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헬로 동기 여러분. 시작이 반이고 지금은 12월의 반이니 반+반 = 올해가 다갔엉.
첫해는 토요반장으로 뒤풀이 회비 걷으러 나왔고 두번째 해는 2주년을 위해 나왔고, 어찌저찌 어영부영 6년째 연말을 맞네.
나 서른 하나에 시작했는데 이제 서른일곱. 그 사이 대통령이 두 번 바뀌고 이사를 세번 했어. 전에 샬랄라 누나가 자긴 서른셋이 가장 놀기 좋았다 했는데. 그 나이 언제 오나 싶더만 어느새 서른 후반이야.
매주 뒤풀이를 함께하다 보면, 이런 나날이 영원할거란 착각이 들기도 하잖아. 하지만 영원한 건 없지. 언젠간 끝이 나. 삼십대 허리를 지날때 내 화두였던 삶의 유한함. 그러니 주말 한 곡의 홀딩도, 한번의 뒤풀이도 소중히, 그리고 밀도 높게 만들 궁리를 하곤 했어. 결과적으로, 그래서 재미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리지만...
동기 송년회에서 길게 늘어 놓으면 폐가 되니까, 여기에 끄적여본다.
1. 스타일
스누피와 라라는 륙년째 일관되게 내 글을 이해할 수 없다 하는데, 난 이게 스타일의 차이에서 온다고 봐.
헤어스타일이나 패션스타일이란 말에서 보듯, 스타일은 본질적 차이 보단 눈에 보여지는 차이 아닌가 싶어. 머리나 옷 스타일을 바꾼다고 사람 본성이 달라지는 건 아니잖아. 그렇다고 스타일이 중요치 않단건 아니지. 오히려 장삼이사가 모여 사는 우리네 사회에선 상대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 스타일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싶어.
일전에 라라카를 얻어 타고 이야길 나눴는데, 말로 하니까 서로 다 수긍을 하게 되더라고. 여지것 내가 카페에 쓴 글은 눕과 라라 스타일과는 달랐던 게 아닌가 싶어.
살사 스타일에 비유하자면 온1과 온2랄까. 원에 제자리를 밟느냐 뒤로 가느냐의 차이. 둘 모두 살사를 추고 있지만, 상대 스타일을 파악하지 못하면 영영 평행선을 그리며 우당탕탕 거릴 수 밖에 없잖아.
카페에 글 올릴 때면 저장 버튼 누르기 전에 라라를 생각해. '이 글을 보고 라라가 분개하지 않을까.' 단순히 감정의 표출이 필요할땐 내 스타일대로 쓰기도 하고, 정보 전달이나 공지사항 이면 최대한 라라(스타일의 독자) 입장에서 다듬 거나 세줄요약을 써 보기도 하지. 온1 살세로가 온2 살세라에 맞추기 위해 이것저것 밀고 당기며 간격을 맞춰보는 거랄까.
퐁당이가 그랬나. 33기 남자는 다들 특이한데, 하나같이 다른 스타일로 특이하다고. 괴상한 수컷들과 함께 놀아줘 고마웡. 눕과 라라는 내겐 중요한 독자야.(근데 내년부턴 긴 호흡의 글은 안 쓸거임.)
2. 롤모델
이건 놀로 님이 어느 날 핫썬치킨에서 건넨 화두인데, 쉽사리 지워지지 않더라. '살사판에서 닮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신입사원이 자신의 10년후 20년후를 알고 싶으면 10년차 20년차 상사를 보면 되잖아. 그 사람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며 그만두기도 하고, 혹은 저 이사님처럼 되고싶다는 생각에 의욕을 다지기도 하고.
살사는 취미생활이니 회사와는 다르지만. 우리가 살사 10년차가 되면 어떤 모습일지. '나도 저렇게 살사하고 싶다' 할 만한 롤모델이 있냐는 게 놀로 님 이야기였어.
글쎄… 난 생각의 시선이 자기 안쪽으로 파고드는 편이라 그런 생각을 미처 못해봤는데. 단순히 춤만 놓고 본다면 서울의 유명 강사나 해외 댄서가 많겠지. 그게 아니고 순수 취미생활 영역의 롤모델이라...
그 화두를 가지고 갱 님이랑도 몇 번 곱씹었는데. 만약 우리에게 그런 롤모델이 없다면, 역으로 우리가 롤모델이 되야지 않냐는 이야기가 나왔어. 이미 33기도 6년차가 되어 버렸으니, 회사로 치면 누군가에겐 과장님 아니냐는 거지.
단지 오래 있어 저절로 얻는 건 노화 밖엔 없고, 누군가의 롤모델이 될 깜이 되는가. 그건 어려운 이야기잖아. 내가 롤모델이요! 하는 것도 웃기고. 다만, 놀로 님이 자주 말하는 서산대사 시가 여기 딱 들어 맞더라. 핫썬 치킨에서도 우리 서로 이 시를 한 줄씩 주고 받았지.
"눈 덮인 들판을 갈 때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나의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이정표이니."
3. 왜 살사를 하는가
이건 매 n주년 시기와 연말연시 화두인데. 최근 허자가 물어봐 다시한번 정리가 됐어. 요술포차에서 묻더라고. 왜 살사를 하냐고. 나는 '인격수양'이 목적이라 대답했어.
사람의 격을 닦고 기른다. 한 마디로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거잖아. 동기 카톡방에서 말했던 것 같은데. 더 나은 인간이 되는 비법을 알아냈다고!
일찍 일어나고
술을 줄이고
업무시간에 집중하고
돈을 아끼며 가계부를 꼬박꼬박 쓰고
고마울 땐 고맙다 잘못했을 땐 잘못했다 말하며
운동은 더 자주, 나쁜 음식은 덜 자주
이런 나날을 지난하게 이어가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
마치 만화책 원펀맨에 나오는 강해지는 비법 같아. 하루, 혹은 일주일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하루도 안 거르고 몇 년을 이어갈 수 있을까. 만약 그 지난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분명 인간의 격이 높아지지 않을까 해.
살사도 마찬가지야. 소셜과 댄스. 사귐과 춤 모두. 더 나아지는 방법을 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 그걸 꾸준하게 이어갈 수 있는가. 동호회 생활에 충분히 배게 만들 수 있나. 그게 문제지.
잠자리에 들기 전엔 짧은 홀딩, 긴 뒤풀이 자리를 복기해보곤 해. '혼자 추는 춤(이 화두는 진아 님)'은 아니었나. 힘을 빼고(이건 나리쌤), 올곧은 자세로(이건 짝지 님), 자연스럽게 추고 있나 등등.
더 나은 인간이 되면 더 나은 동기 되는 것도 수월할텐뎅...
4. 깜
노무현 대통령 후보시절 연설 중에, '(내가)대통령 깜이 되냐, 깜이 된다'는 대목이 있거든. 내가 공연을 할 깜이 되냐. 그런 생각을 해 왔어.
이번 11월에 전국동호인 력도대회 나가 동체급 30명중 20등을 기록 했잖아.(그래, 무려 한국력도연맹 공식 홈페이지에 기록이 등재되는 그 대회 말이지)
누구와 경쟁하는 것, 남 앞에 나서는 걸 에너지 소모라 생각하고 꺼리는 데, 전국 대회에 나가 전환점을 맞았달까.
깜이라는 건, 때가 되어야 한다 생각했는데. 그 때를 만들기 위해선 깡으로 부닥쳐야 하는구나. '자리에 맞는 사람이 필요한 거냐,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거냐' 와도 같은 말인데. 결격사유가 크지 않다면, 가끔은 깡으로 깜을 만들 수도 있겠다 싶어.
올 봄, 독학 명리 공부가 한계에 부닥쳐 프로를 찾아가 사주 봤다고 했잖아. 그 때 이야기 중 하나가 떠오르더라. 내 일간인 갑목을 경금의 도끼로 찍어 정화의 불로 태워야 한다고. (참고로 라라 일주가 경금인데, 그걸 알고 난 후 울희 라으라하의 말을 더욱 경청하고 받들게 됨)
력도 봉이야 말로 거대한 금속 도끼 같은 거잖아. 명리학 관점으로 보건 운동역학으로 보건 력도 훈련은 좋은 수련이 됐어. 대회에 나가 부닥치며 수련 의지도 더욱 타오르게 됐고.
내년엔 내가 깜이 되는지, 더 치열하게 부닥쳐 보려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나니(는 아니고 실제론 많이 추린거임), 나는 진짜 재미있는 인간은 안 되겠다 싶음. 그래, 재미는 어쩔 수 없고 재수없는 인간은 되지 말자.
한 해 동안 함께 수련해 줘 고마웡, 7년차 그리고 적어도 10년차까지 지난히 걸어봅시다. 우리 뒤에 오는 기수의 이정표가 될 지도 모르니.
수천자의 불필요한 글을 쓰고 나니, 정말 중요한 이야긴 겨우 다섯자면 되는 것 같아.
고.맙.습.니.다!
첫댓글 :) 등푸른오빠 고맙습니다! 고마오
영혼 담자 토낑낑
@쿠로[열정 38기]
연말인사 인거지? 미안..내년부턴 다 읽을(도록 노력해볼)께...
한 번씩 올리시는 글을 읽을 때면 짧은 수필 한 편 읽는 기분이네요. 생각의 나눔 감사합니다~
감기걸려 잠을 못자고 핸폰보다가 이 글을 봤는데 ㅋㅋㅋ 1. 스타일 보면서 너무 웃겨서 큭큭 거림
무튼 33기 남자들 이제서야 좀 친해진거 같아서 좋구~ 오빠덕분에 33기들 바쁜와중에도 모이는거 같고!! 고마워~송년회 한번 더하나요?ㅋㅋㅋ
우와..긴 글중에 이 말 ' 우리 뒤에 오는 기수의 이정표가 될 지도 모르니.' 넘 좋으네요..저도 갑자기 더 열심히 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아용~^^ 따뜻한글 잘 보고갑니다^^
나 첨부터 끝까지 다 읽었어,,,,
그래서 공연한다고???
앵콜 다 끝났으니 이제 집결하자아~~~~!!!
재미 없는 인간이란 말은 다른말로 모나지 않고 평범한 인간이란 뜻이자나 ㅎ 요즘 같은 시대, 요즘 같은 살사판에는 꾸준한 평범함이 미덕이 되는것 같아 그러니 우리 재미없는 평범한 인간으로 지내다가 떠나자~ 탱고로!!! 슈슝
한번은 형과 함께 이런 얘기를 해보고 싶네요 ㅋㅋ 뭔가 통할것 같은 느낌
아직 살사 원년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생각해볼 것이 많은 글이네요 ^^ 잘 보고 갑니다 :)
다른 건 몰라도 33기 게시판이 동기 게시판 중에서 훌륭한 롤모델이 되고 있고…
반장으로서 롤모델 또한 스타일대로 꿋꿋이 하고 계신 듯 합니다.ㅎㅎ
재수있는 푸른님,늦었지만 역도 수상도 축하해요~
그리고 ㅋ 내년의 깜되는 날 오면,또,더축하해줄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