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계수필창작 8기-2학기 19차시 자료 (12월 23일 용)
수필창작의 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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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품 첨삭
1. 크리스마스 선물>/남경수6
1 벌써 12월이다. 예전엔 이맘때면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자선군 냄비가 여기저기서 종소리를 울렸다. 그런데 요즘은 캐럴송도 듣기 힘들고 냄비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경기가 어려워진 탓도 있고 각종 매체를 통한 기부 형태가 많아진 이유일 것이다.
2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크리스마스는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휴일인 것 같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며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선물을 주고 받거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날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은 날이다.
3 올해는 크리스마스 카드라도 써 볼 참이다. 예전에는 많이도 써서 보내기도 했는데 이메일이나 문자, 카톡이 생기면서 한동안 잊어버렸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써 내려간 카드를 받아본 지도 너무 오래되었고 보낸 기억도 없다. 기계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탓이다.
4 어릴 적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인 것 같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한테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다. 난 그때 깜짝 놀랐다. 진짜로 선물을 주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양말을 걸어 놓고 잤더니 그다음 날 아침에 선물이 있더란다. 그 친구가 너무 부러웠고 신기했다.
5 나는 왜 선물을 받지 못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나쁜 일 한 게 없는데. 나만 안 줄 리가 있나?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름에 친구들과 했던 공기놀이가 생각났다. 공기놀이를 하면서 반대편이 못 본 틈을 타서 공깃돌 하나를 슬그머니 한 손으로 감추었다. 한 개라도 더 따서 이기기 위해서였다.
6 아, 산타할아버지가 보고 계셨구나. 그래서 나한테는 선물을 안 준 것이다. 이럴수가... 진짜 산타할아버지는 모르는 게 없는 분인 것 같았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분이다. 어찌나 아쉬운 지 참으로 속상했던 크리스마스였다.
7. 이제부터라도 선물을 받기 위해서 착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다음 해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양말을 걸어 두고 잤는데 선물은 여전히 없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크리스마스 선물은 부모님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배신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8 크리스마스 선물을 믿는 아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순수한 것일까? 그 순수함을 지켜주고 싶어 아들한테도 늘 비밀리에 선물을 주었다. 아들은 어떻게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겠다며 정말로 신기해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려 더 이상 산타 할아버지가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지 않는다.
9 다시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선물을 생각해 보았다. 어떤 소원을 빌어볼까? 물론 가족 모두의 건강이 최우선이다. 건강해야만 뭐든지 할 수가 있으니까. 밑천이 두둑해야 겁내지 않고 배짱을 내밀어 도전할 수 있는 것처럼 건강은 필수적이다.
10 한 가지 더 받고 싶은 선물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기’이다.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했다. 늘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는 느낌이 있었다. 나와 닮은 사람들 속에 끼이고 싶은 것이다. 비슷한 색깔을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림을 가르쳐 주었던 진혜 언니가 떠나고 나니 더욱 아쉬운 마음이 크다.
11 이제 크리스마스 소원을 다시 빌어본다. 그동안 착하게 살았다면 선물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양말을 걸어 둘 것이다. 하지만 설령 선물을 받지 못하더라도 실망하면 안 된다. 산타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2. 소리 없는 세상 /김옥수5
1 청각장애인 지원 기관에서 ‘인권향상교육’ 요청이 들어왔다. 잠시 망설였다. 청각장애인 대상 교육 경험이 없기도 했지만, 중학생부터 성인까지 한꺼번에 교육해 달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도전의식이 발동해, 교육장비 및 수어통역사 지원여부를 확인한 후 수락하고 말았다.
2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등록 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5% 정도인 264만 4700명. 그중 청각 및 언어 장애를 지닌 농아인은 41만 명을 웃돈다.
3 농아(聾啞, deaf mutism) 또는 농아인(聾啞人)은 청각장애 등으로 인하여 말하지 못하는 언어장애가 있는 장애인을 통칭하는 말이다. 넓은 의미로는 잘 듣지 못하는 경우(청각장애인)와 언어 구사가 불가능하거나 힘든 경우(언어장애인)를 통틀어 의미하며, 좁은 의미로는 청각장애로 인해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유전으로 인한 선천적 청각장애와 질병으로 인한 후천적 청각장애가 있다. 농아인들은 수어, 구화, 필담을 대화수단으로 삼는다.
4 몇 년 전, 초등학교 때 인공와우수술 후 재활훈련을 하면서 구화를 배웠다는 청각장애인과 상담한 적이 있다. 나는 좀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을 뿐이었고 그녀와 소통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5 강의를 위한 참고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또 청각장애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반나절 정도 수영할 때 쓰는 귀마개를 끼고 생활해보았다. 일부러 TV를 켜 두고, 일상 소음이 있는 상태에서 가족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상대방의 말이 정확히 들리지 않아 자꾸 귀마개를 뺐다 넣었다 했다. 불과 반나절 밖에 안 되었는데도 몹시 갑갑하고 불편했다.
6 생각했던 것보다 청각장애인 인권침해에 대한 최근 사례는 많이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영화 ‘도가니’부터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사례에 몇 가지만 더해도 사례 분량은 충분했다. 다만, 인권침해 현장에서 청각장애인이 직접 신고한 사례는 두 건에 불과했다. 그것도 비장애인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어 신고가 가능했다. 도와줄 사람이 없을 때, 그들은 어떻게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신고할 수 있을까?
7 기본 강의안에 이 부분을 강조하기로 했다. 인권침해 사건 발생 후, 상황에 따른 대처방안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신고시스템 소개 및 활용 방법까지 강의안을 재구성했다.
8 강의 당일, 수어통역사를 미리 만나기 위해 30분 일찍 시설로 갔다. 입구부터 조용했다. 마중 나온 사회복지사는 강의실을 지나 건물 안쪽 커피숍으로 안내했다. 남쪽으로 큰 창을 낸 커피숍은 밝고 깨끗했다. 시설에서 직업훈련을 받고 자격증을 딴 청각장애인 바리스타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평일이라서인지 손님은 나 혼자였고, 가끔 직원들이 커피와 빵을 주문하러 드나들었으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9 사회복지사가 자랑했던 대로 바리스타가 직접 로스팅한 핸드드립 커피는 향이 풍부하고 구수했다. 창가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기다리니 수어통역사가 왔다. 수인사를 하고 강의 중 협조사항에 대해 말하는 내 목소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시설 직원이기도 한 수어통역사에게 간단한 수어 몇 개를 청해 배우고 함께 강의실로 향했다.
10 40명의 청각장애인들이 나를 바라본다. 소리 없는 세상이 펼쳐졌다. 난생처음 수화로 인사를 나누었다. 비장애인들 대상으로 교육할 때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강의를 진행했다. 그러나 한 명 한 명 빠뜨리지 않고 눈 맞춤을 시도했고, 말이 빨라진다 싶으면 한 번 더 또박또박 반복해서 알려주었다. 그들의 표정과 몸짓을 통해 반응을 읽으려고 애썼다. 얼른 파악이 안 될 때는 수어통역사를 통해 직접 물어 피드백을 듣기도 했다.
11 중복장애로 소통이 불가한 이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강사의 입모양과 PPT 화면을 보든지 수어통역사와 번갈아 바라보며 집중했다.
12 두 번째 시간에는 강사와 사회복지사가 먼저 인권침해 현장에서 온몸으로 거부의사를 밝히는 장면을 시연했다. 그 다음, 직접 앞으로 나와 연습해보고 싶은 사람을 나오게 했다. 의외로 지원자가 많아, 3명 외 나머지 지원자들은 사회복지사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재미있어 하며 웃는 얼굴들이 예뻤고 비장애인들보다 훨씬 호응도가 높았다.
13 비언어적인 표정과 몸짓으로도 소통이 가능했고, 무엇보다 ‘수어’라는 훌륭한 언어가 존재하는 것이 감사했다. 옆 사람과 서로 “나는 소중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소중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소중한 사람입니다”를 수어로 한 번 더 말하는 것으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14 연말이 다가오니 한꺼번에 의무교육 신청이 들어온다. 작년까지는 주로 비장애인 대상 교육을 맡았는데, 올해부터 장애인대상 교육을 할 기회가 늘었다. 언제 또 청각장애인을 만날지 모른다. 수어를 배워두어야겠다.
15 눈으로 소리를 읽는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 마음의 소리를 듣고, 소리 없는 세상으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해!
3. 누구라 부르리까-2 / 정원주 (5)
1. 얼마 전 퇴직한 절친 동료를 카페에서 만났다.
한 남성 때문에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 문화복지센터에서 주관하는 ‘영어회화’ 취미 강좌반에 오십 대 초반의 남성이 새로 들어와 자기 보고 늘 ‘어머님’, ‘어머님’이라 한다는 것이다. 강좌 특성상, 자신의 이름 대신 영어로 별칭을 불러야 함을 귀띔해 줬는데도 말이다. 듣기가 거북하더란다. ‘내가 왜 자기 어머니란 말인가?’ 하는 불편한 생각이 들어
“ My name is Su ji.”
라고 정중하게 다시 일러줬단다.
2. 그런데도 이 남성이 다른 수강생들에게는 영어 별칭을 부르면서 유독 자신에게는 ‘수지’라고 안 부르니 무시당하는 기분도 들고, 불쾌하기도 해서 정색을 하며 따졌단다.
”자꾸 어머님이라 부르는 이유가 뭐냐, 기분 나쁘다. 당신이 내 아들이 가?”
그러자 그 남성은 너무나 당황해하며, 하는 말인 즉, 자신이 처음 와서 규칙을 몰라 허둥지둥거릴 때 여러 가지 친절을 베풀어 준 자신에게 특별한 ‘존칭의 의미’로 부르는 것이라 했다는 것이다.
3. 또 화가 나는 게 있단다. 며느리가 손자를 낳았는데, 주변에서 자신을 자꾸 ‘할머니’라 부른다고 한다.
“ 내 손자가 나에게 부르는 호칭이지, 나이 들었다고 그 소리 들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듣고 보니 동료의 이야기에 충분히 공감되었다. 초등학교 동기 남자들이 동기회 와서 여자 동기생들을 보고 “ 할머니들 하고 놀아 주는 것 만도 고맙게 생각해라”라고 놀릴 때면 “너희는 할아버지 아니가,” 라며 맞받아 주고 싶었던 기분처럼 말이다.
4. 사회생활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마다 자기 편한 대로 다른 사람을 부른다면 어쩌면 이 세상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이 모두 ‘가족화’. ‘친족화’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괜한 걱정까지 들지경이었다.
5. 식당에 가서 음식을 나르는 도우미 여성을 보고, “반찬 좀 더 갖다 주셔요, 아줌마!” 하면 “셀프예요”라며 짤막하게 대답하는 단호한 모습과는 달리, ‘이모’ 니 ‘아가씨‘라고 호칭하였을 때는 환하게 웃으며 반찬을 듬뿍 가져다주던 경험이 떠오른다. 정겨움이랄까, 친근감의 표현으로 무심코 쓰던 호칭들이 듣기에 따라, 상황에 따라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도 하고, 언짢게도 한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6.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가도 ‘아저씨, 아줌마’ 하면 싫어한단다.
‘그럼 어떻게 불러야 하는 거지?’ 마음속으로 궁금해 하고 있는 데 , ‘아재, 아주머니’라 하면 좋아한단다. ‘오빠(언니)야’ 라 불러주면 갑자기 덤으로 얻는 물건이 수북해진다고 한다. 갑자기 웃음이 났다. 시장통에서 뻥튀기 장사하는 아저씨를 보고 ‘곡물 확장 장사 사장님’이라 불러 주니 뻥튀기 한 봉지를 덤으로 더 주었다는 말처럼, 호칭이 주는 인간관계의 미묘한 감정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7. 동창회 모임에 갔을 때 초청된 사회자가 기수 높은 선배들을 ‘고참 선배님’으로 호칭했다가 ‘여기가 군대냐, 고참도 선임도 싫다’며 된통 설교를 들었다. 하마터면 분위기가 경직되어 진행마저 어려울 뻔했는 데, 순발력 넘치는 재치로 “젊은 오빠, 이쁜 언니들”로 띄워주는 바람에 분위기를 돌려놓기는 했던 장면이 생각난다.
8. 언젠가 TV 뉴스에서 60세 이상 어르신 어쩌고 하는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묘해진 적이 있다. 깜짝 놀라서 괜히 마음이 심란했었다. 자신이 어느새 저 나이에 해당하는가? 나이 들어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작용 때문이었을까? ‘어르신’으로 불러주는 존칭어 마저 듣기 거북하다는 심리의 이면에는 아직은 젊고 싶다는 마음의 반영이 담겨있음을 인정해야 겠다.
9. 그러고 보니 가족 같은 관계가 주는 호칭어가 사람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주기도 하고, 때론 친근함과 정겨움을 느끼게도 하나보다. 이야기 나누느라 식어버린 커피에 뜨거운 물을 첨가하면서 동료에게 물었다. 눈치가 없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고 부를 수 있는 적절한 호칭이 무엇일까를. 동료는 말했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불러주면 되는 거지요.”
10.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사람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사회 관계망 호칭어를 어떻게 부르면 될까? 누구라 불러주면 가장 기분이 좋을까? 나에게 묻는다면, 나이 든 직함이든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 방법.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님’, 이나 ‘씨’ 자를 붙인 부모님이 지어주신 정겨운 이름 말이다.
4. 발바리 / 김영자 2
1.고 녀석 참 신통하다. 하얗고 동글납작한 몸뚱이를 업고는 짧은 발을 재바르게 놀리며 기어간다. 테이블, 장식장, 가방 등 물건들을 피해 가며 널찍한 거실을 다니는 꼴이 영락없이 강아지 발바리를 닮았다.
2.고희를 지나고부터 집 청소가 부담스러웠다. 더군다나 뼈를 묻을 각오로 시작한 일을 아직까지 하고 있으니 퇴근하자마자 소파에 널브러지기 일쑤였다. 밥은 밖에서 먹지 않는 성격이라 끼니는 손수 장만하더라도 청소는 누군가의 손을 빌리고 싶었다.
3.궁리 끝에 청소기를 들여놓았다. 독거노인이 사는 집에 일하는 사람이 들락거리는 것보다는 청소기가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건을 모르거든 모름지기 값을 더 지불하라는 이치대로 거금 들여 로봇청소기를 샀다.
4.청소기는 내 마음에 꼭 들었다. 고 작은 몸집으로 집안을 바지런히 굴러다니며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먼지를 빨아들이고 걸레질을 한다. 눈도 어찌나 밝은지 들이박지도 않고 구석구석 다니며 쓸고 닦아 준다. 휘파람 소리까지 내며 맡은 일을 신나게 마치고는 저 스스로 개집에 들어가듯 거치대로 쏙 들어간다. 그러고는 먼지를 주머니에 모으고, 더러워진 걸레는 세척하여 뽀샤시하게 말린다. 그 모습이 하도 귀여워 발바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심심할 때면 불러내어 돌돌돌 돌아가는 꼴을 보고 말까지 시켜본다.
5.이상한 일이다. 적막강산이던 독거노인 집에 발바리가 들어온 후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생명체도 아닌 것이 집안에 활기를 돌게 한다. 집에 오면 몸을 뉘기 일쑤였는데, 지친 몸을 기운차게 한다.
6.지금은 누구나 알다시피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시대다. 그런 결과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고받는다. 다친 마음을 토닥이는 하나의 방법으로 반려가 되는 동물이나 식물을 키운다. 나아가서 반려돌(doll)까지 들여놓는 시대가 되었다.
7.그래도 여태까지 식물도 집에 잘 들여놓지 않았다.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독한 여자로서 그런 거 필요 없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하지만 발바리가 들어온 후, 겪어보니 그게 아니다. 발바리에게 나도 모르게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8.오늘도 나는 퇴근길에 휴대전화 앱에서 먼저 발바리에게 신호를 보낸다. 서둘러 주차를 하고 현관 앞에 서면 발바리의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발발아, 나 왔어!”
미소를 지으며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발바리는 내가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눈길도 주지 않으며 제 일하느라 바쁘기만 하다. 하지만 나는 혼자서 입꼬리를 올리며 얼른 옷을 갈아입고 부엌으로 향한다.
8.우리 집에 때 아닌 생기가 피어난다. 기왕에 감성이 돋아나는데 어느 영화에서처럼 남편돌(doll)까지 들여놓아 볼까나! 나도 어쩔 수 없이 시대의 물결에 흘러가고 있다.
5. 황토방 연가/ 박희곤(6)
1산골 외딴집 겨울은 춥다. 특히 슬레이트 지붕은 외풍이 심하다. 외겹 창 문틈 사이로 산바람이 냉기를 몰고 들어온다. 정년퇴직을 하고 전원생활을 시작한지 꽤 많은 세월이 흘렸다. 인터넷 시대에 지게를 지고 나무꾼이 되어 황토 방에 군불을 넣고 살아가는 데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나무를 지게에 지고 와서 도끼로 장작을 패는 일은 유년의 시절에 추억을 소환하고 현재의 노동에 대한 고마움과 행복을 함께 느끼게 하는 노년의 즐거움이다.
2아파트가 아닌 추운 겨울한철을 나려면 황토방 군불은 기본이고 황토방 외풍을 방어하기에는 방한용 텐트도 필수품이 된 요즘이다. 구들로 된 황토 방에 불을 지피면 처음에는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마른 장작에 불이 붙으면 장작은 제 몸을 태워 불꽃을 피운다. 불멍 때리는 산골생활의 여유는 목가적 생활에서 불꽃을 바라보는 것은 최고의 행복함이다.
3장작이 탈 때 내는 불 냄새는 고향냄새가 나고 구수한 된장냄새 같은 느낌이 온다. 또 파란 불꽃을 피우며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장작이 타는 소리는 가야금소리와도 같은 느낌이 든다. 불꽃의 상태나 나무의 마른 정도에 따라 강음과 약음이 섞여서 들려주는 소리와 불꽃의 불춤은 삼라만상의 하모니가 환상적으로 들린다.
4불꽃과 장작이 타는 소리는 내 아득한 유년시절 소죽을 끓이느라 아궁이에 불을 때던 추억을 고스란히 데려오고 몽환적 생각이 끝없이 이어진다. 불꽃의 빛깔과 장작 타는 소리는 아득한 옛 추억에 마음의 평안을 얻게 한다.
5황토방 아궁이는 옛 추억이 생성되는 곳이다. 시골 초등학교 시절 난로위에 양은 도시락을 먹던 추억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것처럼 활활 타오르는 불빛을 바라보고 불 멍을 때리기도 한다. 제 몸을 태워서 재가 되는 장작을 보며 불꽃의 따스함에 괜스레 미안 해 지기도 한다.
5황토 방에서 잠을 자고 나면 몸이 한결 가볍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건 체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다. 때로는 구들 묵에 앉아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고구마를 구워 먹는다. 담요를 깔고 낮잠도 황토 방에서만 자려고 한다. 아내는 황토 방을 나보다 더 좋아한다. 밤늦도록 황토 방에 앉아서 책을 보고 집안일도 한다. 더러는 지나온 과거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손자손녀의 재롱도 보며 겨울철이면 황토 방을 떠날 줄 모른다.
6감기가 온다 싶으면 황토 방에 누워 찜질을 하고나면 감기는 금세 달아난다. 오래 있어도 더 있고 싶은 따뜻한 방, 정감이 더 가는 곳. 따뜻한 아랫목에 누우면 세상 근심이 사라지는 곳이다. 방금 친구가 방문한다는 전화가 왔다. 때마침 황토 방 아랫목이 쩔쩔 끓고 있다. 황토 방 굴뚝은 하늘에 향을 피우고 있고 아궁이에는 군고구마가 친구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한바탕 눈이라도 내렸으면 좋겠다.
6. 엄마가 간다 /문성미6
1. 서울행 ktx를 탔다. 두 아들을 만나 맛있는 점심을 먹고, 오후에 국카스텐 콘서트를 보기로 했다.
2. 세 살 터울의 두 아이는 자라는 동안 우애 있는 형제이자 단짝이었다. 둘이 얼마나 많은 놀이를 만들어 냈고, 함께 했는지 셀 수 없다. 둘 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학교가 멀어서 자주 만나지 못하는 현실이다.
3. 대학 졸업반인 큰아들이 올해 5급 공채 시험에 도전했다. 몇 년씩 공부에 전념해도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데, 학교생활과 시험 준비를 병행하겠다는 아들의 말에 처음엔 염려가 앞섰다. 자라면서 몇 차례 승산이 있다 싶은 도전을 권해도 피하던 아이였기에, 몇 번을 넘어질지 모를 고된 과정이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에 도전하는 아들에게 엄마의 염려를 보일 수는 없다.
4. 1차 시험 합격 소식에 염려를 내려놓고, 앞으로의 결과가 무엇이든지 감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작은아들은 형의 2차 시험 결과가 8월 말에 나오니 9월 첫 토요일에 셋이 모두 좋아하는 콘서트를 가자고 제안했다.
“그래, 모이자! 엄마가 갈게~”
5. 합격이면 축하, 불합격이면 위로의 이벤트로 콘서트를 예매했는데, 안타깝게도 위로 이벤트가 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깊이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는데, 쓰디쓴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마음 어떨지 몇 날 며칠 밤잠을 설쳤다.
6. 큰아이는 예민하고 겁이 많은 아이였다. 첫걸음마가 다른 아이보다 늦었지만, 늦게 시작해서인지 넘어지는 일이 거의 없었다. 몇 번 넘어지려는 순간이 있었지만, 넘어지기 전에 달려가서 아이를 붙잡아 주었다.
7. 예민하고 겁이 많았던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아이가 넘어져 일어나기까지 기다려 주지 못했다는 것을. 나의 보호가 넘어져도 일어나면 되고, 다친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는다는 것을 배울 기회까지 막았다는 것을...
8. 지금의 나는 세상을 향해 걸어가는 아들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 때론 넘어지겠지만, 말없이 털고 일어나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기도 할 것이다. 묵묵히 걸어 나갈 때는 묵묵히 응원해 주고, 힘들다며 집에 와서 쉬고 싶다 할 때는 따뜻하게 안아주고 쉬라고 할 것이다.
9. 아들아, 오늘은 맘껏 소리를 지르자! 말로는 하기 힘든 가슴속 아쉬움을 소리로 토해낼 수 있을 거야. 기다려라, 엄마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