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 인과품 18장】 자업자득(공칠의 인과)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제가 지어 놓은 것이 없으면 내생에 아무리 잘 되기를 원하여도 그대로 되지 아니하는 것이 비하건대 현생에서도 아무리 좋은 집에 들어가 살고 싶으나 자기의 집이 아니면 들어가 살 수 없는 경우와 같나니라. 공칠(公七)이를 보라! 이리(裡里)역에 내리면 몇 층 양옥이 즐비하되 그 집에는 감히 들어가 볼 생심도 못 하고, 그 찌그러진 자기 집에만 찾아들지 아니하는가. 이것이 곧 자기가 지어 놓은 대로 가는 실례이며 지어 놓은 그대로 받는 표본이니라.]
핵심주제
【류성태】 공칠이의 자업자득
【한종만】 공칠이의 인과
대의 강령
1) 사람이 제가 지어 놓은 것이 없으면 내생에 아무리 잘 되기를 원하여도 그렇게 안 된다.
2) 현생에서 아무리 좋은 집에 살고 싶어도 자기 집이 아니면 들어가 살 수 없는 경우가 그것이다.
3) 공칠이를 보면, 이리역 앞에 즐비한 몇 층 양옥에는 감히 들어가 볼 생심도 못 하고, 찌그러진 자기 집만 찾아 들어갈 수 있다.
4) 이것이 곧 자기가 지어 놓은 대로 가는 실례이며 지어 놓은 그대로 받는 표본이다.
용어 정의
내생(來生) 한 번 죽은 후에 다시 태어나는 세상. 후생, 내세. 지나간 세상의 일생을 전생, 현재 세상의 일생을 금생, 미래 세상의 일생을 내생. 삼생(三生), 삼세(三世). 불교의 입장, 우리 인생을 금생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전생·금생·내생의 끊임없는 연속 윤회라고 보는 것. 가깝게 보면 어제가 전생, 오늘이 금생, 내일이 내생이 되는 것. 이와 같이 삼생은 끊임없이 계속 윤회하는 것.
현생(現生) 삼생(三生)의 하나. 이승의 생애를 이른다.
공칠(公七) 교단 초창기 총부 부근 마을에 살았다고 하는 가난하고 배우지도 못했으며 전생에 지은 복이 없었던 사람. 그는 전생에 좋은 인연을 맺지도 못하고 혜복도 닦지 못해 평생을 외롭고 가난하게 살며 남의 집 일을 해주고 겨우 겨우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소태산 대종사는 짓지 않으면 받지 못한다는 인과의 이치를 공칠이를 실예로 들어 제자들을 가르쳤다. 짓지 못해 받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대명사.
이리(裡里) 현 전북 익산시 내에 있었던 도시 이름. 솜리(속리)라고도 불렀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백제영토로 소력지현(所力只縣), 그 뒤 옥야현(沃野顯), 고려 초에는 전주현에 소속. 조선 초에 익산군에 소속, 1906년 익산군 익산면, 1931년 익산읍, 곧 이리읍으로 개칭, 1947년에 익산부로 승격, 1949년에 이리시로 개칭. 1995년 지방자치 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 개편으로 이리시와 익산군이 하나로 통합되어 익산시가 되었다.
양옥(洋屋) 서양식으로 지은 집.
즐비하다(櫛比하다) 빗살처럼 줄지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생심(生心) 어떤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음. 또는 그 마음.
실례(實例) 구체적인 실제의 보기.
표본(標本) 본보기로 삼을 만한 것.
주석 주해
【류성태】 대종사의 말씀은 인과의 설법으로 공칠이 예를 들었으나, 인과의 반증이 무엇인가를 매우 실감나게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가 좋은 집에 살기를 원하지만, 원한다고 다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지어놓은 업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럴만한 업을 짓지 않고 그런 마음을 낸다면 인과를 모르는 우둔한 소치이다. [정기일기법] 1조에서 당일의 수입 지출을 기재케 하는 뜻은 허송세월의 무위도식을 없게 하자는 소태산의 가르침이다. 곧 공칠이 같은 삶은 허송세월의 결과라 본다.
【박길진】 계정혜 삼학을 잘하면 그 삼대력의 의식주 삼 건도 잘 구하게 된다. 전생의 인과 관계도 있지만 잘 살기 위해서는 이 계정혜 삼학을 일일마다 들여대야 한다.
【한종만】 공칠이는 고생을 하는 사람이다. 짓는 대로 받는 것을 예화를 들어서 강조한 것이다. 지어놓은 그대로 받는 것이다. 실감나게 설명하려고 공칠이의 예화를 든 것이다.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업의 기운으로 뭉친다.
관련 법문
【정전 제2 교의편 제4장 삼학 제2절 사리연구 2. 사리연구의 목적】 이 세상은 대소 유무의 이치로써 건설되고 시비 이해의 일로써 운전해 가나니, 세상이 넓은 만큼 이치의 종류도 수가 없고, 인간이 많은 만큼 일의 종류도 한이 없나니라. 그러나, 우리에게 우연히 돌아오는 고락이나 우리가 지어서 받는 고락은 각자의 육근(六根)을 운용하여 일을 짓는 결과이니, 우리가 일의 시·비·이·해를 모르고 자행 자지한다면 찰나찰나로 육근을 동작하는 바가 모두 죄고로 화하여 전정 고해가 한이 없을 것이요, 이치의 대소 유무를 모르고 산다면 우연히 돌아오는 고락의 원인을 모를 것이며, 생각이 단촉하고 마음이 편협하여 생·로·병·사와 인과 보응의 이치를 모를 것이며, 사실과 허위를 분간하지 못하여 항상 허망하고 요행한 데 떨어져, 결국은 패가 망신의 지경에 이르게 될지니, 우리는 천조의 난측한 이치와 인간의 다단한 일을 미리 연구하였다가 실생활에 다다라 밝게 분석하고 빠르게 판단하여 알자는 것이니라.
【정전 제3 수행편 제5장 의두 요목 17.】 17. 만물의 인과 보복되는 것이 현생 일은 서로 알고 실행되려니와 후생 일은 숙명(宿命)이 이미 매하여서 피차가 서로 알지 못하거니 어떻게 보복이 되는가.
【대종경 제4 인도품 17장】 이 공주(李共珠) 사뢰기를 [제가 저번에 이웃집 가난한 사람에게 약간의 보시를 하였삽더니 그가 그 후로는 저의 집 일에 몸을 아끼지 아니하오니 복은 지을 것이옵고 지으면 받는 것이 그와 같이 역력함을 알았나이다.] (중략)
【대종경 제5 인과품 4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주는 상벌은 유심으로 주는지라 아무리 밝다 하여도 틀림이 있으나, 천지에서 주는 상벌은 무심으로 주는지라 진리를 따라 호리도 틀림이 없어서 선악간 지은 대로 역연히 보응을 하되 그 진리가 능소 능대(能小能大)하고 시방에 두루 있나니, 어찌 그를 속일 수 있으며 그 보응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요. 그러므로, 지각 있는 사람은 사람이 주는 상벌보다 진리가 주는 상벌을 더 크고 중하게 여기나니라.]
【대종경 제5 인과품 7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남에게 은의(恩義)로 준 것은 은의로 받게 되고, 악의(惡意)로 빼앗은 것은 악의로 빼앗기되, 상대편의 진강급 여하를 따라서 그 보응이 몇 만 배 더할 수도 있고, 몇 만 분으로 줄어질 수도 있으나, 아주 없게 되지는 아니하며, 또는 혹 상대자가 직접 보복을 아니 할지라도 자연히 돌아오는 죄복이 있나니, 그러므로 남이 지은 죄복을 제가 대신 받아 올 수도 없고, 제가 지은 죄복을 남이 대신 받아갈 수도 없나니라.]
【대종경 제5 인과품 15장】 대종사 서울 교당에서 건축 감역을 하시는데, 여러 일꾼들이 서로 말하기를,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억지로는 잘 살 수 없는 것이요, 반드시 무슨 우연한 음조(陰助)가 있어야 되는 것이라고 하는지라, 대종사 들으시고 그 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대저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살아 가자면 우연한 가운데 음조와 음해가 없지 아니하나니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이나 부처님이나 조상이나 귀신이 맡아 놓고 주는 것인 줄로 알지마는 아는 사람은 그 모든 것이 다 각자의 심신을 작용한 결과로 과거에 자기가 지은 바를 현재에 받게 되고, 현재에 지은 바를 또한 미래에 받게 되는 것이요, 짓지 아니하고 받는 일은 하나도 없는 줄로 아나니, 그러므로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치 아닌 자리에 부귀와 영화를 억지로 구하며 빈천과 고난을 억지로 면하려 하나, 지혜 있는 사람은 이미 지어 놓은 죄복은 다 편안히 받으면서 미래의 복락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며, 같은 복을 짓는 중에도 국한 없는 공덕을 공중에 심어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복록의 원천이 마르지 않게 하나니라.]
【대종경 제5 인과품 17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사람은 남이 복 받는 것을 보면 욕심을 내고 부러워하나, 제가 복 지을 때를 당하여서는 짓기를 게을리하고 잠을 자나니, 이는 짓지 아니한 농사에 수확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나니라. 농부가 봄에 씨 뿌리지 아니하면 가을에 거둘 것이 없나니 이것이 인과의 원칙이라, 어찌 농사에만 한한 일이리요.]
【대종경 제5 인과품 21장】 한 걸인이 김 기천에게 복을 지으라 하매, 기천이 묻기를 [내가 복을 지으면 그대가 나에게 복을 줄 능력이 있느냐.] 하니, 그 걸인이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기천이 말하기를 [어리석은 사람들은 흔히 제 개인이 살기 위하여 남에게 복을 지으라 하니, 그것이 도리어 죄를 짓는 말이 되리로다.] 하였더니 대종사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기천의 말이 법설이로다. 세상 사람들이 복을 받기는 좋아하나 복을 짓는 사람은 드물고 죄를 받기는 싫어하나 죄를 짓는 사람은 많으니, 그러므로 이 세상에 고 받는 사람은 많고 낙 받는 사람은 적나니라.]
【대종경 제9 천도품 5장】 대종사 천도를 위한 법문으로 "열반 전후에 후생 길 인도하는 법설"을 내리시니 이러하니라. [아무야 정신을 차려 나의 말을 잘 들으라. 이 세상에서 네가 선악간 받은 바 그것이 지나간 세상에 지은 바 그것이요, 이 세상에서 지은 바 그것이 미래 세상에 또 다시 받게 될 바 그것이니, 이것이 곧 대자연의 천업이라, 부처와 조사는 자성의 본래를 각득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었으므로 이 천업을 돌파하고 육도와 사생을 자기 마음대로 수용하나, 범부와 중생은 자성의 본래와 마음의 자유를 얻지 못한 관계로 이 천업에 끌려 무량 고를 받게 되므로, 부처와 조사며 범부와 중생이며 귀천과 화복이며 명지장단(命之長短)을 다 네가 짓고 짓나니라. 아무야 일체 만사를 다 네가 짓는 줄로 이제 확연히 아느냐. (중략)
【정산종사법어 제2부 법어 제5 원리편 41장】 말씀하시기를 [인과의 관계를 상생의 인과, 상극의 인과, 순수의 인과, 반수의 인과 등 네가지로 대별할 수 있나니라. 상생의 인과는 선인 선과로서 인과의 원리가 상생으로 순용됨을 이름이니, 그 인연이 서로 돕고 의지하여 모든 일을 원만히 성취하게 되는 좋은 인과 관계요, 상극의 인과는 악인 악과로서 인과의 원리가 상극으로 역용됨을 이름이니, 그 인연이 서로 대립되어 여러 모로 미워하고 방해하는 좋지 못한 인과 관계요, 순수의 인과는 자신이 좋은 발심, 좋은 희망, 좋은 서원 등을 세우고 정진하여 좋은 뜻 그대로 소원을 성취하는 등 순하게 받게 되는 인과법이요, 반수의 인과는 마음에 교만심이 많아서 남을 무시하고 천한 사람을 학대함으로써 도리어 자기가 천한 과보에 떨어지는 등 마음과는 반대로 받게 되는 인과법이니라.]
【정산종사법어 제2부 법어 제5 원리편 46장】 말씀하시기를 [사람 사람이 전생 일과 내생 일이 궁금할 것이나 그것은 어렵고도 쉬운 일이니, 부처님께서 "전생 일을 알려거든 금생에 받는 바요 내생 일을 알려거든 금생에 짓는 바라"하신 말씀이 큰 명언이시니라. 자기가 잘 지었으면 금생에 잘 받을 것이요, 잘못 받으면 전생에 잘못 지은 것이라, 아는 이는 더 잘 짓기에 노력하고 모르는 이는 한탄만 할 따름이니라.]
【정산종사법어 제2부 법어 제9 무본편 37장】 말씀하시기를 [복을 지으면서 알아 주지 않는다고 한탄 말라. 복을 짓고 칭찬을 받아 버리면 그 복의 반을 받아 버리는 것이니, 내가 복을 지음이 부족함을 생각할지언정 당장에 복 받지 못함을 한탄하지 말라.] 또 말씀하시기를 [오는 복을 아끼면 길이 복을 받나니라.]
【정산종사법어 제2부 법어 제11 법훈편 64장】 말씀하시기를 [하늘은 짓지 않은 복을 내리지 않고, 사람은 짓지 않은 죄를 받지 않나니라.(天不降不作之福 人不受不作之罪)]
【대산종사법어 제12 거래편 39장】 대산 종사, 이병은(李炳恩) 영가의 열반 후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동산(東山)의 성격으로 보나 금생의 일로 보아 병고로 고생할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고생하는 것은 이생의 업이 아니라 여러 생 여러 겁을 대장(大將)으로 다니며 남의 생명을 눌렀기에 받는 것인바, 과거에 지은 업을 안 받을 수 없으므로 깨끗이 받아버리자고 했더니 ‘제가 그런 것 같나이다.’라고 하더라. 그러므로 우리가 ‘나는 이렇지 않은데 왜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기는가.’ 할 때는 반드시 전생의 업을 받는 것이라, 지은 것을 안 받고 누구에게 줄 것인가. 동산을 표준해서 우리 앞길에 공부 사업의 진로가 만겁에 열리기를 빌자. 동산은 내가 없기에 나 아님이 없어서 사생이 참 나가 되었고, 내 집 없기에 내 집 아님이 없어서 시방을 내 집 삼았느니라[無我無不我 四生是眞我 無家無不家 十方是本家].」
【대종경선외록 11. 제생의세장 12절】 대종사 말씀하시었다. "하늘이 벌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벌을 장만한 것이며, 하늘이 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복을 장만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도 죄 짓지 아니한 사람에게 벌 내릴 권능이 없고 복 짓지 아니한 사람에게 상 내릴 권능이 없는 것이다."
【대종경선외록 17. 선원수훈장 10절】 대종사 말씀하시었다. "불제자는 먼저 부처님의 대자대비를 체득해야 할 것이니 모든 중생이 선한 일을 행하여 선도에 오르는 것을 자기 자식 이상으로 사랑하고 북돋아 줄 것이요, 모든 중생이 악한 일을 행하여 악도에 떨어지는 것을 자기 자식 이상으로 불쌍히 여겨서 제도해 주어야 할 것이다. 불제자는 또한 생멸 없는 이치를 깨달아 생사에 해탈을 얻어야 할 것이니, 생사라 하는 것은 사시 순환과 같은 것이며, 주야 변천과 같은 것이며, 일월 왕래와 같은 것이며, 호흡과 같은 것이며, 눈 깜짝이는것과 같은 것이다. 가령 사람이 호흡이나 눈 깜짝임을 자유로 하고 자유로 아니할 사람이 누구 있으리요. 감으면 뜨게 되고 뜨면 감게 되며, 들이 쉬면 내쉬게 되고 내쉬면 들이 쉬게 되며, 밝으면 어두워지고 어두우면 밝아지며, 춘하가 추동되고 추동이 춘하되나니, 생사도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불제자는 또한 인과 보응되는 이치를 알아서 오직 악업은 짓지 아니하고 선업을 계속 지어야 할 것이니, 선악간 인을 지으면 지은 대로 과를 받게 되어 육도와 사생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육근을 동작할 때에 일동 일정에 인과가 붙게 되나니,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는 내력과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되는 내력을 확철 대오하여 복혜 양족한 부처의 지행을 갖출 것이다."
【대종경선외록 19. 요언법훈장 37절】 대종사 말씀하시었다. "그대들은 삼가 남의 덕만 바라지 말고 나의 덕을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라. 짓지 아니하고 바라기만 하면 덕이 오지 아니하고 해가 오는 것이다. 또는 내가 남을 사랑하기만 할 따름이요, 남이 나를 사랑하여 주기만 바라지 말라. 나의 사랑이 없이 공연히 바라기만 하면 사랑이 오지 아니하고 미움이 오는 것이다."
【한울안 한이치에 제1편 법문과 일화 2. 심은대로 거둠 3절】 김현관(金玄觀)에게 말씀하셨다. "인과를 전생, 이생, 내생의 삼세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로 보아야 한다. 찰나 전은 과거요, 찰나는 현재요, 찰나 후는 미래다. 벽에다 공을 던지면 바로 자기에게 돌아오고 하늘에 침을 뱉으면 즉시 제 얼굴에 떨어지는데 인과도 이와 같은 것이다."
【한울안 한이치에 제1편 법문과 일화 2. 심은대로 거둠 34절】 "일생의 과보가 대개 현생업과 전생업이 서로 조화해서 금생 과보가 되는 것이나 전생업 그 전부가 차지하기도 한다."
【대산종사법문집 제2집 제1부 교리 삼학공부 6. 삼학공부 중 대기사 3. 취사 중 대기사】 첫째, 제가 짓고 제가 받는 줄을 모르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천지만물 허공법계 즉, 사은(四恩)이 밭이 되고 각자의 심신 동작이 종자가 되어 호리도 틀림없이 나타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결국 자기를 이롭게 만드는 것이요,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이 결국 자기를 해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종사께서 이르시되 「어리석은 중생이 복이 돌아오기만 바라고 있는 것은 마치 농사 짓지 않은 농부가 수확하려는 것과 같다」고 하시었다. 그러므로 수도인은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진리를 알아야 할 것이다. (중략)
위 내용은 【류성태(2008), 대종경 풀이 上, 498~500】,【원불교 대사전】,【원불교 용어사전】,【원불교 경전법문집】,【네이버 어학사전】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