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에서 임실로 넘어가는 27번 국도를 타고가다
강진면으로 향하는 30번 국도를 타고 달려가며 차창을 내리니
바람이 알싸하면서도 달콤하다.
간혹 논두렁 밭두렁에서 마른 풀 타는 냄새가 올라오지만
이마져도 봄바람에 실려오니 기분마져 흥겹다.
섬징강은 진안군에서 발원하여 장수,임실을 거쳐 구례,하동으로 빠져나가는데
임실에 머무는 강줄기에도 살이 올라 섬진강 물 주름살이 일렁인다.
전북 임실군의 임실(任實)이란 지명은 '씨앗이 튼실하게 영그는 동네'라는 뜻이 있는데
산과 들 그리고 풍부한 수량의 물이 어우러지고 농사에 가장 좋은 해발200~400m고지에
자리한 특성으로 왜 이곳이 임실이라는 지명을 갖는지 알 것 같다.
임실하면 가장 먼저 떠 올리는 이미지가 '치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산양유를 이용해 치즈를 생산한 곳이기에 그 유명세를 익히들
잘 알지만 이곳 강진면 강진시장 내 '행운집'국수도 유명세로 치면 치즈못지않게
잘 알려진 맛집이다.
행운집-전북 임실군 강진면 갈담리 515-4 (010-4364-1094)
강진시장은 전라남도에도 있으니 혼동하지 마시라.
마침 오늘이 강진시장이 열리고 파하는 시간이라 시장주변이 어수선하다.
'안도현'시인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국수집이라고 평하는 행운집의 국수를 맛보기 위해
전국에서 이곳 강진시장까지 맛기행을 하는 식객들도 부지기 수다.
어디 안도현 시인 뿐이랴
섬진강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시인도 이곳 국수를 맛보기위해 들린다고 한다.
'천하주유'역시 상상만으로 그려왔던 행운집 국수 한 그릇으로 요기를 할 요량으로
산 넘고 물 건너 쎠쎠쎠~~~
바로옆 할매집 국수도 행운집 못지않게 맛있게 국수를 말아주는 곳이므로
두 곳중 어느 곳을 택해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식당에 들어서니 장을 보러온 어르신들이 국수에다 술 한잔씩을 거나하게 드시다
밀물처럼 빠져나가셨다.
주문을 하려고 주인할머니를 찾았는데 보이질 않아
두리번 거려보니 방금 나간 손님들을 배웅하려 나가서 한참만에 들어오셨다.
왜 행운집 전화번호가 일반전화가 아니라 핸드폰으로 지정되어 있는지
이제 슬슬 감이 잡힌다.
이곳하고 어울리지는 않지만
객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식당에서
서정주 시인의 '선운사 동구'라는 싯귀가 떠 오른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쉬어 남었습니다.
팔팔끓는 솥단지 아래 '백양국수'뭉터리가 보인다.
이곳 행운집이 유명해진건 임실에서 생산하는 수제로 만든 '백양국수' 맛의비법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 흔한 인쇄본이 아닌 직접 손글씨로쓴 차림표가 정겹다.
이곳에서는 잔치국수라 하지않고 물국수라고 부른다.
국수 한 그릇에 3.000원.
식당에 혼자있는 나를 보시더니 살갑게 반겨주신다.
어렵게 찾아간 곳이기에 물국수와 비빔국수맛을 보기위해 혼자서 두 그릇을 부탁드렸다.
할머니께서 "혼자서 두 그릇을 묵기가 많을팅께 쪼깐 덜어서 너줄팅께 그렇게 잡숴봐"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이곳에 오기전에 쵸코렛과 두유로 허기를달래고 왔던참이라
흔괘히 그렇게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국수만드는데 시간이 걸리니 먼저 팥칼국수맛을 보라고 내놓으신다.
"여그에 들어가는 팥은 여그 강진에서 재배한 순수 거시기 팥이여
색깔이 다르잖어 달러~~"
팥칼국수 한 그릇을 뚝딱 게눈 감추듯 감추고
주방을 바라보니
나를 위한 성찬을 준비하고 계신다.
정중히 사진을 찍을것을 허락받고...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는 시장에서 가장 싱싱한것만 골라서 쓰기도 하고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이용하신다.
여기에 30년의 내공을 더해 만드는 국수라니...
드디어 국수가 나왔다.
물국수는 비빔국수보다 시간이 더 걸리므로 먼저 비빔국수가
탐욕스러운 변학도앞에 나온 춘향이마냥 내 앞으로 끌려나왔다.
"에잇! 가차없이 먹어주마"
오! 신이시여~
이게 말로만 듣던 백양국수란 말입니까 진정
개인적으로 국수를 좋아해 전국에 있는 내노라하는 국수집을 거의 탐방해보았고
국수공장도 탐방을 했던 천하주유가 그간 일정이 허락하지않아
마음속으로 '언제 한 번 꼭 가봐야지'라고 벼르고 벼르던 그 행운집국수를 받아드니
손기정선수가 마라톤에서 월계관을 받을때 심정에 못미칠까.
드뎌 시식
빠라빵 빠라빠라 빠라빵~~~
굵기는 중면보다 약간 더 굵다.
맛은 간결한 듯한데 가볍지 않고 부드럽다.
쫄깃함보다는 숙성된 맛이 숨어져 있다 입안에 맴돔이 아주좋다.
들깨가루의 고소함이 봄날 삐죽거리며 올라온 제비꽃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제자리를 잡고 한몫한다.
비빔국수의 세콤함이 없어 아쉬움이 있었으나
밋밋한 세콤함이 면의 식감과 맛을 해지치 않는 선에서
알맞게 절충된것 같아 30년 내공의 국수만드는 실력이
내제된 한 그릇의 국수가 감동을 준다.
면은 시간이 지나도 불지않고 탄력을 유지한다.
방금막 내 눈앞에서 무쳐준 겉절이 김치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들깨가루가 들어가 풍미를 더한다.
계절에 따라 올라오는 푸성귀가 다르단다.
분명한것은 직접 재배한 농산물이나 이곳 강진에서 나오는 재료만 이용하여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다.
봄의 초입에서 봄의 향기를 듬뿍 들이키는 느낌.
아삭하면서 싱싱함이 극을 치닫는 겉절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살아있네"
3.000짜리 국수를 먹으면서 요런 돼지고기를 내놓는 곳이 있을까?
처음에는 술을팔면서 안주로 내놓던 고기인데
국수먹던 사람들이 자기도 한 입먹게 달라고 했던게 시발점이 되어
이제는 국수를 주문하면 새우젓과 돼지고기를 함께 준다고 한다.
부드럽게 잘 삶아진 돼지고기에 새우젓을 올리고 묵은지에 싸먹으면
환상이다.
묵은지역시 직접 재배한 배추로 담가서 만드는데
김치맛이 좋다고 어떤이는 국수보다 김치를 더 많이 먹고간다고 너스레를 떠신다.
같은 전라도라도 전남과 전북의 김치맛은 천양지차다.
이곳 임실에서 만드는 김치는 젓갈이나 양념이 덜 들어가 강한맛은 아니지만
원재료의 식감을 살리는데 주안점을 두는것 같다.
비빔국수 먹으면서 입을 축이라고 내놓으시는 멸치국물이
깔끔하고 시원하고 감칠맛 난다.
비빔국수를 거의 다 먹을 때쯤
'암행어사'를 외치고 나오는 이도령처럼 물국수가 올라왔다.
주는 국수양이 너무많아 국물이 자박자박해 보일정도다.
고명으로 호박을 얹고 약간의 양념장을 올려놓았는데
이게 무슨 맛이날까 싶을정도의 비쥬얼이다.
하지만 워낙 국수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본 맛이 있기 때문에
여기에 더해 잘 우러낸 멸치국물에 짭쪼름한 양념장을 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국수의 참맛을 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맛을 글로 표현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천하주유'가 먹어치운 양푼에 가득담겨진 국수 실종사건을
사진으로 올려본다.
한 무리의 손님들이 나가고 느즈막한 식사를 하시는 '김봉례'할머니
음식점에 가면 주인장은 무엇을 먹는지 괜히 궁금할 때가 있다.
넌지시 훔쳐보니 국수 한 그릇으로 요기를 하고 계셨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야 손님상에 올릴 수 있는것 아니겠는가.
나하고 주인장 할매하고 싸움이 벌어졌다.
만원 한장을 드리니 6.000원을 거슬러 주신다.
물국수 3.000원 비빔국수 3.500이면 6.500원이다
그렇다면 거스름돈은 3.500원인데 6.000원을 주시길래
계산이 잘못됐다고 말씀드렸더니
원래는 국수를 푸짐하게 많이 줘야 하는데 혼자 먹는거라 혹시 남길까봐
국수를 조금 덜 넣었으니 두 그릇에 4.000원만 받아야 맞는거라고 하신다.
하지만 천하주유도 똥고집이 있다.
서로 받네 못받네 하다 제가 맘이 편하도록 다 받으시라고 간곡히 말씀드리고
억지로 돈을 드렸더니
결국 "그럼 천원씩만 양보해서 가져가"하신다.
그 마음이 고마워 하도 고마워 받지않고 도망치듯 인사하고 행운집을 빠져나왔다.
행운집을 뒤로하고 강진시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은 시장구경보다 경치를 감상하는게 더 좋을것 같다.
개천 이름이 갈담천인데
물이 깨끗하고 자연이 잘 보존된것 같다.
이곳 강진시장에는 국수집과 더불어 다슬기해장국집도 여러곳 성업중인데
그중 현지인들이 많이찾는 '길손식당'과 '성원회관'이 갈담천 옆에 자리한다.
물맑고 공기좋은 곳이라 다슬기도 많이잡힌다고 한다.
강진면에서 국수를 먹고 난 후 이곳에서 약 20분 거리에 위치한 임실읍내
'백양국수공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호국로를 거쳐 임실읍내에 도착하니
임실성당이 보인다.
바로 이곳 임실성당이 지금의 임실을 만드는데 일조한 시발점이다.
1964년에 임실성당에 부임하신 지정환신부님이 산양 두마리로 시작하여
산양유로 치즈를 만드는법을 주민들에게 보급하여 지금의 임실로 키워낸 곳이다.
지정환신부님은 벨기에 사람으로 원이름은 '디디에'신부님이시다.
올챙이처럼 튀어나온 배도 꺼뜨릴겸 임실성당을 둘러보았다.
임실성당에서 약 200m에 위치한 백양국수공장을 찾아갔다.
(전북 임실군 임실읍 이도리 670-10 T 063-642-2239)
백양국수는 약 45년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수제로 국수를 생산하는 곳으로
햇빛과 바람으로 건조시켜 기계화된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국수와 여실히 차별스러운 맛을 고집한다.
백양국수의 특징은 중력분과 강력분을 8:2 비율로 배합하여 만드는데
제빵용 밀가루인 강력분은 중력분에 비해 두 배 넘게 비싸지만
면발의 탄력과 고소한 맛을 높이기 위해 좋은재료를 사용하여 만든다.
켜
우리나라에서 수제로 생산하는 국수는 몇 곳이 되지않는다.
대표적인 곳이 인천의 '권오길국수'와 예산의 '버들국수' 그리고
손반죽으로 치대고 늘려서 뽑아내는 국내 유일의 수연소면을 생산하는 충북 음성의 '강식품'
그리고 이곳 백양국수가
수제국수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으
치렁치렁 느러뜨려진게 마치 버드나무 버들가지를 닮았다.
국수공장으로 직접들어가 만드는 과정을 보려했으나
눈코뜰새없이 바쁘게 일하시는 사장님을 뵈니 차마 그런 부탁을
할 수 없어 밖에서 구경만하다 돌아왔다.
국수는 에로부터 길이가 길어 먹으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다.
국수좋아하는 천하주유 오늘 수명을 20년 늘리고 왔네
ㅋㅋㅋ
임실맛집 행운집에서 -천하주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