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역사를 간직한 장릉의 원찰(願刹) ~
발본산 보덕사(鉢本山 報德寺)
▲ 수목이 울창한 보덕사 서쪽 부분 |
장릉에서 보덕사,
금몽암을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5분 정도 들어가면 길 오른쪽 개울 너머로 장
릉의 수호사찰인 보덕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절은 668년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세운 지덕사(旨德寺)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
시절 의상은 당나라에 머물던 시기(661년에 건너가 670년에 귀국함)이므로 그가 세웠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그 외에 686년(신문왕 5년)에 의상이 세웠다는 설도 있고, 714년에 혜각선사
(蕙覺禪師)가 세웠다고 우기기도 하나 대체로 신라 후기나 고려 때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1132년(인종 10년) 설허(雪虛)와
원경국사(元敬國師)가
극락보전과 사성전,
염불암, 침
운루(沈雲樓)
등을 증축했으며, 1457년에는 노릉사(魯陵寺)로
이름을 갈았다. 1705년 장릉을
관
리하는 원찰(願刹)로 지정되면서 한의(漢誼)와 천밀(天密)선사가 큰 종을 만들었으며, 1726년에
는 장릉의 제수(祭需)를 담당하는
절인 조포사(造泡寺)로 지정되면서 왕실에서 많은 지원을 받
게 된다. 이때 왕실에 바짝 잘보이고자 나라의 덕을 갚는다는 뜻의 보덕사로 이름을 고쳤다.
1854년 불의의 화재로 극락보전과 종각이 전소되어 1868년에 중수했으며, 그 시절 절의 규모가
상당하여 절에 속한 밭이 1,000석, 승려는 무려 100명이 넘어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의 말사(末
寺) 가운데 가장 컸다고 한다. 허나 6.25전쟁으로 극락보전과 해우소를 제외한 대부분이 소실되
어 쪽박을 차게 되었고, 이후 꾸준한 불사를 벌여 예전의 모습을 서서히 회복하고 있다.
보덕사는 발본산(鉢本山) 자락에 안겨있는 산사(山寺)가 분명하지만 절이 들어앉은 터가 평지이
고 마을과도 가까워 산사의 분위기는 조금 떨어진다. 절에서는 발본산 대신 한참이나 멀리
떨어
진 '태백산(太白山) 보덕사'라 칭하고 있으며, 여기서 바라보는 서쪽 동을지산(冬乙旨山)의 일
몰 풍경이 매우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하다. 또한 석양(夕陽)에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절의 범
종소리는 영월8경의 하나로 손꼽혔다.
제법 넓은 경내에는 법당(法堂)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신각과 선방, 사성전, 칠성각 등 8~9
동의
건물이 있으며, 선방과 칠성각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향(西向)을 취했다. 소장문화유산
으로는
지방문화재인 극락보전과 해우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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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덕사로 인도하는 극락1교와 일주문(一柱門)
▲ 천왕문에서 바라본 일주문 주변 |
속세에서 보덕사에
들어가려면 계곡 돌다리를 건너야 된다. 돌다리는 모두 2개로 극락(極樂)이
란 이름을 지녔는데, 일주문 앞 다리는 극락1교, 그 북쪽 것은 극락2교이다. 다리는 근래에 지
어진 탓에 손대기가 아쉬울 정도로 무척이나 하얀 피부를 자랑한다.
번뇌를 계곡에 내던지고
다리를 건너면 다리의 이름 그대로 극락을 염원하는 보덕사 경내가 펼
쳐진다. 절은 계곡만으로도 안심이 되질 않는지 계곡 쪽에 기와를 얹힌 흙담장을 길게
둘러 속
세와 부처 세계의 경계를 다시 한번 그었다. 즉 2중으로 경계선을 설치해 속인들이 지니고 오는
번뇌와 절에 놀러오는 화마(火魔) 등의 악귀를 철저히 경계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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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들어서면
천왕문까지 길이 곧게 이어
져 있다. 그 좌우로 나이가 지긋한 아름드리 나
무들이 앞다투어 중생을 영접한다. 그들 중에선
왼쪽 사진의 느티나무가 가장 연세가 높아 무려
600살이 넘었다고 한다. 거의 보덕사 내력의 절
반 가까이를 산 셈이다. 높이는 25m에 이르러
그 꼭대기는 거의 하늘에 맞닿아 있는 듯하며,
영월군 보호수의 하나로
주변 나무와 함께 자연
과 어우러진 보덕사의 아름다움을 매섭게 드높
인다.
길 오른쪽에는 연꽃과 개구리의 운동장인 조그
만 연못이 자리해 있다. 가을임에도 아직도 백
련(白蓮) 일부가 자꾸 떨구어지는 고개를 간신
히 붙잡으며 올해의 막바지 아름다움을 선보인
다. |
▲ 청초한 아름다움을 지닌 백련의 보금자리 보덕사 연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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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맵시가 고운 관음보살상 |
▲ 사천왕의 보금자리인 천왕문(天王門) |
▲ 보덕사 해우소(解憂所) - 강원도 지방문화재자료 132호 |
천왕문 우측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 고색의 때가 가득한 창고처럼 보이는 2층 건물이 있다. 바
로 보덕사 해우소이다.
절에서는 뒷간을 해우소라고 부른다. 해우(解憂)는 근심을 풀거나 해결한다는 뜻으로 볼일을 보
면서 몸 속의 노폐물이 싹 내려가는 것을 해우로 비유했다. 뒷간에서 보는 볼일처럼, 볼일을 볼
때 나오는 고약한 냄새처럼 세상사 근심걱정도
싹 내려가고 냄새로 싹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보덕사 해우소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형태를 띈 맞배지붕 건물로 상량문(上樑文)에 따르
면 1882년(고종 19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내부는 앞뒤 2열로
분리하여 각각 6칸씩 볼일 보는
곳을 두었으며, 남녀 사용을 구분했다. 오래된 건물임에도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어 화장실의
기능을 변함없이 수행하고 있으며, 선암사(仙巖寺) 해우소와 더불어 문화재로 지정된 이 땅에
흔치 않은 옛 해우소이다. |
▲ 보덕사 극락보전(極樂寶殿) - 강원도 지방문화재자료 32호 |
천왕문을 지나면 조그만 돌맹이가 잔잔히 깔린 넓은 뜨락과 극락보전, 선방(禪房), 5층석탑 등
이 나타난다.
극락보전은 보덕사의 법당으로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
붕 건물로 1161년 원경국사가 세웠다고 전하며, 지금의 건물은 1868년 화마에 희생된 것을 다시
지은 것으로 건물 현판은 해강 김규진(金圭鎭, 1868~1933)이 썼다고 한다. 마치 학이 하늘을 향
해 날개짓을 하듯 추녀를 치켜올린 극락전의
모습이 시원스럽다.
극락전 불단(佛壇)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대동한 목조아미
타3존불이 모셔져 있으며, 그 뒤로 색채가 고운 후불탱화가 병풍처럼 자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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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보전 목조아미타3존불
눈을 지그시 뜨며 엷은 미소를 드러낸 그들이
삶에 지쳐 찾아온 중생을 따스히 맞는다. |
▲ 극락보전 옆에 자리한 석종형 승탑(僧塔)
1820년에 조성된 것으로 화엄대강사 설허당
대선사(華嚴大講師 雪虛堂大禪師)의 승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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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고 단촐한 산신각(山神閣)
산신각은 근래에 지어진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산신(山
神)의 보금자리이다. 건물 내부 우측 벽에는 태
백산신으로 추앙된 단종과
그에게 산머루를 바
치는 추익한(秋益漢)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 있
다. |
▲ 산신 가족의 단란함이 엿보이는 산신도 |
▲ 단종과 추익한의 마지막 만남이 담긴 그림 |
단종을 수식하는 충신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추익한(1383~1457)은 1411년 문과(文科)에 급제하
여 한성부윤(漢城府尹)과 호조정랑(戶曹正郞) 등을 지낸 인물이다. 1433년 퇴직하여 영월로 내
려와 학문과 자연을 벗삼으며 팔자 좋은 시간을 보내던 중, 1456년 단종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를 왔다.
그는 단종을 자주 찾아가 문안을 올리며, 시문을 지어주었고, 산에서 따온 산머루와 다래를 진
상하며 우울해하던 단종을 늘 다독거려주었다.
그러다가 1457년 10월 24일, 그날도 여전히 산에
올라가 단종에게 줄 산머루를 따고 있는데,
난데없이 곤룡포(袞龍袍)를 걸친 단종이 백마를
타
고 그 앞에 나타났다. 추익한은 깜짝 놀랐지만 반가운 마음을 보이며 산머루를
올렸다. '전하!
여기 산머루가 맛이 좋습니다. 한번 들어보십시요'
그러자 단종이 '나는 태백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머루는 관풍헌(觀風軒)에 갖다두십시요~'
하고
는 말을 몰아 급히 사라지는 것이다. 난데 없는 단종 출현에 마음이 불안하여 서둘러 읍내로 내
려가니 글쎄 단종은 이미 처단되어 그 시신이 동강(東江)에 버려진 것이 아닌가. 그가 산에서
본 단종은 태백산으로 가던 단종의 혼으로 추익한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던 것이다. 산신각 우측
의 이 그림은 바로
그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단종이 죽자 추익한은 크게 애통해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를 따랐다. 이에 영월 사람들은
그를 추충신(秋忠臣)이라 부르며 사당을 지어 그의 뜨거운 충절의 얼을 기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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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성전 우측의 칠성각(七星閣)
칠성(七星)과 독성(獨聖, 나반존자)의
보금자리이다. |
▲ 선방 옆에 자리한 보덕사 샘터
중생에 대한 부처와 자연의 넉넉한 마음이
담긴 듯, 가뭄에도 물이 마를 날이 없다. |
▲ 경내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사성전(四聖殿) |
사성전은 부처와 보살, 나한(羅漢), 신중(神衆)을 봉안한 건물로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여
겨진다. 지금의 건물은 6.25 이후에 중수한 것으로 석가불과 미륵불, 제화갈라의 3존불과 나한
상,
장군상 등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들 불상은 1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불상에서 19세
기 중반 유물이 쏟아져 나와 후불탱화와 더불어 지금은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가 있다.
※ 영월 보덕사 찾아가기 (2013년 11월 기준)
* 동서울터미널에서 영월행 직행버스가 30~60분 간격으로 떠나며, 강남 센트럴시티에서 영월행
고속버스가 1일 4회 떠난다.
* 청량리역, 양평역, 원주역에서 강릉, 아우라지행 무궁화호 열차가 1일 7~8회 떠난다.
* 인천, 대전(동부), 원주, 제천, 태백에서 영월행 직행버스 이용
* 영월터미널 부근 군내버스 정류장에서 연당, 마차, 주천 방면으로 가는 군내버스를 타고 장릉
에서 내리거나 도보 30분
* 영월역에서 장릉까지 바로 이어주는 교통편이 없다. 택시를 타고 바로 가는 것이 편하며, 걸
어갈 경우에는 1시간 정도 잡아야 된다.
* 승용차로 갈 경우 (경내에 주차장 있음)
① 중앙고속도로 → 제천나들목을 나와서 제천, 영월방면 38번 국도 → 방절터널을 지나 서영월
나들목에서 우회전 → 청령포교차로에서 좌회전 → 청령포입구에서 좌회전 → 장릉3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바로 나오는 3거리에서 보덕로로 좌회전 → 보덕사 주차장
* 소재지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100 (☎ 033-374-31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