님께서는 우리학교의 특성을 잘 모르다가 결혼한
이후 내 학교동기들을 만나게 되는 날들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결국은 포기에 이르렀다. 이러
하니 고대 사람들을 만난다고 하면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나에게 포기의 자비를 베푸신 것이
다.
하여, 결전의 날 5/1일 오후 1시30분경 집을 나와 전철을 타고 학교로 가는 길. 안암역에 내
리니 이전과 다름없이 많은 학생들이 오가고 있다. 특히 요즘에는 외국인 학생들이 많은데
이유를 알고 보니 Global대학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고 외국학생을 많이
유치한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안암역에서 기숙사를 통해 화정체육관 올라가는 중에 외국인
이 어찌나 많은지 거짓말 조금 보태서 10명중 1명은 외국인 학생들이다. 수많은 인파를 헤치
고 올라 가는데 어라? 고대생들은 농구 보러 안 가나? 오늘 경희대에서는 3,000명의 대규모
응원단이 온다고 하는데 이거 화정체육관이 그냥 경희대생으로 가득 차는 거 아닐까 하는 불
안감이 밀려 온다. 고대는 일부 학생과 고대팀을 응원하는 선배 부대들하고... 그러나 막상
체육관에 들어 서니 이전 경기에 비해서 관중 수가 많은 것은 사실인데 경희대생 3,000명은
아닌 느낌이다. 그래도 많이 온 모양이다. 어느 학교 학생이던지 아님 농구인으로 자리를 채
우는 것이 체육관이 빈자리로 썰렁한 느낌보다는 났다.
나는 늘 가던 자리로 가려고 했는데 망할! KBS의 카메라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옆에는
지난 번 뵈었던 박한감독님과 선배분이 계시고...
할 수 없이 이곳저곳 둘러보다 오늘은 최부영 감독의 작전지시 좀 들어보려고 심판석 뒤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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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 전 고대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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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벤치
경기 시작 전 나의 심박수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하고 최고의 아마농구를 본다는 설레임에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는 느낌이 든다. 아! 이게 카타르시스인거야! 나의 후배선수들이
마치 나의 아바타가 되어 함성을 지르며 플로어를 뛰는 모습 이 자체가 내가 살아가는 이유
를 설명해주는것이다.
1Q 점프볼을 한다. 키 큰 김종규가 당연히 이승현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볼을 터치한다. 경
희대의 선공으로 시작되어 김종규의 쉬운 골밀 슛으로 득점을 시작한다. 첫 득점부터 너무
쉽게 내줘 기분이 나빠질려고 하는 순간 오늘의 Crazy Mode 최형석이 일을 내기 시작한다.
90도 사이드에서 가벼운 터치로 스냅을 하는 순간, 공은 순식간에 림을 통과한다. 3점슛이었
다. 출발이 좋다. 그런데 이것뿐만이 아니다. 계속 연이어 3점슛을 마구 집어 넣어 최부영
감독의 혈압을 올린다. 1Q에는 최형석 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까지 엄청 집어 넣어서 고대
가 경희를 압도하는 경기를 해나갔다. 고려에 끌려가는 경기를 하자 최부영 감독의 Time
out.
선수들에게 호된 질책이 가해진다. 특히 김민구와 김종규에게... 가만히 듣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오늘 자신없는 사람은 말해, 빼줄테니까." "너 오늘 농구안해? 안할꺼야?""넌 저 쪼
그만 애(박재현을 말함) 하나 못 막고 끌려다니냐?" 이외에도 기억할 수 없는 수 많은 고성
이 선수들에게 불화살이 되어 꽂혀내렸다. 하여간 김민구의 전반전 플레이는 영 그답지 않은
미스로 일관하여 Time out때마다 최 감독에게 욕을 사발로 받아 먹어야했다. 김민구가 이렇
게 헤맸다는 것은 우리가 그에 대한 수비를 잘했다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데 대신 두경민
이가 그의 빈구멍을 잘 메꿔주었다고 하겠다. 고대쪽에는 오늘 최형석의 외곽포가 펑펑 터지
고 정희재의 골밑 돌파로 앞서갔지만 아쉽게도 문성곤의 외곽포가 침묵하는 바람에 후반전에
가서 슛 난조로 고전을 하게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여간 전반전은 경희대가 고대페이스에
말려 자신들의 플레이를 하지 못한 것이고 고대는 철저하게 리딩을 잘 한 것이라 하겠다. 다
만 아쉬운 것은 전반전에 점수차를 좀 더 벌렸다면 3Q 시작하자마자 우리가 그리 쉽게 역전
을 당하지 않았을텐테라는 소회가 든다. 이런 점에서 오늘 문성곤의 침묵과 부진이 영 안타
까운 대목이다.
상대편 김종규의 골밑플레이는 그다지 호평을 내리기에는 약간 부정적이다. 두경민과의 2인
Pick & Roll을 잘 이용했다고 다른 분이 써 주셨는데 이것도 전반전에서만 나왔던 플레이고
후반전에는 별 기억이 없다. 큰 키를 이용한 덩크슛을 2차례 하였는데 이 것도 경희가 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그다지 큰 impact는 주지 못한 느낌이다. 수비에서도 희재나 승
현이에게 많이 밀린다는 느낌을 주었다(편파적인 생각일지 몰라도).
3Q 락커에 가서 작전을 짤 짜고 나왔는지 경희의 기세가 무섭게 압박하여 순신간에 역전을
한다. 이제는 고대가 끌려가는 형국. 문성곤의 플레이가 저조하니 최형석과 교체를 자주 한
다. 1학년으로서 게임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모양이다. 경희의 압박수비에 고대가 질식한
다. 점수차는 10여점. 이대로 끌려가는 것은 4Q에도 불안감으로 작용하여 누군가의 예상처럼
허무하게 10점차로 패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배병준과 배수용의 3Q 4
반칙. 최감독은 고민한다. 마땅한 대체 인력이 없다. 경험이 부족한 최창진-역시 나와서 헤
맨다. 배수용을 대신하여 나온 한희원은 뻘짓만 하다가 바로 교체되어 버린다. 벤치로 불려
가면서 최감독에게 당연히 욕지거리 한사발 드시고. 오늘 최감독은 많은 관중과 함께 TV중계
를 의식해서인지 이전보다는 낮은 데시빌로 고함을 친다. 그의 쇼맨십이라고나 할까? 시선을
빙빙 돌리고 사람들 눈치 보아가며 호통치는 것이 영 역겹다. 이런 사람들은 진정성이 결여
되어 있다는 것이 나의 오래된 경험이다. 물론 경희대입장에서는 영웅이고 동생이 최철권 선
수인 관계로 고대와의 인연도 있지만 난 최감독이 그저 그런 감독중의 한 명이고 내후년 정
도면 경희의 몰락과 함께 그의 시대도 마감할 것이라 의심해 마지 않는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744A4464FA0F46F0F)
3Q가 끝나고 난 뒤의 전광판 점수. 64-71
7점을 뒤진 채 맞이한 4Q. 배병진이 5반칙으로 먼저 나가더니 배수용도 따라쟁이가 되어 얼
마 안 있어 곧 벤치신세. 이대부터 흐름은 천천히 그러나 물 흐르듯이 고대로 넘어온다. 주
전 2명이 빠진 경희의 공격과 수비는 서서히 허물어지고 고대의 기세가 역전으로 갈 찬스를
맞는다. 그러나 전반전 부진했던 김민구가 소생하여 스틸에 이은 득점을 연속하여 번번히 고
대의 기대를 무산시키고 있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달아나지 못하는 경희를 잡을듯 하다 잡지
못하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하는 긴장의 시간들이 이어진다. 경기를 하는 선수나 감독,
코치 그리고 경기장에 온 수많은 사람들의 심장이 터질듯하고 함성이 경기장 밖을 돌고 돌아
안암의 모든 언덕에 메아리 치는 듯하다.
한참 경기에 몰두하여 흥분하고 있는데 카톡이 울린다. 뭥미?
농구 같이하는 선배에게 온 메시지
"나는 지금 네가 어디서 뭘 하는지 알고 있다."
헉, Big Brother인가? 어찌 알지? TV에서 나를 보았다고 한다.내 얼굴이 생중계되었나?
아니 농구 안 찍고 왜 나를 찍어! 이제 나도 유명해지나 보다.ㅋㅋㅋ
마지막 화려한 승부의 피날레는 1분 아니 약 50초 정도에 이루어졌다고나 할 수 있을까? 고
대의 공격이 경희의 수비로 인하여 점볼 선언, 경희의 볼. 16초 정도 남은 상황. 이때부터
할 수없이 파울 작전이다. 여유를 잡은 최 감독이 파울작전이 어디 있냐며 Intentional foul
을 call하라며 심판석에 대고 떠든다. 이를 맞받아치랴 이민형 감독은 파울도 작전의 하나라
며 강변한다. 심판이 주장을 불러 심하게 파울을 하면 Intentional foul 처리하겠다며 으름
장을 논다, 그래도 어쩔수 없는 상황. 연이은 파울로 9초인가를 남겨놓고 김민구의 Free
throw. 고대가 1점 뒤진 상황에서 2개가 다 들어간다면 3점 차이로 영 어렵다. 1구가 들어가
고 다들 한숨 쉬는 순간 2구가 링을 맞고 나온다. 박재현이 쏜살같이 달려 나가 드라이브인
시도하는 순간 파울이 일어나고 공은 아쉽게도 골망을 흔들지 못하고 링을 튕기어 나온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이 골이 들어가 우리가 1점 앞선채 수비를 하였다면 나머지 4.5초후
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Free throw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박재현이 2개를 다 성공시키고
돌아서 수비를 하는 순간 공이 김민구에게 넘어가 그의 빠른 발이 하프라인을 뛰어가고 있
다. 뒤질세라 고대 선수들이 수비를 하려 달려드는 순간, 아! 공은 손을 떠나고 믿을 수 없
게도 너무나 선명한 광경으로 그 큰 농구공은 저 조그만 림을 타고 들어가 농구망을 흔들고
있었다. 고대와 경희의 희비가 극적으로 교차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일어서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근래에 보기드문 명승부. 경희는 물론 우리
고대 후배들에게 정말 큰 박수를 쳐 주었다. 너무 잘해주어서, 너무 고마워서, 다음에는 꼭
이길것 같다고, 너무 큰 감동을 준 후배들이 너무나 너무나 고마웠다.
허탈해하는 선수들을 바로 옆에서 보고 희재에게 "캡틴, 수고했어"라고 한마디 해 주었다.
정신이 없어 들렸는지 모르겠지만...
화장실다녀오는 재현에게도...
연대에게 패배하면 분하지만 기타 대학에게 패하는 것은 그냥 아쉬울뿐이다
<다음 2에 계속>
첫댓글 후기가 재미있습니다 ^^
선배님. 어제 처음 뵈었는데,,,너무도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시던데..글도 정말 대박 입니다...2편을 기대해 봅니다 ㅎㅎ
ㅇㅎㅎ 대박글이네요 !!!!
다른건 다 인정 못한다해도 부엉감독이 TV의식하며 썰레발 푸는거에는 절대 동감!!!
경희 왕조도 작년 올해 여기까지고 서서히 질듯 !!!!!!!!!!!!!!
좀 아쉬웟다면 종규가 막판 리바운드 잡앗슬때 파울 못한거 글고 박재현이 스피드가 넘빨라서 4초나 냄기고 프리드로우 얻은거 ~~~
근데 각본없는 드라마로 누군가 맹근거 ~~~ 요게 젤 아쉽네요
강원도 커피집 순례가 눈에 확 들어오네요.
보헤미안과 테라로사를 가셨을 법한데...
보헤미안은 고대와 각별한 인연...
보헤미안이 또 고대랑 관련이 있나요? 박이추 선생님이 안암골 출신인가요?
그럼요, 박이추 선생이 혜화동에 이어 1989년 터를 제대로 잡은 곳이 정경대 후문의 보헤미안이었죠.
박 선생이 고대 출신이라는 게 아니라요.
지금 안암동에 남아 있는 보헤미안은 박 선생의 제자인 최영숙씨가 운영하고 있고요,
커피는 강릉에서 볶아오는 걸로 쓸 겁니다.
강릉이 박 선생 때문에 커피 도시로 거듭났듯이
한국 스페셜티 커피의 메카가 안암동이라고 보면 됩니다.
아! 고런 히스토리가 있었군요. 저는 커피 문외한이고 요즘 집사람이 커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어서 그냥 길안내 및 기사노릇 하고 있습니다.
<시사IN>이라는 잡지에 작년에 연재된 기사들이 있습니다. 그걸 참고하라고 전해주시고, 조만간 그 공부에 필요한 책이 나오는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사실, 커피라는 게 공부할 게 없는데... 캐나다처럼 커피가 좋은 나라에 살다보니...
한국은 커피점은 무쟈게 많으나 커피가 없는 게 사실이죠.
커피의 기본...좋은 원두 사다가 먹는 게 최고인데...
농구 사이트에서 갑자기 커피 이야기로 튀어버리네요.
어쨌건 서울에서 최고의 커피라, 제가 개인적으로 꼽는 곳은 클럽에스프레소입니다.
네 참고하겠습니다. 저는 요새 출장가면 커피 콩 사러 다닙니다. 거래선에게 원두나 생두 구해놓으라고 미리 지시하고요.ㅋㅋ
저랑 팔자가 비슷하시군요..27일 와이프,딸과 건축학개론 관람 , 28일 야간에 동대문쇼핑 , 1일에는 오전에 마나님 모시고 찜질방에 갔다가 영화 은교보고
점심사드리고 겨우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농구장에서 자주 봅시다.
kbs n 스포츠 녹화 보시면, 최부영 감독 뒤쪽으로 초록색 옷 입으신 분 가끔 잡히시는데 그 분이 이 글 작가님이십니다..ㅋㅋ..근디 반만 주로 잡혀 나와요 ㅠㅠ
다음에는 아예 최부영이 뒤쪽에서 인상이나 쓰고 있어야겠어.ㅋㅋㅋ
동영상 보면서 선배님을 은근히 쳐다보게 되더군요!ㅎㅎㅎ제일 막내였던 96학번 후배입니다^^
Seven Monkeys후배? 자주 보자고..
전 10년전에 보해미안에 가서 안티구와를 자주 마셨었는데 유명한 집이었네요 다음 고대 게임후에 들려봐야겠습다
희승 님, 링크 하나 겁니다. 커피 관련...
부인께 주시면 점수 땁니다. ^^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8758
감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