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는 동일씨족의 관향을 중심으로 시조 때부터 현재까지의 계통을 수록해 동족의 발원에 대한 사적과 선조로부터 본인에
이르기까지 그 발자취를 상세히 수록해 종족의 근원을 밝히고 자랑스런 조상의 행적과 동족간의 소목을 알려 화애돈독함을
목적으로 만든 보첩이라 할 수 있다.
족보는 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세월이 흐르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성이 중복되고, 한 성씨를 가진 자손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그 계통을 밝히기가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그 계통을 일목요연하게 밝히기 위해 계보를 만들었는데, 우리의
조상들은 고려시대에 이를 처음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일가붙이가 많아지고 문벌의식이 높아지면서 족보만
들기가 유행했다. 이는 조선시대 유교를 숭상하면서 신분질서가 강화되 고, 제사의식 등 조상숭배사상이 퍼지고, 문벌이
굳어지고, 남녀의 차별 이 굳어지는 시대풍토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족보는 한 종족의 역사이며 생활사인 동시에 혈통을
증명하는 귀중한 문 헌으로 동족의 여부와 종묘나 사당에 신주를 모시는 순서 및 친족간의 멀고 가까운 관계를 나타내는
촌수(寸數) 구분에 지극히 필요하다. 특히 오늘날에는 이러한 족보의 개념적 정의보다는 '살아있는 집안의 어 른'으로서 그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족보의역사
<족보의 생성배경>
가문의 계통을 내세우려는 왕족의 욕구에 의해서 족보의식이 싹텄으며, 이러한 의식이 씨족사회 전반에 까지 파급되면서
족보가 일반화되었다.
<족보의 시작>
족보는 일찍이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옛날 중국 제왕들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연대순으로 적었는데, 그것이
제왕연표(帝王年表)이다.
개인들의 족보는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었다. 족보는 한나라때 관직 등 용을 위한 현량과라는 벼슬에 추천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과거에 참여한 사람들의 내력과 그 선대의 업적 등을 담았는데, 이것이 일반 가정에서 족보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위나라 때는 관리 추천제도인 구품중정법의 실시에 따라 더욱 발달하게 되었고, 남북조 시대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학문으로
보학을 연구하게 되 었다.
<우리나라의 족보>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엽부터 족보가 시작되었다 하나 오늘날 전해진 것은 없다. 김관의(金寬毅)의 왕대실록이 효시라 할
수 있다. 이는 단 지 역대왕실의 혈통이나 역사를 모아 엮어놓은 세보(世譜)에 불과했지만 왕실의 친척인 종가의 아들까지
기입해 족보의 형태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고려시대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성종 초기에 비 로소 체계화되었다. 우리 나리에서 최초로 발간된
족보는 1423년에 간행된 '문화유씨영락족보' 로 알려져 있으나 그 서문만 전할 뿐이다. 1476년에 간행되어 현재 규장
각에 보관되어 있는 '안동권씨성화보'가 가장 체계를 갖춘 족보로 알려져 있다. 또 자손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문화유씨가정보'도 1562년에 간행되어 오늘날까지 전한다.
족보가 더욱 일반화되기는 선조시대(1567-1608)이다. 당쟁이 차츰 가열 되면서 문벌간의 대결이 벌어지는
시기였다. 이에따라 각 문벌들은 일 족의 유대를 공고히 하기위한 방편으로 족보를 동원하였고, 이것이 족보 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족보에 대한 집착은 일제의 핍박이나 서양문명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끈 질기게 이어져 오늘날까지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족보의구성
<표지>
. 황색 계통, 이는 흙을 상징
. 족보의 제본 방법 : 삼강오륜에 기반을 둠 세 가닥으로 꼬인 실로 책을 묶음(제본) = 삼강
책을 꿰매기 위해 뚫은 다섯개의 구멍 = 오륜
. 표지에는 족보의 명칭만 쓰는 것이 일반적.
<그림 및 사진>
. 사진 : 주로 시조, 중시조, 파조 등의 사당이나 묘지를 촬영
. 산도(묘소도) : 시조 이하 현조 또는 파조의 분묘의 위치와 지형을 그린 도면
. 옛날 : 산의 지형과 묘지를 일일이 그려 넣었음.
. 현재 : 축적지도나 자척도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음.
. 순서 : 사진을 먼저, 다음에 신도(묘소도)를 게재하는 것이 일반적.
. 영정과 유적 : 시조 이하 현조와 파조의 영정을 싣고, 조상이 제향된 서원이나 사우, 영당 또는
신도비, 정문, 제각 등의 유적을 싣고, 조상이 거처하던 정자도 유적편에 실음.
<서문(序文) 및 수보(修譜)
연대표>
. 서문 : 책머리에 반드시 실리는 머릿말서·서문·머릿말·간행사·발간사·족보 발간에 즈음하여
등의 명칭
. 신보서 : 족보를 발행할 당시의 서문
. 구보서 : 창간 이후 수보할 때마다의 서문
. 싣는 순서 : 신보서 -> 창간보서 -> 2차 수보서 -> 3차 수보서
. 내용 : 족보의 의의, 시조의 발상과 씨족의 연원, 역대 조상의 위훈, 족보 창간 이후 증수한 연혁,
수보하게 된 동기, 서문을
쓴 분의 소감, 후손에 대한 당부 등
. 다른 집안 사람으로서 학식이 풍부하고 덕망이 높은 사람에게 글을 받아 싣기도 하고, 문중에서
학문에 깊은 사람이 쓰기도 함.
. 대개 시조나 중시조의 사진 및 산도(묘소도) 다음에 게재
. 때로는 맨 처음 게재하는 문중도 있음.
. 파보 등의 지보(支譜)에는 종보(宗譜)의 것을 그대로 수록
<범 례>
. 족보의 내용을 아는데 도움을 주는 것
. 족보의 규모, 편찬 순서, 자손 배열의 순서 등을 기록
. 책속의 중요 내용, 주의사항, 일러두기 등을 알기 쉽게 기재
<세 덕>
. 시조 이하 특출한 조상의 행장기, 묘지명, 신도비명, 국가로부터 받은 특전, 서원과 사우에 제향한
봉안문 및 상향축문, 유시, 유묵, 국가에 올리는 소문 등을 빠짐없이 실음.
<목 차>
. 일반적으로 그림이나 사진 다음, 서문 앞에 놓임.
. 목차 대신 색인표 또는 인명색인표를 만드는 문중이 있는데, 그 형식이나 내용은 목차와 차이가
없다.
<항 렬 표>
. 문중에서 정한 독특한 항렬자를 세수(世數)별로 기재
. 항렬은 혈족의 방계(傍系)에 대한 세수를 나타내는 것
. 문중에서 족보를 편찬할 때 일정한 대수(代數)의 항렬자와 그 사용법을 미리 정해 후손들이 이에
따르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음.
<세 계 도>
. 시조로부터 분파된 계열을 알 수 있도록 하는 도표
. 파계도, 세계도, 세계도표, 상계도라고도 함
. 시조 ~ 현재(말손:末孫)까지 계통만 순서대로 적되, 휘(諱)자만 사용
. 게재 위치 : 자손록 바로 전에 넣어 손록과 연결해 보는 것이 편리
. 족보를 볼때 세와 대를 판단하는데 필수적
<특관 세전록 및
체명록>
. 득성이나 득관, 분관의 연유를 별도로 기록하여 이해를 빠르게 함
. 관향 : 시조의 고향. 그 지명이 고쳐져 온 연혁을 연대별로 기록
<자 손 록>
. 시조 이하 모든 자손을 계대에 맞추어 해당족보의 규칙에 맞게 기록한 것.
. 족보의 중심을 이루는 부분으로 전질(全 )의 대부분을 차지.
* 수록 내용
. 시조부터 시작, 세대순으로 종계(縱系)를 이룸.
. 각각 사람의 이름, 자호, 시호, 생몰연월일, 관직, 봉호, 과방, 훈업, 덕행, 충효, 정표,
문장, 저술 등 신분관계를 기입.
. 자녀에 관하여는 후계의 유무, 출계 또는 입양, 적서의 구별(서자는 수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
남녀의 구별(여자는 이름을 적지 않고 사위의 성명을 기입) 등을 명백히 함.
. 왕후 또는 부가가 되면 특히 이를 명기
. 분묘의 표시, 소재지, 묘비, 비문 등을 표시
* 내용상의 편집 - 종간족보, 횡간족보
. 종간족보 6단 체제의 편집 (실제 내용은 5단체제의 편집) 세와 대를 일목요연하게 살펴보기
어려움.
<발문(跋文) 및
임원록>
. 책 끝에 본문 내용의 대강이나 그에 관계된 사항을 간략하게 기록
. 편집을 끝내고 난 후의 소감 등을 피력
. 그 특수성에 비추어 서문 다음에 싣기도 하지만 책의 맨 끝에 싣는 것이 상례
. 임원록에는 족보간행위원, 편찬위원회 임원, 임원명단 등을 기재
. 직위, 성명, 파명, 주소 등의 양식
. 임원록과는 별도로 족보에 수록될 명단을 거두어들인, 즉 수단유사(收單有司)를 별도로 기재하는
경우도 있음.
. 싣는 순서 : 1. 서문, 발문, 행장(行狀), 항렬도 다음 기제하는 방법
2. 자손록 끝에 발문과 같이 게재하는 방법
<부 록>
. 옛 용어로 기록된 족보의 연대, 관직, 지명 등이 현대인으로서 이해가 곤란하므로 족보를 보는데
도움이 되도록 연대표, 고려와 조선시대의 관직표, 품계표 등을 싣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족보의 종류
<대동보(大同譜)>
. 처음으로 성(性)을 가진 시조(始祖) 또는 비조(鼻祖:원조)의 후계인 중시조 마다 분관하여 각관
시조로 한 씨족간에 대동해 합보한 족보.
. 한 성씨의 시조이하 동계혈족의 동족간에 분파된 파계를 한데 모아 대동해 집대성한 것.
. 따라서 각파의 분파조는 시조로부터 몇 세손이며 어느 대에서 분파되어 파조되었는가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계통이 수록. 자손이 번성한 성씨는 수십의 계통으로 분파됨.
<파보(派譜)>
. 동일한 계통의 시조에서 갈라진 해당 파계(派系)만을 수록하여 각파의 문중에 대한 후손에 대해
상세히 수록할 수 없는 대동보와 구별됨.
. 각 파문에서 원하는 명단만을 등재함.
<세보(世譜)>
. 동일종파 이상의 시조이하 각 파계를 동보로 함을 말함.
. 내용은 파보와 동일하며 대부분 동일계파의 계통만을 수록하는 경우라도 각 분파조를 밝혀 어느 몇
대조 세대에 갑과 을파가 갈리어 갔다는 것과 분파조의 행적 등을 명기해 수록편수함을 세보함.
. 세지라고도 함.
<가승(家乘)>
. 시조 이하 중조 파조를 거쳐 본인에 이르기까지 직계존속만을 수록한 가첩.
. 가승의 수록내용을 참고하면 본인의 고조부 이하는 전부 수록해 재종, 삼종, 형제자매까지 알아볼
수 있음.
<계보(系譜)>
. 다른 가첩류와 달리 시조이하 동족간의 계통과 소목을 밝히기 위해 명(名). 휘(諱). 자(字)만을
수록한 분파계열도 또는 파조 이하 본인까지 수록한 것 등을 계열도라 함.
. 요즈음은 족보를 수록편수할 때 거의가 분파계열도를 족보의 앞부분에 등 재해 세대의 소목을
알리는 데 참고가 되도록 함.
<만성보(萬姓譜)>
. 각 성씨의 관향별로 시조이하 중조. 파조 등을 요약 수록한 것으로 만성대 동보라고도 함.
. 널리 알려진 만성보로는 조선씨족통보, 만성대동보 등이 있음.
족보 보는법
<족보를 보려면>
. "나" 가 어느 파에 속해 있는지 알아야 편리하다.
<파(派)를 알지 못한
경우>
. 조상이 어느 지역에 살았고 어떤 파가 살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도 파를 모를
경우>
. 씨족(氏族) 전체가 수록된 대동보(大同譜)를 찾아 확인하여야 한다.
<시조로 부터 몇 세대(世代)인지 알아야
한다>
. 족보(族譜)는 가로(橫)로 단을 갈라서 같은 세대(世代)에 속하는 혈손(血孫)을 같은 단(段)에
횡으로 배열하였으므로 자기 세대의 단만 보면 된다. 만일 세수를 모르면 항렬자(行列子)를
헤아려야 한다.
<파(派)의 명칭>
. 흔히 파조(派祖)의 관작명(官爵名) 시호, 아호(雅號) 등을 따서 붙인것임.
<파 찾아보기>
. 족보 계보도(系譜圖) 위에 세계도(世系圖)를 보아야 한다. 세계에는 대략 분파(分派) 계도를
그려놓고 무슨 파는 몇권 몇 면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열(悅)을 기두(起頭)라 한다.
우측에 자전과 소(逍)는 열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표시한 것이다. 그 옆에 사첩(四疊)은 횡으로
네 번 바뀌었다는 뜻이 된다.
이름과 항렬
<이름이란?>
성(姓) 아래에 붙여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명칭. 넓게는 성과 이름을 모두 합쳐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름은 한국
중세어에서 ' 일홈' 또는 '일 훔' 등으로 표기되고 있지만, '이르다(謂)'나 '말하다'는 뜻을 가진 옛 말 '닐다'에서
출발하여 '닐홈-일홈-이름'으로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름의 형태 (사대부 남자의
경우)>
┏━아명 : 어린아이 때의 이름.
┃
┣━관명 : 장성해서 그 집안의 항렬에 따라 짓는 이름
┃
┣━자 : 혼인한 후에 본이름 대신 부르는 이름
┃ 일상생활에서는 어른 아닌 사람들이 이 자를 불렀다.
┃
┣━호 : 자 이외에 쓰는 아명(雅名)
┃ 학자, 문인, 서화가들이 가지는 또 하나의 이름
┃
┗━시호 : 임금이나 경상(卿相), 유현(儒賢) 등이 죽은 뒤 임금이
그 행적을 칭송하면서 추증하는 이름
<이름의 형태 (서민과 여성일
경우)>
┏━서민 : 아명으로 평생을 살다 가기도 하였다.
┃
┗━여성 : 특별한 사례 외에는 출가와 함께 아명은 없어지고 대신
택호(宅號)가 따랐다.
<이름의 역사>
이름을 한자로 지을 경우의 성명 3자 가운데에서 선택권은 1자밖에 없다(외자이름도 있지만). 성과 항렬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남은 1자도 같은 항렬의 동명이인을 피해야 하고 가까운 조상의 이름 에 나오는 글자도 피했다.
한자가 들어오기 이전의 이름은 토박이말이었으나, 한자의 유입과 성 (姓)의 보급에 따라 한자식 이름으로 차츰 바뀌어
내려왔다. 사람의 이름이 한자로 바뀌는 것은 땅이름이 한자화했던 신라 경덕왕 (景德王) 이후부터 심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사기 (三國史記)'나 '삼국유사 (三國遺事)'에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 이름에서도 그것이 토 박이 이름이라는 사실은
금방 알 수 있다.
가령 신라의 시조왕 '혁거세(赫居世)'부터가 그렇다. '불거뉘'의 한자 표기이기 때문이다. 또 3대왕
,유리(儒理)'와 14대왕 '유례(儒禮)'는 똑같은 '누리'의 음사(音寫)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고, 백제의 3대왕'기
루(己婁)'나 21대왕 '개로(蓋鹵)'도 같은 토박이말의 다른 표기인 것으 로 보인다.
그 당시의 상류계급에도 토박이 이름이 있으면서 권위를 나타내기 위 하여 한자식 이름을 썼던 듯하다. 박제상(朴堤上)의
경우, 또다른 이름 인 '모말(毛末)'이 그 토박이 이름이었다고 하고, 김유신(金庾信)의 두 누이동생인 보희(寶姬),
문희(文姬)에게도 '아해(阿海)' '아지(阿之)'와 같은 토박이 이름이 있었음이 이를 말해 준다. 백제왕의 경우도 시조 왕
'온조(溫祚)'로부터 23대 '삼근(三斤)'까지는 토박이 이름의 한자 표 기이고, 24대 '동성(東城)'부터가 한자식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다. 토박이 이름과 한자 이름의 혼재(混在)는 고려시대로 이어지고, 다시 조선시대까지 이어진다.
조선시대에 와서 성이 더 많이 보급되고, 한자 식 이름 또한 그에 따라 많아진 것이 사실이지만, 1910년 5월 10일에
완 성된 민적부(民籍簿)에 의할 때, 그때까지 성이 없는 사람의 수가 있는 사람에 비하여 1.3배였으니, 토박이 이름인
사람도 그만큼 많았다는 것 을 알 수 있다. 그때까지의 토박이 이름은 주로 하층계급 사람들의 것이었다.
<옛날 토박이 이름의
기준>
1. 출산 장소에 따른 것 (부엌손, 마당쇠) 2. 간지(干支)나 달
이름에 따른 것 (갑돌이, 정월이) 3. 성격에 따른 것 (억척이,
납작이) 4. 기원을 곁들인 것 (딸고만이, 붙드리) 5. 순서에
따른 것 (삼돌이, 막내) 6. 복을 비는 천한 것 (개똥이,
돼지) 7. 동식물, 어류 이름에 따른 것 (강아지, 도미)
<중국의 이름>
중국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아버지가 이름을 짓는 것으로 되어 있다. 자(字)는 성인이 되어 붙이는 이름으로, 그
이후로는 임금이나 부모 등 윗 사람 외에는 자를 불러야 한다.
시(諡)는 신하의 경우 임금이 내리고, 임금의 경우 신하들이 생전의 공덕을 생각하여 짓는다. 사람이 죽은 다음 생전의
이름은 입에 올리지 않는다. 이 밖에 유명(乳名), 동명(童名) 또는 서재의 이름이나 사는 곳의 이름 등을 따서 짓는
아호(雅號), 별호(別號)가 있는데, 한 사람이 여러 이름을 가질수 있었다.
<서양의 이름>
서양 사람의 이름은 기본적으로 2종류로 이루어진다.
1.개인을 나타내는 퍼스트 네임(또는 세례명)
2.가문의 이름인 패밀리 네임(또는 surname)
그러나 11세기 이전의 영국에서는 하나의 이름 밖에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 그들은
이크네임(ekename:지금의 닉네임)으로 불리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세례명의 선정을 목사가 거부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만, 그 래도 영국이나 미국 쪽이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보다 더 자유롭다고 한다. 세례명 외에 중간 이름을 넣어 2개의 실명을 가지는 습관은 독일 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집안을 자랑하기 위하여 모계(母系)의 성을 나 타내기도 하고, 같은 이름의 사람과 구별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유럽쪽의 이름은 개인 이름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가문 이름인데, 헝 가리만은 가문 이름이 먼저이고 개인 이름은
나중이다. 그 점은 한국이 나 중국, 일본의 경우와 같다. 인도 사람들의 이름은 성과 이름으로 되 어 있고, 성을 뒤에
놓는 점에서 유럽과 같지만, 인도네시아나 미얀마와 같이 성은 없고 이름만 있는 나라의 경우도 있다. 대통령이건 천민이건
이름이 모두 같아서 수카르노, 수하르토, 나수티온이라는 이름뿐이다. 미얀마 사람들이 '우 누' 또는 '우 탄트' 했을 때
마치 성과 이름인 것 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우는 미스터라는 뜻이고 이름은 그냥 '누'이 며 '탄트'일 뿐이다.
<항 렬>
. 같은 혈족사이에 세계(世系)의 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한 문중(門中)의 법.
. 가문과 파마다 각기 다름.
<항 렬 자>
. 이름자 중에 한글자를 공통으로 사용하여 같은 세대를 나타내는 돌림자.
<대략적인 항렬법>
1. 오행상생법(五行相生法)
.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의 변을 순서적으로 사용.
. 가장 많이 쓰임.
. 동족여부(同族與否)를 가리기 위해 필연적으로 따지게 된 것. . 대부분 시조(始祖)나 중시조(中始祖)의
출신지 또는 정착하여 살았던 곳을 호칭. . 봉군(封君:고려 때 종 1품, 조선 때 2품이상의 공로자에 .
게 임금이 하사하는 신분) 칭호를 따라 호칭 . 사관(賜貫):임금이 공신이나 귀화인들에게 하사하는 경우
<성씨와 본관의 관계>
1. 동족동본의 동성(同族同本同姓)
. 성(姓)과 본(本)이 같으며, 그 근원도 같음. .
근친혼(近親婚)의 불합리성과 윤리적 가치관 때문에 혼인을 절대 금지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많은 사회적 문제가 제기되자 동성동 본 혼인금지법이
폐지.
2. 이족동본의 동성(異族同本同姓)
. 성(姓)과 본(本)이 같지만, 그 근원은 전혀 달라 사실상 혈통문제가 전혀 없음.
3. 동족이본의 동성(同族異本同姓)
. 시조도 다르고 본도 다른 경우
4. 이족이본의 동성(異族異本同姓)
. 대성(大姓)에서 주로 볼 수 있음.
. 같은 성을 쓰면서도 조상이 달라 아무런 계통관계가 없음.
예) 김해김씨(金海金氏)와 경주김씨(慶州金氏)
5. 동족의 동본이성(同族同本異姓)
. 조상과 본을 같이 하면서도 성씨만을 다르게 사용하는 것.
예) 김해김씨(金海金氏)와 김해허씨(金海許氏)
현재 우리나라 성씨는 270여 개 정도인데, 이중 130여 성씨가 중국에서 온 귀화성씨라 한다. 귀화성씨 중에는
덕수장씨, 한양조씨 등 1백만에 가까운 성씨가 있고, 독고(獨孤)씨, 섭(葉)씨, 마(痲)씨 등 1,000명 미 만과
500명도 안되는 풍(馮)씨 초(楚)씨도 있다.
귀화성씨의 유래는 3천여 년 전 기자조선으로까지 소급된다.
귀화성씨는 고려 때가 60개로 가장 많다. 신라 때 40개 성씨가 귀화했 고 조선조에서는 24개 성씨가 거의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귀화, 기자조 선 당시와 일본귀화성씨까지 합치면 130개 성씨가 넘는다. 특히 고려 때에는 아랍,
이란인까지 귀화한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송(宋)나라 사람을 비롯하여 여진(女眞), 거란(契丹), 안 남 (安南:베트남), 몽골, 위구르, 아랍
사람들이었다.
조선시대에는 명(明)나라와 일본인 등 많은 외국인이 들어와 귀화하였 다. 이들이 한국에 귀화하게 된 동기는 대체로
정치적 망명, 표착(漂 着), 종교홍포(宗敎弘布), 투항(投降), 구원(救援), 상사(商事), 전란 피란, 범법
도피(犯法逃避), 정략결혼(政略結婚), 왕실 시종관계(侍從 關係)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한국의 외래 귀화 성씨를 크게 나누면 중국계, 몽골계, 여진계, 위구르 계, 아랍계, 베트남계, 일본계의 등으로 분류
할 수 있다.
중국계
가씨(賈)
강씨(强)
현풍 곽(郭)
남궁씨(南宮)
강음 단씨(段)
열산 마씨(麻)
함평 모씨(牟)
수원 백씨(白)
원주 변씨(邊)
청주 사씨(史)
섭(葉)씨
성주 시씨(施)
죽산 안씨(安)
의령 여씨(余)
염씨(廉)
휘주 요씨(姚)
유씨(劉)
교동 인씨(印)
요양 자씨(慈)
서산 정씨(鄭)
임천 조씨(趙)
상주 주씨(周)
파릉 초씨(楚)
용강 팽씨(彭)
강릉 함씨(咸)
남양 홍씨(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