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2년 9월1일 오늘, 대한민국은 ‘노인공화국’이다. 노인의, 노인에 의한, 노인을 위한 정치가 지배하고 있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의 심정으로 그는 여의도행 5호선 낡은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당초 목표대로라면, 그는 이번주 내에 두 명의 국회의원을 더 ‘처리’해야 한다. 급진 청년들의 조직 ‘새벽’을 이끌고 있는 그는 젊은 세대의 희망이다. 90세가 넘은 의원들이 그의 1차 타깃이다.
오창민 논설위원
20세기 산업화 시대에는 유권자의 90%가 노동자이자 산업 현장의 역군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활동을 하는 노동자와 정치적 유권자가 다르다. 투표권을 가진 사람의 과반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에서 실버 파워는 대세가 된 지 오래다. 노인들 개인은 무력할지 몰라도 강한 결속력으로 무장한 그들의 힘은 막강하다. 사회의 생산력에는 기여하는 바가 없으면서도 정책 결정을 독점하고 있다. 노인 복지를 최우선시하고, 노인이 될 60대를 위한 정책을 그다음으로 중시한다.
노인들은 청년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 큰일이라고 말한다. 최근 국회는 조선 시대 한명회의 셋째 딸이자 예종의 부인인 장순왕후 한씨의 동상을 전국 중·고교에 세우자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장순왕후는 16세 때 세자빈으로 책봉됐다. 정숙한 성품에 아름다운 용모로 시아버지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책봉 이듬해 인성대군을 낳고, 산후병으로 5일 만에 죽었다. 각각 90세와 89세 남성인 여야 원내대표는 “죽더라도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교훈을 미래세대에게 가르쳐야 한다”며 카메라 앞에서 손을 맞잡았다. 90세가 넘은 재벌 총수들의 모임인 원로경제인연합회는 “어린 단종을 폐위하고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은 것도 노인의 지혜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고 지지 성명을 냈다.
대한민국 경제는 20년 전 성장이 멈췄다. 한때는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었는데 지금은 베트남에도 뒤진다. 5년 뒤엔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이 완전 고갈된다. 정부는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총리, 경제부총리, 복지장관 모두 80대들이다. ‘내가 살면 언제까지 살겠는가, 내가 사는 동안 괜찮으면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한다. 일반시민 노인들도 대부분 자녀나 손주가 없어 미래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노인공화국의 권력을 장악한 1955~1964년 출생자들은 단군 이래 최초의 베이비붐 세대다. 1955년 당시 한국의 인구는 2150만명이고, 중위연령은 18.9세였다. 공화국의 허리라 할 수 있는 1965~1974년 출생자는 두번째이자 마지막 베이비붐 세대다. 두 세대 모두 한 해 90만~100만명씩 태어났다. 그러나 현재 31세인 2021년 출생자는 26만명에 불과하다. 아이들 울음소리는 2000년대 초부터 급감했다. 집을 구할 수 없는데 젊은이들이 무슨 수로 결혼을 하며, 혹 결혼을 해도 사교육비가 그렇게 드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아 기르겠는가. 여성은 가사 부담에 출산에 따른 경력단절까지 각오해야 했다.
수에서 밀린 2000년 이후 출생자들은 지금껏 비주류로 살고 있다. 1980~1990년대부터 헤게모니를 잡은 386세대가 만들어놓은 사회구조와 가치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50년 전 금배지를 달았던 386 정치인들은 지금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재계와 법조계, 언론계 상층도 386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더 절망적인 것은 의학의 발전이 이들의 영향력을 연장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지하철엔 노인들뿐이다. 돈 내고 타는 사람은 열 명에 한 명도 안 된다. 일반석엔 노인이 앉고, 과거 경로석엔 사회적 약자인 청년용 표시가 돼 있다. 열차 안 풍경은 2020년대 서울 종로 탑골공원 모습과 비슷하다. 노인들은 여당인 ‘노인의힘’이 옳네, 야당인 ‘더불어노인당’이 옳네 하며 갑론을박한다. 한 노인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노인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노인으로부터 나온다’로 헌법 1조 2항을 바꿔야 한다는 서명을 받고 있다. 또 다른 노인은 노인 대상 범죄에 극형을 내려야 한다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그는 갑자기 피곤해졌다. 방심하고 잠깐 눈을 붙인 것이 실수였다. 노인 경찰 두 명이 다가왔다. 젊은 사람이 왜 낮에 일하지 않고 지하철에서 자고 있느냐고 추궁했다. 그의 호주머니에서 권총과 ID카드가 나왔다. 홍길동(2122년 9월1일생). 한국에서 태어난 마지막 아이. 인구 급감으로 멸망한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그는 그렇게 체포됐다.
한국 사회의 저출산 문제가 재앙이라고 다들 말하는데 지금 재앙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지금 대비하지 않으면 대안을 찾을 수 없는 무서운 재앙이다. 저출산 정책이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년, 2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 사람들은 무엇이든 빨리빨리 이뤄왔다. 경제발전도, 고령화사회 진입도 빨랐다. 그렇다면 저출산 탈출도 빨리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와 시민단체, 종교지도자들이 나서야 한다.
저출산은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증가와 일하며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의 미비도 원인이지만 외환위기 이후 닥친 급격한 경제구조 변화로 인한 청년 실업 증가로 혼기가 늦어지고, 가임 여성의 인구감소 등도 한 원인이다. 결혼은 하되 출산은 미루는 딩크족 등 신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계층이 우리 사회에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출산율은 급격하게 낮아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비정부기구인 인구조회국(PRB)이 발표한 ‘2005 세계인구통계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대만, 폴란드,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등과 함께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보인 나라들로 분류되었다. 지금의 출산율이 지속될 경우, 2017년 우리나라 총 인구는 4천9백25만명, 2050년에는 4천2백35만명으로 줄 것으로 예상된다. 적정 인구보다 3백65만∼8백65만명이나 부족한 셈이다.
저출산, 고령화가 지속되면 현재 5% 안팎인 잠재성장률이 2020년대에는 2%대, 2030년대에는 1%대로 떨어질 것이란 게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망이다. 학교들은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해 폐교되고, 노인들을 부양하기 위해 젊은 층이 지출해야 하는 비용과 의료비 등 사회보장비용이 증가하고, 국방력 확보에도 영향을 미쳐 조만간 여자도 군대에 갈 날이 올지 모른다. 저출산으로 인해 고령화 사회를 피할 수 없는 우리나라는 저성장시대가 상당기간 지속되면서 국력이 약화되고 무기력한 ‘노인공화국’이 될 것이다.
고령화 사회를 부추기는 아이 안 낳는 풍토는 개선되어야 한다. 법과 제도를 통해 출산을 기피하는 가정에 대해서는 저출산 해결을 위해 발생되는 인프라 구축비용을 막중하게 분담시켜야 한다. 하지만 자녀를 많이 낳는 가정에 대해서는 자녀 양육 환경조성을 위해 조세감면과 양육 및 교육비 지원, 주택 우선분양권 등 각종 사회지원책들을 마련해 줘야 한다.
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유례없는 저출산, 고령화 관련 조직을 세우고 대통령까지 나서는 것을 환영한다. 하지만 현실적인 정책수립과 적절한 예산확보를 통해 신속한 대처가 이뤄지지 않으면 ‘약효’가 미미해질 우려가 있다. 정부와 정치인들은 출산과 양육비용에 대한 해결 방안과 과도한 자녀교육비 문제 해결을 통해 일하면서도 자녀양육이 가능한 국가지원시스템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일과 육아가 가능하도록 가정을 중시하는 기업풍토가 조성되고, 출산·육아 지원정책 등 전방위적인 저출산 대책이 세워져 하루 속히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희망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