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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7.
신랑이 오신다
마태복음 25:1~13
I. 잔치집
오늘이 여러분의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오늘이 지구 종말의 날이라고 한다면,
여러 분은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습니까?
어떤 반응을 보일 것만 같습니까? 당황스러우십니까?
참으로 기쁜 날이 되어서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두 손 들고 달려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니면 누군가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이씨~ 이런 분위기로 종말을 맞이할 것만 같습니까?
지금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절기입니다.
공교롭게도 교회력의 시작인 대림절이 세상 월력으로는 12월, 마지막 달에 배치되어져 있습 니다.
이 대림절 훈련을 통해서, 매년 맞이하는 대림절을 통해서 우리는 마지막 종말의 시간에,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시간에, 종말 승리자로의 훈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은 다섯 편의 예수님 설교로 구성이 되어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섯 편 설교 가운데 다섯 번째 마지막 설교로, 종말 설교입니다.
언제 읽어도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묻혀 살아가다가 이 말씀을 읽으면 정신이 번쩍 드는 말씀입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종말 성도의 모델이요, 미련한 다섯 처녀는 종말 성도의 경종이 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세상의 마지막 날이 잔치로 묘사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잔치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쁜 결혼 잔치로 기록되어지고 있습니다.
옛날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불교는 초상집과 같고 유교는 제삿집과 같고 기독교는 잔칫집과 같다
그렇게 말씀하곤 했습니다.
환갑이 훌쩍 넘은 홀아비가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합니다.
신부님 제 나이 환갑이 넘었는데 이제 갓 30세 넘은 예쁜 아가씨를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 좀 이상하긴 하지만 죄는 아닙니다.
이 아가씨가 부자 아버지의 상속녀인지라 돈이 꽤 많습니다.
- 그건 감사한 일 아니겠습니까?
아가씨 쪽에서 속히 결혼하자고 떼를 씁니다.
- 신도님이 조른다면 좀 그렇지만 아가씨 쪽에서 조른다면 문제될 건 없지요.
이게 문제 될 것도 없고 죄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하도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할 데가 없어서 입이 간지러워 신부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더랍니다.
죠크이지만 결혼식은 누구에게나 가슴 설레는 일이지요.
이곳저곳 마태복음 곳곳에서 종말을 잔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먼저 9장 15절에서 예수님을 혼인집 신랑으로 소개했습니다.
22장 2절에서도 하나님 나라는 왕이 자기 아들을 위해서 베푼 혼인잔치와 같다고 말씀하셨고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종말은 준비된 자들에게는 기쁨이다. 잔칫집이다.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부산에 모교회에서 3-4년쯤 신앙생활을 한 성도님을 지난 주간에 개인적인 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이 분이 제가 있는 교회에서 느낀점을 고백합니다.
“이 교회는 잔칫집과 같아요.” “그래, 그 잔칫집에서 먹고 마시고 평안히 행복 하게 사십니까?” 그랬더니
“사실 제가 모태 신앙인인데요.
평생을 살아왔던 여정 보다도 이 교회 3-4년이 내 믿음 생활에 더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이 실감 납니다.
그동안 율법 적인 신앙생활을 했는데 교회 와서 행복하게 자유롭게 산다는게 무엇인지 알게 되 었습니다”
라고 그 느낌을 말씀했습니다.
II. 신부 대기실 :
교회 혼인잔치 “신랑이 오신다”는 외침이 크게 들리는 오늘 본문 그 배경을 살펴보십시다.
예수님 당시 유대 결혼 풍습은 세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첫 번째는 혼인 계약서입니다.
양가의 뜻이 맞고 두 사람이 동의를 하게 되면 두 사람이 혼인 계약서를 쓰는데
이때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몸값을 지불합니다.
그 몸값을 킨얀(모하르) 그렇게 이름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 짐을 담당하시고
몸값을 지불하시 고 하나님 나라에 신부로 우리를 받아 주셨다.
구속사에서는 이 킨얀을 주님의 사역에 빗대 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정혼 예식입니다. 게투바라고 이름합니다.
게투바에는 두 가지가 기록이 되어집니다.
① 신랑이 신부에게 우리가 함께 살 집과 평생 먹을 양식과 따뜻한 옷가지 그리고 생활을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하는 약속입니다.
② 두 사람이 서로 잠자리를 제공하겠습니다 하는 약속을 합니다.
그러면서 반드시 우리의 자녀들은 당신과 나 사이에서만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라고 약속을 합니다.
이때부터는 함께 살지 않지만 부부로 인정이 되어집니다. 정결을 지켜야 됩니다.
한편에서 정결을 깨게 되면 이 정혼식은 파괴되어집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요셉이 조용히 끊고자 했다 하는 것을 보면
바로 이 정혼식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때부터 신랑은 혼인잔치 준비를 합니다.
혼인잔치 준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년 동안 두 사람이 그리고 자녀들과 함께 살게 될 집을 짓는 것입니다.
1년쯤 걸려서 집을 짓고 나면 아버지가 점검을 합니다.
이것은 이렇게 고치면 좋겠다. 가구는 이렇게 바꾸면 좋겠다. 살림살이가 좀 부족하구나.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져야 그 다음 순서가 진행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는 말씀은
바로 이런 배경 속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아버지 허락이 떨어지면 신부를 잘 지어놓은 집으로 모시고 와서 잔치를 부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잔치는 주로 밤에 이루어졌습니다.
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이 나라는 굉장히 더웠습니다. 낮에는 잔치가 안 되는 겁니다.
해가 서산에 지고 찬바람이 서늘하게 부는 시간에 잔치를 하는게 좋겠다 생각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히브리 사상에서는 하루의 시작이 저녁에 해가 지는 시간이 하루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아침에서 저녁으로 가는데 이 사람들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 1:5).
그래서 새로운 가정의 시작이 바로 시간의 시작인 저녁에 결혼 예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종 신랑이 신부를 모시러 오는 시간이 늦어질 때가 있습니다.
졸고 있는데 신랑의 행렬 소리가 요란하게 들립니다.
우리는 어떤 소리가 들립니까?
오징어를 쓴 남자가 함 사세요? 그럽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신랑이다 와서 맞으라. 하는 소리가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등불을 밝히고 함께 들어가서 잔치를 벌이게 되는 것이지요.
문제는 지금이 기름 떨어진 처녀들이 있었던 겁니다.
그러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준비하러 간 사이에 행렬이 도착 되어지기라도 한다면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으로 여겨져서 이 사람들은 잔치에 참여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드디어 신랑이 준비된 집으로 신부를 모시고 와서 한 주간 잔치를 벌입니다.
새로 지은 집에 신부 대기실이 있습니다.
사각형으로 지은 집 양쪽 문이 활짝 열려집니다.
그리고 천 조각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들락날락 할 수 있지만 밖에서 신부의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신부 대기실입니다.
이렇게 생긴 신부 대기실이 확장되어지고 다듬어져서 광야에 성막이 되었던 것이지요.
점점점점 다듬어져서 솔로몬 성전이 되었던 것이지요.
이 집 신부 대기실 누가 지었습니까? 신랑이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내 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요한복음 14:2)
신랑이 집을 짓는 이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처를 준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나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겠다.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말씀했습니다.
구원 얻은 모든 백성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 나라의 집을 짓겠다 주님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신부 대기실 이게 바로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누가 지었습니까?
주님이 친히 지은 몸된 교회입니다. 여기는 신부 대기실입니다.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이라도 내 인생에 마지막 날을 맞이하면 이 교회에서 우리는 주님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 의 끝을 여기서 맞이한다고 할지라도 신부 대기실, 이 교회에서 우리는 주님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III. 내 기름 내가 준비한다
오늘 본문을 잘 연구해 보면 상식적인 절차에 따라서 결혼 예식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몇 가지 특이한 점이 발견되어집니다.
혼인 예식이라면 주인공은 마땅히 신랑 신부가 돼야 되는데 신부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혼주 양가의 아버지 어머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교훈이 다른데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신랑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오늘이 역사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예배를 드립니다.
은혜로운 찬송을 하고 살아있는 말씀을 듣고 우리의 기도가 주께 열납되어 지고
행복한 이 시간에 주님이 오신다면 오죽이나 좋겠어요.
옛날 어른들은 눈 오는 날, 비 오는 날, 수요예배 저녁 시간에 오신다고 그랬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간에 오신다 그 얘기죠.
마지막 시간 모두들 행복해하는 그 시간, 주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때 예수님이 오시면 좋을 텐데 꼭 부부싸움 할 때 오신단 말이에요.
회사에서 사기 장부 조작할 때 오신단 말이에요.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에서 주일예배 빼 먹고 나이스 샷! 하는데
하얀 공이 하늘로 슈웅 떠오르더니 뚝 떨어지는데 그 하얀 공을 타고 주님이 짠 오신단 말이에요.
여러분 준비하지 않았을 때 오실 때에 얼마나 당황스러운 일이 되겠느냐?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깨어있으라 말씀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 졸며 잘새”(마 25:5)
앞 장에서 보면 노아 홍수 때처럼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집을 짓고 사고 팔고 할 때 오신다.
그렇게 안 사는 사람들이 어디 있어요? 다 그렇게 사는데 이게 무슨 말이죠?
일상생활에 도취되어져서 세상살이에 푹 빠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 갈 때에
믿음 생활을 잃어버리고 살아 갈 때에 주님이 오신다 하는 교훈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기름이 무엇일까요?
흔히 사람들은 기름 그러면 성령 단순하게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기름”은 떨어졌어요. 등이 꺼졌어요. 메말랐어요.
성령님이 오시면 이렇게 말라 없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한번 오시면 끝까지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는 분이 보혜사 성령님입니다.
여기 “기름”은 주님을 영접하고 우리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데 꼭 필요한 무엇이 있다고 한다면 기름이겠지요.
또 다른 의문점이 있습니다.
기름 떨어진 친구 5시, 넉넉하게 기름을 준비한 다섯에게 기름을 빌려 달라고 얘기합니다.
그때 너희가 쓸 것은 너희가 사라.(5절)
우리가 빌려주었다가는 다 떨어지게 생겼다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 나라 가는 사람들이 함께 신랑을 맞이하자고 하는 친구들이 이렇게 냉정한 것 이게 교회인가?
이게 천국인가?
천국 가는 사람들이 이렇게 경쟁적으로 살아가는게 신앙생활인가?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잘 안되면, 앞뒤가 잘 맞지 않으면 의심을 할 것이 아니라
앗싸 여기에 깊은 진리가 있을 거야.
아하 여기 내가 깨닫지 못하는 깊은 교훈이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틀림이 없는 것이지요.
무슨 얘기일까요?
천국 기름 빌려줄 수 있는게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국 가는 티켓! 한장 가지고 부부가 함께 가고 형제자매가 함께 갈 수 있는게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기름 내가 준비하고 내 구원 내가 준비하고 천국 티켓 네것 내것 따로 준비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나는 아내 치맛자락 잡고 교회를 다녔으니까 아내가 들리움 받을 때 안에 치맛자락 꼭 잡고 있어야지.
아내가 치마 벗어놓고 올라갑니다. 함께 갈 수 있는게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천국 기름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IV. 문 닫히는 때가 있다.
본문 10절에 보면 만사에 때가 있습니다.
기름 준비할 때가 있고, 은혜받을 때 은혜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 고 (그 다음 말씀을 경청해야 됩니다) 문은 닫힌지라”
예수를 믿지 않고 숨을 거두었다면 문이 닫힌 겁니다.
누군가 내게 복음을 전하고 전하는데 구원의 도리가 믿어지지 않아요.
교회 생활이 재미가 없어요. 문 닫힌 거지요.
교회를 다니는데 걸핏하면 시험 들고 걸려 넘어집니다. 일어날 힘이 없어요.
에라 모르겠다 신앙생활 떠나자. 교회 떠나자.
내가 구원받은게 맞은지, 내 앞에 구원의 문이 닫힌 것 아닌지, 경성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홀연히 그 시간은 찾아옵니다. 밤중에 찾아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시간에 주님이 날 불러 갈 수 있으니 깨어있으라! 그게 오늘 본문의 교훈입니다.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내용입니다.
♪6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7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8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9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테니 재촉말라 전해라
100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하도 말이 안되는 노래를 하고 있으니 웃고 가는 겁니다.
인생살이가 그렇게 되는게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오늘밤 오라 그러면 가는 거예요.
주님이 끝내면 내 인생 끝나는 거예요.
끝이 있다. 하루 시작이 있으면 저녁이 있다.
한 해의 시작이 있으면 끝나는 한 해의 문 닫히는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태어났으면 죽음이 있는 겁니다.
역사의 시작이 있으면 종말이 있는 것이다. 그런 얘기지요.
그러나 여기 같은 10절에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약속이 있어요.
“준비하였던 자들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할렐루야!
준비된 자들. 뭘 준비해야 될까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는 좋은 일이 있으리라 많이 있으리라!
예수님을 구세주라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분명 얻으리라
성령님의 인치심을 받은 자들은 천국을 얻으리라 확실히 얻으리라. 할렐루야!
오늘 본문이 그렇게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준비된 자들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천국에 들어가고,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하나님 나라 들어가고...
V. 보라! 신랑이 오신다
오늘 본문에 명령형이 두 개 나옵니다.
6절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13절 그런즉 깨어 있으라! 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결론입니다.
대림절을 매년 12월에 맞으면서 언젠가는 주님 오시는 날이 있다는 겁니다.
그걸 준비하라 는 거예요.
이게 12월에 배치되어 있어서 한 해의 끝나는 날이 있듯이 내 인생 끝나는 날이 있다.
보라 신랑이다.
나와서 맞으라! 하나님이 너를 불렀다.
오너라! 깨어 있으라 그 얘기입 니다.
세상 나라마다 민족마다 명절이 많이 있지만 인류 최대의 명절은 성탄절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가운데 오신 날입니다. 왜 오셨어요? 날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지구가 생긴 이래 가장 축복받은 날이 성탄절입니다.
닫혀있던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린 날이 성탄절입니다.
인류가 두 동강이 난 날입니다.
BC.(Before Christ) 예수님 이전, AD.(Anno Domini)
예수님 오신 이후. 그리고 금년은 2023년 예수님 우리 땅에 오신지 2023년이 된 해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구원받는 길은 이 길밖에 없습니다.
천국 가는 길 이 길밖에 없습니다.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행 4:12)
이것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는 편협된 종교라고 이야기합니다. 독선적이라고 합니다.
독선적이라도 어쩔 수 없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기록되어 있는 것을. 편협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올곧은 것입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것은 진리가 아닌 게지요.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부르짖어 외쳐야 할 말씀이 여기 있습니다.
신랑이 오신다.
예수님이 오신다.
온 세상 사람들아 나와서 맞아라. 항상 깨어있을 지어다.
이 시간이 네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도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 서.
오늘이 지구의 종말이라고 할지라도 마라나타 오시옵소서. 영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오시지 않을 것처럼 하루하루 진실하게 살아가고
오늘 밤이라도 오실 것처럼 준비하 고 살아가는게 기독교 종말론입니다.
버젓이 교패가 붙어 있는 집사님 가정에 딩동딩동 누군가 벨을 누릅니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예수님을 전하는 전도인이었습니다. 집사님을 보자마자 “이 집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묻습니다.
당황하여 쩔쩔매고 있는데 “이 집에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까?”
“버젓이 교패가 붙어 있는 걸 보지 않았습니까? 우리 집은 아무개교 회 집사 가정입니다.”
“제가 그걸 물은게 아니고 이 집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이 집에 모든 식구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았느냐? 묻는 것입니다.”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목사님이고 우리 아버지는 장로님이고 우리 집은 3대, 4대째 모태신앙인 집안입니다.”
“제가 그걸 물은게 아닙니다.”
“이 집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이 집안 모든 식 구들이 예수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까? 묻는 것입니다.”
그러고는 종종종종 계단을 내려가 버렸습니다.
전도인이 떠나고 난 다음에 귓가에 소리가 울리고 떠나지 않습니다.
이 집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이 집안 모든 식구들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까? 괜히 불안합니다.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늘 일찍들 들어오거라. 저녁 같이 먹는다.”
저녁 먹고 가정 예배를 드리는데 이 집사님이 아는 지 식을 총동원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이들이 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 걸 보고 너무너무 좋아서 마침 대림절 기간인지라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불렀습니다. 단순한 성탄절 노래인 줄 알았는데 우리 집에, 내 안에, 우리 아이들 가운데에 주 님이 오셔서 그곳에 성령의 임재가 나타나는 겁니다.
늘 부르던 캐롤인 줄 알았 는데 성령이 임재하고 하나님을 이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고,
우리를 구원한 구 세주로 오신 것이 너무 좋아서 온 식구들이 감동의 눈물 글썽한 가정 예배를 드리게 되었더랍니다.
예수님 오십니다.
나와서 신랑을 맞으십시오.
오늘이 내 생애에 마지막 날을 맞이한다 할지라도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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