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있어 직접적인 정의는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한국에서의 죄는 한국의 법을 어기는 것이고, 미국에서의 죄는 미국법을 어기는 것이며, 당연히 하나님 앞에서의 죄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인데..
다름 아닌 절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법이 아닐 수 없는 것이기에 하나님 앞에서는 말씀을 어기는 것이 죄인 것입니다..
근데 단적으로 말해 오늘 우리들에게 주어지고 드러난 하나님의 법인 성경 말씀만 하더라도 다 헤아릴 수도 없는 분량인 것이고, 게다가 눈으로, 속으로 범하게 되는 죄의 종류들도 많은 것이기에, 심지어는 요한일서 3장 15절에서는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라고 까지 증거되어 있는 것이기에 꼭 원죄를 거론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무흠한 사람이나 의인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며..
실상은 자신이 알든지 모르든지, 인정하든지 안 하든지,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간에 어쨌든 누가 뭐라고 하든, 어떤 식으로 부인하든 분명한 것, 변할 수 없는 절대적인 사실은 그 하나님께서 온 세상 천지만물과 모든 인생들의 주인이시라는 것이고 생사화복의 주재자이시라는 것이며 선악 간 심판주가 아니실 수 없는 분인 것이기에 그 하나님 앞에서 따지고 보면 오히려 자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끔찍한 죄악들 가운데 있는 인생들이 많은 것이며, 진정 다윗의 고백처럼 머리털보다도 더 많은 죄악들을 범하는 우리 인생들의 현실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사실 신실하고 경건한 백성들일지라도, 아니 그럴수록 더 억만 죄인으로 고백할 수밖에 없는 실제인 것이며, 실상 예수님께서 하신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가 조금도 과한 것일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원론적으로 그러한 죄악들 가운데에는 그 모양과 정도와 강도들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든 따지고 보면 단 하나도 빠짐없이 그에 합당한 대가와 책임과 진노들이 반드시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인 것이며, 게다가 그 누구보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죄악들에 대해 결코 모르실 수 없다는 것이고..
특히 그러한 죄악들과 그로 인한 심판들은 그 누구도 예외 없는 것으로 우리 인생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엄청 더 무서운 것일 수 있다는 것이며, 사실상 죄악과 그로 인한 결과 그 자체만 두고 볼 때 끔찍하고 처참하며 경악스러운 것 그 이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 대표성과 영향력, 상징성과 비중 등이 감안되었을 테지만 어쨌든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 곧 하나님의 법을 단 한번 어겼을 뿐인데..
에덴동산에서의 모든 평안과 행복과 복들 등을 박탈당하고 상실케 되었을 뿐 아니라 여러 모양의 관계들이 깨어 졌고, 영혼과 심령과 육신, 가정, 환경 등 그들 자신과 온 지경에 있어 갈수록 더 직간접적인 진노와 저주들에 빠지게 된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며, 심지어 그러한 일들이 온 세상, 모든 인생들에게까지 이어진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노아 때에는 죄악들이 온 땅에 창일하고 넘치게 되자 그로 인해 온 세상이 홍수로 인한 심판과 진멸들로 창일해 지게 되었던 것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원론적으로는 구약의 모든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도, 더군다나 믿음의 대선배들인 다윗이나 솔로몬 등이라 하더라도, 더 나아가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의 모든 열왕들 등에 있어서도 잘 살펴보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의 시간과 계획과 섭리 안에서 죄악들을 어떤 식으로든, 어떤 모양이나 방식으로든 값없이 넘기시거나 가볍게 처리하지는 않으셨고, 그것이 당연한 것일 수밖에 없음은 사실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이시기도 한 하나님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그 어떤 작은 죄악들이라도 거저나 공짜로 넘기시거나 해결하실 수는 없는 분인 것이며, 만일 그렇게 하신다면 그 자체가 모순이나 불합치가 되는 것인데..
특히 순식간에 우상의 땅으로 변하게 된 북 이스라엘도, 심지어는 믿음의 유업을 이은 남 유다도 끝내 돌이키지 않으며 오히려 더욱 더 반복하고 심각해진 죄악들로 인해 침략과 전쟁들 등으로 점점 쇠퇴하게 되고 망하게까지 되었으며, 그때의 상황들은 참으로 짐작과 예상 그 이상으로 비참하고 끔찍한 것들이었음을 역사서와 선지서들 등 군데군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그러한 죄악들에 있어서는 따지고 보면 그 어떠한 것들도, 단 하나라도 모르시거나 그냥 넘기실 수 없는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이시기에 온 세상 모든 인류의 죄악들을 위해 독생자이시고,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며,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다 쏟지 않으실 수 없게까지 하시면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게 하신 것인데..
따지고 보면 진정 근본적, 원론적으로는 크고 작은 모든 모양과 종류와 분량의 죄악들에 있어 그렇게까지 단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지불되게 하시면서 하나하나 다 대속하시고 대신하시게 할 정도이셨던 것입니다..
사실 그러한 죄악들에 대해서는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오늘날에도, 특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들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다르실 수 없는 분인 것이며, 그렇기에 그러한 모든 죄악들과 그로 인한 결과와 심판들에 있어서의 유일한 방법은 오늘도 시대와 나라들에 관계없이 창세 전부터의 하나님 아버지의 뜻과 계획과 약속과 준비와 진행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으며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구원에 참예함으로 인해..
더 이상의 죄와 진노, 사탄과 음부, 심판과 사망의 영적 노예가 아니라 의롭다 칭함 받으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정말 하나님의 것이 되며,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진정 그러한 것만이 온전한 구원과 그 가운데에서의 크고 작은 하늘의 힘과 역사들의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 모든 유일과 우선과 전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험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 더 이상의 죄와 세속과 정욕들이 아닌, 또한 내 힘과 의, 세상적 능력과 방법들을 의지함도 아닌 순간순간마다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한 죄악들은 즉각적으로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며..
진정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더욱 말씀을 가까이 하면서 주야로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함께 깨어 있고 살아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와 함께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충만해 지는 것이며, 가면 갈수록 더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바로 그러한 말씀의 신앙이 되는 것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 최선이고 최고인 것이며, 그러면서 더더욱 죄악들과 싸우게 되며 심지어는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말씀의 열정으로 무장된 강한 군사와 같은 믿음도 되어 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험악한 세상에서의 연약한 우리 인생들에 있어 그러한 구주 예수님이 계시고, 그 십자가를 언제 어디서든 믿음으로 붙잡을 수 있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결코 계산할 수도, 측량할 수도 없는 은혜이자 능력이며 구원의 실제인 것으로..
사실상 상상도 다 못할 힘과 복들이자 모든 승리와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의 실질적 거함과 누림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아래 본문의 니느웨는 많은 죄악들로 인해 과거에 진멸 직전까지 갔다가 요나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참 신기하게도 왕부터 해서 모든 백성들이 금식하고 자복하면서 긍휼을 입고, 임박한 진멸의 위기에서 구하심을 입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또다시 죄악들을 범하고 심각하게 반복하게 되었으며, 끝내 돌이키기보다는 더 심해지게 되었고, 오늘 본문과 같이 하나님께서 더 이상 기다리시고 용납하실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기에 나훔 선지자를 통해 심판을 경고하신 것이며, 정말 말씀대로 망하게 되었던 것인데..
실상 하나님께서는 아래와 같은 본문을 통해, 무엇보다 니느웨와 같은 사례를 통해 우리 모든 인생들이, 진정 하나님의 백성된 모든 자들마다 그러한 사실들, 곧 죄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참으로 그러한 죄악들로 인해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 안에서 어떤 결과와 심판들이 있게 되는 것인지 등을 위시한 하나님의 세계와 이치들을 언제나 잊지 않으면서 늘 깨어 있는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물론 그렇다고 제대로 된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는 살면서 죄악들을 범했다고 해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해 이미 하나님의 것으로 거듭나고 인 쳐지며 영생까지 이어지게 된 개념도 포함된 구원이라는 것이 돌이켜 지는 것은 아닌 것이고, 실상 억만 죄인이 행위로 인함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인해 구원에 참예케 되는 것이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인간적인 행위들이나 죄악들이 그렇게 믿음으로 이미 참예케 된 구원을 취소시킬 수 있는 개념 자체일 수도 없는 것이며, 만일 그와 같은 구원이 아닌 것이라면 중간에 그 어떤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도 무흠하게 살 수 있기보다는 반대로 크고 작은 죄악들이 적을 수가 없는 실상인 것이기에 모두가 다 구원이 돌이켜 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는 것인데..
어쨌든 그렇다고 죄악들을 범해도 된다거나 회개가 필요 없다거나 잠시라도 죄악들을 쉽게 생각해도 된다는 것은 전혀 아니고 오히려 완전 그 반대인 것으로 실제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면서 범하게 되는 죄악들로 인해 아무 일도 없는 것일 수는 없는 것이고, 진정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비의 심정으로 더욱 사랑하셔서라도 그 백성들이 더 이상의 죄악들을 반복하지 않고 하루 바삐 돌이키며 속히 제대로 된 믿음에 서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시간까지 하늘의 힘과 응답과 복들 등은 막으시곤 하고, 대신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들 등과 같은 징계와 곤고들을 아끼지 않으시곤 하는 것임을 결코 간과하거나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마다 그렇기에 더욱 더 아직까지도 구원에 참예치 못한 영혼들, 사나 죽으나 죄악들로 인한 진노와 심판들에 놓인 인생들을 늘 기억하고 품으며 증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야 말로 참으로 중대한 것일 뿐 아니라 시급한 것이기도 한 것인데..
어쨌든 악한 세력들이 우는 사자들과 같이 삼킬 자들을 찾는 이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우리 인생들에 있어, 사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야 말로 죄악들과의 싸움은 한 두 번이 끝일 수가 없는 것이고, 대충이나 안일이나 방심이어서도 결코 안 되는 것이며, 그렇다고 우리의 힘이나 세상의 방법들로 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으로 다시 한 번 말하면 진정 그 누구든지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붙잡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참으로 목사든 어린 아이든, 그 누구라도,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또한 모든 일과 제목들, 모든 형편과 영역들 등에 있어서도 죄악들과 때로는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며, 세상 끝 날까지 그러한 죄악들에 대항하며 각성하고 자복하며 돌이키고 갱신하는 등과 같은 믿음으로 몸부림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그렇게 죄악들과 싸우는 자들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말씀으로 사는 자들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다시 말해 깨어 있는 자요, 살아 있는 믿음이요, 강한 군사와 같은 자들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그러한 진실한 믿음의 백성들, 본질적으로 말씀의 결단과 몸부림과 열정들로 인한 살아 있는 믿음들마다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에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죄로 인한 진노들이나 심판들이나 징계들이 아닌 말씀으로 인한 온갖 하늘의 힘과 은혜와 응답들, 은사와 능력과 복들, 복음의 능력들,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죄가 아닌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권능과 충만하심을 누리게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해 갈수록 더 치열하고 뜨거운 말씀의 신앙이 되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큰 믿음과 역사들에 거하게 되며 보고 누리며 쓰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일들이 참으로 마땅하고 당연함은 근원적으로 그러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이시자 근본이시며 실체이시고 실제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그 삼위일체라는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행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인 것이며..
그렇기에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 말씀의 신앙과 함께 기뻐 역사하시면서 말씀대로 맛보게 하시고, 모든 일들을 그 뜻대로 다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오늘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의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등에 있어, 사실상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있어서 까지의 실제와 경험들, 생생함과 강렬함들마다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 말씀의 신앙이, 곧 실상 원론적으로 어느 정도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될 수 있느냐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고 실질적인 것이며, 크고 작은 모든 하나님의 일들, 특히 구원의 일들에 직결되고, 사실 하나님의 세계, 복음의 세계에 있어 모든 현실적 관건과 전제와 기준과 통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나1:1~8)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6월 21일(금)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