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8장 6절에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라고 증거된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듯이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말씀과 기도와 찬미로 무기 삼으면서 깨어 있고 살아 있는 신앙이었을 때는 친히 앞서 가시어 그 다윗을 위해 생생하게 싸워 주시고 승리하게 하시며 형통케 하시고 온갖 응답과 복들로 차고 넘치게 하신 것을 볼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는 그러한 신앙 가운데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 앞에서도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말씀 그대로 믿으며 목숨을 걸고 대결하면서 실제로 물맷돌 하나로 승리한 것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아래의 본문에서도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만 원론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이유 있는 뜻과 약속과 통치들, 시간과 계획과 섭리들 안에서의 예외적인 사안과 상황과 인물들 등이 아닌 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거의 모든 왕들에 있어서도 일관적이고 공통된 내용은 말씀에 선 믿음의 왕들의 승리와 형통들인 것으로 만일 의로운 시련들이 있었다면 멀지 않은 시간에서의 역전이나 그 보다 더 놀라운 역사들의 예비임을 볼 수 있는 것이고..
반면 온갖 죄악들 가운데 행했던 왕들에 대해서는 크고 작은 진노와 심판들인 것으로 만일 혹 일정 기간 동안의 득세가 있었다면 결코 오래지 않아 망하고 그 최후는 비참이라는 사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실상 따지고 보면 성경에 소개된 모든 인물들이나 역사들에 있어서도 다 마찬가지인 것이며, 그러한 이치와 원리와 법칙들은 본질적으로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 단 한 순간에 있어서도 다를 수 없는 근간이자 원리인 것임을 알 수 있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유추할 수 있고 통찰할 수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 진정 2000년의 교회사에 있어서도, 모든 인류와 역사들에 있어서도, 오늘 이 시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 이르기까지도 조금도 다를 수 없는 것이고, 심지어는 세상 끝 날까지, 영원에 이르기까지 변할 수 있는 사실 자체가 아닌 것입니다..
참으로 그에 있어서의 이유는 결코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바로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전지전능하심으로 살아 역사하시고, 천지만물과 생사화복과 희로애락의 주인이시며, 온 세상의 모든 것들 중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 아닌 것이 있을 수 없고, 우리의 모든 것들도, 순간순간들도, 사실 오늘 하루의 호흡부터도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있는 것이며, 참으로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허락이 없으면 떨어뜨릴 수 없는 것이고, 심지어는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도 다 세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이며, 특히 오늘 우리의 모든 상황과 형편들이, 우리들이 그토록 구하고 애쓰며 근심하는 모든 일들과 기도의 제목들 하나하나가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있기에 오늘도 우리들에 있어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이며 근본적이면서 긴급하기까지 한 것은 바로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 안에 온전히 거하는 것이고 기뻐 역사하시기에 합당하게 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바로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름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이고, 말씀대로 모든 것을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말씀대로 하나하나 성취해 나가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통찰해 봐도 근원적으로 우리 인생들에게 있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이시자 근본이시며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바로 그 자체가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 말씀의 신앙과 함께 기뻐 역사하시면서 말씀대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나타내시고 말씀 그대로 경험케 하시며 하나하나 다 이루시는 분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백성된 오늘날의 우리들에 있어서도 언제, 어디서, 누구와 있고, 어떤 형편과 무슨 상황들 가운데 있든지 간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처음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 등의 이치, 원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을, 무엇보다 사도 바울처럼 순간순간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만 자랑하고 붙잡으며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성자 하나님이신 그 목숨값의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과 같은 구원의 힘과 은혜들을 의지해야 하는 것이며..
직접적,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힘입어 살아야 하는 것이고, 무엇보다 바로 그러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의지함과 함께 더 이상의 죄와 세속과 정욕과 자기 소견들 등이 아닌 주야로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며 결단하고 실천하는 등의 믿음의 몸부림과 경주들을 가장 우선으로 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고 또 중요하며, 긴급하고 또 긴급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다시 말하면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오늘도, 우리들이 있는 여기 이곳에도, 게다가 우리의 모든 일들과 순간순간들에 있어서도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 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의 권능을 의지하면서..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은 최대한 빨리 자복하며 실제로 돌이킬 수 있는 것이며, 그와 함께 사함과 나음들, 회복과 역전들도 정말 경험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그 무엇보다 그와 같은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주야로 더욱 더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말씀을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암송하며 필사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을 갈망하는 것이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과 인류 역사의 상황들에 있어, 실제로 모든 현실과 순간과 기도 제목들에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시급하며 하나하나 상관있고 전적으로 직결된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진정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그와 같이 내 힘과 의가 아닌, 또한 세상의 능력과 방법들도 아닌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 그리고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바로 그러한 하늘의 힘과 은혜로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살면서도 그와 같은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과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갈수록 더 충만해 질뿐만 아니라 근원적으로는 말씀 그 자체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하심으로 인한 놀라운 일들, 곧 그 속에 상상 이상으로 예비된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온갖 하늘의 은혜와 응답과 승리들 등으로 점점 더 풍성해 지고 갈수록 형통케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로 인해 더 하나님을 사모하며 더욱 죄와 싸우고 더더욱 말씀의 열정이 되면서 가면 갈수록 더 강한 군사와 같은 믿음이 되며, 맡겨진 사명들을 더욱 잘 감당하게 되고, 온 지경에 더더욱 강렬한 빛과 소금이 되는 복된 신앙, 살아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 속에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듯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는 뜨거운 믿음과 열정도 될 수 있는 것이고, 그와 함께 그 자신 뿐 아니라 온 지경에 하늘의 역사와 열매들로 온통 차고 넘치게 되는 것이며, 가장 실제적인 축복과 부흥의 통로, 기도 이상의 복음과 영광의 도구도 될 수 있게 되는 것인데..
바로 오늘 본문의 남유다의 요담 왕,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오늘날 우리들과 근본적으로는 동일하게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게 되는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울 수 있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하면서 살아 있는 믿음이 될 수 있도록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며 구원에 참예케 된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요담 왕 또한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세계, 복음의 원리, 믿음의 실제, 특히 근원적으로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든 역사들에 있어 본질적으로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시기에 합당한 믿음, 곧 실질적으로는 말씀으로 깨어 있는 신앙이 됨으로 인해 그 자신이나 그가 통치한 나라, 그 시대에서 승리하게 되고 더욱 강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와 같은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자 살아 있는 믿음의 선배로 남아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오늘 이 시간 우리들에 이르기까지 본이 되고 열매가 되며 믿음과 축복의 통로가 되고 있는 것으로 진정 그에 있어서의 모든 전제와 기준이야 말로 단적으로 말해 말씀, 말씀의 신앙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대하27:6)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6월 20일(목)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