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주시는 평안
눅 2:8-14
대림절 첫 번재 주일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인데 이 기다림으로 주님의 탄생 주님의 임재가 여러분의 마음에도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며 그러면서 주님의 기쁨 주님의 평안 주님의 사랑 주님의 위로가 여러분의 삶이 더욱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 탄생을 이야기할 때 너무나 잘 알려진 사건이며 그러면서 읽을때마다 마음이 새로워지는 그런 본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그날 밤에 그 근처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양을 치다가 밤이 되어 몇 몇이 모여서 함께 들에서 양을 재우며 자기들은 혹 다가올지 모르는 들짐승들을 경계하며 졸기도 하고 지키기도 하며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서 그들 주위에 빛을 비추어 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말을 합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갑자기 더 많은 천군 천사들이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그 노랫말이 이런 것이었습니다. 14절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그 천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주러 나타난 천사이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축하하기 위해서 나타난 천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노랫말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
예수님의 탄생이 하나님께 영광이고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에게는 평화라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께 영광이냐,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대신 그 값을 치루기 위해 태어난 탄생인데 그것은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질서인 모든 죄는 피로서 갚는다는 그 질서를 지키게 되는 탄생이기에 하나님께 영광이고 그러면서 인간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살리는 길을 여시기는 사랑의 실천이 되기에 영광이 되는 것이며 그리고 예수님으로 인해서 죄와 사망에서 살아난 사람들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기에
예수님의 탄생은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럼 땅에서는 왜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에게 평화가 되느냐
예수님이 평화를 가져다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시는 분이시기에 천사들은 이 노래를 했습니다.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오늘은 그 평화에 대해서 말씀을 전할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를 주러 오신 분이십니다.
이것은 구약 선지자들때부터 계속 예언된 그 약속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사야의 예언인데 이사야 9장에 이런 예언의 말씀이 있습니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장차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가 태어날 것인데 그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도 불릴 것이며 평강의 왕이라고도 불릴 것이라는 예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베푸는 정사와 평강이 더해지고 더해져서 무궁할 것이다 하셨는데
그리스도는 이 땅에 평화를 주러 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주님은 평화를 주십니다.
이 평화에 대해서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 평안 예수님의 평안을 주겠다 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 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예루살렘 성으로 공식적으로 들어가실 때 예루살렘을 보시며 하신 말씀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눅 19:42절에 나오는데
누가복음 19:42]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그 일이 세상 평화에 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이 모여 있는 방에 들어가셔서 하신 첫마디도 무엇이었느냐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였습니다.
예수님은 평화를 그래서 일어나는 평안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평안이 대림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탄생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습니다.
지난 11월 30일 오후 7시쯤 경찰은 울산 모 중학교로부터 “학생이 등교하지 않았다”는 신고가 접수되었습니다. 그래서 경찰은 해당 학생이 사는 아파트로 출동했지만, 이 집 가장인 남자가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자녀들이 집 안에 없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경찰이 직접 확인을 재차 요청했으나 그 남자는 계속 거부하자, 결국 경찰은 소방구조대의 협조로 현관문을 강제 개방한 뒤 내부로 진입했습니다.
당시 집 안에 불이 붙은 상태여서 소방관들이 추가로 출동해 20여분 만에 진화했는데 이미 그 집의 어머니와 두 자녀가 숨진 채 발견되었고 40대인 그 아버지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그 아버지가 가족을 모두 살해하고 본인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었습니다
경찰은 대기업 직원인 그 남자가 경제적 문제를 겪어오다가 가족을 살해하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합니다
안타까운 사건입니다. 곳곳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은 더 예수님의 평안이 이 세상이 모든 사람들에게 충만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입니다.
왜 그 돈 때문에 자기 가족을 다 죽입니까? 자기도 죽어서도 안되지만 왜 자기 아내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를 왜 강제로 죽입니까?
또 욕심에 의해서 남의 나라 평화를 깨뜨리는 그런 모습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도 그런 욕심에 의해서 남의 평화를 깨뜨린 모습이지만 더 황당한 일도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 멀리 남아메리카에 가이아나 이란 작은 나라가 있는데 인구 80만명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에서 최근에 엄청난 석유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옆나라인 베네수엘라에서 석유가 발견된 그 지역은 베네수엘라 지역이라며 석유가 발견된 그 지역 주민들에게 주민투표를 하여서 영토를 베네수엘라로 영입하겠다며 투표날짜도 12월 3일로 정해놓고 준비중입니다.
베네수엘라도 가이아난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나라들이며 1899년에 이미 국제중재패판소에서 현재의 가이아나 땅이 가이아나 땅이라고 판정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베네수엘라는 바로 옆 나라에서 석유가 엄청 발견되니 자기도 석유가 엄청 많이 나고 있으면서도 가이아난의 석유를 탐내어서 주민 투표를 실시해서 물어보겠다고 주장하며 자기 군대를 국경에 집결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베네수엘라의 인구는 2800만명이며 가이아나는 80만명입니다.
군대도 베네수엘라는 약 10만명이고 가이아나는 2000명 뿐입니다.
상대가 안되는 나라규모입니다. 그리고 베네수엘라는 지금도 석유가 엄청 나오는 나라여서 지금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 엄청 부유한 나라였습니다.
지금은 독재를 하여서 그 경제 다 망치고 있으면서 이젠 옆나라 석유까지 먹겠다고 군대를 집결시키고 있으니 이건 욕심이 한 나라의 평화를 망치고 있는 또 하나의 사건입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그리고 가정과 가정 사이에서도 그 욕심에 의해 잘못된 선택에 의해서 그 평화가 수없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땅에는 더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땅인데 왜 그렇게 평화가 없는지
여러분 이 성탄의 계절에 정말 주님의 평화가 이 땅 가득히 채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먼저 여러분의 마음과 여러분의 가정에 주의 평화가 넘치도록 기도하시고 우리가 먼저 평안해야 합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먼저 기도해 주시고 그리고 지금 평화가 깨어지고 있는 가정과 민족과 나라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그냥 그들이 평안하게 하옵소서 그들에게 평화가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하지 마시고 주님의 평안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게 하옵소서 그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세상의 이 싸움과 아픔과 고통과 눈물들은 이 세상의 평안만을 추구하다가 일어나는 결과들입니다.
주님의 평안 주님의 평화가 필요합니다.
그럼 이 세상의 평안과 주님의 평안이 다르냐
다릅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있고 이 세상이 주는 평안도 있다는 겁니다.
주님만이 평안을 주시는 것 아닙니다. 이 세상의 평안 이세상의 평화도 있습니다.
여러분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평안을 누리는 것에는 어떤 것에 평안을 누립니까?
아 좋다 아 편하다 하는 때가 언제입니까?
그것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내 지갑에 돈이 있을 때 내 통장에 돈이 제법 있다고 할 때 아 좋다 편하다 합니다.
돈이 주는 평안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위험한 투자도 하고 위험한 일도 합니다. 돈이 들어올 때 마음이 평안해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높은 자리 앉을 때 마음이 편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권모술수 써가며 어떻게 해서든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려고 합니다.
때로는 비열하다 하는 방법까지 써가며 일반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저렇게까지 하나 하는 방법까지 써가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하루 먹는 밥상에 반찬이 가득할 때 마음이 편하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처럼 권력 바라지도 않고 돈 많은 것도 바라지 않는데 밥 먹을 때 반찬이 몇가지 안되면 마음이 그렇게 불편할 수 없고 반찬이 많아야 마음이 편하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먹는 것에서 편안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게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리고 그렇게 평안 누리는 방법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싸움이 일어납니다.
왜냐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그것이 한정 되어 있으면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싸움이 일어나는 겁니다.
또 한편에서는 한정된 것은 아니고 그냥 내가 평안을 누리는 부분일 뿐인데
문제는 내가 이것이 중요하다고 여기며 그것을 가질려고 하는데 다른 사람은 그것을 이해해 주지를 않고 나를 비난하기도 하고 핀잔을 줄때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그것을 가지라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할때입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서로 강조하다보면 서로 비난하고 서로 업신여기다가 마음이 상하고 관계가 깨어지고 그러다가 쓸데없는 싸움이 일어나서 평화가 깨어집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우리들 속에서도 내가 평안하다고 여기는 그것이 다 다를 겁니다. 그리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그것을 강조하고 그것을 남들에게 강요하면 싸움이 일어나죠 관계들에 상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평안이며 이 세상이 주는 평안입니다.
내가 평안하기 위해서 싸움을 하는 겁니다. 그 싸움이 끊이지가 않습니다.
그럼 주님의 평안은 무엇이냐 다르냐 다릅니다.
여기 본문에서 천사들이 나타나서 평화를 노래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평안은 뭔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더 실제적으로 예수님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처음 만나실 때 하신 말씀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 그 말씀이 더 예수님의 평안은 다르지 않겠느냐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장면입니다.
물론 그때 예수님의 인사가 샬롬이었는데 일반적인 인사이기도 하지만 성경에 기록이 될 정도였다는 것은 예수님은 실제로 자신의 평안, 그리고 자신이 누리고 있고 나눠주고 싶은 그 평안을 선포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럼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무엇이며 어떤 평안이냐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예수님이 가지신 평안도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에서 오는 평안이었고 우리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신 평안도 그 평안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오는 평안이었습니다.
이것이 왜 필요하며 그렇게 중요하냐
우리 인간이 가지는 공포 두려움 외로움 소외감 그러면서 가지는 분노 좌절 낙심 비굴함 부끄러움 그 모든 것들이 왜 생겼습니까?
처음 인간은 이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처음 인간에는 평화롭게 안락하고 기쁘고 모든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그런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두려움 공포 외로뭄 좌절 낙심 분노 억울함 많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이것이 왜 생긴 겁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서 느끼는 피조물의 감정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서 내 마음에 하나님의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떠나시니 그때부터 느끼게 된 감정들이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었습니다.
근본 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었습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서로 얼굴과 얼굴을 대하며 이야기 할 수 있는 그런 존재였는데 우리 인간의 죄로 그 관계가 깨어지니 그때부터 우리들에게는 불안이 생기고 평안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이 세상에서 평안을 찾다가 지금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얼굴 보면서 그 마음과 마음이 통하던 그런 영적인 존재였습니다.
그것을 가장 비슷하게 이룬 사람이 모세였습니다.
성경의 표현도 그렇게 나옵니다.
신명기 34: 10.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
대면한다는 것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한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그렇게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며 알던 사이였다는 겁니다.
원래 인간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그 얼굴을 볼 수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그 마음이 어떠한지 알던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죄로 인해서 그것이 깨어지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니죠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며 하나이신 분이기에 온전한 관계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에게는 불안 두려움 좌절 외로움이 없는 겁니다.
그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그 말씀이 요한복음의 그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내 영혼의 평안함입니다. 내 영혼이 평안해지고 만족하게 되고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가만히 있어도 뭔가 불안하고 뭔가 잘 안되어가는 것 같고 심지어는 공포가 몰려와서 밤에 자다가도 깨고 하는 것은 내 영혼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면 내 영혼이 평안하게 됩니다.
그러면 근본적인 안정감 근본적인 평안을 누리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는 참 평안이라고 합니다.
그 평안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의 그 말씀이며
그리고 그 평안을 주실려고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분이시기에 천사들이 예수님의 탄생때에 나타나서 그 노래를 한 겁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예수님의 평안을 받아서 늘 평안한 삶을 사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누가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에 시기나지 않고 그러냐 잘됐구나 하면서 웃어주는 평안.
누가 높은 자리 올라가서 내가 이런 사람이야 할 때 그것에도 시기나지 않고 그러냐 하면서 웃어주는 평안
그런 것이 내게 있으나 없으나 이제는 그것에 내 감정이 왔다갔다 하지 않고 안정감을 누리고 평안을 누리며 그리고 기도할때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성경읽을때마다 내가 해야하며 내가 가야할 길이 보여서 성경 읽을때마다 감격이고 읽을때마다 희망이 생기면서 가지는 그런 평안.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된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누구에게 주십니까?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신 사람에게 주십니다. 내 마음에 들어와 주셔서 주님의 평안을 누리게 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간구하는 사람에게입니다. 내가 그 평안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지금 내가 불안하오니 두려우니 주의 평안을 주옵소서 간구하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그 평안을 이야기 할 때 대표적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 스패휘드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원래 사업가, 변호사, 법리학 교수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1871년 시카고 대 화재 때 모든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그의 아내는 더 힘들어 했습니다.
그래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아내와 네명의 자녀듪도 같이 여행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여행 중에 아내와 네 아이가 탄 배가 바다에서 사고를 당해 침몰했는데 아내만 기적적으로 살고 네 아이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화재로 재산을 잃어서 좀 쉬라고 가족을 여행보냈다가 그 여행에서 자녀들 네명이 세상을 떠난 겁니다. 너무 충격이 컸습니다
차라리 여행을 보내지 말걸, 그냥 같이 있을걸 얼마나 후회했겠습니까?
얼마후 살아남은 아내를 데리러 영국으로 가는 도중에 자녀들이 숨진 그 바다 위를 지나가다가 아주 강한 폭풍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네 자녀가 죽은 그 바다 위에서 자기도 폭풍우에 고생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생각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속에 일어나는 갈등과 싸웠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은 내가 사랑하는 네 아이를 데려가셨을까? 하나님은 나를 저버리신 것인가? 그런 갈등이었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괴로움을 참으며 그날 밤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환란 중에도 평안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그 사랑이 느껴지니 마음이 평안해지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스패휘드는 그날 밤에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시로 노래했는데 그 찬송이죠"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며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영혼 평안해.
평안은 평화로운 상태나 환경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내게 오실 때 그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실 때 그래서 주님의 평안을 평안을 주실 때 우리는 참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시면서 그 평안을 주십니다
우리 그렇게 삽시다 주님은 지금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다른 것에 집중하지 말고 주님께 집중하며 주님 내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며 주님께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체험이 내게 가득할 때 태풍이 불어도 환란이 몰아닥쳐도 노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체험이 가득할 때 그 가정 그 교회 그 나라 참 평화 이루어질 것입니다.
폭풍우 속에서도 세상 풍파 가장 심한 상황 속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평강의 왕이신 주님이 주시는 평안 그것을 누리며 노래하며 사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