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피면 조상(祖上)들이 다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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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강릉에서 열두 마당의 굿판이 벌어진 일이 있었다. 서른 살 정도 먹은 처녀가 오랫동안 신병(神病)으로 고생하였는데, 이 병(病)이 신(神)을 받으라는 것인지, 아니면 조상신들의 요구나 불만이 심하여 일어난 병(病)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부모 형제를 모시고 큰 굿을 한바탕 벌인 것이다.
이 처녀와 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큰 돈을 들여 굿을 하는 것에 모두 못마땅해 하며 비웃는 태도였다. 특히 아버지는 신(神)들린 무당들이 하는 말에 말끝마다 '그렇지 않다' '그런 일이 없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한 번은 한 무당이, '아이고 목이 타들어 가고 창자가 꼬이는 걸 보니, 당신 조상 중에 분명 약 먹고 죽은 사람 있지?' 하였다. 아버지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 떼었다. 무당들의 점괘(占卦)가 자꾸만 빗나가자 굿판의 흥이 떨어지고, 구경 온 많은 사람들의 신임을 잃게 생긴 것이다.
그러자 무당 측에서, '이제부터는 신(神)을 우리가 받지 않고 당신들(가족)에게 붙여서 한 판 벌일테니 누구 지원자 나오십시요.' 하는 것이었다. 신(神)이 있을 턱이 없다고 여긴 가족들은 그래도 웃고만 있었다. 그러자 무당은 나이가 있는 사람이 좀 더 조상을 접해 봤으니 어머니가 나와 신(神)과 소통할 것을 요구하였다.
신당(神堂) 앞에 선 어머니 주위에 무당 둘이 붙어 징과 괭가리를 치며 주문을 외워댔다. 그러자 어머니의 몸에서 전율이 일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문이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조상신이 하나씩 들려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는데 소상한 일까지 모두 알고 있는 것이었다. 불만도 가지각색이고 요구하는 것도 다양했다. 다리를 오랫동안 절다 돌아가신 고조 할아버지는, '네, 다리 아픈 것이 다 내가 와서 그런 것이니 나를 좋은 곳으로 보내줘. 제발......' 하는 것이다.
얼마 전 돌아가신 외삼촌은, '내 무덤에 들쥐들이 많아 못 살겠다. 그 놈들을 좀 없애줘.'하는 것이다. 조상마다 불만이나 요구 없는 조상이 없었다. 그러더니, 수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목과 가슴을 웅켜쥐고 아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할아버지: '아들아, 네 엄마가 나를 죽였어. 죽였어.'
아버지 : '무슨 소리에요 아버지?'
할아버지 : '약먹여 죽였지. 나를 약먹여 죽였지.'
아버지 : '에이, 아버지도. 그 약은 술 끊는 약이어요.'
할아버지 : '무슨 소리. 네 엄마가 길 건너 장사(商業)하는 아무개하고 바람나서 나를 죽이려고 약에다 독약을 넣었어. 지금 네 엄마가 딴 살림 차린 것이 나 죽은 후가 아니야. 그 전에 이미 그놈하고 붙었어.'
이말을 들은 아버지와 자식들은 순간 전율에 휩싸여 상기되어 있었다. 바로 그때, 어머니에게 들렸던 할아버지 신(神)을 비집고 증조 할머니가 들어왔다.
증조 할머니 : '나쁜 년, 나쁜 년, 이 년이 내 아들을 죽였어. 손자야 네 어미가 니 아버지 죽였어. 나는 다 알아......나쁜 년, 천하에 나쁜년!......'
이 광경을 지켜 보던 자식들은 털석 주저앉아 울거나, 남 보기가 부끄러워 자리를 피하거나 얼굴을 피하였다. 살인(殺人)과 관련된 충격적 발언이 나오자 무당들은 서둘러 구경꾼들을 내 보내고 수습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들 ‘진짜 신(神)이 있기는 있는가 보다!’ 라고 말하며 떠밀리다시피 하여 자리를 떠났다.
굿판을 수없이 봐 왔지만, 이렇게 인간과 인간이 대화하는 것과 같이 선명한 공수(무당이 신神을 받아 신神의 소리를 내는 일)는 드물었다. 어쨌든 할아버지는 할머니에 의해 죽어 원귀(怨鬼)가 되었고 그 억울함을 알아 달라고 자식들을 괴롭혔다. 그리고 다른 조상신들도 제각각 자신의 요구 사항을 들어달라고 자손들을 괴롭혔다. (인용 : 충격 대예언 동방땅의 글)
■ 이광사(李匡師. 1705-1777)는 조선 영조 시대의 시인이다. 강경파 소론(少論)이었던 그의 집안은 반대 당파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 하루 아침에 역적(逆賊)의 집안으로 몰락했다. 큰 아버지가 한 일에 연좌되어 이광사(李匡師)는 평생 출세를 단념하고 오로지 불우한 심사를 글씨와 그림과 시에 풀어내 시대를 초월한 조선의 명필로 군림했다.
그러나 반대 당파는 이광사(李匡師)가 세상에 초연하며 사는 것조차도 봐 주지 않았다. 1755년 그는 역적으로 몰려 50세의 나이로 의금부에 투옥되어 왕의 국문까지 받았다. 죽음 외에 다른 길이 없었다. 이때 그는 머리를 치켜들고 “빼어난 예술을 갖고 있으니 목숨만은 건져 주소서!”라며 통곡했다. 그를 불쌍히 여긴 영조는 그의 극형만은 모면하게 해 주었다.
그가 의금부(義禁府)로 끌려갔을 때 그의 아내 윤씨(尹氏)는 남편 이광사(李匡師)의 죽음을 예상했다. 정세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7일을 굶으면 죽고, 여자는 8일를 굶으면 죽는다 하니 7일 동안 내가 세상에 머물 날이다”라며 바로 굶었다. 그러나 물 한 모금 안 마신 지 6일째, 남편을 극형에 처한다는 헛소문이 들려오자 윤씨는 더 기다리지 않고 바로 처마 끝에 목을 매어 죽었다.
의금부(義禁府)에서 풀려나 유배(流配)를 떠나려는 이광사(李匡師)는 찾아온 아들이 상복(喪服)을 입은 것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유배지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그는 통곡을 터트렸다. 그해 겨울 망자(아내. 亡者)를 애도하는 시를 지었다. 유배지 두만강 강변의 부령에서 진달래꽃을 노래한 시(詩)가 지어졌다. 그는 국토의 양끝 함경도 부령과 전라남도 진도에서 무려 23년간 유폐되어 살다가 죽었다.
“내가 죽어 뼈가 재가 되어도 이 한(恨)은 정녕코 사라지지 않으며, 내가 살아 백 번 윤회(輪廻)를 거듭해도 이 한(恨)은 영원히 생생하리라. 수미산이 개미둑처럼 줄어 들어도, 황하(黃河)가 물방울처럼 가늘어져도, 천 번이나 부처를 땅에 묻어도, 만 번이나 신선(神仙)을 장사지내도, 천지(天地)가 뒤집혀 태초가 되어도, 해와 달이 빛을 잃어도, 이 한(恨)은 맺히고 굳어져 세월이 갈수록 단단해지리라. 부서지지 않는 번뇌처럼, 뚫지 못하는 금강석처럼, 간직하면 큰 덩어리 되고 토해내면 대천(大千)세계에 가득하리. 내 한(恨)이 이럴진대 그대 한(恨)도 그럴 테지. 둘의 한(恨)이 영원히 흩어지지 않으면 반드시 만날 인연이 있으리라.”
그의 한(恨)은 극단과 대결한다. 저승과 이승에서 한(恨)을 풀지 않으면 언젠가 만나리라는 마지막 대목이 사무친 비원(悲願)으로 들려온다. 곱게 늙어가던 부부에게 일어난 이 기막힌 사별(死別)을 감당할 길이 없으니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인생에 일어난 모든 것이 이광사(李匡師)에게는 한(恨)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오로지 한 가지 가슴 깊이 응어리진 한(恨)은 그의 아내였다.
생전에 맺힌 원한(怨恨)으로 인해 원귀(寃鬼)의 문제가 발생한다. 원한(怨恨)을 해소하는 것을 해원(解怨)이라 한다. 해원(解怨)의 방법으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천도제(遷度齊)를 올리기도 하고, 굿판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별로 소용이 없다.
원한(怨恨)은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뿌리 깊게 파인 원한(怨恨)과 욕구가 일시적인 대접에 말끔히 해소되지는 않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무서운 신장(神將)을 움직여 위협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당장은 말을 듣는 듯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귀신 노름이 또다시 발동한다.
각종 귀신 문제의 처방은 해원(解怨)이다. 신(神)의 원한(怨恨)을 풀어주는 작업을 근본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전형적인 원귀(寃鬼)는 원한(怨恨)을 갚기 전에는 결코 해원(解怨)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신계(新界)의 큰 두통거리이고 또한 부지불식 중 인간 세상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찬 원(怨)과 한(恨)을 먼저 풀지 않고는 그 어떤 평화의 외침도 모두 거짓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찬 원한(怨恨)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이 땅 위에 상생(相生) 평화(平和) 낙원(樂園)이 건설된다.
상생(相生)이란 하늘과 땅,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득한 원망(怨望)이 사라질 때 가능한 것이다. 주위 환경, 여건이 허용돼야 상생(相生)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은 대자연의 이법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대가 이 도(道)를 만나려고 선천(先天) 5만년 동안이나 거듭 죽고 거듭 나고 수수 천번 윤회(輪廻) 속에 구비구비 돌때마다 원(怨)인들 오죽하고 한(恨)인들 오죽하겠는가? 이 도(道)가 그대를 만나려고 삼천(三遷)의 인고(忍苦) 속에 성경신(誠敬信)을 다했다오! 오늘 그 도(道)와 그 사람이 만났으니 통정신(通情神)이 나오고 그 도(道)와 그 사람이 완성(完成)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