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 임영관 삼문
강릉 임영관 삼문(江陵 臨瀛館 三門)은 강원도 강릉시 용강동에 있는 문(門)의 하나이지요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의 국보 제51호로 지정되었어요
단층의 맞배지붕으로 3칸 2호(戶)의 장중한 형태를 갖춘 우수한 팔각문(八脚門)인데
건립된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 수법(手法)으로 보아 조선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요
비록 규모는 작지만 한국 목조 건축사상 뛰어난 구조와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어요
옛 명칭은 '강릉 객사문'이었는데 2010년 4월부터 '임영관 삼문'이라 부르게 되었지요
고려시대에 지은 강릉 객사의 정문으로
현재 객사 건물은 없어지고 이 문만 남아 있어요
객사란 고려와 조선시대 때 각 고을에 두었던 지방관아의 하나로
왕을 상징하는 나무패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례를 행하였으며 왕이 파견한 중앙관리나 사신들이 묵기도 하였지요
이 객사는 고려 태조 19년(936)에 총 83칸의 건물을 짓고 임영관이라 하였는데
문루에 걸려 있는 ‘임영관’이란 현판은 공민왕이 직접 쓴 것이라 하지요
몇 차례의 보수가 있었고 일제시대에는 학교 건물로 이용하기도 하였어요
학교가 헐린 뒤 1967년에는 강릉 경찰서가 들어서게 되고 현재는 마당에 객사문만 남아 있지요
남산의 오성정·금산의 월화정·경포의 방해정은 이 객사의 일부를 옮겨 지은 것이지요
문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지요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공포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간결한 형태로 꾸몄어요
앞면 3칸에는 커다란 널판문을 달았으며 기둥은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배흘림 형태이지요
간결하고 소박하지만 세부건축 재료에서 보이는 세련된 조각 솜씨는
고려시대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이렇듯 강릉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지요
옛부터 관동팔경을 자랑하듯
오죽헌과 경포대를 비롯하여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는 곳이 강릉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강릉지방에는
낙향한 명문 대가의 양반들이 둥지를 틀고 그 자손들이 번성해 내려왔어요
그 대표적인 강릉의 대성(大姓) 중 하나가 '강릉 김씨'와 '강릉 최씨' 이지요
여기서 두 명문가의 시조를 두루 살펴보면
강릉 김씨는 통일신라의 기틀을 마련한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5대손인 김주원이지요
사록에 의하면 김주원이 시중(侍中, 신라의 최고 관직) 겸 병부령(兵部令, 군권 총책임자)의
벼슬에 있을때 선덕여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뜨자
문무 백관이 숙의 끝에 그를 왕위에 오르도록 추대했다 하네요
그러나 왕위 즉위식날 갑자기 내린 큰 비로 알천(경주 부근의 하천)의 물이 불어나
입궐을 못하게 되자 이는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즉위를 포기했다 하지요
거듭되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양하고 강릉으로 옮겨 은거했는데
조정은 그의 겸양과 충정에 감복하여 명주군왕으로 봉하였으며
후손들은 그 뜻을 받들어 새로이 강릉을 본관으로 삼아 대를 이어 내려오게 되었다고 하지요
세월이 흐르며 후손 중에 여럿이 벼슬자리에 나갔으나 조선조에 이르러 가문에 우뚝선 인물은
생육신의 하나였던 매월당 김시습이지요
그는 시조 김주원의 22세손으로 세살때 이미 시를 지었고
다섯살에는 <중용>과 <대학>을 통달해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지요
세조1년 나이 21세때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던 중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해 읽던 책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방랑길에 올랐어요
세조 4년에 한양에 들렀던 그는 효령대군의 권고를 받아들여 마음을 바꿔 세조의 불경 언해 사업을
돕게 되었다고 하지요
그후 <금오신화>와 <매월당집> <십현요해> 등의 명저를 남겼어요
강릉 김씨의 집성촌으로는 삼척시와 강릉시 일원, 철원군 민통선 인근, 충남 당진읍
경기도 동두천읍, 장단군, 전북 익산군이 있지요
오늘날 삼척과 강릉시 일원에 뿌리를 둔 강릉 김씨 후손 중에 두드러지는 인물로는
작고한 김진만 전 국회 부의장을 들수 있어요
지역의 대표적 기업인 동부그룹을 창업한 김 전 부의장은 기업 활동으로 지역 발전에
크게 공헌했을뿐 아니라 정계에 진출해 3,·4대 민의원과 6~10대 국회의원을 지냈지요
장남이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고, 차남은 김택기 전 국회의원이지요
이들과 같은 기(起)자 항렬을 쓰는 문중 인물들만 해도
강릉 출신인 김갑기 동국대 국문과 교수
김명기 전 동해지방해양수산청장, 김무기 전 MBC·동양TV 방송국장, 김봉기 필리아M&C 사장
김순기 전 KBS 아트비전 사장, 김원기 전 MBC 라디오 기술위원 등을 포함해
삼척과 동해 등지에서 상당수가 활약하고 있지요
또 다른 대성인 강릉 최씨는 본관은 같으면서도 세 줄기로 나뉘어 있어요
첫째는 고려 때 경흥부원군에 봉해졌던 충무공 최필달의 계통이고
둘째는 고려 태조 왕건의 부마인 최흔봉의 계통이며
셋째는 고려 충숙왕의 부마인 최문한을 시조로 하는 계통이지요
강릉 최씨의 시조는 왕건을 도와 통일 고려의 창업에 공을 세운 최필달이지요
그는 이 공으로 정승에 오르고 경흥(강릉의 별칭)부원군에 봉해졌어요
경주 최씨 상계세보에 따르면 최필달은 경주 최씨 시조 최치원의 후손인 최승로의 후손이지요
따라서 강릉 최씨는 고려 초엽에 경주 최씨로부터 분적한 것이 되지요
조선조 때 문과 급제자 숫자는 37명. 최씨 가운데서 전주·해주·경주 최씨 다음으로 많아요
이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은 최필달의 16세손인 최치운으로서 세종조의 명신이지요
태종 17년 문과에 급제해 공·형·이조 참판, 집현전 직제학을 제수했어요
다섯 차례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왕래하며 외교적 업적을 쌓아 세종의 총애를 받았는데
그는 사람을 알아보는 선견지명이 대단했다 하지요
매월당 김시습이 태어난지 8개월이 되었을때 우연히 아이를 보고
장차 큰 일을 할 인물이라며 직접 지어준 이름이 ‘시습(時習)’이었다고 하네요
최흔봉을 시조로 하는 일가는 강릉시 모산 평장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씨족이지요
강릉 지역에서는 옛부터 ‘살아서는 모산이나 학산 지역이 좋고, 죽어서는 성산이 좋다’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모산은 산수가 뛰어난 곳이지요
최흔경은 고려 태조의 옥경대주를 부인으로 맞아들여 부마가 되었어요
최흔봉의 12세손 최입지가 고려 말 공을 세워 강릉군에 봉해진 이후 중시조로 모셔졌지요
최흔봉을 시조로 하는 강릉 최씨에는 희경공파, 대사간파, 예성군공파, 전서공파가 있어요
충숙왕의 딸 선덕공주와 혼인한 최문한은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공격을 받자
강릉으로 도피해 마상리에 터를 잡았어요
고려의 국운이 다한 것을 깨달은 그는 그대로 강릉에 정착해 강릉 최씨의 또 다른 시조가 되었지요
그는 한때 정선군 남면 거칠현돈(居七賢洞)에서 이색, 길재 등 여말의 6현과 함께
<정선아리랑>의 원곡인 <도원가곡>을 지었어요
<도원가곡>은 최문한의 후손인 최찬제가 목판 탁본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후일 정선문화원이 <정선아리랑>의 원본임을 밝혀냈지요
이 노래를 요즈음의 말로 풀이하면 ‘벙어리 읖조리는 심정을 누가 알리요.
배고픔은 떳떳한 일, 절의를 잊지 말고 천지 만고를 이겨내자’라는 뜻이라 하네요
오늘날 굳이 시조나 파를 따질 것 없이 강릉 최씨 문중에서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지요
인명 사전에서는 20쪽을 넘게 할애해 강릉 최씨 집안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을 정도이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 최규하 전 대통령이지요
그리고 최종영 전 대법원장, 농수산부장관·상공부장관·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국회의원·강원도지사를 두루 지낸 최각규
경월주조를 경영했고 국회의원·한나라당 재정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는 최돈웅
검사 출신으로서 4선 의원에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역임한 최연희 의원이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지요
그 밖에 최순영·최욱철 전 의원, 최선정 전 보건복지부장관,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장관
최우근 전 육사 교장, 최옥자 세종대 명예총장, 최장집 고려대 정외과 교수, 배우 최종원씨가 있어요
또 현 강원도지사 최문순도 강릉최씨이지요
그리고 강릉에서 무시못할 성씨 하나가 또 있는데
그 성씨가 바로 안동권씨 이지요
안동 권씨가 어떻게 해서 강릉으로 이주 했는지는 자세히 모르나
안동권씨(安東權氏)의 시조는 안동의 삼태사의 한분이신 권행(權幸)이며
고려시대에는 추밀원부사를 지낸 권수평(權守平)과 권위가 있지요
조선시대에는 권근,권람등 많은 인재가 배출 하였고
특히 임진왜란때 큰 공을 세운 권율(權慄)장군이 안동권씨 가문이지요
가까운 예로서는 그 유명한 국회의원 권성동이 강릉에서 내리 4선을 하고 있어요
어찌되었든 강릉에는
강릉김씨, 강릉최씨, 그리고 안동권씨가
그 유세를 부리고 있지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 *-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삼왕길 204-15(보광리 285)번지에 위치한 명주군왕릉은
강릉김씨의 시조 명주군왕 김주원의 묘이지요
능향전(陵享殿)뒤쪽 언덕에 명주군왕능이 보이네요
강릉(江陵)이라는 이름은 물 강(江)자와 묘 릉(陵)자를 쓰는데
강(江)은 남대천(南大川)을 의미하고 릉(陵)은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의 묘를 말하는 것이지요.
▲ 황산사는 강릉최씨 시조인 최필달(崔必達)공의 사당이지요
▲ 해동부자(海東父子) 충무공 최필달의 위패가 모셔진곳
▲ 최규하 전 대통령 송덕비
첫댓글 좋은 글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